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내닉읽은여시허리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73회
1편 : https://cafe.daum.net/subdued20club/ReHf/5130299?svc=cafeapi
한편 복순이네 마을 근처 바닷가...
동생의 손을 꽉 잡고 있는 광치.
근데 둘이 있는 곳은 집이 아니라 바닷가에 있는 한 움막
광치네 가족도 도망쳐나온 거였음.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와 함께 움막에 숨어 있었는데
갑자기 동생 광언이가 으앙 울음을 터뜨림
"쉿!울면 안돼!"
광언이의 입을 급하게 막아봤지만
토벌대에게 들키고 말았음.....
어린아이였던 광치와 광언이는 풀려났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토벌대에 끌려가심.
그런데, 모래언덕으로 가다가
총살을 당하셨음.
왜 가는 중에 두 분을 쐈을까.
걸음이 느려서
(게스트 김의성: "그냥 죽이는 거야, 그냥.")
어머니는 경찰서로 끌려갔고
광치, 광언이 형제는 매일 엄마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음
복순이네 처럼.. 대살, 총살당한 채 주검으로 돌아온 어머니.
"형님이 4.3 당시 8살이어서 그 당시 상황을 전부 다 목격하고, 그걸 전부 알고 있는데"
"나는 전혀 기억이 없어요"
"나는 전혀 그냥, 몰라요. 4.3에 대해 전혀 몰라. 나중에 그냥, 어머니 제삿 날 형님이 날 보고"
"그것이 내가 기가 막힌 거에요. 왜 그러냐, 하니까 '네가 그 때 숨어 있다가 네가 우는 바람에 잡혀갔다'는 거야"
"그 때부터 형님이 눈물을 막 흘리면서 그 당시 상황을 다 얘기해 주는데"
"형님은 계속 그냥 그 때 내가 울어서,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잡혀가서 죽었다는 그 기억이 콱 박혀서, 나만 보면 갑자기 화가 나는 거야"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마을 노형리, 사망자가 538명
사망자가 없는 마을은 제주도 전체에 단 한 곳도 없음
피해자는 15,000여명으로 공식 집계되었고, 실제 30,000명이 넘는 사람이 살해되었다고 추정함
당시 제주도민 9명 중 1명은 사망한 수치임
그리고 당시 피해자(유족)들의 증언.
김의성: "인간은, 나는 존재적으로 악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 반면, 선한 면도 있지만..."
"어떤, 겉잡을 수 없이 악해질 수 있는 그런 면도 존재하지, 인간한테.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가 망가지는 걸 막기 위해 법과 국가가 있는 건데"
"여기는, 국가가 나서서 가장 비인간적인 폭력을 조장했다는 그 대목이 가장 끔찍한 것 같아"
이런 일이 있었던 이후, 제주 사람들은 입을 닫아버림.
가족들끼리도 그 때 일을 꺼내지 않는데, 그 이유는
연좌제.
누군가의 죄를 가족들에게도 묻는 것.
그렇게 4.3은 모두가 알지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어갔다.
침묵의 세월이 흐르고 199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제주의 다랑쉬오름 근처로 찾아온 세 사람.
자신들을 "잃어버린 마을 조사대" 라고 칭하지만, 사실 이들은 제주 4.3 연구회 소속이었던 은희, 동만, 기삼.
내가 글 맨 처음에 잘라냈던 부분인데 이분들이 다랑쉬오름 근처를 조사하다가 땅밑에 뚫린 공간에 있는 백골들을 발견했고, 그 실체를 밝히기 위해 이 날 다시 찾아온 거야
허리도 펼 수 없는 좁은 굴을 따라 2미터 가량을 내려가니, 갑자기 공간이 확 넓어지고 동굴이 나타남
잘 안보이지만 그 동굴 안에서 발견된 유골들.
캠코더로 영상을 찍었던 은희 씨의 동굴에 대한 첫 인상은 "폭하다(아늑하다)"
함께했던 연구원 동만 씨는 "그 당시 삶의 모습이 연상될 정도였다" 라고 표현함
동굴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모형인데 저렇게 땅 밑에 웬 구멍이 있었고(위에 적은 좁은 입구)
그 틈으로 내려가면 커다란 동굴이 있는 모양새였음
굴을 따라 내려가면 나오는 동굴의 모습. 여기에 유골들이 있었음
사진 상 오른쪽에 10구의 시신이 있었고, 17평 정도의 공간이었대
왼쪽 공간에는 1구의 시신이 있고, 12평 정도의 공간. 그런데 이 두 번째 공간은 부엌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음
통나무에 불을 붙여 횃불을 만든 모습도 관찰됨.
