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마스기행 2] 정병경.
ㅡ나오시마 섬으로ㅡ
호텔 조식으로 하루 여행의 시작이다.
나오시마(直島)로 가기 위해 선착장행 버스를 타야 한다. 08시에 출발하는 페리호에 승선하느라 분주하다. 물자를 나르는 트럭과 승용차도 배에 싣는다. 파도를 가르며 한시간 만에 미야노우라(宮之浦) 선착장에 닻을 내린다. 항구 앞 광장에 나오시마의 심볼인 빨간 호박이 눈에 들어온다.
명작을 카메라로 찍기에 분주하다. 나오시마 시그니처인 빨간 호박과 노란 호박은 쿠사마야요이(草間彌生)의 작품이다. 90세인 그녀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여전히 작품 활동으로 바쁘게 지낸다.
바닷가에 설치한 노란 호박은 한때 위기를 겪는다. 2021년 8월 태풍 '루빗'에 의해 바다로 휩쓸려 조각이 난다. 1년 2개월 만에 제모습으로 돌아와 사랑을 더 받는 작품으로 거듭난다. 일정 관계로 지나는 길에 차창으로 잠시 보니 아쉬움이 더한다. 많은 이들의 사랑으로 오래 뇌리에 남을 명작 호박이다. 제주 본태박물관과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호텔에서 만날 수 있어 기회가 되면 다시 볼 계획이다.
빨간 호박은 검정색과 대조되는 색이다. 오행으로는 여름과 겨울을 상징하며 냉온冷溫의 의미가 있다. 인생도 누구나 겪게 되는 과정을 색으로 표현했다. 쯔쯔지쇼에 있는 노란 호박은 순환의 의미가 있어 계절따라 작가와 작품을 되새겨 보게된다.
ㅡ작가의 체취 ㅡ
쿠사마 야요이(1929.03.22.)는 일본 나가노 출신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4남매의 막내다. 어머니로부터 폭력과 아버지의 잦은 외도로 불우한 시절을 보내게 된다. 열살 때 정신착란 증세로 시련을 겪는다.
예술가 조지아 오키프에게 편지로 조언을 구한다. 조지아로부터 후원을 받게 된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예술가 부류에 속하지 못해 궁핍한 시절이 이어진다.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부터 그의 앞날에 문이 열린다.
유명한 예술가 도널드 주드와 프랭크 스텔라의 극찬에 힘을 얻는다. 물방울 모양의 컨셉을 예술 소재로 삼아 오늘의 대작가로 변신한 쿠사마야요이다.
그는 이런 말을 남긴다. "나는 나를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시작되었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예술을 추구할 뿐이다."
마음을 비우고 예술에 전념한 그녀는 1957년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행위 예술로 가족에게 수치가 되기도 한 작가다. 캔버스와 오브제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평범한 생각을 뛰어넘은 수재 작가로 공인받을 만하다. 거울을 사용해 무한대로 피동 물체를 끌어들이는 작가이다.
ㅡ작품 감상ㅡ
나오시마 섬엔 베네세 하우스와 이우환 미술관과 발리갤러리, 지중(地中)미술관이 근거리에 있다. 구리 제련소인 섬이 한동안 방치되어 유령의 섬이 될 위기였다. 자연적으로 거주 가족이 줄어 폐가도 늘게 된다. 현재도 인구 1천여명 수준이다.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郞) 회장이 섬 일부를 구입하게 된다. 구세주를 만난 격이다.
1992년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을 설립하게된다. 유명 건축가 안도타다오(安藤忠雄)와 함께 프로잭트를 구상해 만든 제임스 터렐의 합작품이다. 노출 콘크리트의 건축물은 독학으로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같은 방식의 건축물이 제주 본태박물관과 원주 뮤지엄산 등 여러 전시관에 적용하고 있다. 그는 도쿄대와 하버드대학에서 교수로 활약하는 거장이다.
나오시마는 시코쿠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세토내해(섬과 섬 사이에 형성된 좁은해협)의 섬 중 하나다. 세토내해는 큐슈, 시코쿠, 혼슈로 둘러쌓인 일종의 지중해이다.
미로로 설계한 무지엄은 모두 요새같은 느낌이다. 클로드모네의 방은 자연광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설계했다. 지중미술관에서 경탄을 금치 못할 만큼 고차원의 예술 세계를 접한다. 자연으로 방치되는 빛을 무한대의 예술 세계로 끌어들인다. 환경공해인 소재들이 보물로 거듭나 전시장에 돌아왔다.
나오시마는 세 구역으로 나뉜다. 미야노우라 에리어와 이에(집) 프로잭트의 혼무라 에리어, 미술관이 있는 고탄지 에리어다. 무언의 가르침으로 터득 하는 무한대 예술 세계에서 견문을 넓힐 기회다. 지면에 일일이 옮기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직접 보고 느껴야 작가의 예술성을 알게 된다.
파빌리온은 27개 섬으로 구성된 나오시마쵸의 28번째 섬이라는 컨셉으로 설치했다. 스테인리스 재질 그물 250개로 구성한 작품이다. 시간이 부족해 멀리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기에 아쉬운 마음이다.
좁은 마을의 골목을 다니기에는 전기 자전거가 제격이다. 집 프로잭트는 한 집을 방문하면 리플렛에 도장을 찍어준다. 여섯 집인데 난데라(南寺)는 앞팀이 관람 중이어서 지나쳤다. 이 건축물이 '제임스 탈렐'의 작품을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것이다. 빛과 소리와 공간과 사람 전체가 작품이 되는 새로운 방식의 전시라고 이른다.
고오신자(護王神社)는 시키모투 박사의 설계라고 한다. 석실과 본전이 유리 계단이다. 지하와 지상이 하나의 세계를 강조하는 의미다. 신에 대한 존숭의 수준을 이해하고 돌아선다.
힘차게 올라온 해가 하루 임무를 마치고 기울어진다. 건물 안에 대형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칫과 의원 하이샤를 마지막으로 관람한 후 뮤지엄 일정을 접는다. 일행이 단촐하면 전기자전거가 제격이다. 대중교통은 일장일단이 있다. 기다림의 미학을 새긴다
동행한 열 세분에게 이해와 배려심을 배운다. 작가들께 경외심敬畏心이 생기며 고개가 숙여진다. 만찬장 선택 갈등이 어제와 반복이다. 예의와 질서의 본고장에서 2일간 일행과 함께 나눈 정은 오래 동안 잔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2023.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