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9일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4-28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미지근한 사랑은 원치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시러 오셨습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평화와 구원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 21)하시며 우리를 축복해주시는 분이 오늘은 세상에 칼을 주시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화끈한 사랑을 원하시는 주님께서 형편없는 사랑으로 만족해하는 사람들을 보고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못한 사랑을 또한 하느님께 바치면서 자신의 예배는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 싫으셨던 모양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서, 하느님께 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집안 식구 간에 불화하면서 하느님께는 기도를 잘하고, 신심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착각하기도 하고 자기 자식에게 사랑을 많이 주기 위해서 부모를 헌신짝 버리듯 하면서 하느님을 흠숭한다고 장담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100점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식도 100점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평화의 원천이시며,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은 1000점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를 50점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식들은 40점으로 사랑하고, 하느님을 30점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더 많이 사랑받아야할 하느님이 제 3위로 4위로 밀려납니다. 아니 돈 때문에 하느님이 꼴찌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더불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사람들에게 대접은 후하면서 하느님께 바치는 헌금은 아깝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 칼을 주시며 미적지근한 사랑을 과감히 잘라버리고 시원찮게 사랑하려거든 아예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으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을 하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 죽을 만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저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살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1960년대에 한 유명한 말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도전할 만한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지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의미가 있고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쉬운 일이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목숨을 버리고 전념해야 할 가치가 없습니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만큼 도전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고 해볼 만한 일입니다.
흔히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는데 ' 같이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됨됨이를 보려거든 그들의 부모를 보거나 그들의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이어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예언자를 알아보는 사람은 그들이 예언자이기 때문에 알아볼 수 있고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예언자가 받을 상을 당연히 받아야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받을 만한 상을 받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우리는 용기와 희망을 가집니다.
의인은 의롭게 살기에 의인을 알아보고, 의로운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만이 의인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천국을 상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하느님께서 그런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실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의롭게 살지 못하면서 선행을 많이 하고 제아무리 삶을 잘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선행을 하느님께서 인정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선행을 보고 그 일에 협조하는 사람들이나 성직자의 사목을 돕는 사람과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노력하는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돕는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격려하십니다. 물 한 모금이라도 마시게 한다면 그 공적을 당신께서 갚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비유적으로 오늘 그들의 공적을 아주 높이 평가하시며 사목의 협조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십니다. 골고타 십자가의 길을 힘겹게 걸으시던 예수님께 키레네 사람 시몬은 물 한잔이라도 마시게 한 협조자로 구원의 길에 동참한 위대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구원사업의 협조자가 되어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주님께서 간절히 바라십니다.
<불행하여라, 피의 성읍!>
▥ 나훔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1.3; 3,1-3.6-7
1 보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 평화를 알리는 이의 발이 산을 넘어온다. 유다야, 축일을 지내고 서원을 지켜라.
불한당이 다시는 너를 넘나들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완전히 망하였다.
3 약탈자들이 그들을 약탈하고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들을 망쳐 버렸지만
정녕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예처럼 야곱의 영예를 되돌려 주시리라.
3,1 불행하여라, 피의 성읍! 온통 거짓뿐이고 노획물로 가득한데 노략질을 그치지 않는다.
2 채찍 소리, 요란하게 굴러가는 바퀴 소리, 달려오는 말, 튀어 오르는 병거,
3 돌격하는 기병, 번뜩이는 칼, 번쩍이는 창, 수없이 살해된 자들, 시체 더미,
끝이 없는 주검. 사람들이 주검에 걸려 비틀거린다.
6 나는 너에게 오물을 던지고 너를 욕보이며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라.
7 너를 보는 자마다 너에게서 달아나며 “니네베가 망하였다! 누가 그를 가엾이 여기겠느냐?” 하고 말하리니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해 줄 자들을 찾으랴?
