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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오후에 경기도 포천에 계시는 장인장모님께서 오래간 만에 3남 2녀 맏사위인 우리 집으로 나들이를 오셨다.
매년 한 차례 나들이를 오시다가 연세가 많아지면서 기동력이 떨어져 오시기를 꺼려하다가 아내의 종용으로 2년 만에 어렵사리 방문을 하게 된 셈이다.
예고된 방문이라 아내는 갈비탕, 생선구이, 봄나물 등을 나름대로 준비를 하면서 어쩌면 다음해는 우리 집을 다시 방문치 못할 것처럼 정성껏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아내의 준비과정에 내 판단으로는 “저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도 더러는 있었지만, 연로한 부모봉양에 고추 가루를 뿌리는 격이 될까봐 말없이 최선을 다해 외조(外助)의 맞장구를 쳤다.
도착하신 다음날 토요일엔 두 어른들을 모시고 거가대교, 김영삼 생가, 포로수용소, 통영케이블카 등을 둘러보는 과정에 어른들께서 2년 전에 비해 기력이 쇠잔함을 느꼈다.
거동이 여의치 않은 관계로 아내는 장인의 손을, 나는 장모님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다니자니 시간의 무한정한 지체도 안타까운 것이었지만
그 보다는 정신과 기억력이 혼미하여 경관에 대한 반복된 설명에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예삿일이 아니었다.
시력과 청력이 혼미하여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야 겨우 알아들으시니 말하는 나도, 듣는 어른도 함께 안타까운 실정을 절감하며 좀 더 젊었을 때 효도하지 못했음을 뼈저리게 후회한 하루였다.
다음날일 일요일엔 기력증진을 위해 재충전하는 날로 정하고 집에서 하루를 쉬시게 하였다.
월요일 오전엔 장인어른께서 6.25 당시 김화전투에서 파편(破片)상(傷)으로 참전상이용사인지라 보훈청에 직접 모시고 가서 잘못된 국가유공자 증(證)의 오류를 바로 잡아들였고,
오후에는 장인장모님을 모시고 한의원에 가서 진맥(診脈)과 체질감정을 하고 침술로 간단한 치료를 받고 하루를 보냈다.
화요일엔 장인어른께서 전장(戰場)에서 파편상(破片傷)으로 당시 부산 5육군병원에서 1년간 병상 생활을 했던 영도다리 주변이며 중앙동 일대와 감천해수욕장 주변과 태종대를 돌면서 그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보는 과정에서
장인어른께서는 “세상이 참으로 만이도 변했다. 이렇게 좋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전장에서 산화한 전우들 생각이 난다.”는 말을 하시면서 눈가에는 이슬이 맺히는 모습도 보았다.
수요일 아침엔 갑자기 포항으로 가시겠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오셨으니 한 보름 쉬었다 가시라”는 우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행장을 챙기시기에 더 이상 붙잡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판단 하에,
아내는 한 번 더 한의원에 모시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하고 나는 포항으로 직접 모셔다 드리기 위해 차량 점검 등 준비를 하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하는데, 학교로 출근길이 바쁜 딸애가 외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드시기 좋게 생선의 가시를 바르며 정성이 깃든 시중을 드는 모습을 보면서,
또 7살짜리 손자 녀석이 유치원에 등원을 하면서 외증조 할아버지 할머니 목을 껴안고 비비며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히 가십시오.” 하면서 기특한 작별 인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 다시 저런 정겨운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는 순간 가슴이 찡~해 옴을 느꼈다.
포항으로 향하는 길에 국지대찰 불지종찰 통도사에 들려 금강계단에 모시고 갔었는데,
기력이 쇠잔하여 예불도, 절도, 탑돌이도 못하고 금강계단 바닥에 앉은 채로 내 설명을 듣고 계시던 모습은 영원이 지워지지 않을 애잔한 기억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일주문을 나서며 “영취산통도사” 현판의 일주문의 배경으로 장인장모님과 아내를 나란히 세우고 사진을 촬영하여 아내의 스마트 폰 배경화면으로 저장을 해 주면서 나는 소중한 추억의 한 장면이 될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내친김에 봉계 불고기 마을로 모시고 가서 대접을 하며 맛있게 드시는 두 분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왜? 진작 이렇게 정성을 다하지 못했던가? 하는 후회스런 생각도 꽤 오래, 오래 갈 것 같다.
유교(儒敎) 성현의 가르침에 이르기를 수욕정이풍불지(樹欲靜而風不止) 나무는 고요하게 서 있고 싶지만 바람이 불어 고요하지 못하고, 자욕양이친불대(子欲養而親不待)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고 싶지만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유 있는 핑계가 내 뒤통수를 망치로 치는 것 같았다.
오는 길 차안에서 아내도 괴로웠는지 암말 않고 지그시 감은 눈가에는 회안의 빛만이 역역해 보였다.
집에 도착하니 비록 5박 6일간 어른들께서 머물었던 빈자리의 허전함이 온 몸으로 엄습해옴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쩌면 다시는, 다시는 어른들께서 사랑하는 딸과 사위와 손자 손녀가 머무는 이 곳, 우리 집을 방문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에 어두워 오는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지난 날 그렇게 많고 많았던 효도의 기회를 까막득하게 잊고 살아 온 내 자신이 못내 아쉽고 후회스러워 당장에 다시 포항으로 달려가서 어른들을 모시고와서 운명하시는 그날 까지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것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나는 이 순간의 상념(傷念)을 잊으려고 의도적으로 빨래도 걷어서 개고, 청소기를 밀고, 물걸레질을 하다가 안방을 가보니 아내는 전등도 켜지 않은 침묵속에서 휴지통을 앞에다 놓고 눈물을 적셔내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이다가 “피곤할 테니 빨리 씻고 자도록 해라.”고 권했더니
아내는 “그 말 밖에 할 말이 없어요?”하며 마치 내가 장인장모를 늙고 노쇠하게 만든 원흉이고 장본인인 것처럼 충혈(充血)된 눈으로 쏘아 보았다.
