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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시내에서 스포츠 용품점 앞에 차를 세운 최정혜는 그곳에서 등산복 및 등산화와 일체 장비를 구입했다. 그리고 그녀는 상가 화장실에서 등산복으로 갈아입은 뒤 곧바로 가야산 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가야산 정문을 통과한 최정혜는 마지막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 등산복 차림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폐쇄된 채석장을 지나 한참 산길을 오르던 최정혜는 비밀기지가 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푸석하는 나뭇잎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곧장 가방에서 권총을 꺼내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최정혜를 미행하던 수인은 들킨 것을 알고 숨죽이며 그녀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최정혜는 총을 겨누며 천천히 큰 고목나무를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때 돌맹이 하나가 쏜살같이 팽 돌며 날아왔다. 돌맹이는 정확히 그녀의 미간을 맞췄다.
최정혜는 불현듯 날아온 돌맹이에 맞으며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그러나 수인은 이미 나무 반대편으로 몸을 피했고, 총알은 파편을 튀기며 고목나무의 껍질을 뚫었다. 순간 수인은 최정혜 쪽으로 신속하게 달려가며 그녀의 명치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최정혜는 정신을 차리며 수인의 주먹을 막자 수인은 다른 손으로 최정혜의 총든 손목의 힘줄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최정혜는 오른 손에서 힘이 풀리며 총을 떨어뜨렸다. 수인은 손날을 펴서 최정혜의 목을 쳤다. 최정혜는 재빨리 두 손을 엇갈려 수인의 손날을 막고 붙잡아 몸을 돌리며 거세게 비틀었다. 그러자 수인은 팔이꺽이는 방향으로 원심력을 이용해 점프를 했다. 그녀는 공중에서 한바퀴를 돌며 꺽인 손을 풀어낸 뒤 두번째 회전에서 다리를 쭉 뻗어 발등으로 최정혜의 뒷덜미를 내리 찍었다. 최정혜는 목 척추의 명치를 맞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듯 쓰러졌다.
유수인은 곧장 강태신과 영상통화를 하며 비밀기지의 담장을 보여주었다.
"동영상으로 유포된 바이러스가 있는 미군 비밀기지가 틀림없군요. 가지고 계신 스마트 폰으로 위도와 경도만 확인해주시고 내려오세요."
"예."
유수인은 담장 아래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그곳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 그때였다. 담장 위로 비행접시 수십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유수인은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이 아닌 가했지만 먼 하늘에 유에프오 비행접시가 분명 날아가고 있었다.
시내로 내려온 수인은 길가에 군인들이 탱크와 전차를 끌고 나와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 가야산에서 본 유에프오의 열배되는 크기의 비행접시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웅성댔고, 매우 혼란스러워 했다. 군인들은 사람들이 혼란스럽지 않게 확성기로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나사우주국에서 유에프오가 지구를 침입했다는 전격적인 발표가 있습니다. 이미 보시는 바와 같이 하늘에 유에프오가 떠있습니다. 저들이 언제 내려올 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여러분들의 안전을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그러니 저희의 통제에 잘 따라주시고, 일체 난동을 금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부로 전 세계적으로 계엄령이 선포되어 전시 체제로 돌입했습니다. 집에서 나오지 마시고 조용히 계셔 주시기 바랍니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발표하는 서산 인근 부대의 사단장의 목소리는 매우 가식적으로 들렸다. 수인은 시내가 통제되자 어디로도 몸을 옮기지 못해서 일단 커피숍 안으로 들아가서 추이를 살폈다.
서울 하늘에 유에프오가 떠있었고, 한국군이 점령하고 있는 종로 광장의 전광판의 TV에서는 전세계에 유에프오가 하늘을 덮고 있는 모습을 방영하고 있었다. 간혹 유에프오 비행접시들은 하늘에서 순간이동을 하며 장소를 이동하곤했다.
강태신은 임시로 빌린 일반상가의 텅빈 작은 사무실 창밖으로 하늘에 떠있는 유에프오를 한참 바라보다가 곧바로 쓰다버린 책상 위에 놓인 무전 송수신기에 모스부호를 이용해 전보를 치기 시작했다. 그는 특전사 수색대 첩보보고 형식으로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옆에 설치된 노트북으로 국방부 GP작전실 내부로 해킹을 시도했다. 특전사 시절 자주 이용하던 곳이라 왠만한 암호해독은 그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 그리고 곧 공군 제트기 통제실에 명령을 내렸다.
'미확인 물체 거주 본부 포착, 충남 서산 해미면 가야산 위도 36.376456 ,경도 127.064364 위치로 미사일 6발 사격 실시할 것.'
한국 공군에서는 곧바로 전보를 수신하며 세대의 제트기에 미사일을 장착 한 뒤 출격했다. 유에프오가 떠있는 하늘 위로 제트기는 쏜살같이 날아갔다. 조종사는 구름 아래의 유에프오가 자신들이 지나가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신기해 했다.
"저놈들이 우리를 못봤을리 없을 텐데..."
해미 가야산 정상에 도착한 세대의 제트기는 가야산 자락에 위치한 미군 비밀기지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엔진에서 화염을 일으키는 여섯 발의 미사일들이 창공을 가르며 가야산 위의 비밀 기지를 향해 돌진했다.
콰콰콰콰쾅
웅장한 폭발음이 사방에 진동을 일으키며 굉음을 일으켰다. 기지는 여섯 개의 미사일에 폭격을 받으며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가야산의 미군비밀기지가 폭격을 당한 그 순간 전국의 하늘을 뒤덮고 있던 유에프오들이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사람들은 웅성대며 모두 길 밖으로 뛰쳐 나왔다. 군인들 역시 유에프오가 사라지자 멍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각 부대 장들은 그 사실을 위에 보고하기 시작했다.
20대의 비행선 중 한대의 비행선에 제임스 블레이드는 전국의 하늘을 뒤덮고 있던 모든 유에프오 홀로그램이 사라지자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홀로그램들은 전국에 분포된 비행접시 20대에서 방출되고 있었으며 비밀기지의 애셜론 컴퓨터에서 중앙 제어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 비밀기지가 미사일 폭격을 받으며 애셜론이 파괴되자 중앙제어시스템의 붕괴와 함께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그리고 제임스는 휴대전화로 가야산의 비밀기지가 폭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전국 시내의 군 차량 및 탱크, 전차들은 유에프오가 사라지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다시 부대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서산 시내에 군병력들이 다시 철수를 하자 유수인은 커피숍에서 나와서 그녀의 차에 탄 뒤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제임스는 곧장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넣었다.
"계엄령 선포를 철회하시면 안됩니다. 계엄령 이후 새 법안을 통과시키셔야 합니다."
"어? 이미 해산 명령을 내렸는데요?"
"아직 다른 국가에는 유에프오가 있잖습니까? 그대로 해산명령 철회하세요."
"네, 그렇게 하죠."
제임스는 마음이 급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순조롭게 잘 처리되고 있는데, 한국만 문제를 일으켜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합참의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누구의 명령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는지 조사하도록 했다. 그때 그의 요원 전용 휴대폰 전화로 호스로부터 한통의 메세지가 날아왔다.
'국장님, 변형바이러스를 찾았습니다. 변형바이러스는 제2숙주로부터 실험이 성공되어 오송 질병관리국 본부에 보관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곧바로 출발해서 변형바이러스와 백신을 가져오겠습니다.'
