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알폰소 성인은 1696년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신심이 두터웠던 그는 법학을 공부하여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사제의 길을 선택하였다. 1726년 사제품을 받은 알폰소는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를 설립하고, 올바른 그리스도인 생활을 위한 설교와 저술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는 나폴리 근처에 있는 고티의 교구장 주교로 활동하다가 다시 수도회로 돌아가 1787년에 선종하였다. 1839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윤리 신학의 대가로 존경받던 알폰소 주교를 시성하였다.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의 교회에 언제나 새로운 덕행의 모범을 보여 주시니
영혼들을 사랑하는 복된 알폰소 주교의 열정을 본받아
저희도 마침내 하늘 나라에서 그가 받은 상급을 받게 하소서.
제1독서
<주님께서는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였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33,7-11; 34,5ㄴ-9.28
그 무렵 7 모세는 천막을 챙겨 진영 밖으로 나가
진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것을 치곤 하였다.
모세는 그것을 만남의 천막이라 불렀다.
주님을 찾을 일이 생기면, 누구든지 진영 밖에 있는 만남의 천막으로 갔다.
8 모세가 천막으로 갈 때면, 온 백성은 일어나 저마다 자기 천막 어귀에 서서,
모세가 천막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 뒤를 지켜보았다.
9 모세가 천막으로 들어가면, 구름 기둥이 내려와 천막 어귀에 머무르고,
주님께서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다.
10 구름 기둥이 천막 어귀에 머무르는 것을 보면,
온 백성은 일어나 저마다 자기 천막 어귀에서 경배하였다.
11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였다.
모세가 진영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의 젊은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천막 안을 떠나지 않았다.
34,5 주님께서 모세와 함께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6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7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
8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9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28 모세는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밤낮으로 사십 일을 지내면서,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는 계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다.
복음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36-43
그때에 36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7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38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40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41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42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3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우리는 반드시 누군가를 낳는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해설하십니다. 밀은 하느님께서 세상에 뿌린 씨이고 가라지는 사탄이 뿌린 씨입니다. 밀은 하느님 자녀들이며 가라지는 악마의 자녀들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모방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각자 하느님을 모방하거나 악마를 모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사람은 세 부류입니다. 두 부류 중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직 완전히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가리옷 유다처럼 완전히 악마의 자녀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이 있고 세례자 요한처럼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선택한 이들이 존재합니다.
내가 어느 쪽에 속한지는 나 자신만을 보아서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이들도 다 하느님을 위해 일한다고 여겼습니다. 더 쉽게 알아볼 방법은 타인에게 어떻게 가르치느냐입니다. 자녀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부모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나무는 열매를 보고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뱀의 자녀가 되고 나서 한 행동이 무엇일까요? 자기 행동을 아담도 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지를 보면 내가 누구의 자녀인지 명확히 드러납니다.
히틀러는 집착하는 부모에게서 자랐습니다. 특별히 아버지가 그랬습니다.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는 술을 좋아했고, 권위적이었으면 난폭했습니다. 히틀러의 어머니는 그 집 가정부였으나 결국 알로이스의 세 번째 부인이 됩니다. 아버지는 성적 때문에 허리띠로 히틀러를 때렸고 히틀러는 오기로 그 맞는 숫자를 세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아버지에 의해 좌절되었습니다. 억압 때문인지 나중에도 미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엔 독재자가 되어 그림 수집에 몰두하였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면 미술품 수집을 위한 특수부대까지 창설하여 가장 먼저 그림을 약탈하였습니다. 유럽 1,000여 곳에서 약탈한 미술품 중 발견된 것만도 500만여 점이 되었고 그것을 본 소유주에게 돌려주는 데도 6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아이를 만들고 있는지를 살폈어야 합니다.
