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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8일 연중 제17주일 (조부모와 노인의 날)
2021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고독과 죽음의 고통을 겪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신앙의 전수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노인의 역할과 중요성을 되새기며 그들의 소명을 격려하고자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제정하였다. 한국 교회는 보편 교회와 함께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7월 26일)과 가까운 7월 넷째 주일을 ‘조부모와 노인의 날’로 지낸다(주교회의 2021년 추계 정기 총회).
오늘은 연중 제17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파스카 축제일인 이 주일에 우리를 부르시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을 먹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세상의 빵을 먹으며, 육신과 영혼의 온갖 배고픔을 채우고 이웃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집시다.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4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 (2024년 7월 28일)
‘다 늙어 버린 이때에 저를 버리지 마소서’(시편 71[70],9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나이 들고 쇠약해졌을 때에도,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사회에서의 역할이 줄어들었을 때에도, 우리 삶이 덜 생산적이고 쓸모없다고 치부될 위험이 있을 때에도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겉모습을 중시하지 않으십니다(1사무 16,7 참조). 하느님께서는 많은 사람의 관심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선택하기를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돌 하나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사실, ‘가장 오래된’ 돌도 ‘새로운’ 돌을 받칠 수 있는 견고한 토대가 되어, 다 함께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는 것입니다(1베드 2,5 참조).
성경 전체는 주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심지어 당신을 배반하여도 언제나 당신의 자비를 보여 주신다는 위로에 찬 확신을 줍니다. 시편은, 우리가 보잘것없어도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마음이 느끼는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시편 144[143],3-4 참조). 시편은, 하느님께서 어머니 배 속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엮으셨고(시편 139[138],13 참조) 우리의 생명을 저승에서도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라고(시편 16[15],10 참조) 장담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늙어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더욱더 가까이 계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늙는다는 것은 축복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시편에서 ‘다 늙어 버린 이때에 저를 버리지 마소서’(시편 71[70],9 참조)라고 주님께 올리는 간청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강하게,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기까지 한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하고 부르짖으셨던 예수님의 극심한 고통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에서 인생의 모든 단계에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확신과 특히 늙었을 때와 고통 중에 있을 때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성경 말씀이 명백한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외로움이, 노인이자 조부모인 우리네 삶의 암울한 동반자가 되는 경우가 너무 잦습니다. 제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교구장 주교였을 때, 요양원들을 방문하면서 여기서 지내는 이들을 만나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수개월 동안 가족들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외로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곳에서, 다른 어느 곳보다도 가난한 국가들에서 노인들은 혼자라고 느낍니다. 자녀들이 이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 분쟁 상황도 생각해 봅니다. 젊은이들과 성인 남성들이 전쟁에 참여하도록 징집되어 떠나고, 여성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자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고국을 떠남으로써, 많은 노인이 홀로 남겨지는 것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와 마을에서 많은 노인이 홀로 남겨집니다. 이들은 버림과 죽음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들에서 생명의 유일한 징표가 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또 다른 곳에서는, 주술을 사용하여 젊은이들의 생명력을 빼앗으려 한다고 의심하며 노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릇된 확신이 일부 지역 문화에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죽음이나 질병 또는 어떤 다른 불행이 젊은이들에게 닥쳐오면, 일부 노인들에게 그 죄책을 지우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반드시 맞서 싸워 근절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이러한 근거 없는 편견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켰지만, 이 편견들은 여전히 젊은이와 노인의 세대 간 갈등에 계속해서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노인이 ‘젊은이의 미래를 훔친다.’는 비난은 요즈음 어디에서나 존재합니다. 가장 발전되고 현대화된 사회들에서도 또 다른 구실 아래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값비싼 사회 복지비로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고, 이러한 방식으로 노인들이 공동체 발전과 젊은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자원들을 전용하고 있다는 확신이 현재 만연해 있습니다. 이는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입니다. 노인의 생존이 젊은이들의 생존을 위험에 빠뜨리고, 젊은이들을 도우려면 노인들을 무시하거나 심지어는 억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대 간 대립 구도는 오류이고 갈등의 문화가 맺은 독이 든 열매입니다. 젊은이들을 노인들과 대립하게 만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조종의 형태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연령대의 일치입니다. 이는 인간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진정한 기준점이 됩니다”(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2022.2.23.).