김영찬은 그의 사무실에서 숨을 죽이며 그날의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전인류를 멸망에 몰고갈 바이러스를 정부에서 살포하려한다는 오보와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유에프오가 나타나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려고 한다는 소식, 그리고 전 군의 계엄령으로 전 도시에 어마어마한 군병력이 배치되는 것을 보며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는 지갑에서 강태신의 명함을 꺼냈다. 그는 명함을 꼼꼼히 훑어보면서 전화를 걸까 말까 계속 망설였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강태신의 번호를 반복적으로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복잡하고 불안한 심정을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그때 책상에 놓여져 있는 휴대폰 액정 위로 낯선 번호 하나가 찍히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 낯선 번호를 무심히 쳐다볼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발신자의 번호를 어디선가 읽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순간 그는 정신이 번쩍 들며 혹시 강태신의 전화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는 곧 그가 손에 쥐고 있던 강태신의 명함을 확인했다. 발신자는 틀림없이 강태신으로부터 오는 전화였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강태신 요원이라고 합니다. 요 며칠 전 만났던 국정원 요원입니다. 저를 기억하시나요?"
"그럼요, 기억 하다마다 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제가 꼭 찾아 뵙고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이렇게 전화를 드리게 됐습니다."
"그러셨군요. 사실 저도 전화를 드릴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저에게 전화를 거시려고 했다고요? 무슨 일 때문인지 먼저 들어도 되겠습니까?""
"지난번 변형바이러스 실험 후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영 석연치 않았습니다. 실험이 있던 날 변형바이러스와 백신은 서울병원에 운송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날 운송된 장소가 서울병원이 아니라 충북 오송병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제 친한 동료가 박경원 연구원입니다. 그가 오송본부의 모든 바이러스를 책임지고 있거든요."
운송된 장소가 바뀌었었다는 영찬의 말에 강태신은 그날 운송을 담당했던 이정환이 변형바이러스를 둘러싼 정부의 음모에 희생을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오송본부로 변경됐다고 운송을 담당했던 요원이 사라지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뭔가 운송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바이러스와 백신을 운송했던 저희 담당 요원자 저와는 절친 했던 동료가 실종했거든요."
"실종이라고요?"
김영찬이 놀라자 강태신은 시간이 없는 듯 하여 단도직입적으로 그의 의사를 밝혔다.
"김영찬 연구원님, 그 뿐만 아닙니다. 오늘 벌어진 유에프오와 전세계의 유에프오는 정부에서 꾸미는 조작극입니다. 비행접시 비슷한 비행선에 홀로그램을 비추어 커다란 우주선이 보이게 끔 한 것입니다. 하지만 몇분전 홀로그램을 만드는 중앙컴퓨터 있는 비밀기지가 폭발하며 한국에만 유에프오가 사라진 것입니다."
"아니, 왜 그런 짓을..."
"계엄령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모두를 속이고 군으로 국민을 통제한 후 새로운 법안을 통과 시켜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비밀정부의 계략입니다. 게다가 또한가지는 인구의 50억을 멸종시키려는 무서운 계획을 단행하려하고 있습니다."
"50억을 멸종시킨다고요?"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50억을 멸종시키려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바이러스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오송병원으로 가서 그 바이러스를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오송병원으로 갑시다."
"그 바이러스가 정말 거기에 있다면 분명 놈들이 탈취한 바이러스는 가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에프오 등장과 동시에 병이 퍼졌을 테니까요. 지금 군의 통제가 잠시 풀려 있습니다. 지금이 그곳으로 갈수 있는 기회일 것입니다."
"오송병원으로 갑시다. 가서 확인해봅시다."
오송병원 질병관리국 연구동 내 두 겹의 벽으로 둘러쌓인 바이러스 보존실 문앞에 한 남자가 식은땀을 뻘뻘흘리며 힘겹게 서있다. 장갑을 낀 그의 손에는 묵직해 보이는 사각형 서류가방이 들려 있었고, 그는 완전히 닫히지 않은 보존실 외부출입문을 천천히 닫았다. 그리고 그는 힘겨운듯 발걸음을 바깥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바로 김영찬의 동기 연구원인 박경원 연구원이었다. 그는 오송병원 앞에 있는 실외 주차장을 걸으며 자신의 차를 찾은 뒤 운전석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보조석에 가방을 조심스럽게 놓고 안전벨트를 당겨서 가방이 쓰러지지 않게 밀착시켜 단단히 맸다.
건물 3층의 창가에서 한 남자가 주차장에 있는 박경원의 차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바로 김병연 실장이었고, 박경원의 승용차가 빠져나갈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계속해서 응시했다.
차가 완전히 주차장 밖으로 나갔을 때 김병연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 역시 여러 방울의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잠시 후 차량 한대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왔다. 창가에서 눈을 떼려던 김실장의 시선은 다시 주차장으로 집중됐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김영찬이었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주차장 주위를 서성거렸다.
김병연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계속해서 창밖으로 김영찬을 내려다보았다.
김병연은 통화를 하는 내내 창밖에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때 주차장 밖으로 또 한대의 차량이 도착했다. 김영찬이 주차장 안으로 진입하는 차의 옆으로 다가섰다. 차가 잠시 멈춘 후 차량의 운전석 창문이 열렸다. 삼층 창문 안쪽에서 김병연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 강태신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국정원 강태신 요원이잖아. 그가 왜 김영찬과 함께 온거지?'
김병연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김병연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계속해서 창밖으로 김영찬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불안한 마음에 휴대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질병관리국의 오석만 소장이었다.
"오, 그래, 박경원은 출발했는가?"
"네, 소장님, 그런데 혹시 김영찬을 이곳으로 보내셨습니까?"
"아니, 그런적 없네. 왜 무슨일인가, 김영찬이 그곳에 갔다는 말처럼 들리는 군."
"네, 지금 주차장 밑에 있습니다."
"김영찬이 어째서 그곳으로갔지?"
"제가 그것이 궁금에서 전화를 드린겁니다. 그가 무단으로 보고도 없이 이곳에 왔다니 믿겨지지가 않는군요."
"혹시 자네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그... 그게..."
"이보게, 말해보게, 무슨 말을 했는가?"
"사실, 소장님께 보고도 않하고 변형바이러스에 대하여 신경을 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그에게 신종플루를 연구하라고 했고요."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차라리 그냥 놔두었어도 괜찮았을 것을..."
"이상황에서 어떻게 해야지 최선이겠습니까?"
김병연의 질문에 소장은 생각에 잠긴 듯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정적이 흐른 후 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영찬의 성격 잘 알지 않는가? 그를 잘 설득해야지, 이 모든 일들이 그릇된 일이라면 의협심강한 그가 우리의 일을 방해하려 들겠지만, 사실을 안 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야.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게. 대신 그가 충동적인 행동을 감행하지 않게 잘 설득해야 하네."
"잘 알겠습니다."
잠시 후 노크소리가 들려오며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김병연은 곧 결연한 눈빛으로 강태신과 김영찬을 맞이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강태신과 김영찬이 아니었다. 김병연의 눈빛에는 의아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교차되고 있었다.
오송병원 본부의 김병연 사무실 문앞에 선 김영찬은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다시한번 노크를 했다. 성질급한 강태신이 기다리지 않고 문을 벌컥 열었다.
문을 열자 텅빈 사무실 안이 훤히 보였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커튼이 팔랑거렸고, 창문 옆 책상 아래 쪽 화분하나가 넘어져 있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강태신이 창밖을 내려다 보았다. 검정색 SUV 차량 한대가 금방 주차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차종은 신형 코란도였고, 번호까지 확인했다. 그는 김병연 실장이 남긴 것이 없는지 책상 및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책상 아래로 수첩하나가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수첩이 바로 펼쳐지는 페이지에는 정신없이 갈겨쓴 메모들이 있었고, 메모지에 군산역이라는 글씨가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바이러스를 군산으로 옮기는 것 같아요. 역전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보니 차량으로 이동하지 않고 기차를 통해 움직이는 듯 합니다."
강태신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밖으로 뛰쳐 나갔다. 김영찬도 부리나케 그의 뒤를 쫓았다. 빠른 속도로 주차장으로 내려온 강태신은 그의 차에 신속히 오른 후 시동을 걸고 곧바로 출발했다. 김영찬이 현관에서 뛰어나오자 강태신은 김영찬을 향해 손가락으로 전화를 거는 시늉을 하면서 곧바로 주차장을 벗어났다. 김영찬은 강태신의 전화거는 행위를 바로 전화를 하겠다는 뜻으로 간주하고 다시 연구실로 몸을 돌렸다.
