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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미혜 작가님 추모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십자성
어라! 저 길이 언제 생겼다니?
대나무 제품을 잘 만들던 정대아제 집 자리 지나서 산모퉁이를 우로 돌면
초등학교 때 쌈 대장 정철이가 살던 다섯 집 정도의 작은 동네가 있었는데.
그 동네 아직도 남아있남... 어! 저기 삼거리 ‘삿갓집’ 주막도 여전하구나.
모처럼 고향을 찾은 나는 낮선 이국을 마실간 여행객처럼 계속 중얼거리는데.
수원에서 출발할 때부터 말 많던 여동생은 어머님 산소가 가까워 올수록 월출산만 바라보고.
운전하는 조카사위는 고향이 서산 쪽이라서 월출산 아래 처가네 동네(달 아래 첫 동내)사연은
전혀 모르나니 내 물음의 짝을 찾지 못한다.
나는 모처럼 고향을 찾은 것이 모조리 세월 탓이지
전혀 내 탓이 아니라는 걸... 차에 탄 모두가 행여 몰라줄세라.
아무 메아리도 없는...별 신통치도 않은 소리를 비 맞은 중처럼 계속 중얼거리고 있다.
어머님 산소에 성묘 가는 길에...이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국땅 출장으로 어머님 임종을 못 봐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아
보내드리지 못하고 어머님을 여적 마음속에 담고 다녀서인가?
초가삼간 사립문 앞에서 어머님하고 부르면 밤중이건 새벽이건 언제나 맨발로
뛰어 나오셨는데. 이제 그 모습을 부엌이건, 뒤 마당이건, 서당 골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 그래... 그래서 내가 고향을 가뭄에 콩 나듯 찾은 것이야.
미련허게 굳이 내려가서 안 계신 어머님을 새삼 확인할 필요가 없지...암
‘그나저나 새로운 길이 생겨서 서당 골 어머님 산소로 가기가 쉽겠다.
‘완이 아빠야 저 삼거리에서 차를 좌측 새로 만든 길로 접어 보시게.
차는 새 길로 접어들어 서행을 하다가 내 손가락 끝을 따라서 다시 강변 비포장 샛길로 접어들었다.
이 강변은 나 어려 배고플 때 피라미, 가제, 개구리 등 간식거리를 제공해주던 간식의 보고다.
조심조심 서당 골로 오르던 차가 잔설과 진 길 때문에 더 이상 오르지 못할 곳에서 멈추자.
동생 숙이는 차 문을 열고 휭 하니 자석에 못이 딸려 가듯 어머님 산소가 있는 밭으로 향한다.
나는 차 트렁크에서 준비해온 과자봉지와 술을 꺼내면서 앞서가는 동생에게 소리쳤다.
‘야! 숙아 먼저 간다고 엄니가 맨발로 나온다냐 이...함께 가자니까..
임종도 못 본 옵빠가 가도 안 나오시더라니께...
마지막 소리는 소나무에 얹힌 눈가루와 함께 사당골 찬바람에 날린다.
가방과 옷가지들 사이로 준비한 과자봉지는 금방 찾았는데.
술이려니 생각하고 구한 봉지를 뜯다가 아연하고 말았다.
뚜껑을 열고 보니..왠 작은 드링크 병이 줄지어 나온다.
아니 복분자가...술 말고..복분자가...드링크도 있는겨?
이런 된장 맞을...아까부터.... 차안에서부터 횡설수설 하더니.
이번엔 복분자 드링크 잡고 시비를 거는 처 삼춘을 보고 조카사위는 뜨악하게 쳐다본다.
어! 그러고 보니께...저 조카사위 에게는 내가 처 삼춘 맞내.
여기저기 묘를 보니.‘처삼촌 묘 벌초하듯 한 다’는 옛말과 함께.
‘왜 웃 소 처삼촌이 넘어지기라도 했소’ 이런 우리 속담까지 생각이 났기로.
‘미안하네. 완이 아빠...내가 타국 땅을 근 30년을 돌고 돌아서 잘 몰라.
복분자 술은 더러 마셔봤지만..복분자 드링크는 오늘 처음 봐서 그런다네.
나는 언제나 이렇게 덤벙대는 것이 꼭 설 휘어 놓은 갈퀴 같다니까.
