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 길에서 만난 사도세자,
5천 년 역사 속에 무속인들에게 신내림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대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받아들였는데, 고려말의 명장 최영이나, 임경업 장군을 신으로 모신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엉뚱하게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인 맥아더를 모신 사람도 있다.
언젠가 나는 작고한 노무현 대통령을 모신 무속인이 나오면 한밑천 잡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아직은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다.
서해랑 길, 무안군 운남면에서 만난 동암 묘는 뒤주에서 죽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이다.
무안 국제공항을 지나 20코스의 접신이 종점, 무안군 망운면 손현리 용동리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용동마을 회관을 지나 운남 육교를 건너 무안군 운남면에 접어든다. 무안두곡 고인돌 군이 있는 두곡리의 두곡교차로를 지나 동암 마을 회관에 이른다. 동암은 이 마을 동쪽에 큰 바위가 있다고 하여 동암이라 하였고, 이곳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모신 동암묘라는 사당이 있는데 이곳에 사도세자의 사당이 세워진 얘기가 기이하다.
정조가 임금이 된 바로 그 해에 이 마을의 성, 이, 박 씨 세 사람의 꿈에 한 귀인이 나타났는데, 마을 앞에 배 한척이 나타나더니 한 귀공자가 내려서 마을 뒷간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그를 보러 온 마을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선왕의 세자이니라, 원한이 뼈에 사무친 채 나라 곳곳을 둘러보다가 이곳에 이르렀는데, 이곳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내 영혼이 이곳에 머무르고자 하지 그리 알라.”
그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은 전날의 꿈을 서로 이야기 하고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의 주시했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날밤 또 다시 그 사람이 나타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날 바다에 이상한 궤 하나가 떠올랐고, 그것을 사도세자의 현몽이라고 여긴 마을 사람들이 모셔와 제단을 쌓고 모시게 된 것이 동암묘의 시작이다. 고종 때에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한때 제단을 폐했는데, 마을에 불길한 일이 계속 일어나자 다시 사우를 세워서 제사를 다시 지내게 되었는데, 그때가 고종 11년인 1874년이었다. 그 뒤 1918년에 사당을 세웠다가 1971년 현재의 모습으로 사당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꿈도 신기하고 세상사도 신기하다.
그런데 사도세자를 모신 무속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때가 이르지 않아서 그런가,
매일 매일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나는 이 세상에서
그대는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세상을 기다리고 있는가?
2024년 3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