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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을 십 분 정도 걸으면 뉴턴의 사과나무가 있는 넓은 잔디밭이 보인다고 했는데 눈을 씻고 봐도 잔디밭도 사과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길을 바로 들였는지 물어볼 행인도 없다. 휴대전화까지 먹통이다. 출발하면서 전화를 하겠다고 해놓고는 하필이면 출발 직전에 배터리가 방전되어버리다니.
도저히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라는 간판을 발견했다. 안쪽으로 넓은 잔디밭이 보이고 경비실도 보인다. 경비실 앞에는 한 남자가 가던 길을 멈추고 계속 나를 응시하고 있다. 다가갈수록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가까이 가자 000 연구원을 찾아왔느냐고 동생 이름을 말한다. 멀리서 보아도 동생과 너무 닮아서 호기심이 생겨서 계속 보고 있었다고 한다.
연구소는 뉴턴의 사과나무 때문에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한다고 들었는데 그가 경비실을 향해 몇 마디 하자 방문자 기록과 주민등록증 제시, 출입증 교부도 하지 않는다. 단지 닮았다는 이유로 확인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단정해 버린다.
동생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연구원이다. 직장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고 무엇보다 연구소 뜰에 뉴턴의 사과나무가 있어서 한국과학 발전에 상당하게 이바지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기회가 되면 연구소에 있는 사과나무를 보기를 권한 지가 삼십 년이 넘었다.
뉴턴의 사과나무를 보면 과학에 문외한인 나도 과학에 관심이 커질지, 과학적인 사고를 하게 될지 사뭇 기대해 본다.
연구원에 들어서자 잘 가꾸어진 넓은 잔디밭 중앙에 우뚝하게 사과나무가 서 있다. 한눈에 보아도 뉴턴의 사과나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과학적인 상징과는 전혀 상관없이 넓은 초원에 자생하는 외딴 나무로 보일 뿐이다.
뉴턴의 사과나무는 행정동과 연구동 앞에 각각 한 그루씩 있다. 그 나무들이 위치한 이유도 내가 경영학을 하고 동생이 기계공학을 하는 것처럼 우연일뿐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 나무들은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할 당시의 나무의 4대손이라고 했다.
`뉴턴의 사과나무`라는 표지판은 한글과 영문으로 쓰여 있었다. 미국 연방 표준연구원에서 한국과학의 발전을 위해 기증한 것이라는 이력이 적혀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철망을 치고 경비를 하는 통에 외관상 보기 싫었지만, 현재는 무인 경비시스템으로 철망이 제거되어 친숙하게 보인다고 한다. 아무튼, 경비와 홍보, 혈통을 유지하고, 번식을 억제하여 희소가치를 높이기 위한 비용까지 관리비용을 합산하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사과나무 옆 좁은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앙부일구나 자격루는 오랜 관찰과 물리적 성질을 통해 발명된 구조물로 더욱 과학적이라고 생각이 든다. 과학적 사고란 모양이나 혈통, 상징성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작동의 원리가 과학적일 때 발생하지 않을까 싶다.
열차를 타고 대전으로 올 때가 일이 떠올랐다. 열차 속 TV에서 가수 조용필과 나훈아의 쇼가 진행되었다. 옆자리에 앉았던 승객이 "노래는 역시 조용필과 나훈아지! 특유의 목소리와 창법, 동작이 최고급의 가수지"라고 하는 말에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곧 모창 가수 조영필과 나운하 였다고 끝 논평에 이내 실망했다.
이목구비가 닮으면 음성도 닮는 것일까.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목소리까지 닮은 것을 보아왔다. 그런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양과 구조가 비슷한 악기에서 비슷한 소리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비록 모조품이지만 앙부일구나 자격루는 구조 원리가 같아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뉴턴의 사과나무보다 더 과학적이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영감을 얻은 것은 그 사과나무의 우수한 혈통이나 외모가 아니라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의 찰나적 운동 순간에 영감을 얻은 것이다.
너무나 평범한, 보편적 현상에서 찰나에 영감을 얻어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과학적 사고가 한없이 위대해 보이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