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가 284장 (구 206장) / 열왕기하 9 : 27 - 37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284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열왕기하 9장 27절 – 37절 말씀입니다.
27.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28. 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29.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1.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32.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이르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33. 이르되 그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34.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이르되 가서 이 저주 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35.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36. 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37.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 아멘!
아합의 아들 요람의 죽음으로 아합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일부 성취되었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서 개들이 이스라엘 성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 것이라는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심판의 말씀이 성취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이세벨에 대한 심판은 나봇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나봇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소망 때문에 자신의 유업을 팔지 않았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그런 나봇을 악한 계략으로 모함해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의 아들 요람이 바로 그 자리에서 화살에 맞아 죽습니다. 이 사건은 마치 우연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예후는 엘리야의 예언을 떠올렸습니다. 예후가 이스라엘 왕 요람을 죽인 것은 단순한 반란이나 인과응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언의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요람의 시체를 나봇의 밭에 내버려 두게 했습니다. 아합의 외손자 유다 왕 아하시야도 죽었으나, 그는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로 다윗 성에 장사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악하고 기만적인 사람들에 의해 감행된 억울한 죽음을 그 세대가 지난 후에도 잊지 않고 심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인 이세벨 왕후는 악녀답게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악한 대적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후는 그런 이세벨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후의 행동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우리 또한 예후처럼 전혀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장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주시며, 친히 함께 일하시기에 우리는 당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후는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시며, 그 언약을 지키는 자의 편이 되셔서 함께 일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담대히 모든 일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내가 이루었다." 하지 않고 "이 모든 일이 엘리야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이다." 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후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통해 말씀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본문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서도 그분이 나의 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두려움에 싸여 현실 앞에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하나님 편이고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118편 6절에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내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사람들이 내게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내 편이십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겁내지도 마십시오. 사람이 결코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믿습니까?
삶은 죽음으로 말합니다. 예후는 장관 빗갈에게 요람의 시체를 나봇의 밭에 던지라고 지시합니다. 요람의 병문안을 왔던 유다 왕 아하시야는 도망가다가 므깃도에서 죽습니다. 예후는 이스르엘로 돌아가 이세벨을 죽입니다. 요람과 이세벨의 최후는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30절에 보면, 예후가 자기 아들 요람을 죽이고, 자기를 죽이려고 쫒아오는 것을 보면서도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 이세벨은 자신의 운명을 예상했지만, 악녀답게 왕후의 위상을 잃지 않으려고 화장을 하고 머리 손질도 하면서 끝까지 강한 모습을 보이려고 몸부림쳤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31절에 보면, 예후를 향하여 생뚱맞게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고 묻습니다. 시므리는 그 주인인 엘라를 모반하고 왕이 된 지 단 7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입니다. 이세벨은 예후 너도 시므리와 똑같은 운명을 당할 것이라고 지금 저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한 이세벨 왕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그 자신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아합 왕의 아내였던 이세벨 왕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는 예후의 반란에도 흐트러지지 않고 당당했습니다. 이세벨은 예후를 보자 그를 시므리에 비유하며 조롱하면서 저주를 퍼부어 댑니다.
그러나 그 위협은 이빨 빠진 늙은 암사자의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이미 그녀의 측근조차 그녀의 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후의 요청에 그를 섬기던 내시가 그녀를 내던집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그녀의 시체는 예후의 발에 밟혔고, 들짐승에 의해 크게 훼손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로 나뒹굴었습니다. 그 저주받은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이 성취됨을 생생하게 증명했습니다.(왕상 21:23~24).
●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해 본 일은 없습니까? 나의 작은 이익 때문에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한 적은 없습니까?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악인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이세벨과 같은 인간들의 허세와 위협에 위축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의 분명한 말로를 보면서, 우리가 지금 품어야 할 생각은 무엇입니까?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인간의 허세나 위협에 넘어지지 않아야 하며, 주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잘 됩니다. 이 승리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