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할아버지의 소원(창작동화)
매 앰, 매 앰, 매 앰... 맴 맴 맴 맴......
무더위의 마지막 8월의 따가운 햇살아래 매미들은 7일동안을 울면서 7년동안의 수고를 안타
까와하고 있습니다. 느티나무 할아버지가 애써 시원한 산들바람으로 매미들을 위로하지만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울어대기만 합니다.
느티나무 할아버지는 이곳 강원도 인제 언덕마을에 자리를 잡고 마을을 지킨지도
어언 350년이 다 되어갑니다. 산골짜기 다람쥐도 키웠고 산새들도 가다가
할아버지 어깨에 걸터앉아 한숨 잠을 자기도 했지요.
언덕마을 입구에 들어설 때면 그곳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 할아버지를 우러러보며
"우리를 이다지도 지켜주니 감사하요."하며 구부러진 허리를 잠시 펴며
느티나무의 오랜 세월탓에 반질 반질 해진 살갗을 어루만집니다.
"빵빵" " 아저씨, 안녕하세요?" "으응? 이게 누기야? 아이구, 영기아니가!"
"여기서 뭐하신데요?
이 나무는 여전하네요. 작년보다 더 자란 것 같기도하고."
"아무것도 아니구만. 퍼뜩 들어가봐.
아부지가 기다리겄어." "아저씨, 타세요. 댁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아니, 아니여. 난
옥수수밭에 가봐야햐. 어서 가봐."
"그럼, 아저씨, 댁에 가서 인사드릴게요." "그려, 그려"
'덕칠이 아들은 여전히 찾아오네 그려. 그래 그것이 효도여. 지 아부지를 잊지 않는 것이.
영감, 영기자슥 잘 살아야제.
그래야, 지 아부지 잘모실 것 아니겄어?'
할아버지는 반들반들 빛나는 느티나무 할아버지 다리를 어루만지며 혼잣말을 합니다.
'나는 저 내 자슥들에게 가려네 그려. 여기가 시원하구마. 내 다시 들리겠네.' 하며 느티나무
할아버지의 햇살 가득 물고온 들녘의 바람을 뒤로한채 밀짚모자를 쿡 뒤집어쓰고 밭길로 옮
깁니다.
아버지를 기다렸다는 듯이 옥수수들은 파릇파릇 맘껏 제 옷을 챙겨입고 자신들이 얼마나
컸는지 알아달라는 양 춤을 추며 한들한들거립니다.
염려했던 장마도 지나가고 실하게 익은 옥수수자식들을 값을 치뤄
헤어져야할 날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할아버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느티나무 할아버지도 알고 있다는 듯 뉘엿뉘엿 지평선 너머로 내일을 기약하는 노을에
미소를 짓습니다.
"할아버지 이 느티나무 나이가 몇살이에요?" "글세, 아마 350살은 더 먹었을걸.
이 할애비도 이 느티나무를 벗삼았으니까."
"야아, 엄청 장수한 나무네. 얼마나 더 살까요?"
"글쎄다, 아마 사람들 손에 때묻지 않는다면 천년은 더 살걸?"
"그렇게 오래요? 할아버지 나 졸려요."
"그래 이녀석 먼길을 오느라 피곤한 모양이구나.
그래 저녁 먹을때까지 여기서 좀 자거라. 이 할애비 무릎비고 눕거라."
"야야, 지호야, 그만 일어나야제? 이 할애비를 만나고 가야하지 않것냐!"
"할아버지, 벌써 저녁먹을 시간이에요? 잠든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예끼, 이녀석 버릇좀 보게. 여기가 어디라고 계속 눕노?" 순간 지호는 눈을 번쩍 떴습니다.
할아버지의 호통이 지호의 심장을 콩탁콩탁 뛰게 했기 때문이지요. 벌떡 일어난 지호는 자
기 앞에 얼굴 모르는 할아버지가 근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겁을 먹었습
니다.
혹시 자기가 다른 곳에 온 것은 아닌가하구요. "지호, 이녀석 놀란모양이로구나. 허허
허."