강태신은 엑셀을 깊게 밟으며 감각적으로 조금전 도주하듯 나간 검정 승합차를 쫓기 시작했다. 넓은 도로를 질주하던 강태신은 백미터 전방에서 주차장에서 본 번호와 일치하는 검정 코란도를 발견했다.
김영찬은 다시 현관으로 들어가며 2층의 박경원의 사무실로 몸을 옮겼다. 박경원의 사무실은 이중 벽으로 둘러싸인 병균 보관실이 있는 복도의 맞은 편에 있었다. 그는 모든 바이러스를 책임지는 연구원이었으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바이러스를 가장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었다. 김영찬은 박경원의 사무실을 천천히 둘러보며 컴퓨터를 켰다. 바탕화면이 열리자 김영찬은 무심코 바탕화면에 눈에 띌정도로 표시가 선명한 동영상 아이콘 하나를 더블클릭했다.
강태신은 최대한 검은 코란도와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미행했다. 특수요원의 훈련을 받은 그는 대략 코란도가 가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정표와 코란도가 움직이는 방향을 확인하니 대전역으로 가는 것이 틀림없었다.
'청주역으로 안가고 대전역으로 가는 것은 청주역에서 출발한 누군가를 쫓는 것이다. 박경원 연구원과 김병연 실장이 사라졌으니 납치당한 김병연이 강제로 박경원을 쫓아가는 형상이다. 박경원이 뭔가 중요한 것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진짜 변형바이러스와 백신일 것이야.'
강태신은 더이상 검정 코란도를 쫓으면 의심받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곧바로 대전역을 향해 빠른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검정 코란도에서 차를 몰고 있는 김병연은 옆자리에서 길죽한 소음기가 달린 권총으로 그의 허리를 찌르고 있는 호스요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런다고 변형바이러스 진품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 지 모르겠지만, 그 병원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치명적이야. 절대로 쉽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야. 잘못하면 여기 있는 우리도 다 죽어."
호스요원은 한국말로 떠드는 김병연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쉣업. 앤 킵고잉(입닥치고 가기나해.) 아이해브빈 저스트 두잉마이 미션(난 내 임무만 수행할 뿐이야.)"
김병연은 식은 땀을 흘리며 엑셀을 밟았다.
"고 훼스트(빨리가.)"
김병연은 재촉하는 호스요원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운전하는 페이스를 유지했다. 답답한 호스가 성질을 부리며 말했다.
"스탑, 스탑, 아이 가라 테익 더 핸들.(내가 운전대 잡아야 겠어. 멈춰.)"
차를 세운 김병연을 옆좌석에 타자 호스요원이 뒷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 김병연의 양손을 차창 윗 손잡이에 함께 걸어 채웠다.
그리고 호스요원이 직접 운전을 하자 시속 80키로로 가던 코란도가 시내 한복판을 100키로로 달리며 곧바로 대전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했다.
김영찬은 박경원의 사무실에서 노트북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놀라운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동영상속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박경원이었고, 그는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숨겨진 진실을 고백하고 있었다.
"이 동영상을 보는 사람이 누가 되던간에 나는 상관없다. 물론 나와 절친한 김영찬이 보고 있다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나는 어제 떠들석 했던 신문기사를 보고 누가 그 사실을 알았을까 궁금했다. 물론 정부에서 마치 입막음이라도 하듯 그 기사들이 허위라고 번복했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것이 하늘의 계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그 기사내용 중 유투브에 돌아다녔던 비밀기지와 미군, 그리고 연구원들의 영상속의 모습들이 정말 조작됐는지 궁금하겠지?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것을 촬영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그 영상에는 조작된 흔적이 없었다. 세상사람들은 알 것이다. 세계에 어떤 음모가 펼쳐지는지를, 그리고 모든 신문기사 헤드라인을 장식한 죽음의 바이러스에 대해서... 지금부터 내가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고백하는 것은 나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에게 관련된 일임을 알려주고 싶다. 모든 일이 시작됐던 그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초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부터 하나하나 진술할 것이다."
박경원은 청주역에서 오후 3시경에 새마을호 열차에 탑승했다. 그가 손으로 만지작 거리는 열차표의 목적지는 군산으로 되어 있었다. 군산국립병원 연구빌딩에는 제아무리 강한 독성의 바이러스도 완벽하게 차단하는 첨단장치가 설비된 병균보관실이 있었다. 그는 우등석 자리에 앉아서 그가 든 네모난 가방에 잠금장치가 제대로 돼 있는지 확인했다. 여전히 그의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대전역 부근에서 열차가 멈춰섰다. 5분후 다시 열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열차는 안정된 속도로 산야와 들판을 가르며 달렸다.
김영찬은 박경원의 동영상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진실을 알게되는 가운데 그는 양 다리마저 후달릴 정도였다.
'내가 지금부터 진술하는 사실들은 내가 목격한 부분에 국정원 전한수 국장의 설명을 곁들인 것이다. 전한수 국장의 진술에 따르면 2011년 3월 11일 저녁 8시경 세계연방정부에서는 국정원, CIA, NSA(국가안보국), 인터폴에서 온 수장들과 정보요원들이 있는 모인 곳에서 거대한 실험을 거행했다고 하였다. 전한수 국장은 참여한 관련자들 모두가 비밀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도록 연방국에서 실시한 이번실험에 대하여 모두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각서를 써 보안을 철저히 해줄 것을 약속했다. 그 각서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다."
동영상에서 박경원은 목이 메였는지 기침을 하며 잠시 뜸을 들였다. 그는 잠시후 마음을 다시 가다듬은 듯 안정된 표정으로 진술을 시작했다.
"그날 실시된 것은 1943년에 미국에서 행해지다 실패했던 '필라델피아 실험'과 동일한 실험이었다. 전자기력, 중력을 통해 순간이동을 실행하는 실험이었으며, 미국 장병들을 이용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의 한국시민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장소는 성남일부 도로였고, 한대의 트럭과 두 대의 승용차 그리고 한대의 학교버스에게 실험이 이뤄졌다. 연방정부에서 순간이동장치를 가동할 때 무작위로 선정한 차량들이었다. 두번에 걸쳐 시행됐고, 한번은 거의 실패하다시피 했지만 곧이어 재시행을 실시했고, 트럭과 차 두대, 그리고 버스는 대형사고를 일으키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순간이동된 장소와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다가 순간이동이 되자마자 곧장 그곳으로 차를 몰고갔다. 그곳은 평택에 있는 모 산간의 야적장이었고, 예정됐던 이동 장소가 약간 어긋나긴 했지만 거의 정확했다고 하였다.
질병관리국이 참여하게 된 것은 대상자 중에 명단이 확인된 여자가 신형바이러스의 보균자이자 바이러스 발전 단계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것은 국정원 의료팀에서 평택에서 발견된 그 여자를 진찰하던 과정에서였다. 우리는 전용헬기를 타고 신속하게 평택 야적장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사고난 차량들이 큰 견인차에 실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연방정부 전용 앰뷸런스에 남자 시신 세 구, 여자 시신 한 구가 실려갔고, 다른 앰뷸런스에는 부상당한 중년남성 한 사람이 실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의료팀의 앰뷸런스에 변형바이러스의 보균자인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가 실려있었다. 나는 출발하지 않은 차 안에서 김병연 실장과 함께 바이러스 보균자인 그녀의 몸에서 피를 뽑아 다시한번 간단하게 테스트를 실시했다.
미국인 요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국정원 국장과 함께 결과를 기다렸고, 잠시 후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내주었다.
