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발간한 나의 다섯 번 째 수필집 ’뭐하는 짓이고?‘를 읽어보니 이전의 수필집보다는 무언가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이 수필집을 발간할 때는 내 생활에서도 변화가 왔을 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 수필이 어떤 변화가 왔었는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쓰고 싶을 때면 수필을 썼다고 생각한다. 요즘에 와서야 수십 년 동안의 글쓰기에서 어떤 변화도 모색하지 않았다면, 실망스러우리라는 두려움도 갖고 내 글을 읽었다. 약간이나마 변화가 느껴지는 것이 반가웠다.
이때 나는 35년 동안이나 지속해 온 의원의 문을 닫고 개원의 생활을 마감하였다. 보건소의 진료 의사가 되었다. 보건소에서 만나는 환자는 개원의 때의 환자와는 확연히 달랐다. 나는 30년 이상을 개원의 생활을 하면서 소아 환아만 고집했다. 그러나 보건소에서 만나는 환자는 어린애는 없고, 성인들, 특히 할머니가 대부분이었다. 보건소를 찾는 환자들은 대부분이 사회에서 소외당한 가난한 사람이었다. 나는 환자 진료를 하면서 환자이면서도 내 수필의 소재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싶다. 소재로 바라 보니, 대상(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보건소 의사로 근무하였을 때가 우리 사회에 대한 진실된 경험을 하였다는 생각이다.
나의 취미 생활인 미술 공부는 점점 깊이를 더하였다. 이제는 전공하시는 교수님을 따라 먼 외국까지 답사를 갔다. 이것도 나의 수필세계에서 한 구석을 차지했다. 이때는 수필집만이 아니고 중국 고대 미술사와 조선 후기 미술사 등, 미술서적도 발간 하였다.
더더욱 내 수필에 영향을 준 것은, 이때 나는 임진수 교수에게 심층 심리학을 배우러 다녔다. 수필 쓰기의 대상물인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 나도 모르게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심리가 꿈틀거렸나 보다. 이때의 내 수필에 그런 낌새가 나타났다. 그래선지 이때 이후로 나는 수필론에서 숨어 있는 인간의 내면을 보자. 그것이 수필론에서 말하는 ’진실‘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을 하였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삶에서, ’사는 일이 무엇인가?‘를 더듬어보기 시작하면서 수필집의 제목을 ’뭐하는 짓이고?‘라고 하였었나 보다. 이번 수필집은 이전의 수필집과 다른 면모를 지녔으리라.
그렇다고 하여 내 감성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유년, 고향, 그리고 어머니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살아서 내 서정성을 받쳐 주었다. 그리고, 내 글에서 어머니는 수없이 소재가 되었지만 왜 아버지를 소재한 글은 한 편도 없을까를 생각하도록 했다.’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서‘라는 내 글을 임진수 교수가 읽고,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분석 해주었다. 나는 숨어 있는 내 마음의 한켠을 찾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면서 수필에 자기의 심층 심리를 모색해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도록 해주었다.
이러한 것들이 어우러져서 나의 수필세계를 형성하면서 이전의 글과는 조금 다른 면모를 보였다고 본다. 그러니 이번 수필집은 이전 수필집과 다르리라. 그러면 수필집의 제목으로 사용한 수필 ’뭐하는 짓이고‘를 여기에 가져와 보자.
뭐하는 짓이고
이동민
밤 늦게 서안에 도착한 탓에 아직 잠 속에 묻혀 있는데 모닝 콜이 왔다. ’서안은 다들 다녀갔던 곳이라서 그냥 지나칩니다. 아침 일찍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니 모두 그렇게 아시고 서둘러 준비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여행 첫날이면 잠을 설친다. 하루 이틀쯤 지나야 잠자리가 익숙해지므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버스로 장거리 여행을 나서기로 한 것은 처음부터 무리한 계획이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일반 광관이 아닌 실크 로드의 학술 답사라고 하였으니까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고고학이니, 고대사니 하는 학문을 대학에서 가르치시는 분들의 여행에 끼워 준 것만으로 감지덕지 할 처지인 나로서는 이렇쿵저렇쿵 말할 처지도 되지 못하엿다.
