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7일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21-28
그때에 예수님께서 21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찰거머리처럼 매달리십시오.
아주 어릴 적에 논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들어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때문에 혼비백산을 한 적이 많았습니다. 아주 큰 거머리는 늘어나면 한 뼘이나 되어서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거머리는 피를 빨아먹거나 음식물 부스러기를 먹어치우는 환형동물로 전 세계 약 300여종이 사는데 거머리의 앞과 뒤에 빨판이 있어서 사람의 다리나 몸에 쩍 붙어서 피를 빨아 먹는 아주 귀찮은 놈입니다. 거머리는 피를 빨아먹기 위해서 우선 피가 응고되는 것을 막고 녹아 있는 피를 잘 빨 수 있도록 히루딘(hirudin)이라는 독을 품어냅니다. 그런데 이 독이 혈액을 응고하지 않도록 혈액은행에서 적절하게 사용하기도 하고 종기가 심하게 난 사람들에게 거머리 요법을 쓰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총을 받고 생명의 성혈을 빨아먹기 위해서는 그렇게 굳지 않는 독소를 뿜어서라도 주님께 붙어사는 거머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거머리는 기생동물이기 때문에 귀찮게 붙어서 괴롭히는 사람들을 은근히 빗대어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악착같이 예수님에게 붙어살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을 붙잡고 자기의 딸이 호되게 마귀에 들렸다고 하소연하는 이 가난한 시돈 지방의 부인은 정말 찰거머리 같습니다.
오늘 복음을 대하면서 40여 년 전 바로 오늘로 기억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때 나는 어느 성당에서 저녁미사를 참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학생들에게 예비자 교리를 하였기 때문에 그날도 예비자 교리가 끝나고 학생들과 같이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 바로 오늘의 복음을 봉독하시고 성찬의 전례가 시작되려고 할 즈음, 내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여, 이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시오!” 하는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약간 정신 이상한 듯 한 한 여인이 큰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자 그 여인은 더 큰 소리로 “예수야, 나 좀 불쌍히 여겨다오.” 하면서 그 외침이 절규와 울부짖음으로 바뀌자 삽시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시끄럽다고 성당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하였더니 더욱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자 강제로 떠메어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그 여인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예수야, 예수야,”를 연발하였습니다.
그날 나는 집중해서 미사참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여인을 끌어낸 것은 잘한 것인가? 잘못한 것인가? 그 문제는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그 아픔이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을 강제로 끌어내기를 바라셨을까? 우리는 왜 그 여인을 외면하고 미사를 드려야 할까? 우리는 왜 정신이 들었다 나갔다 하는 그 여인을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지혜와 아량이나 너그러움이 없었을까? 마치 오늘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하고 예수님께 고자질하는 얄미운 제자들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정말 절박한 간절한 호소는 그 여인의 기도가 아니었을까? 밖에서 울고 있는 그 여인을 주님께서 찾아가셔서 어루만져 주시고, 그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미사가 끝났을 때, 성모님 상 앞에서 아주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그 여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방해 받지 않고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응급처치를 한 것도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아직도 무엇이 옳은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신이 올바르다면 그렇게 간절히 주님을 찾는다면 주님께서는 절대로 외면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이나 그 때나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이 하느님과 겨루어 이겨냈다고 얻은 이름입니다. <일이 이쯤 되자 그분이 야곱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 "너는 하느님과 겨루어 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창세기 32, 23-33 참조)> 사람이 하느님과 싸워서 이길 수 있나요? 이런 의문이 항상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은 하느님과 싸워서 항상 하느님을 이긴답니다. 오늘 야곱에게 지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고, 우리는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러니 자식에게 언제나 지고 마는 어머니처럼 가난한 여인의 간절한 호소에 지고 마는 예수님, 하느님이십니다. 주님께 매일 싸움을 거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떼를 쓰십시오. 그러면 주님은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래, 네가 이겼다. 네 믿음이 참으로 가상하다.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하시고 손을 들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강아지처럼 주님의 곁에서 항상 꼬리치며 매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31,1-7
1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칼을 피해 살아남은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다.
이스라엘이 제 안식처를 찾아 나섰을 때
3 주님께서 먼 곳에서 와 그에게 나타나셨다.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이 자애를 베풀었다.
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다시 세우면 네가 일어서리라. 네가 다시 손북을 들고 흥겹게 춤을 추며 나오리라.
5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마다 포도밭을 만들리니 포도를 심은 이들이 그 열매를 따 먹으리라.
6 에프라임 산에서 파수꾼들이 이렇게 외칠 날이 오리라. ‘일어나 시온으로 올라가 주 하느님께 나아가자! ’”
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야곱에게 기쁨으로 환호하고, 민족들의 으뜸에게 환성을 올려라.
