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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ZIRO / scoo2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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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Phantasm
"몇 개월 남았지, 윤?"
"........"
"요즘 꽤나 수척해졌다. 너도 그녀석도. 네가 조금만 더 버텨주면 그 놈 목숨은 저절로 네 손에 들어오겠어."
호는 서류를 뒤척이며 다른 한 손으로는 냉수가 담긴 잔을 집어들었다. K의 목숨이 들어오면, 너는. 너에게 남는 것은 뭐지? 너란 인간은 이익이 나지 않으면 좀처럼 손을 열지 않는 놈이잖아. 호는 일당을 건네주고는 열심히 해보라는 말을 하고는 나를 내보냈다.
K는 다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가끔 깰 때 저혼자 헛소리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가 '권이나'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그를 찾아갔다. 어차피 '권이나'는 껍데기 뿐이었으니, 나는. 권 윤으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처음부터 다시.
"..요즘 더 건강이 안 좋아보이세요, 이러다가 환자 분보다 보호자 분이 먼저 쓰러지시겠어요. 링겔이라도 맞으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어보였다. 간호사는 몇번더 권유하다가 도무지 내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카운터로 돌아가 본일을 계속했다.
날짜가 계속 지나갈 수록, 복잡해질 것만 같던 머릿속은 오히려 잠잠해졌다. 계약은 아직까지 유효했고, K는 의식을 찾기 못했으며, 나는 아직까지 완전히 복수라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 얽혀버렸다. 풀수없는 실타래 처럼. 밤마다 나를 괴롭혀오는 언니의 영혼은 나에게 재촉하기만 했다. 죽여줘. K를 죽여줘. 날 죽인 그 놈에게 복수해줘.
잠을 깰때마다 나는 울고 있었다. 두려움에, 그리고 미안함에, 나는 숨죽여 울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요, 언니. 나는.. 나는 그럴 수가 없어요.
편안하게 잠든 그의 얼굴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 보면 여자주인공을 너무나도 사랑한 남자주인공이, 그녀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는 장면. 과연, K, 당신도 나를 위해서.
그렇게 했을까?
"..나를, 죽이려고 했던 당신이. 내 목숨으로 자유를 얻으려 했던 K, 당신이. 그와 완전히 반대로,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반대로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나라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네가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나는 눈을 감았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시 눈을 뜨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알아, 알아요, K. 당신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했을꺼야.."
* * *
[응, 맞아. 내가 찾아봤더니 금지약물이더라고. 약간 마약 효능도 포함하고, 단기적으로 기억력에 손상을 주지. 대화를 하다가 중간중간 싸가지 없는 놈이 끼어드는 것 처럼, 우리 기억회로속에 장애물을 설치하는 거지. 단기간, 반복적으로. 액체인데, 주사 한방이면 바로 몇 분이내에 효과가 오지. 이 약물 중독자들의 증세를 보면...일단계, 주요 기억을 부분 부분으로 잊어버린다. 이단계, 구토, 복통, 두통 증세. 더불어 갈수증, 현기증, 식욕부진, 아주 겹쳐서 나타나지. 삼단계, 이게 제일 심한데, 꽤나 장기간 투여해온 환자들에게 발생하는 거야.
정신병. 이세상에 자신밖에 없어서 모든것이 자신을 위주로 돌아가게 한다는 정신 질환. 그리고 면역약화. 조그만 병에도 심각한 질환으로 커지게 되지. 조금만 잘못해도 죽을 병이 된다는 말이야. 보통 인간 면역수치의 최저수준에도 못미치는 정도로.]
남자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토해냈다. 이번 일은 심각하고도 복잡했다. 한 호.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이런 행각을 벌이는 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목숨을 이렇게 까지 가지고 노는 놈일 줄이야. 도대체 K라는 놈이 너에게 어떤 인간이길래, 저렇게도 끔찍한 상태를 만들어 놓은거냐. 그는 한숨을 쉬더니 인터폰을 들었다. 반대편에서 밝은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이 간호사. 402호 환자말이야, 당분간 외부인 출입을 금지시키게. 다른 간호사나 의사들도 사전 허가 맡고 출입하도록 해. 병실이 너무 춥거나 덥지 않도록 조절 잘 해주고, 환자 일일 간병은 내가 할테니. 응.. 그래, 나머지 남는 환자들은 다른 의사들에게 넘겨버려. 이 환자가 지금 제일 급하니까."