앞서 인용한, 다 늙어 버린 이때에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 시편은 노인의 삶을 둘러싼 음모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 말이 과장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외로움과 버려짐은 우연이나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 개개인의 무한한 존엄을 인정하는 데에 실패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개인적 결정들의 결과임을 생각한다면 과장이 아닙니다. 개인은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이나 상태, 상황을 넘어”(교황청 신앙교리부 선언, 「무한한 존엄」[Dignitas Infinita], 1항) 무한한 존엄을 지닌 존재입니다. 이는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사람을 오직 비용 측면으로만 판단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 큰 비용이라 지불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도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노인들이 종종 이러한 사고방식의 희생양이 되어 스스로를 짐으로 여기고 먼저 물러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가능한 한 독립적이고 다른 사람과 분리된 삶 안에서 개인적 성취를 추구합니다. 공동체 의식은 위태로워지고 개인주의가 찬양받고 있습니다. 곧, ‘우리’에서 ‘나’로의 전환은 우리 시대의 가장 명백한 징표입니다. 우리가 혼자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반박하는 가장 근본적인 논거가 되는 가정마저 이러한 개인주의 문화의 희생양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들고 쇠약해지기 시작하면, 우리가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고 사회적 유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개인주의의 환상은 그 본색을 드러냅니다. 실제로 우리는 삶에서 더 이상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들이 옆에 없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될 때에야 그 모든 것이 필요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이 너무 늦은 시점에서야 이를 깨닫습니다.
외로움과 버림은 오늘날 사회적 상황에서 반복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 근원은 다양합니다. 어떤 경우에 이는 계산된 배제, 일종의 비극적인 ‘사회적 음모’의 결과입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안타깝게도, 한 사람의 개인적인 결정의 문제입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노인들이 이러한 현실에 굴복하면서 마치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인 것처럼 가장하기도 합니다. 점점 더 우리는 “형제애의 맛”(「모든 형제들」, 33항)을 잃어가고 있으며, 대안을 떠올리는 것조차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룻기에서 나이 든 나오미가 남편과 아들들이 죽은 다음 두 며느리 오르파와 룻에게 고향과 집으로 돌아가도록 격려하는 이야기(룻 1,8 참조)에 묘사되는 체념이라는 감정을 여러 노인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노인처럼 나오미는 홀로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다른 어떤 것도 상상하지 못합니다. 나오미는 과부로서 자신이 사회의 시선으로 볼 때 별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과 달리 앞으로 평생을 살아갈 두 젊은 여인에게 자신이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고 여깁니다. 그러하기에 나오미는 물러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여 젊은 며느리들에게 자신을 떠나 다른 곳에서 미래를 건설하라고 말합니다(룻 1,11-13 참조). 나오미의 말은 분명히 그녀의 운명에 낙인을 찍은 당시의 엄격한 사회적 종교적 관습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성경 이야기는 나오미의 말과 나이 듦 그 자체에 대한 두 가지 다른 반응을 보여 줍니다. 두 며느리 가운데 한 명인 오르파는 나오미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입 맞추고 유일한 해결방안으로 여겨지는 이 말을 받아들여 자기의 길을 갑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나오미를 놀라게 하는 말을 합니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룻 1,16). 룻은 관습과 타성에 젖은 사고방식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나이 든 여인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두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 될 그 순간에 나오미의 곁에 용감히 남습니다.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에 익숙한 우리 모두에게 “저를 버리지 마세요.”라는 간청에 대하여 “저는 당신을 버려두지 않을 거에요.”라는 대답이 가능하다는 것을 룻이 가르쳐 줍니다. 룻은 돌이킬 수 없어 보이는 상황을 타개하기를 망설이지 않습니다. 곧, 홀로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대안으로 남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늙은 나오미의 곁에 남은 룻은 메시아의 조상이 되고(마태 1,5 참조),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며 모든 연령대와 생활 신분의 사람들 모두에게 하느님의 친밀함과 가까움을 선사해 주시는 분이신 예수님의 조상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룻의 자유와 용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선택하도록 초대합니다. 우리도 룻의 발자취를 따릅시다. 이 젊은 이방인 여인과 나이 든 나오미와 함께 길을 나섭시다. 그리고 우리의 습관을 바꾸고 노인들을 위한 다른 미래를 떠올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많은 희생이 따르지만 룻을 본받아, 노인들을 돌보는 이들 또는 곁에 더 이상 아무도 없는 친척들이나 지인들에게 날마다 친밀감을 느끼게 해 주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나오미의 곁에 남기로 한 룻은 행복한 결혼과 가정과 새로운 집이라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늘 그러하듯, 노인들 곁에 가까이 있고 가정과 사회와 교회 안에서 노인들의 고유한 역할을 인정함으로써, 우리 자신도 많은 선물과 은총과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분들을 위한 제4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에, 조부모들 그리고 연로한 가족 구성원들에게 우리의 부드러운 사랑을 보여 줍시다. 기력을 잃고 더 이상 다른 미래에 대한 가능성에 희망을 갖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냅시다. 외로움과 버림을 낳는 자기중심적인 태도 대신에 “저는 당신을 버려두지 않을 거에요.”라고 말할 용기를 가지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의 열린 마음과 기쁜 얼굴을 보여 줍시다.
