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의 주인공 조정철과 홍윤애,
제주시 애월읍 금덕리는 거문덕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곳 금덕 남쪽 유수암리에 홍의녀묘洪義女墓가 있다. 향리 홍처훈洪處勳의 딸 윤애允愛의 무덤인데, 주인공 홍윤애와 조정철의 슬픈 사랑이 서린 무덤이다.
영조가 승하하고 정조가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내가 밤잠을 안 자고 독서하다가 새벽닭이 울고 나서야 잠자리에 든 지 몇 날 몇 밤이던가?” 인고의 세월을 이기고 난 뒤 임금에 오른 정조의 술회였다. 암살을 벗어나기 위해 새벽까지 잠을 안자고 독서에 힘을 쏟고서 왕위에 오른 정조였지만, 암살의 위협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정조의 이복동생을 왕위로 옹립하기 위해 정조를 시해하려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관련자들이 다 죽게 되었다.
그 한 사람이 조정철趙貞喆이었다. 조정철은 신임옥사 때 사사된 4대신 중 한 사람인 조태채趙泰采의 증손이었다. 조태채의 증손이라는 것이 참작되어 제주도로 유배를 왔다. 그때가 1777년이었다. 제주도로 귀양 온 조정철을 가엾게 여겨 자주 드나들었던 홍윤애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1781년 두 사람 간에 위기가 찾아왔다.
조정철 집안과는 조부 때부터 원수지간이었던 소론의 김시구金蓍耈가 제주목사로 부임해 온 것이다.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정철을 없애기 위한 단서를 찾고자 홍윤애를 데려다 문초를 했지만, 그는 모든 사실을 부인하다가 고문 끝에 죽고 말았다.
“어제 미친바람이 한 고을을 휩쓸더니, 남아 있던 연약한 꽃잎을 산산이 흩날려 버렸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조정철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쓴 시 한 편이다. “아아! 즐겁기는 새로 아는 사이가 되는 것보다 즐거운 것이 없고, 슬프기는 생이별보다 더 슬픈 것이 없다”는 옛말이 있다. 그런데, 생이별도 아니고 사랑하는 여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한 목숨을 바치고 말았으니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으랴.
어사 박원형朴元衡이 이러한 사실을 밝혀내어 김시구와 황인채는 파직되었다. 김시구는 다시 제주도에 유배를 와 있는 사람들이 역모를 꾸민다는 허위 보고를 올렸고, 조정철은 새로 부임한 제주목사로부터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조정철은 1782년 정의현으로 옮겼는데 그가 유배 중에 썼던 시 한 편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잠은 어이 더디고 밤은 왜 이리 길고
하늘가 기러기 소리 애간장을 끊네.
만사가 이제 텅 비어 백발과 같아
쫓겨난 신하의 눈물 천 리를 가네.
조정철은 1788년에는 나주로 옮겼다. 1805년 유배가 풀리기까지 무려 33년의 기나긴 세월을 유배생활로 보냈던 사람이 조정철이었다. 조정철은 무죄로 풀려 충청감사를 지내다가 순조 11년인 1811년 6월에 제주방어사를 자원했다. 부임 즉시 어렸을 때 헤어진 딸을 만났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자 홍윤애의 혼을 달래고자 무덤을 찾아 ‘홍의녀묘’라고 비를 세운 뒤 묘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홍의녀(洪義女)는 향리(鄕吏) 처훈(處勳)의 딸이다. 1777년(정조 1년) 내가 죄를 지어 탐라에 안치되었다. 의녀가 때때로 나의 적거에 출입하였는데, 1781년 간사한 사람이 의녀를 미끼로 하여 나를 얽어 죽이려고 했다. 그런 기미가 없자, 돌연 피와 살이 낭자 하게 되었다. 의녀가 말하기를, “공(公)의 사람은 나의 죽음에 있습니다.” 하고는 결국 불복하고 절개를 지켜 죽으니 윤5월 15일이었다. 31년 만에 내가 임금의 은혜를 입고 방어사로 제주로 와서 네모진 묘역을 만들고 인연을 시로 전한다.
옥 같던 그대 얼굴 묻힌 지 몇 해던가.
누가 그대의 원한을 하늘에 호소할 수 있으리.
황천길은 멀고도 먼데 누굴 의지해서 돌아갔는가.
진한 피 깊이 간직하고 죽고 나도 인연이 이어졌네.
영원히 아름다운 이름, 형두꽃처럼 빛나리.
한 집안 두 절개, 어진 형제였네.
젊은 나이의 두 무덤 이제는 일어나지 못하니
푸른 풀만 무덤 앞에 우거져 있구나.
그의 언니 또한 절개가 있어 한 쌍으로 묻혔다. 1940년 제주 농업학교를 세우기 위하여 홍윤애의 무덤을 제주시 삼도 1동에서 이곳으로 옮기었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사랑을 했고, 드라마 같은 삶을 살다간 사람이 바로 조정철이었으며 제주 여자 홍윤애의 사랑 역시 지극한 순애보가 아닐 수 없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 제주도 편에서
세월은 가도 사람의 자취는 역사로 남아 지나가는 길손들의 마음을 슬프게 사로 잡는다. 조정철의 묘는 수안보 온천에서
안보역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고, 홍윤애의 묘는 유수암리의 공동묘지에 있으니,
2024년 3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