남자는 통화를 마치고 나서도 여전히 심각했다.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그는 402호 환자의 명단을 뒤적였다. 그리고 눈으로 빠르게 읽어가던 중, 한 부분에서 멈춰서서 집중했다. 남자의 눈이 약간 커졌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 했다. 탁 소리가 나게 서류를 덮은 그는 의사 가운을 벗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오랜만의 비밀외출이었다.
* * *
그닥 덥지도 않고 약간 선선하기도 한 좋은 날씨의 어느 날이었다. 그래, 그 날도 나는 달리고 있었다. 마른 몸에 요리조리 인파를 피해서 낯선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녀석들은 끈질기게 나를 따라왔다. 큰 덩치의 무리들이 재빠른 나를 쫓아오려면 꽤나 힘든 일이었다. 한참을 뛰자 더위에 땀이 온몸을 적셨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잡은 서류뭉치를 절대 놓지 않았다. 뭔가 묵직한것이 오랜만의 대통운수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몇 일을 굶듯이 지냈던 터라 금방 체력은 바닥이 났고 놈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주변의 낮은 울타리를 번쩍 뛰어넘었다. 몇 초 후에 다다닥하며 반대편으로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머리를 빼꼼 내밀고 동태를 살핀 다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이 안에 뭐가 들었을까? 봉투를 벌려 손을 집어넣는 순간, 누군가가 내 어깨를 세게 붙잡았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 잡았다."
다리가 떨려왔다. 봉투, 봉투 내놔, 새꺄. 놈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순간, 갑작스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뒤로 크게 한발짝 물러나서 재빠르게 놈의 급소를 가격했다.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놈은 고통섞인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지체할 수가 없었다. 놈의 비명을 들은 다른 무리들이 이 곳으로 올테고, 나는 다시 도망가야 했다.
담벼락이 낮은 어느 집으로 뛰어들어갔을 때, 마당에 있던 놋쇠그릇이란 죄다 쓰러뜨려버렸다. 마루에 누워있던 남자가 날 보며 놀란 듯이 소리쳤다.
"뭐..뭐야! 누구야, 너!"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놈들이다. 이젠 더이상 숨을 때도 없었다. 우왕자왕하는 동안 그들의 걸음소리가 더욱더 가까워졌다. 젠장! 나는 욕을 내지르며 다른 담벼락을 향해 뛰었다. 나는 겨우 높은 벽을 타넘었지만, 그 바람에 힘이 빠인 손에서 서류는 소리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담벼락 반대편, 내가 사수하려던 서류가 있었고, 놈들의 목소리는 바로 코앞에 있듯 들렸다. 이젠 늦었다.
"제기랄. 오랜만에 돈 좀 보나 했더니."
담벼락을 발로 쿵쿵 걷어차고는 궁시렁 거리며 뒤돌았다. 오늘도 꽝이군, 흙먼지로 가득한 손을 툭툭 털었다.
갑자기 화면이 어두워졌다. 기억이 블랙홀 처럼 사라져만 갔다. 불속에 던져진 사진을 보는 마냥, 기억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숨통을 조여왔다.
손 언저리가 축축했다. 떨리는 손을 얼굴께로 가져갔다. 피! 피였다. 검붉은 것이 가득했다. 어느순간, 나는 낯선 방안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쪽 손에는 칼이. 칼이 쥐여져 있었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순간,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고통스럽게 놈의 등을 부여잡은 여자의 배 쪽에는 칼이 꽂혀있었다. 놈은 낄낄 웃었다. K. 내 이름을 불렀다. 누가?
