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마이아트뮤지움에서 열리고 있는 샤갈전 가다.
삼성동이 몰라보게 변해있었다.
언제였는지 푸드장소가 다 없어져 옷가게들이 들어서고,
코엑스 무역센터 앞 광장에는 넷플릭스에서 홍보하는 ‘지옥’으로
젊은이들이 넘쳐났다.
샤갈의 그림은 워낙 초현실적 추상화이고,
또 추상화라는 것이 감상자의 주관적 견해이어서,
혹여 그림을 감상한 후에,
“참 쉽죠잉!”
라는 말이 튀어나온다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하랴.
어두운 조도아래 많은 사람들이 숨소리만 내며 앞사람을 따라
그림을 감상한다. 한참 따라가다가 문득
벌거벗은 임금님 우화가 생각난다.
자칫 눈맑은 아이 하나가,
“엄마 저것도 그림이야?”
할 것만 같다.
그림은 성서속의 구약시대의 인물들이 총망라하여 등장하였다.
하나님이 아담과하와의 창조부터 유혹하는 뱀,
카인이 아벨을 돌로 쳐죽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삭.
야곱과 그 열두아들.
애굽으로 팔려가 꿈해몽을 잘하여 총리까지 된 요셉.
노아의 홍수와 바벨탑.
홍해를 가르는 모세.
이스라엘의 엑소더스.
여호수아.
죽지않고 승천한 에녹.
불마차를 타고 올라간 엘리야.
소돔과고모라.
삼손과 데릴라.
다윗과밧세바
솔로몬의재판.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아.
이사야 등등.
구약시대를 거쳐 신약에 이르러 세례요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마리아까지,
총 백다섯 점이었다.
그림들은 샤갈 특유의 도발에 가까운 강렬한 색채도 없었다.
바이블이란 주제인만큼 그림들은 다 어두운 배경에
그보다 더 어두운 흑필로 일필휘지 휘이익~! 하고 그렸음직한
그림이었다.
샤갈은 이 그림을 그리면서 무슨 고민을 하였을까.
소스는 그보다 좋을 수 없는 성서속에 다 있다.
무엇을 그릴까에 ‘무엇’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인물들을 성서속에서 차례대로 불러내기만 하면 될 것이다.
허나 어떻게’그릴까에 대하여는 고민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처럼 그리고,
다윗은 다윗처럼 그려야할 것인데,
그림은 아브라함에게 다윗의 왕관을 씌우고 솔로몬이라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그림들이었다.
아브라함을 그려놓고 노아라고해도 상관이 없고,
에녹이라해도 상관이 없고, 심지어
우리동네 붕어빵 굽는 아저씨라고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아들이삭을 백세에 낳았으니 분명 아브라함은 노인일터인데
그림속의 아브라함은 노인이 아니다.
뭔가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림 아래 붙여놓은 '제목'을 보지않으면
도무지 알 수없는 인물들이다.
그 중에 예수만은 멀리서 봐도,
흠! 예수로군, 할만 했다.
헐벗은 몸. 가느다란 팔다리와 야윈 가슴팍에 붙은 두 개의 점이
그러했다.
초현실주의적 그림이라고 해도
너무 고민하지 않았네,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구약성서속의 그 엄청난 역사적 임무를 띄고 살고간 인물들에 대하여
너무 고민없이 ‘그려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마감에 쫓겨 타타타타 자판을 두들겨 댄 글쟁이들처럼,
전시날짜를 정해놓고 마감에 쫒기듯
그려치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수년전 러시아의 일리아 레삔 생가에서 본 그의 그림들과,
네델란드 박물관에서 본 램브란트나 고흐의 그림에게서 받았던 감동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그토록이나 심오하고 거룩한 성서속 소제인데도
그렇다.
내게도,
그림이 가슴으로 들어온 경험이 있다.
수 년 전,
모스코바의 트렌치야코프 국립미술관에서 였다.
칸딘스키 등의 러시아그림들은 크고작은 작품마다 이야기가 가득하였다.
그 중에 하나.
넓은 벽 한 면을 차지한 한 그림앞에서 숨이 멎을 것같은
충격을 받았다.
전쟁터에서 수만의 병사들을 다 잃은 장군이
그의 발앞에 끝없이 누워있는 시체들을 보고
서 있는 그림이었다.
죽은 병사하나하나의 표정과 참상이 너무도 사실적인 묘사였다.
병사들은 다 죽고,
오직 장군만 살았다.
성직자는 시체들을 향해 향로를 흔들며 미사를 드리고,
측면으로 그려진 두사람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 번들거렸다.