사랑하는 조부모와 노인 여러분 모두에게, 또한 여러분과 가까운 모든 이에게 저의 기도와 축복을 전합니다. 그리고 부디 잊지 말고 저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를 여러분에게 청합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4년 4월 25일
프란치스코
[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42272?gb=K1200 ]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1-6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축일7월 28일 성 베드로 포베다 카스트로베르데 (Peter Poveda Castroverde)
신분 : 순교자, 설립자, 신부
활동 연도 : 1874-1936년
같은 이름 :까스뜨로베르데, 베드루스, 뽀베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성 베드로 포베다 카스트로베르데(Petrus Poveda Castroverde)는 1874년 12월 3일 에스파냐 남부 리나레스(Linares)의 독실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사제직에 대한 성소를 느낀 그는 1889년 하엔(Jaen)에 있는 교구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장학금을 제공하기로 약속한 그라나다(Granada) 주(洲)의 과딕스 교구 신학교로 소속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1897년 4월 17일에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가 된 후 성 베드로 포베다 신부는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른 여러 방면에서 교구의 직무를 맡아 봉사하였다. 그는 1900년 세비야(Sevilla)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과딕스 외곽 언덕에 있는 대피소에서 살던 일명 ‘동굴 거주자’들 속에서 사도직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건립하고 어른들을 위한 연수회를 열어 전문적인 훈련과 예비신자 과정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그는 오해를 받아 이 특별한 사도직에서 떠나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북부 에스파냐의 산간벽지에 있는 코바동가(Covadonga)로 향했고, 그곳에서 1906년 아스투리아스(Asturias)에 있는 코바동가 대성당의 참사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코바동가에서 그는 더 많은 시간을 기도에 쏟아 부었고, 에스파냐의 교육 문제에 대해 특별히 심사숙고했다. 그는 주님께서 그 시대의 교회와 사회에 새로운 길을 열도록 자신을 초대하셨다고 이해했다. 그는 전문적으로 교사들을 양성하는 일에 대한 논문과 소책자를 출판하기 시작했고,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현존과 활동의 필요성을 느끼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도 접촉했다.
신앙과 과학의 대립은 그 시대의 문화 안에서 더욱더 분명해졌고, 이는 공교육 제도 안에서 탈(脫)그리스도화를 야기했다. 성 베드로 포베다 신부는 과딕스에서의 사목적 체험과 코바동가에서의 몇 년에 걸친 반성과 기도 후에 공교육 제도 하에 근무하는 교사들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양성해야 할 필요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굳건한 신앙과 전문적인 자격 둘 모두 복음의 메시지를 살아있게 하는데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1911년 그는 학생들을 위한 거주시설인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 아카데미를 개설했는데, 이는 교사들을 영성적 · 사목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헌신하는 테레지안 연합회(Teresian Association)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해에 그는 교구 사제들의 사도직 연합회와 함께 새로운 교수법 센터를 시작하였다. 그 후 그의 작업은 신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던 하엔으로 이어져 ‘창조적 교리교수법 센터’(Los Operarios Catechetical Center)의 영성 지도자와 사범대학의 교수로 활동했다. 1914년 그는 마드리드(Madrid)에서 기숙사 시설을 갖춘 에스파냐 최초의 여자 대학교를 개교하였다.
그 동안에 테레지안 연합회는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다양한 집단과 지역으로 전파되었고, 그를 통해 하엔에서 교회와 시민사회의 인정을 이끌어냈다. 성 베드로 포베다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평신도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복음화의 새로운 길로써 테레지안 연합회를 제시했고, 자신의 체험에 근거해서 그들이 복음의 증거자가 되도록 양성해갔다. “굳건히 믿는 것과 침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처럼 그는 모든 이들이 신앙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투신하기를 원했고, 스스로도 그러한 소망을 실현하며 살았다. 1921년 그는 마드리드로 이동해 왕실 담당사제로 임명되었다. 다음해에 그는 문맹 퇴치 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테레지안 연합회를 위해 많은 시간을 헌신해 1924년 교황청의 승인을 받았다. 그는 비록 직접 지도하지는 않았지만 설립자로서 테레지안 연합회가 후에 칠레와 이탈리아로 전파되었을 때 테레지안 연합회의 사명을 더욱 공고히 하고 촉진하기 위해 힘썼다.
1936년 발발한 에스파냐의 내전으로 인해 종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났고, 마드리드에 있던 성 베드로 포베다 신부 역시 순교의 위험에 놓였을 때 그는 기꺼이 순교할 것을 다짐했다. 1936년 7월 28일 새벽, 박해자들이 그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물었을 때 그는 당당히 대답했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제이다.” 그는 결국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자로서 총에 맞아 순교하였다. 그는 1993년 10월 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3년 5월 4일 에스파냐 마드리드의 콜론(Colon) 광장에서 100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른 네 명의 복자들과 함께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베드로 포베다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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