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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 2024년 겨울호
시간과 공간과 음악의 연작 시집
― 김정환 시집, 『황색예수 2』, 문학과지성사, 2024.
맹문재(안양대 교수)
1.
김정환의 시집 『황색예수 2』는 제3부로 구성된 연작 시집이다. 각 부는 그 자체로 독립된 시집 형식을 띠면서 전체적으로 한 권의 시집을 이룬다. 따라서 시집은 전체를 읽어야 하겠지만, 각 부로 나누어 읽을 수도 있다.
시인은 시집의 서문에 해당하는 ‘시인의 말’에서 “40여 년 전 『황색예수』는 신약 위주이고 아무래도 시간적이었다”면 “『황색예수 2』는 무척 공간적이면서 구약까지 품으려 했다”라고 소개했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진술인데, 실제로 시집은 다르게 읽힌다. 시인이 공간적인 면을 의도적으로 추구했지만, 시 장르 자체가 시간적인 예술이기에 그 특성이 우세한 것이다. 그렇지만 시인이 추구한 공간적인 면은 시간적인 면과 결합 관계를 이루어 작품 세계를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모더니티를 지향하는 현대시가 공간성을 부각하듯이 시인이 추구한 공간적인 면은 작품 세계를 확대시키고 있다.
시간과 공간적인 면이 지배하는 시집에서 음악적인 면이 함께하는 점 또한 주목된다. 음악 역시 조각이나 회화나 건축 등의 공간예술과 다르게 시간 예술에 속한다. 그렇기에 시간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음악은 유용하다. 음악은 시간을 담은 시가 정지되지 않고 움직이게 한다. 음악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그에 따른 주제를 추구한다. 이렇듯 『황색예수 2』는 시간, 시간과 결합한 공간, 시간과 공간을 움직이는 음악의 관점으로 읽을 수 있다. 시간의 범주에는 시인의 일상과 역사, 그리고 죽음이 들어 있다.
2.
시집의 제1부는 “하나의 장면인”이라는 제목을 달고 프롤로그, 제1장, 제2장, 제3장,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에는 「드라마 없는 일기日記 문학사」 외 6편, 제2장에는 「지네」 외 7편, 제3장에는 「상실의 경제와 음악의 번역」 외 6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1부는 「Prologue : Bagatelles, 생애적― 주찬권(1955. 3. 18∼2013. 10. 20)」로 시작해서 「Epilogue : Bagatelles, 베토벤 작품 번호 126」으로 끝맺는다. 음악적인 면이 시집 구성에서 고려된 것을 알 수 있다. 바가텔이란 ‘하찮은 것’이란 뜻을 가진 단어로 피아노 등을 위한 자유로운 형식의 소곡을 나타낸다.
프롤로그에서 소개된 주찬권은 1980년대의 록그룹인 들국화의 멤버로 활동한 가수이자 드러머이다. 그는 2013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돌연사하였는데, 시인은 그의 급사 소식에 “물이 가열찬 슬픔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의 “완주(完走)가 가장 중요한 연주”를 응원한다. “악어들에게 속절없이 동료를/사냥감으로 내주는 누 떼”의 상황을 떠올리며 위로하기도 한다. 결국 시인에게 주찬권이라는 음악가는 죽음으로 말미암아 소멸한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연주하는 존재로 남아있다. 시인은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살아 있기를 기대한다. 그가 위대한 음악을 남기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길에 최선을 다했기에 그의 삶을 인정하는 것이다.