그들이 원하는 결과는 다름아닌 그녀가 변형바이러스의 제 2 숙주라는 사실이었다. 무서운 것은 그녀가 가진 변형바이러스는 단순한 신종바이러스 내성이 아니라 플루백신과 신종바이러스가 뒤섞이면서 잉태된 또다른 괴생명체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그녀로부터 바이러스를 추출하고 항체 백신을 연구하기를 원했다.
우리는 곧장 그녀를 의료차량에서 내려 들것에 실은 채 헬기로 옮겨 삼성병원으로 이송하기 시작했다.
그 날 밤 우리는 곧바로 실험을 실시했다.
그녀의 몸에서 항바이러스와 변형바이러스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의 독성은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양능력이 다분하여 그날 밤 항바이러스와 변형바이러스를 곧장 서울병원으로 옮겼다가 다시 오송병원으로 다시 운송했다.그리고 다음 날 삼성병원으로 옮겨진 그녀에게서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졌고, 치료도 없이 완치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연방정부에 알리지 않기로 입을 모았다. 그리고 CIA 국장에게 제 2 숙주인 임연주에게서 바이러스가 증발해서 연구를 할 수없게 됐다고 액면 그대로 보고했다.
다음 날 제 1 숙주인 이성희로부터 바이러스 추출 및 항체추출 수술 실험을 실시했다. 그리고 그날 운송과정에서 항체백신과 변형바이러스는 중간에 사라졌다.
우리는 연방정부에서 그것을 가져갔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들이 눈치채지 못한 중요한 사실은 이성희의 몸에서 추출한 바이러스는 변이되는 과정에서 파괴되가는 중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 2숙주로부터 얻은 바이러스는 그와 달리 매우 완성된 결정체를 보였다. 우리는 그것을 추출해서 관찰하는 동안 생명체의 또다른 진화를 보는 듯 했다.
그리고 일주일간 배양이 실시됐고,
제 2 숙주로부터 추출한 바이러스에서는
말할 수도,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전염력과 강력한 병원균이 증식되고 있었다.
도저히 질병을 연구하는 연구원으로서 납득이 안 가는 수준이었다.
어찌 그러한 병원균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우리는 두려웠다.
만일 그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그것은 대재앙중에 인류의 존폐마저 위협할 대재앙이 벌어질 것이다.
아니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인류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게 된 그 날 우연찬게 누가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한 것 처럼 신문과 메스컴의 헤드라인에 '죽음의 바이러스가 확산될 징조'라는 머릿기사가 올라온 것이었다.
세상은 그것으로 인하여 한바탕 난리가 나고 있었다.
그것이 과연 우연인가 혹은 필연인가?
나는 아직도 그녀의 몸에서 그 어마어마한 바이러스가 사라졌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아직도 그녀의 이름이 생생하다.
임연주.
그녀의 몸에서 바이러스가 사라진 것은 정말 기적이었다.
설마 내가 바이러스를 추출했다고 사라졌을리는 만무한데 말이다.
어쩌면 인류의 희망이 있다면, 나는 그녀에게서 그 답을 얻을 것이다.'
창밖에는 넓은 평원이 넓게 펼쳐져 열차의 속도가 안정감 있게 느껴졌다. 박경원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볼일볼 생각에 가방을 좌석 위 짐칸에 넣은 뒤 덮개를 닫으려했다. 가방 사이즈가 짐칸에 비해 조금더 커서 뚜껑이 쉽게 닫히지 않았다. 그는 힘을 주어 덮개를 밀었다. 딸깍하며 함께 덮개의 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곧 볼일을 보기위해 1번칸과 2번칸 사이에 있는 화장실을 향하여 통로를 질러갔다.
박경원이 열차의 앞부분에 위치한 1번 우등칸에 있는 반면 대전역에서 탑승한 김병연과 호스요원은 맨뒤의 21번째 칸에서 한참 앞쪽으로 질러가며 박경원을 찾고 있었다.
박경원은 볼일을 마친 후 변기 물을 내리고 내려진 바지를 올린 뒤 지퍼와 혁대를 채웠다. 그는 문을 열고 화장실 밖으로 발을 딪였다.
호스는 김병연을 앞세워 2번칸 통로를 통과한 뒤 양쪽의 승하차 입구를 지나가고 있었다.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김병연은 그가 박경원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눈치가 빠른 호스요원이 김병연의 눈빛을 읽고 총을 꺼내며 등을 보이고 있는 박경원을 향해 소리쳤다.
"헤이, 룩백 투씨미(이봐, 뒤좀 돌아봐바)."
고개를 돌린 박경원은 시커먼 권총의 총구가 자신의 머리를 향하고 있자 그 자리에서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당황한 박경원은 심장 박동수가 거세지며 갑자기 왼쪽 가슴을 움켜쥐더니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으악."
김병연이 놀라며 쓰러진 박경원에게 달려갔다. 호스역시 쓰러진 박경원에게 달려가서 김병연에게 총을 드리대며 소리쳤다.
"룩포 히스 티켓(티켓을 찾아)"
김병연은 호스의 협박에도 아랑곳 않고 실신한 박경원의 눈알을 뒤집으며 진찰하기 시작했다. 호스는 다급한 나머지 총구는 김병연의 머리를 향하고 한손으로 박경원의 온몸을 더듬으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호스요원은 박경원의 왼쪽 양복 주머니에서 티켓을 찾아 번호를 확인했다. 호스는 곧 1번칸의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문앞에 지키고 있던 강태신이 권총을 쥐고 있는 호스요원의 오른 손을 붙들어 통로 좌석의 머리쪽 딱딱한 부위로 끌어당겨 내리쳤다. 강한 타격에 권총이 바닥에 떨어지자 호스요원은 반사적으로 강태신의 멱살을 잡은 뒤 끌어당기며 다리를 걸어 몸체를 뒤집었다. 강태신은 순간 좁은 공간에서 공중으로 한바퀴를 돌면서 오른 발을 힘껏 호스의 머리를 가격했다.
퍽
호스요원이 머리에 타격을 입자 주춤하며 몸이 밀리며 등 뒤 문짝에 부딪혔다. 강태신은 바닥에 떨어진 후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때 호스의 주먹이 무섭게 날아오며 강태신의 면전을 후려쳤다. 매우 강한 힘에 얼굴 광대뼈를 맞은 강태신은 뒤쪽으로 한 3미터나 공중에 떠서 밀려가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두 사람의 싸움으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경악하며 두 사람을 피해 열차 끝으로 몰려갔다.
잠시 후 호스의 커다란 발바닥이 강태신의 얼굴을 찍으려 하자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호스의 발을 피하며 양손으로 호스의 발을 잡아 비틀며 하체를 들어올리며 두 다리로 호스의 등을 힘껏 밀었다. 커다란 호스의 몸이 순간 강태신의 반격에 중심을 잃고 열차 통로에서 쓰러지며 머리가 좌석 손잡이에 부딪혔다.
꽈당
강태신이 몸을 일으킨 후 몸이 뒤집혀 쓰러져 있는 호스요원의 목을 감싸고 조르기 시작했다. 강태신은 호스요원이 임무수행중 분명 이정환 요원을 살해했을 것이라는 심중으로 얼굴이 벌겋게 변한 호스에게 소리쳤다.
"디쥬 킬 마이 프랜드?(네놈이 내 친구를 죽였지?)"
"크아아악."
정신을 차린 호스는 고통스러워 하더니 괴성을 지르며 몸을 일으켜 달리는 열차의 창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창문이 와장창 깨지며 열차 안으로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쳤다. 호스의 허리가 반쯤 창문에 걸쳐졌고, 강태신의 몸이 완전히 열차 밖으로 나가서 간신히 호스의 머리를 붙들고 강한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호스가 한 손으로 강태신의 손목을 붙들어 비틀었다. 태신은 온몸이 열차밖으로 노출되어 호스에게 손목을 붙들린 상태로 가랑입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호스는 상기된 얼굴로 강태신에게 똑똑히 들리도록 소리쳤다.
"유워 히스 프랜드, 허?(니가 그놈의 친구였구나?)"