현재 일본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에서 전설이 되어가는 선수가 있습니다. 오타니 쇼헤이입니다. 키 193cm, 잘생긴 외모, 투수와 타자에서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정상을 찍고 있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며, 검소하고, 거기다 인성까지 뛰어납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벌써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고 치켜올리고 있습니다.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라고 불리는데, 사실 만화에서도 저렇게 완벽한 주인공이 있으면 욕을 먹을 정도입니다.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없습니다. 한국과의 경기에서도 이치로처럼 한국을 도발하기보다는 겸손하게 좋은 선수들이 많은 팀이니 방심하면 안 되겠다고 상대도 배려할 줄 아는 인성을 지녔습니다. 싸인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진 물건을 다 내려놓고 사인을 해주고 경기장에 담배꽁초나 휴지가 있다면 남이 버린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다 줍습니다. 심지어 1루로 나가다가 쓰레기가 있자 그것을 주워 자기 주머니에 넣고 출루하기도 하는 장면이 찍혔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의 부모가 어떤 인성은 지녔는지 궁금해집니다. 오타니는 현재 일 년에 800억을 번다고 하는데 어머니에게 매달 100만 원씩 타서 쓰고 그것도 쓰지 않아 매달 저축한다고 합니다. 혹시 우리나라 어떤 연예인들의 부모처럼 그것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을까요? 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파트타임 알바를 하고 아버지는 공장 근로자입니다. 오래된 시골집을 고쳐드리거나 새로 지어드린다고 해도 마다하고 부모는 자신들이 번 돈으로 살아갑니다. 자녀에게 손을 벌리기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일을 하실 거냐고 어머니에게 물었을 때 어머니는 “너한테 업어달라고 할 수는 없지!”라고 대답했고 아버지도 “아들이 성공했다고 해서, 아들에게 밥 먹여달라고 할 수는 없지!”라고 했습니다. 오타니의 형제들도 오타니의 돈을 전혀 건들지 않고 월세방에서 출발하여 스스로 벌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일 자체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모님에게서 야구 자체를 사랑하는 오타니라는 열매가 맺히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낳아서 세상에 파견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파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과 명예와 쾌락이 행복이라고 가르치고 파견하겠고 어떤 사람은 검소함과 겸손과 절제가 행복이라고 가르칠 것입니다. 입으로 가르치지 않더라도 모범으로 가르칠 것입니다.
저도 길에 떨어진 쓰레기가 남이 버린 행운이라 생각하고 줍는 버릇을 키워보려고 합니다. 성당 안에 떨어진 것들도 줍지 않았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주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을 많이 탄생시키는 우리가 됩니다. 내가 어떤지 보면 주관적일 수 있으나 내가 낳는 사람들을 보면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그룹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이 청소년을 위한 텔레비전 공익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여러분처럼 하고 싶은 게 참 많았습니다. 버스 기사도 되고 싶었고, 매표소 직원도 되어 보고 싶었어요. 한때는 경찰관과 군인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하버드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한 적도 있었죠.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절망하지 않았지요. 대신 꿈을 바꾸었죠. 심할 때는 일 년에 일곱, 여덟 번 꿈을 수정한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꿈이 지닌 힘을 믿고 그것을 이룰 때까지 계속해서 도전하는 거예요.”
큰 공감을 가져오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윈의 말처럼, 꿈을 간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도중에 꿈이 변경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꿈을 아예 갖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해도 안 돼. 이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편하고 쉬운 일만 할래. 다 귀찮아. 왜 내게는 갑부 부모님이 안 계실까?’ 등은 꿈이 꺾여 있는 말입니다. 이런 마음에는 ‘새로움’으로 나갈 동력이 전혀 없지요. 심지어 새로운 것을 보고도 전혀 새로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관심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매번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새롭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느끼려면 우리 역시 새로움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마음은 어디에서 시작할까요? 맞습니다. 나의 꿈에서 시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복음 말씀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 그 자체이신 분이시죠. 그래서 우리 중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구원의 길에 들어서길 바라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원수인 악마가 뿌리는 가라지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 악마의 유혹에 빠져서 주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이 있게 됩니다. 그 유혹에 넘어갔다고 주님께서 “너는 유혹에 넘어갔으니 이제 가라지다. 지금 당장 뽑아 버리겠다.”라고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 종말이라는 수확 때까지 기다려주신다고 하십니다.
세상 종말이 언제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빨리 회개해서 좋은 밀의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받아들여서 새롭게 변화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새로움을 자기의 꿈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꿈은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질문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아름다운 대답을 얻는다(E.E. 커밍스).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