거느리던 병사를 한명도 없이 다 죽이고,
단지 홀로 살아남은 장군의 감정이 이입이 된것일까.
어느 순간 내 목구멍이 뻐근해지더니 금새 눈앞이
부옇게 흐려지던 것이다.
또다른 그림,
다 늙어빠진 늙은 귀족할아범이 어여쁜 16세 소녀와
결혼식을 올리는 그림이 있었다.
표정이 압권이다.
주례사인 성직자는 엄숙하고,
어린신부는 울고 있다.
늙은 신랑은 좀 민망한 표정이고,
귀족하객들은 딱한 표정으로 울고있는 어린신부를 보고 있는데,
어떤이는 부러운 표정,
다른어떤이는 늙은신랑을 힐난하는 표정.
어찌 그림붓 하나로 저렇게 완벽한 스토리를
설명한단 말인가.
그리고 또,
어쩔 수없이 또 한사람을 소환하게 된다.
얼마전에 떠난(세월도 빠르지, 벌써 일년이 되어간다)
그이도 은퇴후 30년을 그렸다.
스케치여행에서 그림을 그려오면,
그려온 그림을
밥먹을 땐 식탁부근으로,
티비볼 땐 티비곁으로,
잠을 잘 땐 침대에서 잘 보이는 곳에,
비스듬히 세워놓고 몇날며칠 그림을 보며
고민하던 그가 생각난다.(*)
첫댓글 먼저 홀린듯이 글을 읽었습니다
너무나 실감나는 글 표현에 깜짝 놀랐고
이글이 이 카페에서만 읽혀진다는게 참 아깝다 생각이 들었네요
야외 스케치 하고 오면
그 그림그리던 순간이 좋아서
여기서 보고 저기서 보고
그러다 몇날뒤 지우기도 하지요
1년 되셨으면
아직도 많이 마음이 많이 아릴텐데,...
그리움 소중히 간직하셔요
@나의 이야기 어느글 보다 여운이 많이 남는글 이라 앞으로 은순이님 글 자주 볼수있었으면 하고 강하게 기대해 보렵니다
@나의 이야기 나의이야기님 마음을 읽은것은 아니구요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아이구나, 방금 쓴 답글이 날아가버리네요. 참...
이젤님, 고맙습니다.
그렇게 과분한 칭찬을!
언제나 저의 게으름이 문제지요.ㅎ
지난번 일등급 고추가루가 하도 좋아서
계획하지 않았던 김장을 하게 했어요.(배추한포기)
빛깔이 예술!
함께 보내주신 껍질땅콩과 서리태도 어찌나 귀한지요.
먹을 때마다 감사합니다.
@은순이 저는 시골가서 60포기 담궜는데
한포기를 어디다 붙인데요
마음에 드시니 감사해요
@나의 이야기 (허참, 답글이 자꾸 이상한 곳에 달리네요.)
저는 그림을 잘 모르는데도
그림을 고민하는 남편과 더러 논쟁이 붙으면
"당신의 그림엔 철학이 없어요!"
이러다가 밤새도록 싸웠습니다.ㅎㅎㅎ
취향의 문제겠지만 저는
샤갈이나 달리 자코메티 같은
추상화와 비구상의 그림에 감동되지 않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림 한점한점이 수많은
이야기들을 느낄수 있게
하나 보더군요.
저야 문외한 이지마는
어느분 말씀 알고 있는 만큼
보여지구 느낌이 온다더군요.
보는사람마다 다양하게
보이고 느껴질것도
같구요.
그림보다도 전 은순님 글을
읽어내려가니 꼬옥 그림앞에
서있는듯한 느낌 속으로
빠져들게 하네요.
또 그림이 부군과의 지난
추억소환도 햇군요.
아직 상실감에 많이
힘드실터인데 흔적을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금박산님.
늘 생활에 딱 붙은 금박산님의 삶의 이야기를
늘 잘 읽고 있습니다.
행복하십시다.
@은순이 언젠가 누가 피카소 그림
전시회인가 간다해서
따라갓는데?? 내가보니
유치원생 그림 같더군요.
저는 그림에는 문외한입니다.
하지만 그림을 보고 내마음이 편하고 와닿고 시야갸 환해진다면
아.....좋다라고 합니다.
오랫만에 올리신 글도 잘보고
건강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도 그림에 문외한입니다.
그러니까 대 샤갈에 대해 저런 택도없는 글을
쓰는거지요.ㅎㅎㅎ
흥미롭게 꼼꼼히 읽었습니다.