이렇게 외치며 찬양하여라. ‘주님, 당신 백성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소서!’”
축일 8월 7일 성 식스토 2세 (Sixtus II)
신분 : 교황, 순교자
활동 연도 : +258년
같은 이름 : 식스또, 식스뚜스, 식스투스, 씩스또, 씩스뚜스
그리스 출신인 성 식스투스 2세(또는 식스토 2세)는 257년 8월 30일에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 8월 2일)를 계승하였다. 그 무렵 황제 발레리아누스는 초기의 관용 정책을 버리고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첫 번째 포고령을 내렸다. 이어 더욱 잔혹한 두 번째 포고령이 발표되고 군사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습격했을 때, 성 식스투스 교황은 개인 묘지인 프래텍스타투스(Praetextatus) 카타콤바에서 전례를 거행하고 있었다. 그 당시 로마(Roma)의 지하 묘지는 박해를 피하기 위한 신자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주교좌에 앉아 강론하던 그는 체포되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의 시신은 후에 아피아(Appia) 가도에 있는 성 칼리스투스(Callistus) 카타콤바의 교황 묘지로 이장되었다.
성 식스투스와 함께 체포되어 순교한 사람은 부제 성 펠리키시무스(Felicissimus)와 성 아가피투스(Agapitus) 그리고 차부제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성 빈첸시오(Vincentius), 성 마그누스(Magnus), 성 스테파누스(Stephanus)이다. 또 한 명의 동료 순교자로 성 콰르투스(Quartus)가 있다. 그도 부제라는 기록이 있으나 잘못된 기록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들은 교황 성 식스투스 2세와 함께 순교하였기 때문에 로마 순교록에서 같은 날을 축일을 정해 공경해 왔다. 그러나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부제는 며칠 뒤에 순교하였기 때문에 다른 날 축일을 정해 공경한다. 이들은 프래텍스타투스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 오늘날 교황 성 식스투스(8월 7일)와 성 라우렌티우스(8월 10일) 외의 다른 순교자들은 8월 6일을 축일로 지낸다.
축일 8월 7일 성 카예타노 (Cajetan)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 지역 : 티에나(Thienna)
활동 연도 : 1480-1547년
같은 이름 : 가예따노, 가예따누스, 가예타노, 가예타누스, 카예따노, 카예따누스, 카예타누스
티에나의 가스파르(Gaspar) 백작과 포르토(Porto)의 마리아(Maria)의 아들로 태어난 성 카예타누스(Cajetanus, 또는 카예타노)는 비첸차(Vicenza)에서 세례를 받고, 두 살 때 그의 부친이 전사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나 파도바(Padova) 대학교에서 공부하여 민법과 교회법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곧 비첸차의 시의원이 되었고, 1506년에는 로마(Roma)로 가서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II)로부터 최초의 공증인으로 임명받았다. 또한 그는 신심 깊은 사제들로 구성된 신애회(神愛會)를 재생시켰다. 1513년 율리우스 2세 교황이 선종하자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고, 1516년 사제품을 받은 후 비첸차로 돌아왔다.
그는 그곳에서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다가, 베로나(Verona)에서 이와 비슷한 회를 설립하였다. 1523년 그는 로마로 가서 후일 교황 바오로 4세(Paulus IV)가 된 조반니 피에트로 카라파(Giovanni Pietro Carafa)와 바오로 콘시글리에리(Paolo Consiglieri) 그리고 보니파치오 데콜리(Bonifacio de’Colli) 등과 함께 교회를 개혁하고, 백성들에게 설교하며, 병자를 돕고, 최악의 상황에서 허덕이던 성직자의 신분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성직 수도회를 설립하여 1524년에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의 승인을 받았다. ‘테아티노회’(Theatines)라 부르는 이 수도회는 공동생활을 하는 정규 성직자들로 구성하여 서원을 발하고 사목직에 종사했다. 처음에는 그리 성공적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1530년 성 카예타누스가 ‘테아티노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주교들의 개혁에 반대하는 무리와 대적하여 훌륭한 싸움을 하였고, 이단적 가르침을 과감하게 물리쳤다. 일반 시민들을 위한 성 카예타누스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전당포의 설립이었다. 후일 그는 복자 요한 마리노니(Joannes Marinoni, 12월 13일)와 함께 ‘몬테스 피에타티스’(Montes Pietatis)를 설립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로써 시민들의 복리를 위해 일하였다. 1547년 8월 7일 나폴리(Napoli)에서 선종한 그는 1629년 10월 8일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671년 4월 12일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트렌토(Trento) 공의회 이전에 있었던 가톨릭 개혁가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식스토 2세 (Sixtus II)와 카예타노 (Cajetan)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