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일신여학고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 졸업 후 전도사 생활 중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로 유학 가 공부 후 인도로 전도 갈 예정이었으나 집안의 강요로 39세의 나이에 결혼 함.
윤보선이 15살이나 많았고 애 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덕귀 집안에서 공덕귀 나이가 너무 많아 결혼을 적극 찬성했다고 함
5~9대 육영수
배화고등여학고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했으나 아버지가 아들들만 대학에 보내겠다며 딸들의 대학 진학을 반대 해 못 감.
당시 육영수 집은 순수 대지가 3천평이나 되는 대저택에서 수십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살았으며 1920년대에 이미 전화기랑 자동차가 있을 정도로 부잣집이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문제가 아닌 육영수 아버지의 보수적인 사상 때문으로 보임. 배화고등여학교에서 일본으로 수학여행 가는 것도 엄청 가고 싶어했는데 아버지의 반대로 못갔다고 함.
10대 홍기
할아버지가 한학자로 한문을 배우고 교양을 쌓았으나 정규 교육기관에는 다니지 않음. 남편 최규하 전 대통령이 주일대표부에서 근무하던 8년동안 일본어를 공부해 능숙하게 구사했고, 말레이시아 한국대사관에 있을 때 영어를 익힌 것 보면 머리 좋았던걸로 추정.
친정은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알아주던 지역유지 겸 전형적인 대지주 집안이었으며, 옥천의 2대 부호였던 육영수의 아버지 육종관은 주로 소작농을 착취해 거둬들인 소작료를 통해 부를 쌓아 미곡도매상, 금광, 인삼가공업을 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뒷뜰 역할을 하는 과수원을 합치면 8천 평, 순수 대지가 3천평이나 되는 99칸의 대저택에서 수십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살았다.
첫댓글 에휴....결혼이란 제도는 옛날부터 여자를 억압해왔메
결혼은 진짜 여자에게 독이다
다들 남편보다 일 잘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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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덕분에 잘 읽고옴!
와중에 육영수네는 1920년에 저렇게 부자면 매국을 얼마나 한거임
와 육영수네 집안은 또 뭘 했길래 저리 부자임
친정은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알아주던 지역유지 겸 전형적인 대지주 집안이었으며, 옥천의 2대 부호였던 육영수의 아버지 육종관은 주로 소작농을 착취해 거둬들인 소작료를 통해 부를 쌓아 미곡도매상, 금광, 인삼가공업을 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뒷뜰 역할을 하는 과수원을 합치면 8천 평, 순수 대지가 3천평이나 되는 99칸의 대저택에서 수십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살았다.
그렇다네요 와 시발 이거 찾으면서 봤는데 본처하고 첩셋한테 12남 10녀봤대 시발
와 의대 약대..
1920년대 일제시대 아님? 얼마나 매국짓거리를 했으면 ㅉ
와 2003 폐지라니 생각보다 얼마 안 됐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이 이렇게 교육받기 어려운 세상이었는데 여대를 없애면 안되지
공덕귀 여사님 나의 선배님 ㅠㅠㅠㅠ
공덕귀 여사님 왜 결혼시켰냐고 진심 내가 다 원통함
와 다들 남편이 군인따리…. ㅌㅋㅋㅋㅋㅋ
박정희 상향혼했노ㅎ
근데ㅋㅋㅋㅋㅋ 한국에서 올드머니는 뭐다?
친일매국부역자집안!
2003년 폐지;;
와씨 공덕귀 여사님은 진심 결혼한게 원통할정도
군바리들 하나같이 앞길 창창한 똑똑한 여자들 골라만났네.. 하여튼 약은새끼들...
공덕귀 여사님은 프리스턴대 전액장학금으로 입학 승인까지 난 상태였다던데 ㅅㅂㅜㅜ
하여간 남자들은 다 죽어야지
1920년대에 대지3천평 대저택살고 집에 하인에 전화기에 자동차 잇을정도면 대체 뭐하는 집안임...? 합리적 의심이 드는데ㅠ
공덕귀 여사님은 가족 버리고 미국행을 택하기 어려우셨겠지 하 너무 안타까움
1920년대에 어마어마한 부자였으면 얼마나 매국했다는걸까
진짜로 ㅋㅋㅋㅋㅋㅋㅋㅋ 친일파들 진짜 떵떵거리며 살았구나 아직도 저러고 있다는게 너무 화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