할 수 없지...드링크라도 들고 가는 수밖에.
어머님은 술 안드셨으니께 이...
이렇게 또 덜렁대는 순간에 동생은 벌써
개울건너 친구 길영이네 보리밭을 밟고 있었다.
혹시 저 영악한 녀석이...
방바닥에 깐 대나무로 엮은 베석자리 위로 따뜻하게 퍼지는 온돌의 온기를 느끼며.
엄니 양옆에 누어서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엄니의 젓을 나나씩 차지하고...가슴 건너로는
절대로 손이 넘어오지 말기로 약속하고도 슬며시 넘어오는 동생 손 때문에 엄니 가슴 위 아래로 손을
쓸어내리며 경비를 서야했던 어린 시절 생각이 머리를 스쳐. 앞서가는 동생을 따라잡으려 복분자 드링크
병을 들고 길영이 보리밭으로 냅다 뛰었다. 한참을 뛰다가 문득 그 자리에 섰다.
“어! 이런~ 어린 새싹...남의 보리밭을 이렇게 밟아도 되나.
또 금방 돌아온 생각........그렇지 옛적엔 밟아주기도 했지.
친구에게 느네 보리밭 밟아주었으니 막걸리 한 사발 달래야지.
그렇게 자문자답 중에 친구 밭머리에 서있는 동생을 따라잡았다.
‘왜 그래 뱀이 나왔냐? 동생이 뱀을 무서워 했기로 싸락눈 날리는 동짓달에 뱀 소리가 나왔다.
동생을 따라잡았다는 안도와 함께 동생의 눈길이 머문 곳을 따라가 보니...아니! 이럴 수가...
'저게 뭐야?
'뭐긴 뭐야 오빠 논이지.
'얘는 논이 어딧어?
'저기 있잖아 갈대밭.
'엥! 그러니까 저것이 엄니가 내 몫으로 남긴 두마지기 논이냐?
아니 그런데 어떻게 논 한가운데까지...
봄날 쟁기질 하던 중에 다리에 달라붙어 피 빠는 거머리가 무섭고 또 조밥 한 그릇에 허기져서
개울가에 앉아 흐르는 물을 마시며 일찍 가신 아버지를 원망하다가 피리를 만들어 불던 버들가지가
어떻게 논 한가운데로 까지 옮겨가서 내 팔뚝만 허게 몸통을 불렸냐고....어허! 상전벽해라더니...
아버님이 일 년간 투병을 하시다가 그해 눈이 제일 많이 내린 날 돌아가시고 내가 논갈이 밭갈이로
도짓소와 씨름할 때. 너무 힘에 겨웁고 생소한 일에 지쳐서 학교 보내달라고 투정을 부릴라치면.
어머님은 지금 저 잡초지 다랑치 띠 논 두마지기를 네 논 이라고 하셨다.
나는 내 논 필요 없으니 당장 팔아서 학교 보내달라고 울고.
그나마 다랑치 천수답 몇 마지기가 남은 가족들의 목줄이었으니.
내 투정을 못 들어준 어머님은 건너 무시박골 밭에 모신 아버님산소보고 눈물지었다.
그때 논둑을 부치시던 반신불수 작은아버님은 이제 90 이 넘어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병문안을 갔더니.
침침한 눈으로 날보고 '베트남 가는데 몇 시간 걸리냐고 물으셔서 그 건강에 놀랐고. 그때 군대에 가 계셨던
형님은 작은 아버님 옆 병실에 입원해 계시는데 이제 근력이 다되어서 동생이 왔는지 당신의 귀여운 막내딸이
왔는지 전혀 의식이 없으시니 또 놀날 수 밖에...이 세상을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더니.
옛말 하나도 안 틀려서 우리 집도 90넘은 영감님보다 70대 땡감님이 먼저 떨어지게 생겼다.
가뭄이라도 들라치면...
조금 쎈 바람만 불어도 휘청거리시는 수수 대 같은 어머니와, 까아만 교복에 멋진 모자를 쓰고 중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 길 건너 신작로만 쳐다보는 어린 자식...이렇게 둘이서 물동이를 이고지고 나르던 곳.