몇 년 전에 서안에서 비행기를 타고 돈황을 간 적이 있었다. 눈 아래로 누런 땅들이 가이없이 펼쳐져 있었고, 군데군데에 푸른 숲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 고장의 오능 숲을 생각나게 해주었다. 오아시스라고 하였다. 참으로 듣기 좋은 이름이었다. 비행기 창 너머로 저 멀리 하얀 설산이 햇빛 속에서 찬연히 빛났다. 겨우 두 시간 거리였다. 하늘에서 바라보기로는 꿈길처럼 아름다우니까 비단길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그 비단길은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동, 서양의 찬란했던 문화를 넘나들며 남긴 흔적을 더듬어 보게 될 것이다. 길마저 비단길이라고 이름지었는데 그곳에 뿌려져 있는 문화유산들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러나 아름답지 않았다.
회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좁은 협곡을 비집듯이 뚫고 달려가는 버스길의 양 옆은 깎아지른 산들이 이어졌다. 방금 비라도 내렸는지 누런 황토물이 흐르고, 가파른 산턱에는 눈길을 들기도 힘들 만큼 까아마득히 솟은 산 위까지 계단밭이 만들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저곳까지 어떻게 오르내릴까. 농사짓는 일보다 그것이 더 궁금하였다.
왜 이리 힘든 곳에서 농사를 지을까. 어리석은 질문에 명쾌한 대답이 왔다. ’먹고 살려고 그러지‘ 하서회랑이라고 부르는 좁은 협곡을 버스에 흔들리면서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달려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ㅇ니었다. 감숙성의 성도인 난주에는 온통 누런 물빛의 황하가 제법 너른 강폭을 만들고 있었다. 도시는 강을 끼고 길게 누워있다. 강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누런 황토가 햇빛 아래에서 햇빛보다 더 뜨겁게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길의 주위에서 여러 번이나 사람이 직접 쟁기를 끌면서 메마른 땅을 땅을 갈아엎는 것을 보았다. ’저것 봐, 요즘 같은 세상에도 저러고 있어.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일행은 피로에 지친 듯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대답이야 역시 뻔할 것이다. ’먹고 살려고------.‘
난주를 지나니까 이제는 거의가 사막이다. 그러나 보기에는 무척 시원해 보이는 오아시스가 길게 이어졌다. ’이래서 사람들은 이 땅을 버리지 못하는구나.‘
내가 마치 도원경이나 되듯이 그리워하였던 주변은 황량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러나 황토산 언저리에 뚫린 큰 굴속에는 거대한 부처님이 당당한 모습을 하고 게신다. 계곡의 저 쪽에는 푸른 나무들이 시원한 모습으로 군락을 이룬다.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길가에는 거적대기로 움막을 지워놓고 복숭아며 멜론을 팔고 있는 농부들의 초라한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부처님의 모습이었다.
살아가기도 힘든 백성들이 이렇게 부처님울 살이 찌도록 공양을 하였구나.(당나라 때의 부처님은 석굴암 부처님처럼 풍만한 육체가 특징입니다.) 무엇을 바라서였을까. 부처님이 내 말을 들었다면 이 또한 대답은 뻔할 것이다.’다아 저들이 먹고 살려고 그랬었지.‘
열흘이나 걸려서 돈황에 닿았다. 불타는 듯한 햇살 속을 유적지라면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느라 두 시간이었던 하늘 길을 열흘이나 달려서 닿았던 것이다. 아직도 우리의 일정이 끝나려면 일주일이나 더 돌아다녀야 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다 본 비단길과, 버스를 타고 바로 곁에서 바라 본 황토길은 너무 달랐다.
맥적산 석굴과 병령사 석굴 등 지나온 길은 솔직히 말해서 내가 무척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엄숙한 모습으로 앉아 계시는 부처님의 지난 역사를 더듬어 가다보면 항상 이들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막상 그들 앞에 서 보았을 때는 꿈꾸었을 때와는 달리 가슴이 울리는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이드도 처음 오는 길이라고 하였으니까 교통편은 불편하였고, 음식도 낯설었다. 고고학 교수님이 씨익 웃으면서 ‘밥벌이에 도움이 된다고 사서 이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였다.