할아버지는 가슴까지 내려온 하이얀 수염을 쓰다듬어 내리면서 지호의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할아버진 누구세요? 이 동네에서 처음보는데요? "
"그도 그럴것이 난 사람이 아니니까."
"네에?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럼 뭐에요? 지금 사람모습을 하고 있잖아요."
"허허허, 녀석, 궁금한 것이 많구나. 이 할애비는 바로 네가 누워 잠자는 느티나무란다.
벌써 내 나이 350살이 넘어버렸지. 벌써 그렇게 된게야. 나무는 나이가 생명이란다.
어릴때보다
가치가 더 있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오래 버티는구나. 사람들에게 쉼도 주면서.....흠.."
할아버지는 지호가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늘어놓습니다.
"지호야, 너 내 소원 들어주지 않으련?" "할아버지 소원이요? 에이, 할아버진 느티나무잖아
요. 나무도 소원이 있어요? 그런게 어딨어.
소원은 사람에게만 있는데...치이." "허허허, 그래, 네 말도 맞구나.
하지만 이 할애빈 너 같은 아이들을 보면 내 소원을 들어주리라고 믿어왔단다.
그런데 지금 녀석들은 이 할애비의 말을 영 듣지 않는구나. 너무 멀어졌어.
나를 무시 해. 그래서 난 외롭단다.
내 말동무들이 커서 어른이 되더니 이젠 모두 하나둘씩 나를 잊어가고 있구나."
지호는 그런 할어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네 할아버지도 얼마나 외로울까하며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할아버지 친구해드릴게요. 그리고 말동무할 우리 할아버지도 계시잖아요."
"고녀석, 네 할아버지는 날 만날 수 없단다. 난 동심을 잃지 않은 사람에게만 보인단다.
어른들은 날 만나기가 무척이나 힘들어. 그래서 내가 그렇게 외로움을 타는 거란다.
나를 잊지 않겠다고 꼭 찾아오겠다던 녀석들도 그 약속을 잊고 나를 기억하지도 않는단다.
하지만 난 내 소원을 꼭 들어줄 수 있는 아이가 있다는 걸 믿는단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소원 속에는 그 사람이 바라는 소원도 꼭 이루어진다는 희망이 있거든.
아직 어린 나이어서인지 모두들 인내심이 약하더구나. 하루 이틀만 참으면 될 것을 쯧쯧
쯧....."
"느티나무 할아버지, 그 소원 제가 들어드릴게요. 하지만 저에게도 소원이 있어요.
그 소원을 꼭 들어주셔야만 해요. 알겠죠?" 지호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느티나무 할아버지가 꼭 자기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느티나무 할아버지의 소원은 무엇이고 지호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꼭,꼭, 할아버지, 약속지켜야 해요? "
"얘, 지호야, 지호야!" "응?" "무슨 잠꼬대를 그렇게도 하노?"
"할아버지? 그게...." 지호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그야,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부리는구나.
어서 저녁먹으러 가제이. 니 할미 기다리겠구마는."
지호는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집으로 향하는 도중에 느티나무 할아버지를 다시 한 번 뒤돌아보았습니다.
느티나무에 걸터앉은 수염긴 할아버지가 지호에게 손짓하며 미소를 함박 웃고 있습니다.
지호는 꿈이 아니었구나를 그제서야 깨닭고 느티나무 할아버지의 소원을
그리고 지호의 소원을 이루어지리라는 기대감으로 발걸음을 바삐 돌립니다.
시원한 산바람이 지호의 얼굴을 스치며 모락모락 밥짓는 연기속으로 쌩하니 달려가
지호의 마음을 선선하게 불어줍니다.
" 뭐하니? 학교 안가고."
"으응, 학교 가는 길이야."
"그런데 쓰레기는 뭣하러 줍는거야.
놔두면 청소부 아저씨가 새벽에 깨끗하게 해 놓을텐데. 별꼴이야."
"어어, 이거. 그냥. 청소부 아저씨 너무 힘드실까봐. 학교 가는 길이니까. 너도 같이 할래? "
"얘가 웃기고 있네.
야, 내가 그걸 왜해? 손 더러워지게.