지난 가을까지 친구들과 고기 잡던 아래 강변에서 물을 퍼 담아 가파른 언덕 넘어 이고지고 온
물을 거북이 등같이 갈라진 논에 쏟으면 내 서있는 곳만 겨우 번지고 마는 그 다랑치 논.
그 당시엔 왠수가 따로 없다고 발로 차고, 밟고 모든 화풀이를 다해 대다가 결국은 돈 벌어 오겠다고 서울로
도망가게 했던 그 한 서린 서당 골 천수답. 큰 말이 나가면 작음 말이 큰 말 노롯 한다지만 이건 망아지보고
큰 말 노릇을 하라고 하니 도망을 갈 수 밖에...산에 열리는 머루와 다래는 찬 서리를 맞아야 달다지만.
나는 꽃망울이 떨어지자마자 찬 눈을 맞은 꼴이다...
그 천수답 팔아서 학교 보내달라고 투정부리던 어린 아들은 다시 돌아 왔으나.
모양은 변하여 서당 골 소나무 위의 잔설처럼 반백이 되어있다.
이제 그 누가 있어 저 잡초지를 갈아 엎을 것이며.
어느 아들이 버들가지 꺾어서 아버님 전에 피리를 불 꼬.
들판으로 변한 내 논 두마지기 앞에서 세월을 세고 있는데.
날리는 진 눈 깨비와 함께 어디서 ‘애야 밥 먹고 해라..시던
어머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온통 잿빛인 사방을 둘러본다.
드높은 월출산도 여전하고. 마을 뒤 산사도 대나무 밭 속에 고즈녁이 계시며.
마을 앞을 흐르는 강변도 변함이 없는데. 아~~~슬프도다.
여기 서당 골에 이제 아니 계신 것은 어머님 뿐이로구나.
어머님이 안 계신 고향은 포근함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나는 마음의 고향을 잃은 것이다.
변함없이 흐르는 저 강까지 자객 형가가 건넜던 강으로 보이니.
내입에서는 읊조린 소리는 역수를 건너는 형가의 노래다.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易水)는 차구나
대장부 한번 떠나면 다시 오지 못하리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돌아 온 서당골에 진눈깨비 날리는데.
한번가신 어머님은 돌아올줄 모르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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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치 천수답이 못 미더 워서인지...아니면 타국으로 출장 간 아들이 보고파서인지.
양지바른 무시박골 밭을 두고 신작로와 좀 더 가까운 서당 골 음지 밭에 묻어 달라 신 어머님.
당신의 병이 심상치 않은 것을 아신 다음부터는 '빨리 월남간 아들놈 데려오라고 소리소리셨단다.
그 놈 이라면 집을 팔 건, 논을 팔아서건 당신 병을 고쳐놓을 놈이라고...
어머님 산소에는 잔설이 남았고...앞쪽에 어머님이 재떨이로 쓰시던 알루미늄 상자가 놓여있다.
준비해온 것을 차리고 담배하나 불 붙여 드린 후. 나도 하나물고 월출산만 바라보다가
울음보 터진 동생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야! 숙아 이제 가자~그만 울어라.
너라도 건강해야 제..이제 우리 집안에 네가 아니면 누가 말벗이 있다고...
작은아버님은 병원에 계시기에 사랑채는 비어있고.
큰 형님은...의리가 좋으신 겐지 작은아버님 효도하시러 간 것인지.
같은 병원 옆 병동에 계시기에 큰 채에는 큰 형수와 큰 조카 차지다.
우리 집에서 제일 많이 배운 작은 조카 녀석이 사업한답시고 자기 형 명의로 차를 뽑고
신용카드를 남발해서 문제를 크게 만들었기로 병원에 입원하신 작은 아버님과
큰 형님 병문안 겸 작은 조카 문제를 해결하러 가족이 내려 온 것이다.
어린 조카 놈이 세상을 쉽게 보고 저지른 결과다.
작은 조카를 만나는 자리에서 한마디 했다.
'인석아 공짜는 부모님 사랑밖에 없다는걸 아직도 몰라.
惡錢은 몸에 해롭고 노력하고 땀흘려서 벌지않은 것은 오래가지 못해.
이제 네가 저지른 결과를 봐라...그 답이 여기에 있다.
한번 넘어진 돌에 두번 넘어지지 말것이며.