그런데 나는 ‘우리 문화의 뿌리가 어떻고------.’하면서 제법 고상한 척하는 정신적 사치 때문이, 사실이 아닌가. 풀포기마저 생명을 포기한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엎드려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새삼 묻고 싶어진다.
“뭐하는 짓이고?”
먹고 살려고 하는 짓보다 더 값어치 있는 삶이 있기나 할까?
-이동민 수필집, 뭐하는 짓이고.2006.북랜드, ‘뭐하는 짓이고.’ p150-154.-
이전의 수필집과 다르다고 느낀 이유는, 위의 수필처럼 단순히 사실을 그리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을 펼쳐보았다는 것이다. 이 수필이 말하듯이 인간의 생활을 지탱해주는 것은 ‘먹고 살기’라는 전제를 달았기 때문이다.
보건소에 근무하면서,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을 진료하였다. 그들과의 대화에서도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하는 문제와 많이 부딪혔다. 이런 문제들을 감성적으로 표현을 하였거나.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를 짚기도 하였지만, 사회비판적은 글은 어니었다 싶다.
‘뭐하는 짓이고’의 첫 째 장(章)에 실린 글은 감성에 젖은 고향 이야기에서, 내 삶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 아마도 시대에서 유행하였던 일들을 쓴 수필이라서, 특이한 글은 아니다 싶다. 둘 째 장(章)은 내 직업 때문인지 환자와 관련된 글이었다. 병 자체보다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 이야기라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중에서 글 한 조각을 보기로 하자.
자기도 살기가 어렵다는 막내딸이 호호 할머니가 된 어머니를 모시고 진료실을 찾아왔다.
“진료가 끝나도 막내 딸은 돌아 갈 생각도 않고 긴 하소연을 늘어놓곤 했다.‘선생님, 저도 공장에 일하러 다니거든요.’‘남의 집에 셋방살이를 하는데 엄마는 저희 집에만 있으려고 해요. ’언니는 자기 집도 있고 있고------.‘
”오빠는 시골 집에서 잘 살고 있는데.“
하소연을 듣다 보면 끝이 없다. 나는 그냥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라고 할 뿐이고, 할머니는 아무 표정도 없이 저쪽 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오빠 집에 모셔다 드리려고 하면 할망구가 아침부터 밥도 먹지 않고, 그런 날은 한사코 집 밖으로 나가려고도 하지 않고 ------.‘ 막내 딸도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데도 할머니는 여전히 미동도 않는다.
나는 왠지 막내 딸의 하소연보다는 할머니의 말없음에 가슴이 아팠다. 나는 더 이상 ’그렇습니까.‘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할머니의 말없음 속에는 세월에 용해되어 묻혀 있는 숱한 소리가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생략)---
막내 딸은 ’엄마, 제발 좀 아프지말아.‘라며 짜증스레 말했지만 내 귀로는 엄마에 대한 사랑가 연민을 들을 수 있었다.
-수필 ’소리없음‘의 부분--
이 뿐만이 아니고, 사회의 따가운 눈총으로 숨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쓴 수필도 있었다. 이 세상을 후딱---, 하는 반항적인 글이기보다는 함께 가슴 아파하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나의 태도가 나의 수필세계를 만들었다.
이 수필집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많은 미술가들의 삶을 조명한 글을 하나의 장(章)에 모아 둔 것이다. 이때는 취미활동으로 미술에 푹 빠져 있었다. 손재주가 없으니 그림 그리기가 아니고, 미술사를 즐겨 공부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유난히도 역사를 좋아하였던 것이 미술사를 공부하려 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수필로 표현한 미술가는 대구의 미술가 김용조를 시작으로, 권진규, 전기, 장승업, 대구의 화가 죽농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사군자 화가 김진우, 안견, 김홍도, 조희룡, 이광사 등이다.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미술가의 아픈 사연을 소개했다.
이때 푹 빠졌던 미술 공부로, 나는 은퇴하고 영남대학교 대학원의 미학미술사학과에 들어가서 공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