축일8월 9일 성녀 데레사 베네딕타(십자가의) (Teresa Benedicta of the Cross)
신분 : 수녀, 철학자, 순교자
활동 연도 : 1891-1942년
같은 이름 : 베네딕다, 베네딕따, 분다, 에디트 슈타인, 테레사, 테레시아
1891년 10월 12일 독일 동북부 지역의 브레슬라우(Breslau)의 전통 유대인 가정에서 11번째 아이로 태어난 성녀 에디트 슈타인(Edith Stein)은 두 살 때 목재상을 하던 아버지 지그프리트(Siegfried Stein)를 일사병으로 여의고, 열심한 유대인이었던 어머니 아우구스트(Auguste Stein Courant)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거행되는 유대교 전통 예식을 보며 자랐고, 유달리 고집스럽고 사색과 독서를 좋아하는 학구적인 성격의 아이였다. 11세 때 숙부의 갑작스런 죽음을 경험하면서 삶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 그리고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다. 또 가족과 친지들의 형식적인 유대교 의식과 기도에 실망하여 더 이상 참석하지 않기로 결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11년까지는 브레슬라우에서, 그리고 1913년부터는 괴팅겐(Gottingen) 대학으로 옮겨 심리학, 철학, 역사학, 독일어학 등을 공부하였다.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잠시 간호사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녀는 1916년 프라이부르크(Freiburg)에서 후설(Edmund Husserl)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고 그의 개인조교가 되었다. 그 후 독자적인 연구 활동을 하며 교수 취임 논문을 제출하고 후설이 직접 추천서까지 작성해 주었으나, 당시 독일 학계에서 여성이 교수로 재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브레슬라우로 돌아와 계속 철학 연구 논문들을 집필하던 중 1921년 여름 같은 괴팅겐 학파 친구인 콘라트 마르티우스와 그녀의 남편이 경영하던 농장에 머무르게 되었다. 친구 부부가 외출한 어느 날 서재에서 우연히 손에 잡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생애”를 읽고, 그녀는 자신이 오랫동안 실존적으로 회의하고 있었던 신이 그녀를 사랑해 왔으며, 그녀가 전 인격으로 그 사랑에 응답하기를 기다려 왔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하느님 체험 후 그녀는 평화를 얻었고, 이듬해 1월 1일 테레사 베네딕타(Teresia Benedicta)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음과 동시에 성녀 테레사 베네딕타는 카르멜 수도원에 입회할 의지를 확고히 하였으나, 어머니의 반대와 지도신부의 만류로 이를 연기하였다. 그 대신 지도신부의 제안으로 1931년까지 슈파이어(Speyer)에 있는 성 막달레나 수도원 교사 양성 학교와 도미니코 수녀회의 여학교에서 독일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그리고 점차 후설의 관념론적인 철학 노선을 떠나 그리스도교 철학의 실재론적인 사상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계속 왕성한 교육 및 학문 활동을 하던 그녀는 발처 아빠스로부터 카르멜 수도원 입회를 허락받고 어머니와 힘겨운 이별을 나눈 뒤 1933년 10월 14일 쾰른의 카르멜 수도원에 입회하면서 수도명을 십자가의 테레사 베네딕타(Teresia Benedicta a Cruce)로 정하였다. 입회한 후에도 수도원 원장의 적극적인 학문 지원에 힘입어 지속적인 연구와 저술활동을 할 수 있었다.
1936년 9월 14일 첫서원을 하였으나, 바로 그 해 어머니가 사망하였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어머니가 지녀왔던 유대교 신앙을 존중해 주었다. 1938년 4월 21일 종신서원을 하였다. 그러나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위협은 날로 심해져 갔고, 성녀 테레사 베네딕타는 이를 피하기 위해 수도원의 주선으로 비밀리에 그녀의 언니 로사(Rosa)와 함께 네덜란드의 에히트(Echt) 카르멜 수도원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그녀는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는 저서 “십자가의 학문”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때 네덜란드의 주교들이 독일의 반유대주의를 비난하였고, 이에 화가 난 히틀러는 모든 비아리안계 가톨릭 신자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1942년 8월 2일 언니 로사와 함께 게슈타포에게 체포된 그녀는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함께 아메르스포르트(Amersfoort) 수용소를 거쳐 베스터보르크(Westerbork)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 해 8월 7일 이들 중 987명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해되었는데, 두 자매는 이틀 후인 8월 9일 가스실에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가 사망한 지 20년 만인 1962년 1월 4일 쾰른의 대주교 프링스(Josef Frings) 추기경은 그녀의 시복을 위한 소송을 제기하였고, 1980년에는 독일 주교회의를 거쳐 로마에서 시복절차를 위한 공식적인 청원이 이루어졌다. 그 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가 독일을 방문한 1987년 5월 1일 쾰른 대성당에서 순교자로 시복되었고, 1998년 10월 1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시성식에서 그녀를 “이스라엘의 탁월한 딸이자 전세계를 위한 성인으로서 교회의 충실한 딸”이라고 칭송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듬해 10월 1일 자의교서를 통해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와 스웨덴의 성녀 비르지타(Birgitta)와 함께 그녀를 유럽 대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데레사 베네딕타(십자가의)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