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낯설다
석야 신웅순
갈수록 낯설어진다. 사람도 낯설고 물건들도 낯설다. 아내도 낯설고 자식들도 낯설다.
낯설다는 것은 사이가 멀어진다는 얘기가 아니다. 젊었을 때는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스스럼없었다. 그래서 상처를 준 일도 많았다. 지금은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잘못 다가갔다간 자칫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내 조그마한 몸뚱이 하나 세상에 얹을 만한 곳이 없다. 아픈 몸을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이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고귀한 외로움이기도 하다. 자기가 자신을 지키라는 지엄한 엄명이다.
집 사람이 가끔 그런다.
“밥이나 할 줄 알아요?”
“찌개라도 끓일 줄이나 알아요?”
나 없을 때 어떡할 것이냐고 따져 묻듯 한다. 그걸 대비해서라도 요리를 좀 하라한다. 이럴 때마다 왜 나는 낯설게 느껴질까. 당연한 말인데도 나를 위하는 말인데도 말이다. 서운해서가 아니라 언젠가는 누군가가 혼자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내 몸과 마음을 뉠 곳은 천지간 어디에도 없다. 종교를 찾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잠깐의 인생이다.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 역려과객이라 하지 않았는가.
요즈음 운전이 낯설다. 어쩌다 운전해서일까 조작이 낯설고 느낌도 다르다. 새롭다고나할까. 오랜만에 하니 처음 익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때가 있다. 요즈음엔 오랫동안 익숙해진 것들도 뒤늦게 생각이 난다. 며칠이 지나면 어디에 주차했는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다. 난감하기 짝이 없다. 찾은 뒤라야 생각이 나는 것이다.
오랫동안 익혔던 것들은 그나마도 적응이 쉽지만 새로운 것들은 정말 힘들다. 습관들이기까지 실수라는 많은 수고로움을 감당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낯설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정류소이다. 친구의 체구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분이 저쪽에 있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라 얼굴을 확인해 보려고 가까이 갔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그 사람의 어깨를 스치고 말았다.
“제가 한 것도 아닌데 왜 화를 내십니까?”
대뜸 시비조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죄송합니다.”
이리 말하려고 했는데 그분이 먼저 화를 내버려 변명 한 마디 못하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의 기분을 언쟎게 했으니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사소한 것들이라도 부부, 자녀들에게 상처주는 일이 흔히 있다. 그래서 낯설기도 하고 조금은 외롭기도 하다. 상처는 흔히 거리를 두지 않은 데서 생긴다. 가까운 사이라도 조금은 낯설게 대해야 서로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오래 전 어느 주례사의 말이 생각난다.
“아내를 손님 대하듯 하라.”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 와서 이 말이 얇은 가슴을 때린다. 매일 매일이 이렇게 새롭다.
낯설다는 것은 적당한 거리두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024.11.14. 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