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 5,33-39: 단식의 정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을 보고,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33절)
유다인 중에는 진정 열심히 단식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단식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하는데,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단식하고 그 외는 먹을 것을 다 먹었다.
재를 지키는 것을 모두 드러내어 남에게 과시했고, 그에 대한 대가를 하느님께서 주시리라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희생과 단식이 하느님 앞에 죄에 대해 속죄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하고 이웃을 이해하고
무엇인가 함께 하는 사랑의 정이 있었다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단식하는 의미가 그런 것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완성되지 않는 재는 지키지 않은 것과도 같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34절)
예수께서는 세상에 계시는 동안을 혼인 잔치의 기간으로, 그리고 당신을 신랑으로 비유하신다.
제자들을 손님으로 표현하신 것은 그들이 교회의 구성원이며 잔치의 주관자들이고,
잔칫상에 앉을 이들을 부르는 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단식을 할 수 없다.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배불리 먹기 때문이다(요한 6,53 참조).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35절)
신랑을 빼앗기는 날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서 떠나가신 날,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하신 날,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 18)라고 하신 날이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36.37절) 형식적인 율법에 매인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느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도 항상 새로운 자세로,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가난한 마음,
즉 이전의 내가 아닌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세를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묵은 나라고 하는 낡은 부대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담을 수가 없다.
이제 진정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으로 변화하여 그분의 말씀을 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