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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앞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인간과 기계가 구별되지 않는 순간이 온다
심장이 뛰는 소리는 얼마만큼일까
심장 작동 소리가 기계 소리로 들릴 뿐인데 기계 소리가 심장 박동 소리로
들릴 뿐인데
어제도 죽지 않고 내일도 죽지 않는다면 이 생이 무한 반복된다면
기계 심장이 어디론가로 돌진한다 심장이 뛰고 있는 건지 기계가 뛰고 있는
건지
갑자기 기계가 멈추면 켜 놓았던 스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세요 기계와
심장의 박자와 리듬을 똑같이 맞추어 놓으면 다시 돌아가는 기계 심장이 있어
요
인공 심장 박동기를 달고 나는 오늘도 기계 앞에서 일해요 심장이 기계 돌
아가는 소리에 맞추어 뛰고 있다
장례사가 네 심장을 꺼내 가져가기 전에 그렇게 수심에 잠길 필요 없어요
닳아진 심장을 확인해 보세요 기계적인 신기함이랄까
내 장례식에 놀러오세요 고철로 처리돼 분리수거를 마칠 때까지 기계의 스
위치가 찰칵 내려가고 불이 꺼지고 나를 매일 다시 태어나게 한다면
공기 속에서 유영하면서도 기계와 닮아갑니다 닳아갑니다
<시작노트>
`물류창고/물류센터`에서의 노동은 대개 `레일`을 통해 전달되는 일, 즉 공정을 처리하는 행위로 요약된다. 무한반복으로 요약되는 이러한 노동의 문제점은 레일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품을 포장하는 일이든, 불량품을 선별하는 일이든, 아니면 얼음컵을 만들거나 돼지고기를 가공하는 일처럼 직접적으로 제품을 만드는 일이든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물류창고/물류센터`에서 노동은 일정한 공정을 거치는 방식으로 행해지고, 그 하나하나의 공정에는 치밀하게 계산된 속도 공식이 적용된다. 그런데 "심장이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맞추어 뛰고 있다"처럼 이 속도의 기준은 노동자(`심장`)가 아니라 `기계`이다. 노동자가 기계의 속도에 맞춰 작업하는 이러한 현상은 산업혁명부터 지금까지 줄곧 유지되고 있다. 알다시피 기계는 고장 나기 전에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공장 노동은 2교대 또는 3교대 방식으로 노동자를 교체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해 왔다. "우리는 기계가 잠시라도 멈추기를 바라"지만 자본에 고용되어 기계에 접속하고 있다.
이 은
강원도 동해 출생.
2006년 『시와시학』 등단.
2009년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2012년 시집 『불쥐』 발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2018년 시집 『우리 허들링 할까요』 발간.
2023년 제8회 동주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