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사람 사는 이야기
어찌저찌하여 술자리가 마련되어,
거하게 취기가 돌면,
하나 둘 무용담이 흘러나온다.
나는 너무 평범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딱히 할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그저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살아온 길이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이 많은 이야기를 토해내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그 이야기를 안주삼아 술자리는 깊어가는 경우가 있다.
내 주변에 이런 경우가 많지는 않다.
유유상종이라고 했나? 어찌나 밋밋하게들 살았는지...
친구 중에 직업 특성상 여러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나는 친구가 있다.
자연 그 사람들과 술자리도 자주 갖게 된다고 한다.
그 친구는 그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책에 비유한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야기가 그 친구가 살아가는데 교훈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나중에 사는 사람들의 등대가 된다.
이 책은 파란만장한 대한민국 현대사를 함께한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이다.
일제시대, 광복, 한국전쟁, 격변의 시절, 독재정권, 군사정권, 민주화 운동, 경제발전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현대사 자체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기 때문에,
그 시절을 살던 사람들도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파란만장같은 삶을 산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방동규 역시 1935년생으로 그런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가운데 살았던 것이다.
방동규는 윗세대 사람으로,
책을 읽으면서 간간이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도 대한민국 현대사와 같이 성장하셨다.
아주 어린 시절 한국정쟁을 거쳐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셨다.
비록 이 책의 지은이보다는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넉넉치 못한 우리 가정을 위해 평생 희생하신 것을 생각하면
우리 가족이 봤을 때 아버지의 삶은 특별한 삶이었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렇게 발전한 것은 독재자의 지도력 때문이 아니었다.
가정을 생각하며 묵묵히 일하신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것을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알아야 한다.
1. 배추가 누구지?
이 책이 신간으로 출간되었을 때,
인터넷 신문과 텔레비젼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예전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재야운동가 백기완 선생과 절친한 친구라 하며,
황석영, 신경림 등 문화계 인사들도 그의 책에 추천사를 적었고,
정치인 이부영 뿐만 아니라 각계의 유명인사들이 그의 지인이었다.
배추가 누구지?
나만 모르고 있는 사람인가?
배추와 친한 사람들은 대부분 진보성향이 강한 사람으로 보아
그쪽 계통의 재야에서 활동한 사람이라고만 추측을 하였다.
본명 방동규. 이 또한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책을 읽기 전 그가 누구인지 모르면 어떠한가?
책을 통해 알면 되지.
이 책은 방동규가 신문기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삶을 신문에 연재하였고,
그 연재한 것을 엮은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방동규, 신문기자 조우석의 공저이다.
최근 대리 저자, 대리 번역의 문제점이 이슈되었는데,
이 책은 진실되게 공동저자로 적어놓으니, 시작부터 그의 인간성에 끌리게 된다.
2. 낭만시대 낭만주먹
방동규는 부유한 개성상인의 손자로 태어났다.
증조 할아버지의 가난을 물려받은 그의 할아버지는 개성상인의 근성을 보이면서,
개성의 가장 큰 부자로 성공하였다.
그런 넉넉한 집안에서 태언난 방동규는
어린 시절은 풍족하게 살았다고 한다.
타고난 본성인지 어린 시절의 풍족함 때문인지
그의 생각은 늘 넉넉하면서, 개방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는 전형적인 장난꾸러기로 꼬마 악동으로 통했고,
어려서부터 발차기를 잘해서 방천왕둥이로 통했다고 한다.
그는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주먹의 일인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다가 그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서울로 상경한 그의 가족들은,
한국전쟁을 맞이하게 되고,
그의 이복형은 인민군으로 자원입대하고,
가족들은 당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고통에 허덕이며
피난생활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온 그의 가족에게 남은 것은 가난 뿐이었다.
그래도 집에서는 그에게 공부를 해야한다며 학교로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학교에 갔지만,
그의 어린 시절의 악동체질은 도망가지 않았다.
10대 후반, 그 또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의리와 정의(그가 생각하는 관점에서의 정의)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몇차례 거물과 싸움이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 시대 볼거리가 별로 없던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주기도 했던 싸움이었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쌓인 가운데 싸움을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싸웠다고 무조건 감방가는것도 아니고,
경찰도 그의 호기에 붙잡았다가도 곧 풀어주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낭만시대 낭만주먹인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입고 다니는 옷을 보고 붙여준 별명이 배추장사, 줄여서 배추였다.
그 이후로 그는 배추로 통했다.
그의 유명세는 입에 입을 거쳐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어
가짜 배추가 등장할 정도라고 한다.
3. 방황의 20대
그의 20대는 오랜 방황의 시작이었다.
평생 책상에서 공부만 했던 아버지가 자살을 하면서,
그의 집은 더욱 어려운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도 첫사랑이 찾아온다.
숙맥인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가난한 전쟁미망인이었다.
그는 여인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집문서를 갖다 주었다.
그때 그는 그것이 옳은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로 인해 자신의 가족이 집없이 거리로 쫓겨나
간신히 닭장을 얻어 생활하는 것보다 그 여인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자신의 가족이 어려운 생활에 내몰리자,
그가 정신을 차리고 고시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공부를 위해 절에 들어갔지만,
공부보다는 풍경소리에 취해 불경공부에 열을 올리게 된다.
결국 고시를 포기하고 돌아간 그는 군대를 가게 된다.
하지만, 그의 체질이 군대하고는 영 맞질 않았다.
자신 스스로 최악의 군대 부적응자라 부르면서,
결국 뜻밖의 지인들의 도움으로 꾀병으로 이등병 의가사 제대를 하였다.
오늘날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 허술한 병영시스템에는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군제대를 하고는 친구 백기완의 집에 얹혀 살게 된다.
그와 백기완과의 인연은 학창시절부터 시작되었는데,
지금까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백기완의 집에서 정신적 지주라 불릴만한
백기완의 아버지 백홍열 선생을 만나게 된다.
4. 풍류가 무엇이더냐?
배추는 백기완의 집에 얹혀 살면서 백홍열과 같은 방을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백홍열의 자유인의 기질과 풍류에 대한 것을 배우게 된다.
백홍열도 자신의 생각이 자유롭다보니 격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아들뻘인 배추와 허물없이 지내게 된다.
백홍열 선생으로부터 풍류를 배운 것은
백기완, 배추 방동규 그리고 김태선이란 사람이 한명 더 있다.
대륙의 술꾼이라고 부르는 김태선이란 친구와의 인연을
그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이야기하였다.
호탕하고, 위트있고, 삶을 즐길줄 알았던 김태선은
풍류로 봐서는 백홍열 선생의 가장 훌륭한 제자였던 것이다.
배추는 백홍열 선생과의 생활을 풍류학교라 불렀고,
자신이 배운 삶의 대부분을 이 풍류학교에서 배웠다고 장담하였다.
대륙의 술꾼 김태선이 간암으로 세상을 뜨고,
집에서 날아온 암울한 소식으로 그는 급히 풍류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향하게 된다.
...
....
2권에서 계속...
1935년생의 지은이 방동규 선생을 예의없이
계속 배추라고 지칭하지만,
격이 없는 것을 즐기시던 방동규 선생께서 이해해주리라 생각된다.
책제목 : 배추가 돌아왔다 1
지은이 : 방동규, 조우석
펴낸곳 : 다산책방
펴낸날 : 2006년 12월 11일
독서기간: 2007.8.3 - 2007.8.6
페이지: 280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