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명상 정원에서
석야 신웅순
그림 소재를 찾기 위해 아내와 길을 나섰다. 슬픈 연가 촬영지인 대청호수 명상 공원을 찾았다. 어디선가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멜로디인데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곡이지?”
“성가인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물어보았더니 노사연의‘바램’이란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는,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곡인데도 그만 까마득 잊고 있었다. 바쁘게 산 것도 아니요 노래와 담을 쌓은 것도 아닌데 그동안 사람들과 아득히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 아래 악사의 뒷모습과 호수 너머 멀리 집 몇 채가 있는 산을 배경으로 찍었다. 만추의 그 한 장면이면 충분히 한 인생 이야기의 한 컷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림을 그리려면 직접 현장을 답사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현장감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왕초보자에겐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다 그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소재 하나 잡지 못해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그런대로 오늘은 발걸음이 가볍다.
아내는 민물 새우탕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근방에 근사한 할머니집이 있다고 한다. 민물고기이면 뭣이든 좋아하는 나였다.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돌아가셨어요.”
어머니의 대를 이어 장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찬이 완전 시골 밥상이다. 그 중 된장 버무린 시래기는 일품이었다. 그 옛날 어머니가 해주신 시래기가 그것이었다.
“아주머니, 시래기가 없으면 손님이 화를 내겠어요.”
툭 한마디 던졌더니 아주머니는 환히 웃는다. 나도 기분이 좋다. 별 건가 이런 것이 세상사는 맛이 아닐까 싶다.
명상 정원은 아내가 그림을 그렸던 곳이다.
“오리가 노닐던 곳이 저쪽인가요?”
“이쯤에서 바라본 경치가 아닐까?”
그림에 대해 집 사람과 이런 저런 얘길 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리는 만나지 못했어도, 오늘 참 좋네요.”
뒤돌아 보니 어느 부부였다. 오리도 볼 겸 가을 나들이를 나온 모양이다.
만추는 그 자체가 시이다. 바람도 시요, 여인의 목소리도 시요, 바이올린 소리도 시이다. 부부의 발걸음도 시이다.
“여보, 시래기 참 맛있지요?”
“제일 맛있었어요.”
아내의 목소리가 어머니의 말씀처럼 정겹게 들려왔다. 11월 끝인데도 차창 밖 오후의 햇살은 맑고도 따뜻했다.
2024.11.25.
첫댓글 만추의 호반이 불과 2~3일 사이에 설경으로 바뀌었네요.
이런날엔 오리도 쉬고 있겠지요.
만추는 겨울과 함께 오나봅니다.
집오리는 없어도 멀리서 물오리 한쌍이 물장구치고 있더라고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