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수양제가 100만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힐 만큼 고구려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고구려를 침략하기 위해 대운하를 건설했다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며 굳이 대운하 건설 이유로 넣고자 한다면 한 가지 이유는 될 수
있겠지만 전적으로 그 때문이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정확히는 당시의 사회. 경제 적인 부분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 듯 합니다.
그러니까 후한 시대 말기까지 본래 강남지역(크게 봤을 때 주로 양주와 형주를 말합니다)은 습지대라는 이유로 천시되어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지역입니다.
삼국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당시 대륙의 경제력은 원소가 차지하고 있던 화북 지역이 가장 뛰어났지요.
하지만, '황건적의 난' 부터 '손오 정권의 성립' '북방 유목민족의 북중국 일대 점령'과 그에 따른 '동진 정권의 수립'에 따른
수 많은 유민들이 강남 지역으로 이주합니다.
기록을 보면 동진 정권 성립 시까지 강남으로 이주한 백성들이 약 90만명이라 하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 조차 하기 어렵지요.
본래, 강남 지방은 습지가 많고 농사를 짓기에도 좋은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땅을 개간해야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몇 백명이 동원되는 것이 아닌 보통 만 단위의 노동력이 동원되어야만 개간 할 수 있는 그런 자연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강남 지방에 동진 정권이 성립되면서 그 계기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이에 따라, 땅을 개간하고 호수와 저수지를 연결하고 기존의 수리시설을 복구하고 신축하는 등 수리사업에 힘쓰고
화북지역의 농사법을 도입하여 농업생산력이 발전합니다.
또한, 주강 입구의 남해를 외국 무역의 중심지로써 활용하지요.
즉, 대운하 건설은 강남 지역의 경제력이 발전함에 따라 그 곳을 연결할 교통로가 필요하게 된 당시의 시대적 요구를 실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운하를 수도지역을 남북지역과 연결함으로써 조세 운송 및 교류의 편리함도 있게 하려 한 것이지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운하는 원나라 때 기존의 대운하를 이용하여 북경에서 항주로 이어지는 대운하를 만든 것입니다.
수나라 때 만들어진 대운하는 당시의 수도 장안과 연결 되어 있었지요.)
첫댓글정확한 분석이시군요....흔히들 현 중국 동부 평원지역에서 양자강과 황하를 연결시킨 영제거 통제거를 수양제가 개통시켜 고구려전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잇지만...실은 이 영제거 통제거의 위치는 현 영제거 통제거가 아닌 것이지요. 율력천둥지기님의 견해대로 현 영제가 통제거는 후대에 완성된 것으로 봅니다...['역사왜곡'의 한 흔적이라고 봅니다....]
첫댓글 정확한 분석이시군요....흔히들 현 중국 동부 평원지역에서 양자강과 황하를 연결시킨 영제거 통제거를 수양제가 개통시켜 고구려전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잇지만...실은 이 영제거 통제거의 위치는 현 영제거 통제거가 아닌 것이지요. 율력천둥지기님의 견해대로 현 영제가 통제거는 후대에 완성된 것으로 봅니다...['역사왜곡'의 한 흔적이라고 봅니다....]
답변 감솨합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