그리고 이 옷도 새옷이란 말이야. 그런거 만지다가 더러워지겠다. 그럼 나 먼저 간다."
지호는 멀리 달아나는 친구를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한 번 쳐다봅니다.
이마에는 땀방울들이 너도나도 다이빙을 하겠다고 뛰어내릴 자세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쓰레기 봉지에서 묻은 이상야릇한 것들이 지호의 손에
덕지덕지 붙어 그네를 하염없이 타고 있습니다.
"지호야, 명심하거라. 언제까지라고 이 느티나무 할아버지가 장담할순 없구나.
하지만 네가 내 소원을 들어준다면 꼭 네 소원도 이루어줄 것이야."
지호는 할아버지네 시골집에서 만난 느티나무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또한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호는 친구들이 자기를 보는 시선이 너무나 따갑다고 느낍니다.
학교에서도 교실로 들어가기 전에 깨끗하게 씻었는데도 아이들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이젠 친하게 놀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호에게는 늘 괴로왔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가 많지도 않았는데 그나마 느티나무 할아버지의 소원 때문에
아니 지호의 소원 때문에 친구가 하나 둘 멀어져 갑니다. ' 포기할까? 이렇게 힘든줄 몰랐어.
할아버지 소원? 체, 그게 뭔데. 내 친구들이 날 비웃잖아. 그런 소원이 어디있어?'
하며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아니야, 엄마를 생각하자. 엄마. 언젠가 돌아오실거야. 꼭 약속했으니까.'
라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기도 합니다.
지호는 어릴적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거리에 나앉게 생겼습니다.
그동안 지호의 아버지는 술로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지호의 엄마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지호 엄마는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아직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나이인 지호를 놔두고 그만 집을 나가 버린 것입니다.
그런 후에도 지호 아버지는 여전히 술로 자신의 죄를 달래려고 했습니다.
이젠 지호가 학교에 입학하고 친구들도 사귀었지만 집에는 들어가기 싫어했습니다.
아버지의 술 먹고 술주정 하는 모습이 너무나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2학년 여름방학이 되어서 강원도에 사시는 할아버지 댁에 지호와 지호아버지는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지호는 그것이 아직도 궁금했지만 지호 아버지는 돌아와서는 예전 모습과는 달리
일을 찾아 아침 일찍 부터 나가셨으며 드디어 지호 아버지에게 적성에 맞고
생활하기에 그나마 어렵지 않게 된 직장을 찾게 되었지요.
"지호야, 너 엄마 얼굴 기억하니?" 그동안 지호 아빠는 지호가 엄마 얘기를 꺼낼때마다
어스름장을 놓으며 호통을 치셨습니다.
식구를 내팽겨치고 나간 여자는 엄마될 자격이 없다면서...
그러나 오늘은 왠일인지 아버지가 먼저 엄마 이야기를 꺼냅니다.
"우리 지호 엄마는 지호를 너무 사랑했는데.... 지금 널 그리면서 날마다 살아가기 힘이 들거야."
"그럼, 왜 집을 나가? 날 보고 싶으면 안나가면 되잖아. 그게 사랑이야?"
"지호야 그건 아빠 탓이야. 아빠가 엄마를 지켜주지 못했거든.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단다. 그래서 엄마가 괴로운 마음으로
아마 너를 두고 떠날 수 밖에 없었을거야.
이젠 이 아빠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되었어. 네 엄마가 돌아와준다면
다신 약속을 어기지 않을텐데. "
" 아빠가 찾아봐요. 나랑 같이. 네?" 지호는 곧 엄마를 찾을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올랐습니다.
높이 두팔 벌려 올려놓은 파아란 가을 하늘엔 잠자리들이 꼬리를 서로물며
한껏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호는 여전히 학교 가는 길가 가로수 근처에 널부러져 있는 여러 가지
쓰레기더미들을 줍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기억이 납니다.
비닐봉지는 땅이 숨을 못쉬게 하고 만약 썩을때까지 기다리려면
100년은 족히 걸릴것이라고요.
그동안은 땅이 땅으로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고 다른 나무나 꽃들에게도
영양분을 주지 못해서 점점 땅은 죽어간다고요.
