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를 읽는 새벽
새벽에 일어나 스피노자를 읽는다. 유태교회의 총애를 받던 학생 스피노자가 철학자의 길로 접어든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네덜란드의 학자 반덴 엔테에게 라틴어를 배웠는데 그의 스승은 이단자였고 결국 반혁명사건에 가담하여 1647년에 교수대에 올라간 사람이었다.
스승에게 아름다운 딸이 있었고 그는 스피노자에게 한눈에 반했다. 그녀는 스피노자의 사랑을 얻고자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스피노자의 성공적인 경쟁상대가 되었다.(오늘의 학교에서도 이런 유혹이 있다면 얼마나 공부가 재미있을까?)
하지만 그 아름다운 숙녀는 그다지 지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스피노자와 결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
다른 구혼자가 값진 선물을 한아름 안고 나타나자 스피노자에 대한 사랑을 접었고 그 순간 스피노자는 철학자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한 데카르트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그를 매혹시킨 것은 "신과 영혼을 제외하고는 세계 만물을 기계적인 수학적인 법칙으로 설명하려고 한 데카르트의 욕구였다.
스피노자는 1656년 이단의 혐의로 교회의 장로들 앞에 소환되었다. "신은 신체, 물질의 세계를 갖고 있고 천사는 환상이며 영혼은 단지 생명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고 친구들에게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장로들은 "그 말이 사실이냐"고 그에게 물었고 장로들은 차선책으로 교회의 신앙에 대해 표면상의 충성이나마 서약한다면 5백달러의 연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것을 거절한 스피노자는 1656년 7월 27일 헤브라이의 음울한 종교의식의 온갖 절차를 밟아서 파문되었다. 그 때의 상황이 그레츠의〈유태인의 역사〉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저주의 말을 읽는동안, 때때로 큰 각적의 울부짖는 듯, 느린 곡조가 들렸다. 식이 시작될 때에는 환하게 켜있던 등불은 식의 진행에 따라 하나씩 꺼지고 드디어 마지막 등불이 꺼졌고(파문당한 사람의 영적 생명의 소멸을 상징한다.) 회중은 칠흑 같은 어둠에 파묻혔다.
그는 파문을 받아들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해서는 안될 일을 파문이 나에게 강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그를 쫓아냈고 누이동생마저 그의 얼마 되지 않은 유산을 독점하고자 했으며 친구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그를 외면했다. 유태민족 전체로부터의 고립과 생명을 위협당하는 속에서 암스테르담의 교외인 아우테르레크가의 조용한 다락방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베네딕트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
그는 직업으로 어린아이를 가르치다가 안경의 렌즈를 갈아 생계를 꾸려가며 연구에 몰두했고 살아 생전 두 권의 책을 냈다.〈데카르트의 철학적 원리〉와 익명으로 발표된〈신학정치론〉그 책을 읽은 어떤 사람들은 스피노자를 "일찍이 지구상에 산 무신론자중에 가장 불경스러운 무신론자"라고 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불멸의 보고"라고 했다.
"뉘우치는 자는 두 배로 불행하고 이중으로 약하다"고 말한 스피노자는 "왜냐하면 겸손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거만한 자는 가장 쉽게 아침에 사로잡히기 쉽다"(에티카) "이해하려는 노력은 덕의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기반이다." "우리는 인식하는 경우에만 자유롭다"고 설파했다.
그의 사상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죽기 네해 전인 1673년 스피노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철학교수로 초빙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평정을 사랑하고 이 평정을 다른 방법으로 얻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적 취임을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하고 정중히 사양한다.
1677년 2월 22일 하숙집 주인 가족들이 교회를 간 사이 스피노자는 친구의 팔에 안겨 세상을 하직했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절대고독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한 채 역사에 길이 남을 사상을 확립해간 스피노자를 훗날 괴테는 이렇게 술회했다. "〈에티카〉를 한번 읽자 개종했다" 그리고 "꿈을 꾸고 있다고 몽상할 때는 바야흐로 꿈에서 깨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노발리스는 그를 "신에 도취된 사람"이라고 했으며 헤겔은 "스피노자의 체계가 너무 생기없고 딱딱하다"라고 하면서도 "철학자가 되려면 먼저 스피노자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정직하게 말했다.
워즈어스는 그의 시에 스피노자의 사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석양의 햇빛에
망망한 대해에, 생동하는 바람에,
푸른 하늘에, 인간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것
그것은 모든 생각하는 존재와, 사고의 모든 대상을 잊고
나가고 모든 사물을 통해 굽이쳐가는
운동과 영혼
"우리는 체념해야 한다"
"울지 마라, 화내지 마라, 이해하라"고 말한 스피노자처럼 지금 이 시대 격변의 시대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도 그처럼 사상과 신념 때문에 전 생애를 걸 수 있을까? 그는 어디에서 우리들을 바라보고 우리들에게 어떠한 길을 제시해주고 있는가?
2024년 3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