호스가 태신의 절친한 동료 이정환을 죽였다는 것을 밝히자 태신은 분노심이 일어났다. 하지만 호스의 손아귀에 열차 밖에서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판국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할 뿐이었다. 호스는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태신의 손목을 놓아버렸다. 열차 밖에서 간신히 매달려 있던 강태신은 마치 낙엽처럼 강한 바람의 압력에 딸려 날아갔다.
호스는 붉어진 목을 돌리며 만지작거리더니 박경원의 자리로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주변의 승객들은 공포에 젖은 눈으로 그를 주시하며 바람이 불어 닥치는 열차 안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이봐, 이 썩을 양키놈아."
피슝
열차 통로 입구에서 김병연이 호스의 권총을 들고 호스를 향해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호스는 재빠르게 몸을 비틀며 총알을 피한 뒤 좌석을 뛰어 넘으며 김병연을 향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뛰어갔다. 다시 한번 김병연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호스를 조준했다. 호스가 허리에 찬 혁대를 뽑으며 채찍질을 하자 혁대 끝이 권총에 감겼다.
피슝
총구는 순간 땅 아래로 향해 발사됐고, 호스는 주먹으로 김병연의 목을 때렸다. 그대로 쓰러지는 김병연의 목을 붙잡은 호스는 인정사정 없이 비틀어버렸다.
김병연은 바닥에 쓰러졌고, 눈을 뜬 채 눈에서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출입구 밖에는 박경원이 쓰러져 손이 문 틈에 걸쳐져 있었다.
호스는 곧바로 박경원의 자리로 가서 번호를 확인 한 뒤 머리 위 짐칸을 열었다. 그때 짐칸의 덮개가 툭 튀어나오며 가방이 반동으로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호스는 반사적 행동으로 떨어지는 가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행히 안전하게 손으로 가방을 잡은 호스는 미친듯한 미소를 흘리며 문밖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그는 바닥에 떨어진 그의 권총을 주워 1번칸 끝에 몰려 있는 사람들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피슝
피슝
피슝
피슝
피슝
우등 칸에 몰려 있던 승객들의 머리와 심장에 구멍이 나면서 자리에서 쓰러졌다. 우등칸의 바닥에 핏물이 흥건해지며 뒷쪽으로 흘러내려갔다.
호스는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두번째 칸으로 옮겨 들어가 텅빈 2번 칸 좌석에 가방을 놓고 앉아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두번째 칸에 있던 승객들은 총격소리에 두려워 뒷쪽으로 계속 피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스의 옆에 놓여진 가방 안에서
튼튼한 진공관의 뚜껑부분에 결로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열차가 흔들리면서 조금씩 더 벌어지는 결로,
그리고 변형바이러스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쏜살같이 달리는 열차에서 안내하는 스피커의 여성의 목소리는 군산 정류장에 도착하려면 5분이 남았음을 방송했다.
그리고 영어로 통역된 멘트가 흘러나오고,
일본어,
중국어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김영찬은 동영상에서 박경원의 마지막 고백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영상을 내 동료이자 지기인 영찬이 보았으면 한다. 이는 마치 내가 마지막을 대하는 것처럼들릴 것이다. 사실 나는 너무 많은 바이러스를 대하는 바람에 몸에 암세포가 가득하다. 이미 말기이기 때문에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가뜩이나 심장도 않좋은데 말기 암이라니... 나는 죽기전에 진정 인류가 반드시 살아남기를 희망하며 나의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빠앙...
군산으로 가는 열차가 군산역에 멈추지 않고 통과했다. 역전에서는 비상이 걸렸고, 경찰에 신고가 바로 접수되어 열차를 멈추려고 장비를 갖춘 전문가들이 다음 역에 몰려들었다.
열차 안의 모든 승객들...
그들은 각자 앉은 자리에서 쓰러진 채 피를 토하고 코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칸 첫번째 좌석에 몸을 축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호스...
그는 코피를 흘리며 아무런 의식도 없어 보였다.
그는 눈을 뜬 채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며 열차가 흔들리는 대로 몸이 흔들렸다.
그의 옆에 있더 가방은 언제 였는지 모르게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가방 사이로 스며나오는 무색, 무취, 무미의 바이러스는 이미 전 열차를 뒤덮고 있었다.
전라북도 정읍역 근방의 열차 다리 밑 강가에서 강태신이 힘겹게 기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겨우 길가로 올라와 몸에서 물을 털어냈다. 그는 절뚝거리며 어깨를 움켜쥐며 천천히 마을 쪽으로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디리리리링
디리리리링
김영찬은 박경원의 사무실에서 유선전화기로 강태신에게 통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수화기에서는 신호음만 들릴뿐 좀처럼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는 조바심에 전화를 끊고 박경원의 노트북을 가방에 넣어 부리나케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1층 로비로 내려와 현관을 막나서려 하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뉴스 앵커의 다급한 목소리에 신경이 곤두서 멈칫하며 가던길을 멈췄다. 그는 뉴스가 흘러나오는 1층 집무실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자 그곳 직원과 의사들이 긴급뉴스에 시선을 두고 심각한 듯 웅성거리고 있었다.
" 전복된 열차는 목포로 향하는 호남선 새마을 호로, 군산역에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통과해 질주하다가 목포역을 지나 선로를 벗어나며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특공대원이 헬기 레펠로 투입해 열차를 멈추려 했지만 열차안으로 진입한 대원들의 소식까지 두절되어 상황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장에 파견된 저희 기자에게 연결해보겠습니다. 박창우 기자?"
두...
갑자기 텔레비젼의 채널에서 방송사고가 일어났다. 연결된 기자의 목소리는 물론이고 화면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화면이 방송국으로 돌아와 앵커가 사고 수습을 했다.
"죄송합니다. 연결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연결해보겠습니다. 박창우 기자? 박창우 기자?"
그때 김영찬의 휴대폰으로 전화벨이 울려퍼졌다. 그의 휴대폰 액정에는 발신자 미확인으로 찍혀 있었다. 그는 혹시 강태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화급히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접니다. 강태신 요원"
"오, 강요원 전화를 안받아서 걱정했어요."
"전화가 부서져서 공중전화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되신 겁니까?"
"죄송합니다. 결국 바이러스를 연방요원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연방요원이 김병연을 납치한 뒤 열차에 탄 박경원을 추격해서 그 바이러스를 탈취했습니다."
"박경원과 김실장님은요?"
"박경원이 쓰러지고 연방요원과 저와의 격투 중에 저는 열차 창을 부수고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뒤의 상황은 저도 모릅니다."
"아니, 열차에서 떨어지셨다고요?"
"네, 다행히 호수에 떨어져서 목숨을 구했습니다."
"다, 다행이군요. 그럼 그 요원이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겠군요. 그런데 그 열차가 전복됐다는 소식 들었나요?"
"열차가 전복됐다고요?"
"예, 목포까지 멈추지 않고 달리다가 선로를 벗어나서 전복됐답니다."
"이럴수가..."
"아무래도 배양된 변형바이러스가 퍼진 것 같습니다. 그 바이러스로 열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바이러스는 굉장한 전염력과 독성을 가지고 있어요. 인근 마을뿐 아니라 읍, 면, 도까지 덮칠 거에요."
강태신은 하루전 전 신문사에 헤드라인과 모든 기사내용을 장식했던 대규모 오보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김연구원님이 말하는 건 마치 어제 아침에 오보됐던 기사가 사실로 드러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도 그 점에 보통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박경원이 남긴 동영상에 있습니다. 박경원이 남긴 동영상에서 그는 임연주가 바로 변형바이러스 숙주였다고 고백하고 있어요. "
"믿을 수가 없군요. 그럼 바이러스의 숙주가 이성희가 아니라 임연주였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게다가 현재 그녀의 몸에서 나온 변형바이러스가 강력한 독성을 가진 바이러스로 배양됐습니다. 아무래도 그것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첨단 보관시설이 있는 군산에 운송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어 지금의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고요. 임연주는 살아 있답니다. 그러나 변형바이러스가 퍼지는 목포의 시민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럴 수가, 임연주가 숙주였다니..."