지호는 비록 느티나무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힘들지만
과학시간에 배운 것이 사실이라면 땅을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약속을 지킵니다.
"이번 전국 초등학교에서 전국 어린이 지구 지킴이 상을 시상하려고 한단다.
혹시 추천하고
픈 사람있니?" "선생님?"
"그래. 영수가 말해보거라." "지구 지킴이 상이란 구체적으로 어떤거에요?"
"아아, 그걸 설명 못했구나. 그건, 지구가 너무 환경오염에 둘러 쌓여 있다보니까
점점 죽어간단다.
그래서 어른들뿐만 아니라 우리 어린이들도 지구 살리기 운동에 참여하는
어린이가 되자는 의미로 이번에 전국적으로 시상을 하는 거란다."
"선생님, 그러면 우리반에는 지호밖에 없어요." "그래요. 선생님. 맞아요."
지호반 친구들은 모두 지호를 추천합니다.
아침마다 친구들의 따갑고 비웃는듯한 눈초리를 한웅큼 받은 것이
지호에겐 오히려 덕이 되었습니다.
" 예, 여기는 지금 전국 어린이 지구 지킴이 상을 받은
김지호 어린이를 만나러 산호초등학교에 나와있습니다.
김지호 어린이, 제1회 전국 어린이 지구 지킴이가 된 소감이 어때요?"
"저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저에게 큰상을 주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어떻게해서 지구를 지키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전, 약속을 지켰을 뿐이에요. 느티나무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호어린이가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저... 전 다른건 생각안해요.
엄마가 하루 빨리 보고싶어요.
엄마, 아빠도 엄마를 기다려요. 그리고 나도 엄마 보고싶어요."
지호는 간절히 엄마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엄마가 보라는 듯 방송에 음성메일을 띄웁니다.
엄마가 꼭 지호의 메시지를 들었을거라고 확신하면서....
그 많던 색색동이 낙엽들이 나뭇가지에 이젠 하나, 둘 남겨져 있을무렵,
겨울이 온다는 신호를 알리듯 찬서리들이 거리를 하얗게 만듭니다.
아직 겨울은 아니지만 새벽만큼은 추워서 손을 호호불며 느티나무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지호는 점점 할아버지의 소원에 미련을 버리고 싶습니다.
"왜? 왜? 나만, 나만 갖고 그러냐구요? 엄마는 오지도 않는데.. 흑흑흑...
" 지호는 외롭습니다. 언제 올는지 기약도 없는 엄마를 기다리는 것이 지쳐갑니다.
'엄만 나를 보지 못했어. 봤다면 우리가 엄마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다는걸 알텐데..
엄만 텔레비젼도 안보고 뭐하는거야?' 자꾸 지호 마음속에서는 엄마를 원망하는 소리만 깊어갑니다.
그 속으로 자꾸만 자꾸만 깊이 빠져 들어갑니다.
다시는 못나올 것 같은 곳으로. '지호야!' 환청이었을까요? 지호는 자기가 들어가 있는 곳에
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합니다.
"지호야!" 지호는 순간 얼굴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앞에 나타난 사람을 빤히 쳐다봅니다.
지호의 눈가에서 주르륵 눈물이 흐릅니다.
"엄마! 왜 이제야 온거야. 얼마나 기다렸는데? 엄마, 미워! 영영 안 오는줄 알았어." "우리
지호, 텔레비젼에서 아주 잘 생겼던데, 어디 보자. 아이구 내 새끼."
지호는 엄마를 이젠 다시 놓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와락 껴안았습니다.
너무나 따뜻한 엄마 품속에서 지호는 마음속으로 느티나무 할아버지에게 고맙다고
몇번이나 되뇌이었습니다.
마침 지호와 엄마를 위한 축하폭죽이라도 터트린듯 하늘에서는 천사웃음같은
하이얀 꽃가루가 날립니다.
느티나무 할아버지의 너털 웃음같은 하이얀 꽃가루가 꼭 껴안은 지호와 엄마 머리위로
휘 날리며 마을로 동네로 뭉게구름처럼 퍼져 갑니다.
고한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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