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저희의 희망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있을 수 없고
하느님만이 저희를 지켜 주시니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시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제1독서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보고 그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34,29-35
29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손에는 증언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30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를 보니,
그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31 모세가 그들을 불렀다.
아론과 공동체의 모든 수장들이 그에게 나아오자,
모세가 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32 그런 다음에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그에게 가까이 왔다.
모세는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33 모세는 그들과 이야기를 다 하고
자기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
34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그분 앞으로 들어갈 때는 너울을 벗고, 나올 때까지 쓰지 않았다.
나와서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였다.
35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므로,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들어갈 때까지는,
자기 얼굴을 다시 너울로 가리곤 하였다.
복음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44-46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생명을 버려도 괜찮을 행복이 딱 하나 있다
오늘 복음은 밭에 묻힌 보물, 값진 진주의 보물 비유 말씀입니다. 결론은 하느님 나라를 발견한 이들은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판다는 내용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고서는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하늘 나라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자칫 이러한 신앙이 ‘허무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 세상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으니 신앙으로 하늘 나라만 차지하자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이 세상에서 어떤 목표를 위해 고생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 흐르는 대로 바람 따라 살다가 천국에만 가면 되지 이 세상 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낙관적 허무주의입니다.
낙관적 허무주의의 대표적인 영화가 ‘에브리씽 에비리웨어 올 앳 원스’입니다.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 여인이 다중 우주에 존재하는 자신과 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며 ‘왜 사나?’를 묵상하는 우리 모두의 처지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다중 우주에는 자신의 선택이 달랐으면 살게 될 인생들이 있습니다. 훨씬 유명하고 부자이고 꿈을 이룬 인생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두가 다 문제를 안고 있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인생은 어떻게 살던 허무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허무주의에 눈알 하나를 이마에 달아줍니다. 여기서 나와 함께 하는 남편, 자녀, 부모와 최대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신앙도 이런 일상의 허무에 눈알 하나 달아주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허무한 인생, 곧 사라져버릴 인생에서 결국 우리는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는 눈알 하나를 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저 즐기며 사랑하며 행복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그런 삶의 태도를 동조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재능으로 교회를 위해 많은 성화를 그렸던 카라바지오를 생각해봅시다. 그는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에너지는 이 세상을 즐기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어차피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기에 이 세상 것들은 즐기고 버리면 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니 그의 삶은 타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술과 돈과 여자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의 가치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하늘 나라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의 가치를 안다면 나의 에너지를 이 세상 것을 위해 쓸 수 없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신앙인이 된 것은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 다니다가 용서를 위해 교황님께 다윗과 골리앗 그림을 그려서 돌아올 때였습니다. 이때는 정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것 하나만 생각했습니다. 그때 자기 에너지를 용서받는 것 외에 다른 것에 쏟을 수 없었습니다.
유튜브 ‘우와한 비디오’에 ‘주인을 다시 만나기 위한 9일간의 긴 여정, 돌아온 진돗개 별이’란 사연이 있습니다. 일상 고양시에서 파주시까지 21km가 되는 길을 냄새만 맡으며 집을 찾아온 진돗개 별이 사연입니다. 이 과정에서 굶어서 영양실조가 걸렸고 얼굴에 큰 상처도 났습니다. 그런데도 집까지 돌아온 별이를 보며 주인은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이것이 밭에 묻힌 보물을 찾아낸 사람의 마음입니다. 허무주의는 없습니다. 보물을 찾으면 마치 엄마 찾아 삼만리를 가는 사람처럼 그것을 위해 에너지를 쏟지 않는 모든 것은 용납할 수 없게 됩니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에너지를 그 하나의 성공을 위해 쏟은 사람들입니다.
만약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모습을 몰래 찍어 보여준다면 어떨까요? 아이들은 어차피 부모님이 우리를 먹여주실 것이니 고생할 필요 없이 즐기며 살면 된다고 여기게 될까요?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것에 대해 부모님 뜻을 따라주기 위해 자신도 피 흘리고 싶은 열정이 생길 것입니다. 바로 부모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는 것, 이것이 아이들이 찾아야 할 밭에 묻힌 보물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늘 나라를 위해,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선교를 위해 피를 흘리지 않으면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없다는 뜻이지, 다 마련되어 있으니 어차피 지나갈 세상 그냥 집착 없이 편안하게 즐기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재능이나 재물, 모든 에너지가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모든 에너지를 하늘 나라만을 위해 쏟아부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이유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 자녀의 자격이 있는지를 시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진정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해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려고 합니까? 그러면 하늘 나라를 발견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사랑과 당신 뜻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40)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너 변했어.”
상대방이 인상 쓰며 변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을 듣는 대상인 본인은 어떻습니까? 자기는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지 않습니까? 시간이 지났으니 생물학적 변화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내 마음이, 내 성격이 변했다고 말하는데, 도저히 인정하기가 힘듭니다. 사실 사랑 호르몬이라고도 부르는 도파민의 분비는 남성의 경우에 3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합니다. 따라서 여자가 남자를 향해 “변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호르몬 분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정확하게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 역시 계속해서 호르몬이 변합니다.
외적 변화뿐 아니라 내적 변화도 계속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잘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변화의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족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기준을 주님께 맞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주님의 평화에, 주님께 대한 믿음과 해방에 맞춥니다. 이런 분명한 기준에서 잘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짧지만 강력한 내용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와 같다고 하시지요. 소비를 촉구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명품과 같은 귀하고 비싼 물건에 욕심을 내어도 괜찮다고 하시는 말씀도 아닙니다. 사실 비윤리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종이 주인의 밭에서 일하다가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물을 주인에게 갖다줘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던지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주인에게도 또 경찰에게도 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절대 윤리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와 같으므로, 이 가치를 아는 사람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전혀 관심이 없었어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데 어떻게 외면하겠습니까? 그 가치를 나의 것으로 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게 됩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최종 목적지이며, 반드시 가야 할 곳입니다. 남의 이목을 신경 쓰고, 체면을 따질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변화입니다. 하늘 나라를 최고로 여기는 마음의 변화가 가장 필요할 때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인류의 운명을 결정지어온 이들이 보통 사람과 달랐던 점은 지성이나 힘 또는 높은 경지의 사상도 아니며 오직 보다 원대한 야망, 그 하나뿐이었다.(오리아나 팔라치)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