한사람에게 두번 당하면 그때는 너 자신을 저주해야 한다.
두번다시 똑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거라...알았제?
'죄송합니다. 작은아버님!
됐다! 가까이서 작은아버지 노릇을 못했으니 내 책임도 없다고 볼수 없고.
네가 벌려놓은 일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엿보였기로 용서 하기로 한다,
값진 인생공부 한걸로 생각하고 앞으로는 모든 문제를 밖에서 찾는 우를 범하지 마라.
년 초에 뇌 수술한 작은 형님은 고향까지 갈 근력이 안 된다 하시며
논을 팔건, 밭을 팔건 나보고 해결하고 오라 하셨으니.
내가 집안 해결사 두목으로 한마디 한것이다.
열다섯 살 때부터 성전 장에 소 사러 다니며 가장 노릇을 했으니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마는.
어째 서발작대기 휘두르면 걸리는 것이라고는 모조리 내가 돌봐야 할 곳들 뿐이냐.
나도 이제 어딘가에 기대고 싶다... 거기 누구 없소 ! ! !
그러나 나에게는 애초부터 부빌 언덕은 사치였다.
지금은 잡초지로 변한 두 마지기 내 논 처럼.
그냥 그렇게 저 잡초처럼 사는 수 밖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모든 문제를 가까이서 보고 돌보아 주던 아래 집 친구 영찬이가 진주
처가에 가고 없어서 내려간 식구 모두가 입은 채로 마을 회관에서 하룻밤 잠자리를 해결했다.
며칠 전에는 30도가 넘은 물소나라에서 살다가 그제 아침은 영하 8도의 인천에서 먹고
어제 밤은 수원 동생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잦으며 오늘밤은 태를 묻은 월출산
서편 대밭골 마을회관에서 별을 세나니... 역마살 낀 팔자는 오나가나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이다.
진주 간 친구는 처갓집 씨 암닭 씨를 말리는지 그 다음날도 오지를 않아서.
동생과 직장 나가야 할 조카 내외는 수원과 서산으로 올려 보낸 뒤 해결사 겪인
나는 더 기다리기로 하고 작은아버님과 형님 병문안을 다녀왔다.
다행이도 그 담날 친구가 해질 녘에 돌아와서 모든 일을 본 다음.
크리스마스 오후라도 가족과 함께 하고 싶어서 다음날 새벽 첫 비행기를 예약하고.
택시부에 전화하여 새벽 4시 반에 대밭 골로 나를 데리러 오도록 서로의 모빌 폰 번호를 주고받았다.
이제가면 또 언제 와볼지 나도 모르는...고향에서의 마지막 밤.
주위에서 들은 얘기가 있고 해서...형수에게 모질게 다짐을 받았다.
‘형수 아랫집에 마실 그만 좀 가세요.
형수가 아랫집에서 살다시피 하니까 친구가 옷도 못 갈아입고
특히 더운 여름이면 오지게 짜증나고 신경 쓰인다 안하요.
그리고 집에 쌀이 없어요. 왜 거기서 매번 밥을 먹어요.
이 아제가 ‘미안하다 송구스럽다’고 사죄하고 안 왔소.
형수는 낮 부끄럽지도 않소?
'그리고 남의 집에서 나만 밥을 얻어먹고 집에 아들은 밥을 먹는지 라면을 먹는지
신경을 전혀 안 써서..저 보시오 이제 겨우 30넘긴 놈이 영양실조로 손이 떨려서 국을
어렵게 먹지 않냐고요. 우리집안에 손 떨리는 내력은 없소. 90넘은 작은아버님 이시건
70넘은 큰 형님이시건 모두 병원에 계시지만 손은 안 떨린단 말이오.
저놈이 누구요..
나는 조카지만 형수에게는 열 달 배속에 담고 키워 고통 속에 낳은 귀한 자식 아니냐고요.
우리 어머님은 당신 입에 들어갈 것 안자시고. 모조리 모아다가 자식들 먹이던디.
이건 도대체가 데려온 자식도 아니고. 마을 어디에서도 형수 같은 어머니는 못 봤소.
'또 하나... 돈을 많이 쓴다 하던데 아껴 써야지요.
까지골 논을 벌고 있는 조카가 준 30만원은 어디에 썼댜?