여자는 죽어나갔다. 그러나 침묵하는 눈동자만큼은, 모든것을 지켜본 눈만큼은 감기지 않았다. 칼은 다시 나에게 쥐어졌다. 피, 피가 묻은 칼이 었다. 마치 지독한 향기를 맡은 사람마냥 머리가 아파왔다. 휘청거리다 다시 중심을 잡았다.
"언니..언니!..."
내 시야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뒷걸음치는 여자가 잡혔다. 교복을 입은 걸 보니 학생인 모양이다. 눈물이 뚝뚝 흐르기 시작한다. 내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날 봐. 내가 죽였어. 내가. 여자가 도망쳤다. 놈이 그녀를 쫒아갔다. 그녀는 곧 다시 잡힐 것이다. 그제서야 손이 떨려왔다. 쨍그랑. 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도 붉은 것은 흥건했다.
[14] Investigation
면회 금지. K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지 거의 몇 주가 지났다. 간호사는 그저 점차 회복하고 있다는 말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거의 정리된 가게에 익숙한 남자가 찾아왔다. K를 담담하던 의사였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무슨..혹시. K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아직 많이 아픈가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무작정 나와 함께 어디로 가자는 말 뿐이었다. 혹시 뒤를 밟히고 있을지도 모르니, 아주 조심히 은밀하게. 급하다고만 했다. 'K,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남자.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이 남자가 말하는 대로, K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나는 그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
"당신도 호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겁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자신도 피장파장이라고 말했다. 한참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K라는 사람."
순간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주춤했다. 무언가 숨기고 있던 것 같던 남자의 입이 열렸다.
"호에 의해서 키워지고 있어요. 약물 중독자로."
..약물 중독자라니.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계속 했다.
"의학계에서 금지된 약물들이 있는데, 단기 기억상실을 유발하는 독한 약물 하나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K가 주기적으로 주사맞은 것이죠. 본인은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지금.. K가 , 그러니까.. 그 약물 중독자라는 말씀이세요?"
"심각한 수준입니다. 과연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갈 정도로요."
그럴수가. 나는 경악감에 비명을 지르지 조차 못했다. 어떻게 그렇게 비인간적인 짓을. 아니다, 아니었다. K를 죽이려는 게 한 호의 목표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도대체 왜.
"우리는 지금 한 호가 K를 그렇게까지 만드는 이유를 찾으러 가는 겁니다. 과연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마리가 잡혀진다면, 우리는 K를 구할 수 있어요."
한 호가 K를 증오하는 이유. 뭘까.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 *
차가 멈춰선 것은 평범한 동네 골목이었다. 남자는 이 곳이 K의 집 주소였다고 말했다. 차를 구석에 주차해 두고 오르막 길인 골목을 따라 걸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주소 말입니까? 서류를 보고 알았죠. 호가 나에게 부탁한 일은 그의 조직의 사람들을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치료해 주는 것이었고, 나는 당연한 것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그들의 신상 정보를요."
"그가 당신의 말에 곧장 수락했나요?"
"당연히 아니죠. 보통 머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놈. 하지만 그 놈의 타겟 중에 제가 유일한 의사였거든요. 놈은 나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내 도움이 무엇보다 필요했죠."
나는 놀랍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골목은 점점 좁아지는 듯 했다. 덩달아 주변의 집들도 더 낡고 오래되어 보였다. 이마에 땀이 배여나오기 시작할 때쯤, 남자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한 대문 앞에 있는 주소를 확인했다. 여깁니다. 그의 말과 동시에 침을 삼켰다. 주먹을 쥔 손이 땀에 미끌거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안에 누구 계십니까?"
아무 인기척도 없었다. 남자는 한번더 크게 외쳤다. '누구슈?' 늙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온 집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라 우리 뒷쪽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반대편 집 대문에서 나이 많은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이 집 주인을 찾아왔는데.."
"이 집에는 아무도 안 살어! 이사간지 한참 됐지라우."
"..혹시 여기 사신지 얼마나 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한 20년 됬나. 그려, 한 20녀년쯤 됬군."
