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두 사서에 나오는 민족적, 국가적, 그리고 정통성에 대한 계승의식을 묻는 겁니다.
삼국사기는 신라계승의식, 삼국유사는 고조선 계승의식... 뭐 이런 식으로 단순 연결이 아니라 실제로 두 사서에서 어떤 계승의식을 갖고 있고, 그 부분이 각 사서 어디에 나오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세요.
단순히 삼국사기는 신라빠에 신라문벌귀족 계승의식이라든지, 삼국유사는 고조선이나 삼국 모두에 대한 계승의식이라든지... 이런식으로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서의 어느 부분이 이렇게 설명하기에 이 부분을 근거로 삼아 삼국사기는 이런이런 계승의식을 갖고 있다... 식으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건 뭐 정보를 찾으려고 해도 빈약하고, 거의 일방적으로 단정지은 것이 많아 자료 찾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예전부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계승의식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어왔지만, 그 근거가 언제나 궁금했거든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1. 《삼국사기》는 삼국 모두를 정통으로 보고 있습니다. 삼국을 모두 동등한 본기로 기록하였고, 각 본기마다 스스로를 我라 칭하고 있죠. 흔히들 신라중심적, 신라계승적인 사서라고들 하는데, 완벽한 헛소리입니다. 심지어 신라를 제외한 고구려와 백제의 기록이 엄청나게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잡지〉의 여러 제도, 복색, 지리, 기타 등등을 가능한 동등한 위상으로 기록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한 흔적도 보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기록 자체가 부재하다보니 실제 분량 면에서는 신라의 발끝에도 못미칩니다만...
다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신라를 정통으로 보았고, 그래서 후백제, 후고구려는 반란자로 격하되기도 했습니다.
2. 사실 엄밀하게 말해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신라 중심적(?)인 사서이기도 합니다. 사기는 본기의 분량을 비교해보면 국가존속기간에 비해 신라가 오히려 권수가 적은 편인데 반해, 유사는 극초반의 일부 기록을 제외하면 거의 전체가 신라의 기록이죠. 흔히 고조선 관계 기록 때문에 유사가 자주적인 사서라느니 고조선 계승의식이 있다느니 하지만, 실제 내용이나 체제 면에서 보자면 사기보다 훨씬 더 신라 중심적입니다. ㅡㅡ;;
김부식 대단하네요. 후고구려면 고려의 전신인데 고려의 신하로서 저런 사서를 남길 수 있다니.
데스사이즈 님//이건 제 개인적인 견해인데, 확실히 김부식이 고려의 신료임에도 불구하고 좀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궁예를 깎아내린 감이 있습니다. 특히 궁예의 첫 국호인 "고려"를 아예 언급하지 않고 삭제한 점은 좀 심각한 왜곡이죠.
이런 면에서는 심라중심적인게 맞긴 합니다. 다만 이렇게 중심에 놓는 신라가 "삼국 중의 신라"가 아니라 "삼국을 통일한 신라"라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죠. 즉, "고백은 꺼져! 신라만 짱!"이 아니라 "고백신은 동급, 근데 통일한 뒤는 신라가 정통"이라는 관점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부식은 감수자의 역활 아니었을까요?
단순한 감수자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총책임자에 가깝겠죠. <고려사>처럼 국가주도인데다 책임-감수자가 다수인 경우와 달리 사기는 필진(?)의 구성부터모든 면에서 김부식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질문드린 것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어느 부분을 보아 역사 계승의식이 드러나는지에 대해서였습니다. 예컨대 삼국에 대한 계승의식이 드러나 부분이 삼국사기 어느 구절에 있고, 삼국유사에는 삼국 중 어디에 대한 계승의식이 드러난 구절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 식의 질문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자세히 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신라 분량이 많은 것도 신라의 통일 이후에나 많지 않나요?
엔하위키에 "삼국사기"항목도 한번 참고해보세요.
음. 봐도 별 참조가 안 되는군요. 제가 바란 것은 그 계승의식이 구체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드러난 부분을 찾는 거라서요.
1. 사기의 경우에는 일단 본기로 기록했다는 것부터가 계승의식의 간접적인 표출이죠. 고려사만 보아도 우,창왕을 열전에 배치하는 등 정통이 아님을 체제를 통해 표출하는데 반해 사기는 삼국을 모두 본기로 서술하여 체제에서부터 삼국 모두를 계승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참고로 후삼국은 열전에 배치되어 정통이 아니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죠.
2. 그외 실제 기록에서 직접적으로 계승을 천명하는 경우는 좀 보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편년체인 본기가 중심이 되다보니 저런 의식이 직접 드러나긴 어렵죠. 그나마 잡지 부분에는 좀 나타나는 편인데, 지리지의 서론에서는 삼국을 모두 통틀어 "우리"라고 서술하는 부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