"강태신요원 상황이 매우 심각합니다. 어서 그곳을 빠져나와야 해요. 거기에 계속계시다가 잘못하면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을 수도 있어요."
"알겠습니다."
"아무 차나 잡아 타고 서울로 올라와요. 이제 그곳이 초토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에요. 어서요. 지금 열차도 전복되고 그곳에 간 기자도 특공대도 정체 불명인 것 같아요. 분명 열차에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을 거에요. 이런 일을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어서 올라오세요. 아니 지금 어딥니까? 제가 그리로 가지요."
"아닙니다. 시간이 없다고 하니 제가 택시타고 올라가죠. 걱정마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서울에서 봅시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걸던 강태신은 수화기를 내려놓은 후 얼굴에서 피가 흐르자 주변의 약국이 있는지 둘러보았다. 마침 역전 사거리 코너에 약국이 보이자 곧바로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약국을 향했다. 그는 약국에서 약사로부터 간단히 치료를 받은 뒤 얼굴에 반쯤 거즈를 싼 반창고를 붙였다. 그는 몸을 절둑거리며 시내 길가 상점에서 간단한 옷을 사서 역전 화장실로 갔다. 그는 젖은 옷을 벗고 구입한 옷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그는 역전 앞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에 올라타며 말했다.
"서울로 가주시겠습니까?"
택시기사는 왠 행운인가 싶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예이."
강태신은 택시기사에게 쓴 미소를 지었다.
"라디오나 좀 켜주시겠습니까? 목포행 열차가 전복됐다던데요."
태신의 말에 출발하던 택시기사가 약간 놀란 듯 곧바로 라디오를 틀어 뉴스채널에 고정했다. 라디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기자의 목소리는 심각할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지금 목포지방에 열차가 전복된 이후로 그곳에 파견된 기자들의 연락이 두절된 가운데 저희 YTN현장 파견 기자들이 헬기를 타고 목포역 근방을 공중 촬영하고 있습니다. 지금 역 방제턱을 뚫고 역전 앞 대로에 마치 찌그러진 듯 지그재그로 쓰러져 있는 열차에서 연속된 폭발과 화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출동한 소방차들만 눈에 띌 뿐 대원들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주변에 여러 사람들이 쓰러져있고... 어? 저기... 출동한 경찰 대원들까지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습니다. 소방대원들도 역시 땅에 엎드려 자고 있는 듯 합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지금 마치 일대에 엄청난 신경개스가 퍼져 중독되 쓰러진 것과도 같아 보입니다. 어떻게 상황을 짐작하기도 확인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파견되는 사람들마다 족족히 연락이 두절되어 저희 기자들은 군헬기를 동원해 촬영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은 아주 위급해보입니다. 지금 일대 전혀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 헬기는 목포 시내를 따라 이동하고 있는데 지금 밑의 상황이 심각합니다. 사람들이 길가에 쓰러져 있습니다. 어 저기 뛰어가는 사람들이 보이네요. 왜 뛰어가는 지 알수 없습니다. 이런! 뒤에 쫓아오던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세상에! 세상에 ! 마... 마치 도미도처럼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습니다. 그 앞 도로 차량들은 정신없이 서로 들이 받고..."
잠시 라디오에서 헬기와 바람소리의 소음은 들려오는 가운데 기자의 목소리만 끊겼다.
잠시 후 다시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일대 대재난 상황입니다.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쓰러지고 도로위의 모든 차들도 사고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위이잉
쾅
"이런, 세상에, 옆에 있던 헬기가 추락을...추락을 했습니다. 추락한 헬기는 KBS전용 헬기입니다. 무슨 일로 추락했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방송을 중단하고 저희는 이곳을 벗어나겠습니다. 이상 YTN 김진행 기자였습니다."
운전기사는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올라 타면서 다른 방송을 찾아보려고 채널을 계속 돌렸다. 그러다가 한 방송채널에 고정되면서 또 긴급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세계에 미확인물체인 유에프오 외계인의 침략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한국을 침략한 유에프오가 사라지고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한번의 큰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호남선 새마을호가 전복된 목포시 전역에서 정체불명의 위독한 가스가 분출되어 사망자들이 계속해서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장에 파견된 KBS전용헬기에 탑승했던 저희 방송국 기자의 수신음이 끊기자 SBS 출동헬기의 기자가 저희측 헬기 추락사고를 촬영하는 장면이 SBSTV를 통해 생중계 됐습니다. 저희는 바로 SBS로부터 촬영된 녹화테이프를 입수해..."
택시기사는 다시 채널을 돌리며 SBS로 라디오 수신을 맞췄다. 라디오에서 지직 소리가 나며 SBS생중계 녹화현장으로 수신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다급한 기자의 목소리가 큰소리로 전달되고 있었다.
"저희는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을 타고 목포시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눈으로 확인하는데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지금 목포시 전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경개스로 추정되는 물질이 목포시 전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목포시의 대로에서 대형사고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많은 차량들이 방향을 잃고 서로 부딪히고 시내 상점 부수고 들어가거나 인도를 달리는 차,가드레일에 부딪히는 차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길가의 사람들은 모두 정신을 잃은 듯 해보입니다. 아.... 잠시후 대통령의 긴급 발표가 있겠습니다. 본부로 연결하겠습니다."
지직....
"예, 여기는 SBS본부입니다. 지금 다시 청와대로 오태선기자에게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오태선 기자."
"네, 지금 대통령님의 긴급상황에 대한 전 격 발표가 있겠습니다."
대통령은 청와대 기자회견 단상에 올라 발표를 시작했다.
"전 국민 여러분, 현재 목포시에 위급 재난 경보를 발표하겠습니다. 전라남도 목포시 일대의 모든 국민들은 조속히 그곳을 빠져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군경합동부대가 군산을 통과한 호남선 새마을 호 열차를 멈추는데 실패하고 목포시 일대에서 신경가스 테러로 인해 사망자를 확인하는 것 조차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지금 퍼지고 있는 신경가스는 종류조차 알기 힘들며 저희 조사단들이 최첨단 차단복을 입고 들어갔음에도 신경가스에 노출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저는 국민여러분께 목포 일대의 전라남도 지역 주민들에게 탈출을 권고하고 있으며, 지금 조치가 현재로서는 최선임을 확신합니다. 이 방송을 보고 듣고 계시는 국민여러분, 한시가 급한 이 시기를 놓치지 마시고 조속히 목포를 벗어날 것을 강하게 부탁하는 바입니다. 저 신경가스 테러를 발생케한 원흉이 누구인지는 저희도 알길이 없습니다. 다만 며칠전 신문보도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보도가 테러범들의 경고였다는 것만은 진정 확실한 듯 싶습니다. 이미 정부는 테러를 막는데 실패하였고, 부끄럽게도 이렇게 국민여러분의 마지막 처신을 부탁할 뿐입니다. 부디 전라남도 일대에서 벗어나셔서 목숨을 보존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할 뿐입니다."