목이 말랐다. 행여 괜히 우리가 헛짚은 것은 아닐까, 불안감이 밀려왔다. 남자는 사내 혼자 살던 때가 있었냐고 물었다. 나이는 젊고, 대충 외모를 설명하니 할머니께서는 모르는 사람같다고 답했다. 불안감이 현실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은 몰러. 한 10년 전 쯤에 살던 남매가 다였수."
"...남매요?"
".....아닐꺼예요, K는 가족이 없었다고 했어요. 아닌가봐요."
나는 돌아가자는 식으로 말했지만, 남자는 끈질기게 질문을 계속했다. 할머니는 허리가 아픈듯이 주먹으로 등을 툭툭 치더니 자세를 고쳐 섰다.
"죄송하지만, 할머님. 조금만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그게... 잘 기억이 안나는 군. 그래, 남매였지. 남자 애가 참 착했어. 부모도 없는데 여동생 혼자 키운다고 고생을 참 많이 했지. 근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수. 이유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버렸지. 착실한 청년이 었는데."
이게 다인 것 같았다. K가 아닌게 확실해요, 돌아가는 게 어떻겠어요? 나는 한숨을 쉬며 남자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뭔가 짚히는 게 있다는 듯 했다. 할머니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남자는 돌아섰다.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는 그의 뒤를 쫓았다. 도대체 어쩔 생각이지?
"인터넷, 인터넷이 필요해요."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인터넷? 갑작스럽게 무슨 이유로? 시내가로 내려간 우리는 PC방을 찾았다. 돈을 지불하고 자리에 앉은 남자는 서둘러 검색창에 무언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집 주인을 찾는 겁니다. 그 집 주인이 누구 명의로 되어있는지 손쉽게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죠."
"하지만 주인이 아니라, 전세일 수도 있고.. 어쨋든, K는 아닌 것 같아요."
남자는 내 말을 무시했다. 약간 화가 나기도 했지만, 참기로 했다. 그는 '두고보면 알죠.'라고 답했다. PC방의 매캐한 담배냄새가 답답하게 느껴져 왔다. 타닥타닥, 손님이 없어 한가한 PC방 안에는 그의 타자소리가 울려퍼졌다. 결제 버튼을 누르고, 몇 번 더 마우스를 클릭해 대던 남자는 무언가를 본 듯 멈칫했다.
"이런.."
잠시 후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모니터를 돌려 나에게 보여주었다. 집주인의 명의에는 분명히 우리가 아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한 호. 남매의 남자는 그 놈이었군."
* * *
반나절 동안 호의 집 근처를 배회하던 우리는 마지막 실마리인 단서를 얻었다. 근처 주점을 운영하는 아주머니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아니, 사실 나도 이게 확실한지 잘 몰라. 그리고 오래전 일이라서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그 날 그 청년 집에 완전 난리가 났었지. 깡패 무리들이 와가지고 된통 난장판을 만들고 갔지 뭐야. 그러니까 왜 그랬냐 하면, 아, 그 집 몇 담 너머에 순희 아줌마가 그랬어. 그 집에 이상한 도둑이 들었다고. 뭐였더라, 서류 봉투였나. 그걸 내놓으라고 그렇게 난리를 쳤다던데. 청년은 절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들리는 소문에는 그때 한창 말썽이었던 소매치기 놈이 하나 있었는데, 그 놈 일에 휘말렸다나 뭐라나."
아주머니가 기억하는 내용은 그게 다였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로 돌아오는 동안 한참 생각에 빠져있던 그는 마치 풀어헤쳐진 퍼즐조각을 맞추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소문은 괜히 만들어 지는 게 아닌 법이죠."
"...왜 하필이면 호가 K의 주소에 자신의 주소를 적어뒀을까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뭔가 깨진 유리조각 맞춰지듯 그려지지 않습니까. 그 청년은 한 호, 그 놈이고. 소문이 맞다면, 이 동네에 문제였던 소매치기 녀석은."
남자는 차에 올라타며 좀더 신중하게 생각했다. 대략 짚어졌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K일지도 모르죠."
* * *
13,14편 업뎃!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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