‘아제 나 돈 많이 안 써...그 돈 2만원 쓰고 남은 돈 여기 있어’
이제껏 고개 숙이고 아제 잔소리가 이제나 끝날까 저제나 끝날까 변명거리를 찾는 중에
기회가 왔다는 듯이 얼른 속 주머니 저 안쪽에서 비닐로 말아놓은 돈을 꺼내
내 앞에 던지며 큰 눈을 흘긴다. 돈 많이 쓴다는 말에 삐진 것이다.
내 앞으로 던져놓은 만 원짜리 뭉치를 보니...어림 잡아도.
28장 치고는 그 두께가 너무 얇아보여 꺼내서 세어보니.
16장 즉 16만원 뿐이다.
어! 형수 이게 어케된겨? 16만원 뿐이 잖어.
그럼 그동안 14만원을 써놓고 2만원밖에 안 썼다고 한 거네.
그럼 12만원은 어디로 간겨? 또 다른 곳에 썼구만...사실대로 얘기해 봐요.
그래야 담에 또 돈을 드리지...어디에 썼어요?
‘아니랑께...절대로 2만원밖에 안썼당께.
'그럼 2만원 쓴 것 어디에 썼는지 얘기해 봐요.
'귤 5.000원...고기???
아니 2-3일 전에 쓴 것도 기억 못해요?
어! 그리고 이제 보니 숫자 개념이 모호하군.
이거 큰일이다...이정도일 줄이야...나는 계속 확인에 들어갔다.
'그럼 형수가 장에 가서 7만 5천 원짜리 옷을 샀으면 여기 만원짜리 몇 개 줘야하지?
'나 그런 비싼 옷 안사 아제’
'엥! 요렇게 빠져나갈려고..요런 머리는 또 어떻게 돌아간댜.
상대를 잘못 골랐지..내가 베트콩 같은 물소나라 경찰학교 교장하고 근 5연간 뜨잡이질을 했어도
살아 남은 몸이고....그라고...우리는 남이 아니지 남이라면 벌써 그만두었지...좋아요 그라믄...
2만 5천 원짜리 옷을 샀다고 합시다...그럼 돈 계산을 어떻게 해야 하지요?
........ 이런~이런~육이오가 있남.
그럼 30만원 받은 것은 확실해요? 어떻게 확인했지요? 왜 말이 없어요?
좋아요 금방 아는수가 있지...여기 남은 돈이 얼마인지 한번 세어봐요.
남은 돈을 형수 앞으로 밀어주고 하는 모양 세를 봤다.
'한나. 둘, 셋, 네, 다섯, 여섯, 야달,..아곱......
엥! 일곱은 어디가고...야달이여...
이제 보니...형수 열 개 까지도 못 세는 겨?
그러니까 상대가 30만원이라고 준 돈이 18만원 밖에 안 되도 모르는 것 아녀요?
안되면......셀줄 모르면 그런다고 해요...내가 쉽게 아는 법을 갈차 줄테니.
그렇게 10까지도 셀 줄 모르니 돈 준 사람이 30만원이라고 18만원 만 줘도 모르잖아.
그렇지? 형수 억울하지도 않어? 형님 병원에 입원한 후로 모든 사람이 속여도 모르고 살았지?
그러니 18만원 받아서 쓰고도 30만원 다 썼다 하니... 더욱 억울한 거잖아.
오메~오메! 이놈의 시상을 어째야 쓸거나...내 한탄 소리에...
형수보다 숫자가 더 어두운 큰 조카는 불똥이 자기에게까지 튈세라 슬그머니 건너 방으로 넘어간다.
이때부터 동지팥죽 윗목에 두고 형수와 반백인 시동생의 숫자놀이가 시작되었다.
자! 해보자고요~ 열 개 까지만 세면 가능해요.
내가 먼저 할테니 따라서 해봐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덜, 아홉, 열,...
그렇지요...잘 하시네...어디 그럼 혼자서 해보세요...
한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야달...일곱,..
아녀라~ 여섯 다음에 일곱이 먼저랑께.
어! 여기 귤이 열 개 있군.
여기 귤로 세어보면 가능하려나.