KBS, SBS, MBC등의 공중파 채널 뿐아니라 여러개의 케이블 뉴스채널 및 일반 채널에서도 대통령의 전격 발표를 방영했다. TV를 보고 있는 목포 뿐아니라 목포와 가까운 전라남도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발표에 놀라 허겁지겁 필요 물품을 싸기 시작했고, 벌써 짐을 싸 차에 싣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물론 일반국도에 갑자기 차량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어느새 정체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서울의 많은 사람들이 뉴스를 보면서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KBS 제 1TV에서는 신경개스의 종류와 위독성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신경가스란 사람의 신경계통을 마비시킨 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가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신경가스로 GA(타분 Tarbun), GB(사린 Sarin), GD(소만 Soman), GF(시클로사린 Cyclosarin)등이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살충제를 연구하다가 발견되었으며, 이 중에서 사린(Sarin)가스는 1995년 일본의 옴 진리교가 이 사린가스를 사용하기도 했고,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군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사린의 인산에스터라는 주성분은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는데다가 복잡하지 않은 제조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테러범들에게 쉽게 노출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도쿄 중심부 지하철에서 발생한 옴진리교 사건에서 12명이 사망하고 5500여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 전철에서도 독가스 대피요령 전단지가 전철 칸마다 붙기 시작했죠. 사린가스는 독성은 청산가리의 5백배나 되어, 체중 70㎏의 건장한 사람이 0.7㎎만 호흡으로 마셔도 사망하게 됩니다. 만일 지금 목포 전 지역에서 퍼지고 있는 가스 성분이 사린이라면 저 정도의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사망할 수가 없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가스가 G계열 가스라면, 전세계적으로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 확산속도가 빠른 신경가스인 V계열 가스를 들수 있습니다. 그중에 VX는 영화 더락에서도 소개된바가 있는데, 한번퍼지게 되면 치명적인 독성이 인근 마을까지 덮어버릴 만한 어마어마한 살포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 번 노출되면 즉사하게 되는 신경가스 중 최상급의 맹독성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 VX가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자가 신경가스에 대하여 설명하던 이영태 화학공학박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퍼지는 저 신경가스는 어째서 저렇게 확산속도가 빠른 것입니까? 만일 테러범들이 열차를 전복시키고 신경개스를 발포했다면 그 부근에서만 가스가 퍼져야하는데 목포 전지역에서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습니다. 저 독가스가 더이상 퍼지지는 않겠습니까?"
"신경개스 양에 따라서 다름니다만, 아마 열차에 신경가스를 한 트럭을 싣고 전복됐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렇다면 호남의 서남부일대에 가장 위협적이 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확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신경가스라면 말이죠."
강태신이 탄 택시가 서울로 향하는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점차 차량들이 몰리기 시작하자 길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강태신과 택시기사는 계속해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강태신은 김영찬이 목포보다더 훨씬 먼 정읍에서도 빨리 빠져나오라던 애절한 외침을 기억하며 모든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떠나지 않으면 목숨을 보존하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서울에 가까스로 도착한 강태신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떠들어대는 전광판의 뉴스앵커에게 시선이 꽂혔다. 뉴스 앵커는 전남의 남부일대가 신경가스의 분출로 쑥대밭이 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택시기사가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의아한 강태신은 질문을 하는 택시기사가 이상했다.
"기사님은 가족이 없습니까?"
"아니, 갑자기 가족은 왜요?"
"전북 정읍에서 사는 분이 아니세요?"
"아, 저는 집이 서울이에요. 정읍으로 가는 분이 계셔서 내려갔다가, 손님을 만나서 횡재하는 기분으로 올라왔죠."
"그러셨군요."
"다행이에요. 하마터면 전라도에서 시체가 될뻔 했잖아요. 손님덕으로 살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강태신은 순간 어디로 가야할지 머리를 빨리 돌리기 시작했다. 일단 휴대폰도 분실했는데다가 국정원으로 돌아가면 어떤 임무를 내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득 강태신은 김영찬이 올라왔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내 한복판의 공중전화에 가까이 내려달라고 했다.
강태신은 공중전화 앞에서 내려 동전을 넣고 전화를 돌렸다.
김영찬이 전화를 받지 않자 그는 전화 수화기를 내렸다.
동전이 다시 떨어지자 그는 동전을 집었다.
그리고 다시 동전을 입구에 넣었다.
그리고 그는 기억했다.
세계정부에서 반드시 변형바이러스를 탈취해 전세계에 퍼뜨릴 것이라는 음모론을 펼쳤던 박도진의 전화번호를...
띠리리링
결과적으로 호스가 탈취한 변형바이러스는 지금 전라남도 남부지역을 완전히 초토화 시켰다.
띠리리링
전화벨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전광판의 뉴스 앵커의 흥분된 목소리가 수화기 반대편의 귓전에 울리고 있었다.
"전남 전지역의 통신이 두절된 가운데 고속도로 실시간 CCTV에서 찍힌 영상에 차량들이 줄줄이 접촉사고가 나고 있으며 차량 내의 사람들이 모두 엎어져 있습니다. 멈춘 차량이 있고, 그대로 달려가는 차량이 가드레일을 받고 앞 차량 허리를 밀고 있습니다. 고속도로 위는 완전히 아비규환이 따로 없습니다."
띠리리링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소식은 강태신의 등줄기를 오싹하게 했다. 이제 저 정도의 확산 속도면 하루안에 서울을 뒤덮고, 이틀이면 한반도를 초토화 시킬 것이 틀림없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딸각
"여보세요?"
박도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강태신은 순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누구시죠?"
태신은 자신이 약간 이상해지는가 싶기도 했지만, 그는 육감적으로 박도진을 신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는 강태신 요원이라고 합니다."
"강태신 요원이라고요?"
"예, 제가 기억 안 나십니까?"
"물론, 기억합니다. 그런데 어쩐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그건... 저도 모르게 도진씨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 것 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제말을 믿으시겠죠?"
"참, 도진씨가 했던 말이 모두 사실로 드러났으니 놀라울 따름이지요."
"지금 뉴스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죠. 지금 이 죽음의 바이러스 문제는 단지 대한민국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이 사건은 전세계적 사람들을 두려움과 공포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NHK, ABC, BBC, CNN 등 전세계의 모든 뉴스에서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생중계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어제 신문방송 사고는 예보도 아닌 경고에 가까웠습니다."
"네, 저도 뉴스를 계속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진씨, 연주씨는 잘 있습니까?"
"잘 있죠."
"제 이야기에 놀라지 마세요. 사실 연주양이 지금 퍼지고 있는 죽음의 바이러스의 숙주였습니다."
도진은 태신의 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듯 대답했다.
"네."
"연주양의 몸에서 추출된 바이러스가 배양되어 저렇게 대량 살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지금 그런 사실은 별로 중요치 않는 것 같습니다. 숙주인 여자는 멀쩡하고 배양된 바이러스가 이제 곧 세계를 강타할 테니..."
"사실 저는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패하셨군요."
강태신은 대꾸없이 짧은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박도진씨는 살길을 알고 있습니까?"
"참 강태신 요원님은 눈치가 백단이시군요."
박도진의 목소리가 갑자기 그의 등뒤에서 들려오자 강태신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아보았다.
"놀라셨습니까?"
강태신은 잠시 말문이 막혀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박도진은 그의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더니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강태신의 팔을 붙들었다.
"더이상 놀라시면 안됩니다."
공중전화 박스에 서있던 두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자 공중전화를 지나치며 뛰어가던 한 남자가 깜짝 놀라며 공중전화박스를 두리번 거렸다.
도진의 숙소로 순간이동된 강태신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가 사태파악을 빨리하고 김영찬이 동영상을 입수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김영찬 연구원이 박경원 연구원의 동영상을 입수했는데 그곳에 모든 비밀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물론 임연주 양이 변형바이러스의 숙주였고, 그 변형바이러스가 목포에서 퍼져 지금의 거대한 전염병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동영상입니다."
"저는 그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물론 그를 위장해서 잠시 활동을 한적은 있지만요."
강태신은 도진의 방금 한 말에 다시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그럼 김영찬연구원과 나를 잠재우고, 우리를 대신했던 사람이 바로 당신..."
"예, 유감스럽게도... 함부로 허락도 없이 대역을 해서 죄송합니다."
"도대체 그 능력은 어디서 생긴 겁니까?"
"그것은 차차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김영찬 연구원님에게 전화를 넣으세요. 그를 데려오려면 전화로 통하는 수밖에 없거든요."
박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는 강태신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휴대폰을 받은 강태신은 곧장 김영찬의 번호를 기억하며 누르기 시작했다.