아내의 입장에서 되돌아보면 옛 날 어른들이 젊고 기력이 왕성할 당시엔 돈타령 시간타량으로 불효를 정당화 했었고.
나 역시 “부모에게 가장 큰 효도는 자식이 아들과 딸을 낳아 잘 기르며 만인에게 칭송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효도“ 라는 그를 사한 이유를 내세우며 지금까지 살았다.
그리고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부처님이 왜? 부귀영화가 보장된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를 했는가?’] 에 대한 생각이 미쳤다.
‘생자(生者)는 필멸(必滅)이요, 회자(會者)는 정리(定離)라.’ 하지 않았던가.
아내가 부모님의 늙은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것도, 또 내가 그런 아내를 보고 자비를 느끼는 것도 모두가 망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됨을 자각했다.
금강경 32분의 네 번째 게송에는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세상에 생겨나 머무르다 무너져 없어지는 모든 이치는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이며 그림자 같고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이슬과 같고, 또 번개 불 같은 것이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응당 이와 같은 불변의 진리를 똑 바로 볼 줄 알아라.
하는 가르침을 제대로 체득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부질없는 망념에 사로잡혀 울고 웃는데 불과한 것이리라.
나는 이번 5박 6일간의 장인장모님 봉양하면서 확고부동한 두 가지를 결론을 얻게 된 셈이다.
첫째는 모름지기 자식은 부모가 늙고 병들기 전에 경제적 무리를 해서라도 맛있는 것 드시게 하고, 철따라 좋은 옷 사다 드리고, 다정하게 손잡고 좋은 곳에 모시고 다니며 구경시켜 드리는 것이 나중에 부모가 돌아가실 무렵에 후회의 눈물을 줄이는 것이란 것과.
둘째는 내가 늙고 병이 들어 쇠약했을 때를 대비하여 육도만행을 수행하여 건전한 육신과 청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여 자식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 처지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되겠다는 결론과 아울러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하리라.
이상이 제가 아내와 더불어 5박 6일간 처부모 봉양 중에 얻은 생각의 결과물이랍니다.
글쓴이 수진 박 영 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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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진 포교사님~ 그러셨군요.. 아주 잘 하셨습니다.. 보살님 마음 잘 헤아리 신듯 하구요..글 읽으며 짠~해 옵니다..
장손에 맛사위..ㅎ.. 저와 거의 같은 입장이신 듯 합니다... 장인 장모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장모님 모시고..용문사에 갑니다.. 장모님에겐 다시 오지 않을 기회 일지도 몰라서요..장모님이
그러십니다..."은주 아범이 데리고 가면 가지" 하고 혼쾌히 응 하셧답니다..()..
아들 딸 모두 결혼 시키고 손자 손녀 돌보며 잘 사는 모습을 항상 봅니다만..그래도 혹시 서운한 점이 있을때는..
=예전에 그러 그러한 경우.. 나는 과연 내 어머니 아버지에게 어떻게 했었는가=를 먼저 떠올려 봅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할배가 조금 양보하며, 조금 뒷전에 물러서 줌이 최상의 길 일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ㅎ.,()..
오봉거사님 반갑습니다. 제가 불교를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젊은 시절의 부모님을 모시고 전국의 사찰을 두루 순례하며 확실한 포교를 했을텐데, 때 늦은 후회와 함께 아쉬움을 느끼게 된답니다.
그래도 강한 의지로 포교활동 앞장서시고 계심에 (윗 글 읽는 동안에도)오늘 저녁 다시 한번 존경의 예를 올립니다..()()()..
절에 갈때마다,평소에도 "잘 가겠습니다. 잘 가겠습니다"를 반드시 마무리 기도로 올립니다..벌써 오래됐지요..
저는 기도의 힘을 경험 했기에 꼭 그렇게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수진거사님 며칠동안 장인장모님과 좋은 시간이었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저역시도 거사님의 두번째 결심을 잘 따라가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_()_
여경님 저는 지금 사회 1년 선배님과 인생살이 이런 저런件.. 데이트 중 입니다..ㅎㅎㅎ...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ㅎ..
요사이 신세대 할아버지들의 대화는 이러 하답니다.. 우리 할배들의 멋진? 모습인데.. 어찌 느끼시는지요?..ㅎ..()..
목동 할배 부산 할아부지 멋진 모습 존경합니더..ㅎㅎ..()..
ㅎㅎ요즘 멋진 신세대할아버지는 밤잠이 없으시군요~
야식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시와요
두분 데이트시간에 낑겨서 졸리는 눈으로 라면이라도 끓여야 할까봅니다~~^^
수진 거사님 존경합니다.._()_
금강경 사구게를 아주 좋아해서 자주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저두 두번째의 결심을 발원 합니다..감사합니다._()_
오라버님 같으신 수진거사님 안녕하십니꺼~^^
5박6일 장인장모님과 모시고 아름다운 추억 많이~많이 엮어셨군요..여행중에 얻으신 결심 이렇게 올려 주시니 덕분에 좋은 공부가 됩니다..
감사한 마음담아 동참발원드립니다..()..(내일 용문사에서 반가운 마음으로 뵙게 될 것 같아 설렙니다..ㅎㅎ 고맙습니다..^^)
내일 용문사에서 자비롭고 훌륭한 법우님들을 상면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들떠는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귀감이 되는 말씀에 두 손 합장합니다. 부모님께 잘 해야할진대 ...내일 반갑게 뵙겠습니다()
존경합니다 많은복을 짖고계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