즉 동굴 안에서 생활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라는 추측.
그래서 4.3연구소 사람들은 이 유골들이 분명 4.3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판단함
그런데 볼수록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으니
줄지어 나란히 누워있는 시신들의 모습.
연구소 사람들은 의아해하면서 여러 가설을 세움.
혹시 이 분들이 학살의 참혹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셨나? 하는 가정까지 하셨다고 함
그래서 연구소 분들은 이 상황을 비밀리에 알아보기로 했음.
왜냐면 91년도 당시에도 4.3에 대해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쉬쉬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리고 3개월 뒤 92년 2월.
김종민 기자가 차를 타고 취재를 가고 있었는데, 그런 김종민 기자에게 동만 씨가 전화함
동만 : "형, 얼마 전에 동굴에서 백골이 나왔어요!"
동만 씨의 말을 듣고 잠시 말이 없던 김종민 기자가 대번에 구좌읍 쪽(위의 동굴이 있는 곳)을 물어봄.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동만이 들은 설명은,
김종민 기자의 선배 기자가 몇년 전 4.3을 취재하다 어떤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그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함
김종민 기자는 이 때 몇년 전 취재했던 그 4.3의 취재 내용이 지금 이 동굴과 연관이 있다,
이게 드디어 세상에 밝혀지겠다고 생각했다고 함.
그래서 김종민 기자는 며칠 뒤 그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랑쉬굴(위에 발견한 동굴)로 향함
채 선생님은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풀썩 주저앉으시더니
라고 말씀하심
돌아가신 이후에 할아버지가 시신들을 나란히 눕혀놓으셨던 것.
그렇다면 다랑쉬굴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48년 11월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채 선생님은 토벌대를 피해 2~3일 정도 다랑쉬굴에 머무르셨는데
같이 밥도 나눠 먹고 하면서 힘든 시간 속에 서로서로 의지가 되어줬다고 함
그리고 얼마 뒤에 다른 피난처로 옮겨가셨는데
얼마 뒤인 48년 12월 18일
피난처 밖에서 방목해두었던 말들이 큰 소리를 내면서 도망가는 모습을 봄.
토벌대가 등장한 거였음.
채 선생님은 급하게 몸을 숨겼고 다행히 발각되지 않았음
한참 후에 밖으로 나와보니 사방이 다 불길임..
그리고 그 때, 자기가 머물렀던 다랑쉬굴 근처도 피해가 심각하다는 소식을 듣게 된 선생님은 곧장 다랑쉬굴로 향함
선생님은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돌을 헤집고 안으로 들어갔음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가운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모두 벽 쪽에 붙어 있었다고 함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 봤더니,
누군가 굴 밖에서 볼일을 보고 제대로 처리하지 못 해 그 냄새를 맡고 왔다고 함
그렇게까지 사람들을 다 찾아내서 죽여야만 하냐 진짜ㅅㅂ
(미나: "지독하다 진짜")
토벌대는 다랑쉬굴 안으로 총을 쐈는데, 굴 안 사람들은 당연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감.
그러자 토벌대는 굴 앞에 짚으로 불을 피웠는데, 그래도 아무도 나오지 않으니까(당연함 나오면 죽잖아)
굴 입구를 막아버린 거임...
질식사 시키려고.
비참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 다랑쉬굴 사람들..
그런 모습을 보게 된 채선생님은,
그 비참한 모습으로 떠난 다랑쉬굴 사람들을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시신을 한 분 한 분 가지런히 눕혀 드렸음
"내가 알기로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입니다."
김의성 : "죽이려고 작정을 했던 것 같아."
9살 어린 아이와 여자의 시신도 발견되었던 다랑쉬굴...
근데 이게 끝이 아님(하...)
문제시 삭제!!
첫댓글 요즘 한강작가 책 읽기 시작하면서 관심 가지게 됬는데 좋은 글 고마워!
이게 끝이 아니라니 ㅠㅠ 3편 읽기도 전부터 슬프다... 하... 이게 같은 국민한테 할 짓이 맞나
좋은 글 고마워 잘 읽었어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