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10대의 죽음
3/19 오후 2:15
오후 2시 대구 북구 대현동 골목길에서 17세 여성 쓰러진 채 발견. 4층 높이 건물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우측 발목과 머리에 외상이 있었으며 의식 있었음. 119신고 및 출동
3/19 오후 2:34
인근 A종합병원 도착. 전문의 부재를 이유로 입원 불가 통보.
3/19 오후 2:51
경북대학교병원 응급실 도착. 중증외상환자들이 많고 의료진이 수술상태여서 진료 불가 통보. 119대원, 앰뷸런스를 세워둔 채 계명대동산병원, 영남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에 연락했지만 모두 병원 사정으로 환자 수용 불가 회신
3/19 오후 3:39
대구 소재 2차 B종합병원 도착. 입원 불가 통보
3/19 오후 4:27
대구 달서구 소재 C종합병원 도착 직후 심정지 발생 (최초 발견 후 2시간 12분 경과)
3/19 오후 4:45
CPR 시행하며 대구가톨릭대병원으로 이송하였으나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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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
그것도 의료의 메카라고 선전하는 대구에서 일어난 일,
도대체 믿기지가 않는다.
1명의 생명이라도 살리겠다고,
엄청난 세금을 들여 기찻간이며 편의점까지 제세동기를 설치한 나라에서 외상을 입은 10대가 구급차에 탔으면서도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하고 길에서 헤매다가 2시간여만에 사망을 했다는 사실이 가능한 일인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 해결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정부기관으로부터 나오는 말은 "진료를 거절한 병원을 상대로 과실 여부에 대해 수사하겠다"라는 말 뿐이다.
처벌로 개선이 될까?
절대로 처벌로 개선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첫째 위축
중증환자의 진료를 거부하는 가장 근본적 문제는 의료진의 '움츠림'이다. 위축이다. 방어진료다.
10%의 살 수 있는 확률을 가진 중증외상 환자가 발생했다고 하자.
사망 확률 90%라는 얘기다.
의료진은 10%를 100%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그를 위해 발벗고 나서려는 순간, 자신이 책임져야 할지도 모르는 확률 90%가 그의 발목을 잡는다.
이 사회가 어느새 결과로 의료진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의사는 10%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한의원에서 발생한 응급환자를 도와주던 인근 가정의학과 의사가 "응급약물을 들고 천천히 걸어갔다"는 주장을 하는 유가족으로부터 소송을 당해 수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은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다.
'환자를 살리지 못한 책임'을 의사에게 과도하게 묻는 이 사회에서 환자를 위해 용기를 내는 의사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의사들이 보호 받지 못하고 무한책임을 지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불행히도 이 비극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둘째 인력
"외상센터나 응급센터에 계시는 선생님들은 요즘 같은 분위기에 정말 사명감 가지고 열심히 하시는 분들입니다. 저런 환자가 오면 저런식으로 책임추궁이 올 수 있고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웬만한 여력이 되면 반드시 수용했을 겁니다."
어느 의사의 말씀이다. 맞는 말씀이다.
대구 소재 대학병원의 의료진들이 모두 위축되어 동시에 방어진료를 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 말씀대로 진료할 여력이 안되어 진료를 포기한 곳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력이 안되었을까. 여력이 안되는 이유는, 인력이 충분치 않은 이유가 가장 크고, 인력이 충분치 않은 이유는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영자의 입장과 지원자의 부족(미지원), 그리고 인력의 이탈 때문이다. 지원 부족과 이탈의 원인도 '보호와 존중이 없는 의료환경'에 있다.
셋째 수가
경영자의 입장에서 충분한 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것은 전적으로 의료수가의 문제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운영할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구조는 정부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 안타까운 사건은 악하거나 무지한 이들에 의해, 그리고 누적된 구조적인 문제에 의해 처참히 무너진 의료현장이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다. 참담하다. 그 피해가 아무런 책임이 없는 10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노환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