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와 인간(존 스타인백)
작가 ; 존 스타인백(1902-1968)
초판 ; 1937
이 소설은 동지애와 남자들끼리의 이상적인 유대를 거부하는 가혹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지와 레니의 독특한 관계는 이상에 가깝지만 진정한 우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약자를 이용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세상은 이들을 오해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정한 비극은 현실로서의 위대한 아메리칸 드림이 단지 꿈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아메리칸 드림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쥐와 인간)
하지만 생쥐야, 앞날을 예측해봐야 소용없는 건 너만이 아니란다. 생쥐와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잘 짜도 일이 제멋대로 어그러져, 고대했던 기쁨은 고사하고 슬픔과 고통만 맛보는 일이 허다하잖니!
– 로버트 번스의 생쥐에게(To a Mouse) 중에서
아이처럼 순수하지만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거구의 ‘레니’, 몸집은 작지만 약삭빠른 ‘조지’ 두 떠돌이 일꾼은 늘 붙어 다니는 친구다. 담요를 짊어지고 일거리를 찾아 농장을 전전하는 두 사람은 돈을 모아 남의 땅에서 일하는 신세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땅을 일구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게으른 레니는 조지에게 골칫덩이였다. 레니가 사회적 낙오자이기는 하지만 순진하고 정직한 레니를 버릴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깊은 우정으로 맺어져 있었다. 저녁 노을이 질 무렵에 강 가에 불을 피워놓고 콩조림 콩을 먹으면서 두 사람은 장차 돈을 모아 자신들의 집도 짓고, 농장도 만들어 야채도 가꾸고, 과수 농사도 짓고, 가축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 꿈을 키웠다.
레니는 부드러운 털 달린 짐승을 쓰다듬는 일에 맹목적으로 집착한다. 그로 인해 생쥐, 토끼를 죽이는 건 물론이고 이전 농장에서도 물의를 일으켜 쫓겨났지만 이런 자신에게 화도 내지만 돌봐주는 조지에게 일방적으로 순종한다. 조지 역시 어디서나 사고를 치는 레니지만 그 없이 혼자서 살아가기는 더 외로울거란걸 알고 있다. “토끼를 기르게 해줘.” 소설이 끝날 때까지 반복되는 레니의 말은 그의 소박한 꿈을 보여준다. 그럴 때마다 조지는 항상 레니를 달래기 위해 자신들만의 농장을 상상 속으로 그려 레니에게 설명해준다.
새로운 농장에 들어가게 된 조지는 어수룩하고 덜 떨어진 레니가 일을 하지 못하게 될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썽을 피우지 않을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농장 주인의 아들 ‘컬리’는 레니의 모든 대답을 대신하는 조지가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며 의심한다.
이 둘의 불안한 생활은 결국 컬리의 아내에 의해 끝난다. 컬리의 아내는 일꾼들 사이에서 소위 말하는 창녀로 통한다. 여러 일꾼들에게 추파를 던지던 그녀는 덩치 큰 레니에게 매력을 느끼며 그에게 접근한다. 모든 일꾼들은 그녀와 잘못 엮이게 되면 해고는 물론이고 감옥에 갈 것이라며 그녀를 경계하지만 어수룩한 바보 레니는 그녀에게 그러한 경계심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레니가 부드러운 것을 쓰다듬는 일에 몰두한다는 걸 안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볼 것을 제안하고 레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머리카락이 레니의 손가락에 엉켜 그녀는 이제 그만 놓으라고 소리쳤지만 당황한 레니는 조지가 이 일을 알면 화낼 것이라며 소리치지 말라고 그녀의 입을 막는다. 결국 레니는 그녀의 목을 부러뜨렸고 그녀는 죽는다.
결국 오랜 우정과 아름다운 꿈을 나누었던 두 친구는 결국 살아남기 위해 약자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죽은 아내를 발견한 컬리는 레니를 총을 쏘아 죽이겠다며 다른 일꾼들을 불러 모아 숲을 뒤진다.
조지는 레니가 도망칠 곳을 알고 있었다. 이전에 만일 어려운 일이 있으면 숨어 있으라고 일러 둔 곳이 있었다. 조지는 그들보다 먼저 레니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레니를 총으로 쏘아 죽여야 했던 조지의 판단은 가슴 아프지만 반드시 조지만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곧 죽을 레니를 위해 꿈을 이야기 하는 장면은 너무 안타까웠다.
“우리는 조그마한 땅을 갖게 되는 거야.” (조지)
“계속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레니)
“우린 암소를 기를 거야. 그리고 아마 돼지와 닭도 기를 거구……그리고 조그마한 밭에다 콩을 심는 거야.” (조지)
“토끼를 위한 거지” (레니)
“그리고 토끼는 네가 기를 거야.” (조지)
“그리고 우리는 아주 잘 살게 될 거야.” (레니)
조지는 권총을 들어올려 두 손으로 꽉 쥐었다. 그는 총구를 레니의 뒤통수 가까이로 가져갔다. 손이 심하게 떨렸다.
그렇게 레니는 새로운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날, 꿈을 위한 새 출발에 설레는 마음을 품었던 숲 강가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조지가 레니를 죽인것은 레니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을까. 이 책의 마지막 대사는 조지가 총을 쏘았을 때의 복잡한 심경을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죽은 레니와 허탈하게 앉아있는 조지를 뒤늦게 발견한 컬리와 ‘칼슨’(일꾼 중 한 사람)은 다시 농장으로 돌아가는 조지의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조지는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것 같은가?”
레니를 쏘았던 이유가 정말 레니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는지, 아니면 사실 꿈같은 건 있지도 않고 단지 컬리의 의심을 피해 농장에서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이만큼이나 돌봐주었지만 결국 사고를 치고 만 레니에 대한 순수한 분노였는지는 조지만이 알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은 개개인의 꿈이 한 시대의 사회분위기에 얼마나 무기력할 수 있는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농장에서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아픔을 품고 있다. 흑인이기 때문에 일과가 끝나고 일꾼들과 어울릴 수도 없으며 방을 같이 쓸 수 없는 ‘크룩스’, 이제는 너무 늙어버려 더 이상 자신의 앞날을 바꿀 수 없는 ‘캔디’영감. 이 둘이 레니와 조지의 꿈에 동참하겠다며 흥분하는 장면, 하지만 이내 농장주인에게 복종하는 장면은 어찌할 수 없는 힘에 굴복하는 인간의 무기력함을 그대로 담아내었다. 지금 시대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기에 공감은 많이 할 수 없었지만 다음에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주인공 ‘조지’의 감정을 다시 한 번 잘 헤아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