한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야달,..아곱,..널,
조금 낫군...그럼 여기 귤 열개가 있는데 조카하고 형수가 하나씩 먹었어요.
한 개씩 먹었으니 두 개는 뒤로 빼놓고...그럼 여기 남은 것이 몇 개 게...
얼음판에 넘어진 황소 눈으로 한 참을 귤이 뭉개지게 쳐다보더니.
다섯 개 라고 했다가 내가 뜨악하게 쳐다보니 금세 여섯 개 라 한다.
'오매 복장 터진거...어떻게 여섯 개 냐고요..남은 것 다시 한 번 세보세요.
지치고, 걱정되고, 힘들어서 조금 언성을 높이고 가슴을 쳤더니..핵 돌아서며..
“그래요 나는 못배웠은께 그래” 이러고선 두 다리 뻗고 눈을 흘긴다.
하이고! 삐지긴 그 성질을 셈하는데 보태면 구구단도 외우겠다.
가족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지만 이건 너무 힘들어.
못 배운 자기를 아제가 몰아세운다고 생각하겠지.
내 폭폭 한 심정을 형수는 얼마나 알까.
환갑,진갑지낫다고 벌써 치매가 온건가.
그나저나...새벽은 오고 나는 가야 하는데.
열까지도 못 세는 남은 두 사람은 어찌할꼬...
곰곰이 생각해보다가..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옳거니 칭찬을 하면 고래도 춤을 춘다고 했겠다.
저 허리가 절구통만한 형수를 춤추게 하면 볼만 할겨.
글 가르치고 글세를 받는 것도 아니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눈 높이를 맞추자.
끈기로써 달팽이는 방주에 도착 한 거다.
우선 긴장부터 풀어보자.
‘형수 어제는 먼 코를 그러코롬 골아서 아제 잠을 못자게 했소.
아주 뒷 창문이 형수 코고는 소리에 덜렁덜렁 합디다.
나는 저 창문이 떨어지면 어쩌나 해서 잠 한숨 못잤당께.
‘해~해~아제가 배에 쑥뜸을 떠줘서 뱃속이 편해서 그랬제.
‘맨 날 코를 골면서 시방 쑥뜸 핑계 대는 것 아녀라?
‘아녀~참말이여~밥 먹으면 속이 불편했는데.
어저께는 쑥뜸을 하고나니 편해서 그랬당께...
그라면....오늘 또 골면 어쩔 겨? 어제 뜬 쑥뜸 때문이라고 할겨?
말을 해 놓고 보니 어느 병원환자 얘기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어느 부인이 수술을 하고 회복실에 있는데 잘 생긴 인턴이 진찰을 오더란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방귀가 나온 것이다. 수술환자 방귀가 나오면 뱃속의 장기들이
제자리를 잡은 것이라서 좋은 현상인데...민망한 부인이 순간을 모면하고자 한마디 했다.
‘오마나 일 년에 한번 나오는 것이 하필이면 이때...
그런데 문제는 일 년에 한번 나오는 방귀가 눈치 없이 뽀옹~뽀옹~하고 또 나온 것이다.
어쩔 줄 몰라하는 부인을 보고 잘 생긴 인턴이 지나가며 한마디 하더란다.
‘거참 세월 한번 빨리 가는군요.)
'그것 잘 되었구먼...
여기 쑥뜸 한 봉지 드리고 갈 것이니 계속 뜨도록 하시오 이.
그라고 나가 인천 올라가면 또 보내드릴 것이구만이라.
'그라고....형수 말이 맞어라...
형수가 머리가 안 좋은 것이 아니고 못 배워서 그런겨.
시골에서 일 부려 먹으려고 형수 부모님이 글을 안가르쳤당께.
(사돈어른 용서하십시오. 사돈어른께서 할 일을 지금 제가 하고 있나니)
설마하며 누운 채 졸린 눈으로 여차 것으로 해본 소린데 당장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그렇다고 아주 반색을 한다...맨 날 글은 안 갈치고 '낭구하러 가거라.
소 깔을 베러 가라 했단다. 얼씨구~어느 마약이 이보다 더 효과가 빠를까.
자기의 억울한 사연을 제일 잘 통하는 시동생이 이제야 알아준 것이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이때 옛날 고사 하나가 생각나 웃음이 나왔기로 웃었더니. 내가 당신 말에 동의를 하여
웃는 줄 알고 아주 두 다리를 쭉 뻗고 허물어진다.