샤갈의 전시회가 있네요.
파리시내 어느 화려한 극장에서 샤갈의 천장화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색감이 참 좋았습니다.
아 샤갈도 천장화를 그렸군요.
그도 유태인이었으니 성화를 그리고 싶었겠지요.
그렇습니다.
'색'
쓰는데는 샤갈을 당할자 있겠습니까.ㅎ
님의 글을 읽으며 단원 김홍도의 '서당'이나 '씨름' 등 풍속화를 재미있게 본 생각이 납니다.
각자 위치에 따라 사람들의 표정이 넘 재미있어서요.
더운 여름날 여인들의 나신을 훔쳐보는 남정네. 신윤복의 풍속화도 재미있구요.
맞아요.
단원 김흥도 하면
혜원 신윤복이 생각나는
동시대의 화가들이었지요.
물론 단원에 가려 혜원은 단원만큼 명성을 얻지 못했지요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그들의 그림입니다.
그림 이야기도 감동이지만
끝부분에서 울컥~ 하네요.
늘 감사합니다.
나영실님.
저의 독자라고 알고 있답니다.ㅎ
그러게요
그림 화가의 혼이 담겨져 있지요
색채에서도
스케치에서도 저도 아주 오래전에 미술학원에서수채화를 보고 어머 누가 그렸을까?알고보니 우리 애 작품이었어요
그 순간 그 아이의 포근하고 많은 정서가 있구나 생각했던 적 있습니다
샤갈도 시간에 쫒겨?
그러나 제 생각은 평범이 답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작가들에게 미완성은 거의 없는 걸로 ...
저야 문외한이니
선배님
자주 뵈었으면 좋겠어요
모처럼
내면 깊은 곳을 성찰하는 듯 합니다
엄마를 감동시켰던 그 '애'는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요.ㅎ
긴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고마워요.
해박한 지식이 원천 이겠지만
글이 아기자기 재미있고
조그마한 빈틈 하나라도 찾아내시어 표현하시는 내공이 대단 하십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읽어주시는 독자가 있어
제가 더 감사하지요.
건강하세요.
저는 그림 좋아하지만,그림 영 못 그립니다.
글 속에 재미 있어요.
저도 음악을 좋아하지만
다룰줄 아는 악기가 하나도 없답니다.
좋아하는 것과 할줄아는 것은 다른것
같지요?
.
감사합니다.
그림에 조예가 깊으셨군요
문외한이라서 ㅎㅎ
아니에요, 지존님.
조예가 깊다니요.
공연히 이참견 저참견 하는것이랍니다.ㅎ
그림에 대해선 문외한인데
은순님 미술에 관한 조예 깊은 글
관심있게 단숨에 읽었습니다
일년 전 영원한 이별하셨군요
추천 꾹
네, 그런 일이 있었지요.
힘들었지만 조금씩 잊고
산 사람은 또 이렇게 살아가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글이 아무리 길어도
꿀맛으로 읽어내립니다
대체 뭘 하셨던 분일까
갈수록 궁금증은 커지고요
국어쌤이셨나
미술쌤이셨나
별의 별 추측도 해봅니다ㅎ
무심한 세월은
벌써 일주기 되셨네요
아무쪼록 건강하셔서
읽는행복 자주 선물해 주셔요
저는 지금도 은평을 지나면서
상상의 모습 떠올립니다^^
반갑습니다. 강마을님.
저의 愛팬이시잖아요.
저는 그렇게 믿고있답니다.ㅎㅎ
네. 우야든동
조심해서 좋은 세월되면 우리도 한번 보십시다.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철석같이 믿으셔도 됩니다 ㅎ
부군 케어하시던 병상일기와
사후 전해주신 이야기
슬프고도 아름다워 뭐라 가볍게
댓글 달지 못했지만
안빼고 다 봤어요
속히 좋은날이 와서 뵙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림 이야기도 소설이나 시 처럼 빠져 들지요 수 많은 페이지에 씌여진 글보다 한 폭의 그림이 주는 이야기 그림의 세계 색채의 표정 숱한 명화를 봐도 제 시야는
아둔하기만 해서 표현을 못합니다
전 그림의 해설 표현력 이런 거 좋아 합니다 종종 말고 가끔이라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반갑습니다, 운선님.
표현을 못하시다니. 틀렸네요.ㅎ
운선님의 글은 다른 수식어없이 참
담백하고 솔직하여 부러워합니다.
제가 늘 할바를 못하고 살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