한참 통화신호음이 나다가 전화를 받은 김영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김영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박도진은 순간이동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박도진은 김영찬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김영찬은 박경원의 노트북 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 강태신이 서 있자 반가운 한편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는 허벅지를 꼬집기시작했다.
"김영찬 연구원님 그 노트북..."
정신을 차린 김영찬이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을 가방에서 꺼내 박도진의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화면을 열어 전원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바탕화면이 뜨자 김영찬은 말없이 동영상을 열었다.
그리고 박경원이 고백한 영상이 삼십분간 재생됐다.
박도진은 영상을 보면서 그의 뒤에 서 있는 김덕수를 발견하자 살짝 목례를 했다. 김덕수는 동영상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의 말은 확실히 내가 겪었던 그 사건에 대한 진술이군."
김덕수가 느닷없이 뒤에서 나타나 한마디를 건네자 강태신은 의아해 하며 그에게 물었다.
"혹시, 이분께서는 그당시 실종됐던 김덕수 씨가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제가 김덕수입니다."
"그럼 박경원의 진술에 뒷바침되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을까요?"
"많이 궁금하셨겠군요. 사실, 유투브에 가야산 연방정부 비밀기지의 사진을 찍은 사람도 바로 접니다."
강태신은 그의 말에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도진이 처럼 도술을 부린다해도 이제는 믿으셔야 할 겁니다. 사실 그당시 저는 이미 도술을 쓸수 있는 상태였죠. 그러한 상황에서 연방정부의 순간이동실험에 희생자가 된 것이지만... 저희는 이 모든 일들을 기획한 사람들 중에 한사람이나 마찬 가집니다. 연방정부의 음모와 술수에 반해서 우리 도인들은 우리의 능력을 십분 살려, 그들의 잘못된 행동에 일침을 가하기로 했죠. 실제 임연주와 저는 성남도로에서 평택의 모 산간에 위치한 야적장으로 순간이동됐고, 임연주는 삼성병원으로 실려가고, 저는 연방정부 비밀기지로 곧장 실려왔죠. 임연주는 바이러스 실험대상이라서 긴급 호송된 것이고, 저는 그 당시 몇차레 순간이동으로 그곳을 탈출하려다가 붙잡혀 비밀기지로 실려 간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저도 순간이동되는 것을 몰랐지만, 정부의 실험과 동시에 저 역시 순간이동술에 눈을 뜨게 된 것이고, 정부는 또한 저를 통해 또다른 실험을 실시할 예정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도인회에서는 일단 제가 비밀기지에서 모든 장면을 사진과 카메라에 담기를 바랬고, 저는 마치 특수요원처럼 그곳에 격리된 듯 지내며 그곳 일상생활들을 카메라에 담았죠. 그리고 어제 도진씨가 신문사 편집장으로 변신해서 그 모든 것을 신문에 밝히고, 다양한 인터넷 회사에 오가며 동영상들을 옮겼던 것입니다."
"도진씨가 신문사 편집장으로 변신했다니요?"
그때 도진이 나서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왕 말씀하셨으니, 제가 설명하죠. 사실 그 기사는 모두 제가 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테러범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강태신 요원님께서 더 잘 아실 겁니다. 우리가 순간이동술을 쓰는 것은 일부의 도술에 불과하죠. 지금 도를 닦는 다는 모든 사람들이 도술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상, 중, 하로 나뉠 정도로 다분화 되어 있죠. 우리와 인연이 있는 도인들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교를 펼치는 도인들조차 모두 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신문기사들은 모두 제가 썼지만, 저는 오직 진실만을 신문에 담았습니다. 헤드라인의 바이러스는 이미 그 모든 도인들이 예견하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병겁에 대한 예언은 이미 백년전부터 격암 남사고, 토정 이지함, 율곡 이이, 구봉 송익필 등의 많은 도인들의 경전과 구전에 담겨져 내려왔었습니다. 만법전, 채지가, 격암유록 등의 예언서에 모두 있었죠. 많은 도를 닦던 사람들은 오늘이 있을 것을 알고 왔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상황은 도인들에게 참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죠."
강태신과 김영찬은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입이 벌어져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았다.
병겁으로 주검이 거리에 쌓여져 가는데 창밖의 별은 죽어가는 인류를 조롱하듯이 여전히 맑게 반짝였다.
밤은 흘러가고 서울의 피난민도 북(北)으로 흐른다. 죽고 사는 것은 하룻밤의 고비에 달렸다.
전국의 도로와 거리가 아수라장이 되는 가운데 목숨을 건져보고자 사람들은 열심히 북으로 향한다.
가정집에서 김덕수는 그의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텔레비전을 향하게 하며 전원버튼을 눌렀다.
TV에서 다시 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맹독성 신경가스는 전남, 경남, 부산, 울진, 충남, 충북을 경유하여 계속해서 북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저희 아나운서들은 더이상 방송이 불가하다고 판단하고 방송을 마칠 것을 결정했습니다. 국민여러분께 계속해서 정보를 전달해 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까지 MBC뉴스를 시청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방송이 끊기면서 잠시 지직하더니 빨주노초 색깔이 칸칸이 있는 방송준비 화면이 떠올랐다.
김덕수는 리모컨의 전원버튼을 다시 눌렀다.
강태신이 궁금하여 박도진에게 물었다.
"여기있으면 우리도 죽습니다. 그 능력으로 먼곳으로는 못갑니까?"
"여기 있으면 죽지 않습니다. 저를 믿으세요."
"어째서 여기있으면 살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오늘 밤이면 서울도 병겁이 퍼질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거에요. 저희와 함께 있으면, 바이러스는 이곳을 범하지 못할 겁니다."
강태신은 어차피 그곳을 벗어난다고 살길이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냥 그들을 믿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어두워지는 밤 창밖에서 차량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폭발음도 들려왔다.
사람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세상은 적막한 사막 위에 놓인 것 같이 고요했다.
매우 조용하여 바람소리 조차 들리지 않았다.
박도진은 여러 도인들과 함께 문밖을 나서기 시작했다. 강태신과 김영찬 역시 함께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길 앞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엎어진 채로 쓰러져 있었다.
박도진은 엎어져 죽은 아이의 몸을 뒤집었다.
강태신과 김영찬은 박도진이 하는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도진은 김영찬과 강태신을 올려다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며 그의 손을 죽은 아이의 가슴에 가져갔다.
그는 마치 잠든 듯 한참 그렇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부터 미세하게 심장 박동을 느끼고 있었다.
소형 비행기 한 대가 태평양 바다 위를 홀로 외롭게 날아갔다. 제임스 블레이드는 전용기의 창 밖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예상보다 전염 속도가 빨라. 이러다가 전세계로 다 퍼지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어.’
주검이 길가를 메우고 있는 서울, 한 노년의 남자가 젊은 여인과 함께 한강 고수부지 앞에 등불에 비치는 강물을 구경했다.
“지금 이 순간은 바로 인류의 재창조를 위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일을 꾸미는 것은 하늘이 하고, 일을 완성하는 것은 이제부터 너와 내가 이뤄나갈 것이다. 영지야.”
장영지가 그의 말에 고개로 답을 하자 오양조는 다시 눈길을 한강으로 돌렸다.
이른 아침 산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올랐다.
인적이 없는 정부청사 내빈실의 문이 열리며 구공한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텅빈 복도를 지나 현관 밖을 나서는 그는 산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밝은 햇빛이 비치자 한 손으로 가리며 눈이 부신 듯 눈을 찡그렸다. 잠시 후 밝은 하늘에 돈 잎 만한 구름이 지나가며 해를 가렸다. 해가 가려진 정부청사 정원을 구의장은 천천히 걸어나갔다.
첫댓글 빠르게 전개된 글이어서인지 섬세함에서... 결론을 좀 더 명확히 하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부족한 글입니다. 급하게 쓰다보니 완성적인 작품이 될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어쨌든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