그 상황에서 나를 웃게 한 예날 고사라는 것이 이렇다.
(그 옛날에 좀 덜 떨어졌어도 신념이 강한 어느 새댁이 두루마기를 만들어서 그 사방님이 입고서
옷고름을 묶으려 하니. 그 끈을 전혀 엉뚱한 곳에 달아서 묶을 수가 없었더란다.
화가 난 서방님이 이런 것 하나 제대로 못하느냐고 새댁에게 호통을 치니.
새댁이 그랬단다. 다시 달아주면 되지 왜 화는 내느냐고.
그래! 그럼 다시 달아달라고 던져주었는데.
완성되었다 하여 다시 두루마기를 입고 묶으려하니 이번엔 옷고름을 등 뒤에 달아 놓았더란다.
하도 어이가 없어 서방님이 허허 웃자.그 새댁 왈. ‘무슨 남자가 그렇게 채신없이 가볍게
구느냐고 하더란다.조금 잘못되면 삐치고 조금 잘해 놓으면 히죽거린다나.
내가 시방 그 새댁 서방님 꼴이랑께...에고! 도솔천아.
기왕 내친걸음 아주 가는데 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이어갔다.
‘나는 큰 형님이 형수를 처음 우리집에 데리고 왔을 때 나무하러 간 형님이
월출산에서 선녀를 모시고 온줄 알았당께 그때 형수 이뻤잖어.
“해~해~해~ 머시 그래~”
좀 전에는 주전자를 걸어놔도 될 것
같은 형수 입이 금세 귀를 만나러간다...
오메! 이놈의 시상을 어쩔거나..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이거 동지 죽 먹고 긴긴밤에 아이큐 테스트 하는 것도 아니고.
또 환갑, 진갑 다 지난 노인네 테스트 해 본들 이제 어쩔 것이어.
시루는 깨졌는데 내가 미련스레 떡 쌀 담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몰것다.
아이들은 하얀 백지라서 가르치는 데로 그림이 나오고
노인네들은 여백을 찾는다는데... 이건 바늘 꽂을 여백도 없으니.
어언 앞날에 대해서보다 지난날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나이가 된 둘이
전혀 다른 생각 속에 숫자 놀음으로 밤을 새운다.
거봐..그러니까 형수는 머리가 안 좋은 것이 아니고...안 배워서 그래.
우리 다시 해보자...한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야달, 아곱, 널,
거봐 금방 잘한다...우리 형수 머리 좋다.
“해~해~해~
밤은 깊어서 뒤 산사 목탁소리도 잠이들고 벽에서 뻐꾸기가 열두번을 울 때까지
형수와 반백인 시동생의 숫자 놀이는 계속된다. 불까지 끄고 누었으니 어두워서 그러는지.
칭찬효과 덕인지...열까지는 겨우 센다.
산양을 강가까지 끌고 올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데.
내가 지금 억지로 물을 먹이려고 용쓰는 것은 아닌지 몰것다.
저녁밥 먹고 시작한 숫자놀이 결과치고는 너무 초라하니.
벼라 별 생각이 다 든다.
무신론자에게 신의 존재를 입증해 보라거나 채식주의를 맹신하는
자에게 육식의 장점을 연설하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더 어려워.
언제 이집에 동창이 밝고 노고 지리 우지지 는 날이 올까.
개미에게는 우리들의 구두 끝이 하늘의 시작이라더니.
어떤 사람에게는 1에서 10까지가 그렇게도 먼 숫자일 줄이야.
염소에게 수염이 있다고 해서 랍비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은 알지만.
사람이 평범하기도 이리 힘든 이도 있다. 평범함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준다.
병원에 계신 형님은 건강히 퇴원하기는 어렵고 나는 이제 첫닭이 울면 가야하는데.
열까지 센 것도 무슨 큰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신통해 하는 이들은 어찌할꼬.
팔을 베고 돌아눕는데 어머님 산소에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흐른다.
한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야달, 아곱, 널,
귀가에 형수의 어설픈 숫자 세는 소리가
주술처럼 들리는데 전화가 와 받아드니.
‘택시 도착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