시인은 에필로그에서 소개한 바가텔 베토벤 작품 번호 126에서도 유사한 의미를 제시한다. 베토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 곡은 안타깝게도 오늘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피아니스트들도 공연의 주요 레퍼토리로 올리기보다는 앵콜곡 정도로 연주한다. 베토벤 스스로 최고 만족스러워한 곡이지만, 소품으로 인해 대작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바가텔 126번의 진가를 발견하고 “베토벤도 베토벤의 베토벤도 없”지만, “평생의 모든 것이/보이는 것만 있다”라고 가치를 매긴다. 비록 베토벤은 지금 살아 있지 않고 곡들도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만, 그가 추구한 음악에 대한 열정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고 여긴다. 내면을 향한 명상과 대립을 넘어선 화해를 추구하는 바가텔 곡의 주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추구한 주제는 제1장의 작품들에서도 나타난다. “마이너라도 음반사의 社는 史”라고, “성실한 음악 드라마가/독일 파시즘을 낳지 않”(「드라마 없는 일기日記 문학사」)는다고 한 데서 볼 수 있다. 「근조謹弔가 날씬한 고대」에서는 아버지가 묻힌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성묘 간 이야기와 정훈희 <꽃길> 및 윤정하의 <나비 하나>를 연결하고, 고향 마포 기찻길 옆에서 기차를 못 올라타고 놓치는 꿈을 아직도 꾸면서 “아주 먼 옛날 SP/음반”을 떠올린다. 소련의 피아니스트로 테크닉과 레퍼토리를 갖춘 20세기 최고의 연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Sviatoslav Richter)가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과도 연결한다. 「국산 1호― 현시원에게」는 국산 1호 선풍기, 국산 1호 흑백텔레비전, 렘브란트의 그림 <돌아온 탕자>를 소개하면서 드뷔시의 피아노 곡 <베르가마스크>, 라베의 피아노곡 <밤의 가스파르>를 연결한다. 현시원은 『디자인 극과극』(학고재, 2010)을 낸 저자이다. 이 책에서는 환경미화원의 근무복과 아폴로 11호의 우주복을 한 예로 들고 있듯이 두 사물을 디자인 차원에서 비교 분석해 새로운 면들을 발견하고 있다. 「치매 계산」에서는 록그룹 들국화의 가수 전인권, 소설가 박민규, 성석제, 김영하, 시인 김영승, 문학평론가 이광호 등을 시간과 연결한다. 「괴산에서 너나들이 1박 2일―홍승권에게」에서는 죽음을 “안온한 혼동”으로 인식한다. 홍승권은 1996년 삼인출판사를 설립해 28년 정도 운영하다가 다른 이에게 넘기고 충북 괴산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출판인이다. 시인은 시간과 공간에 있는 위의 사람들을 “명반 중에서 명반”(「도자기 필통과 옥수수 속대 빨부리」)이라고 생각한다.
제2장에서도 제1장의 흐름이 이어져 “지네가 음악을 듣는다”, “시간과 지네 사이/음악이 있고/지네의 꿈은/음악에 미치고 시간에 못 미친다”(「지네」), “눈먼 오르간 연주는 투명의 막이다”(「전체의 선택」)라고 묘사한다. 또한 “피아노 연주는 노고의/아름다운 연장”이고, “여자와 바이올린이 한 몸이”고, “저음에 익숙한/여자와 첼로도 한 몸인 식으로/바이올린과 여자와 첼로가 한 몸”(「내가 살려고 짓는 집」)이라고 인식한다. 「장미의 연대年代」에서는 미국의 샘 앤 데이브의 데뷔 앨범 <Hold On, I'm Comin>, 김치켓의 <검은 상처의 블루스>, 펄시스터즈의 <님아>, 김추자의 <늦기 전에> 소개하면서 “부드러운 영혼에 구질구질한 인생의/탄식은 그러나 한 백 명의, 한 백 명이/테너이자 소프라노이자 바리톤이자 베이스/검고 청정하고 높고 낮다”라고 포용한다. 「Viking Portable Library Dante Design」에서도 “온갖 바이올린으로 거칠고 하나의 바이올린으로 따스한/자장가”를 연결한다. 「미로 활성과 동그라미 등식等式」에서는 “즉흥 음악으로 사라진 출중한 선생과 제자 들”과 <피아노 소나타 29번 Op. 106 ‘하머클라비어’>와 베토벤을 소개하면서 “완강하고 긴, 완벽한 죽음”과 “만년의 베토벤을 내내/망치질했던 죽음”을 연결한다.
「과거와 가족의 소송」에서는 38년 만에 긴급조치 9호 위반 사건이 무죄로 선고받았으나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죄인이라고 여기고 악몽을 꾼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 함몰되지 않는다. “내륙으로 올수록 어두운 산들, 아무리 크고 깊어도/멀리서 무섭거나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어떤/품이다, 푸근하고 엄정한, 수천 년 생활을” 느낀다. 화장실에서 듣는 “바이올린 솔로가 연주하는/한국 가곡 나른”(「내륙內陸으로― 이영철과 이병창에게」)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음악 인식은 제3장에서도 볼 수 있다.
피아노 롤은
예술론 없는 마르크스의 한계를
인기투표 전자 개표 방식으로 극복하려는
클래식 유튜브 믹스와 달리
회전과 정반대 시간의
각인이 있다. 초기 전기 축음과 달리
잡음이 없지. 정확하지 않은 바로 그 점의
‘결정적’.
옛날은 옛날 건축과 차원이 약간만 다른 건축이다.
잡음이 가구에 속하지. 피아노가 음악 무덤 아니라
음악이 피아노 무덤 같다.
내 선택은 양차 대전 사이 어떤 때는 목숨 건
하루살이 한밤중이다. 한 인간한테 인간들의
시대가 묻어나는. 피아노 롤 녹음 음악 짧고 오래전 오래된
시간이 전집이다.
―「상실의 경제와 음악의 번역」 부분
위의 작품에서 화자는 바이올린 연주자 정경화(1948∼)를 소개하면서 “피아노 롤은/예술론 없는 마르크스의 한계를/인기투표 전자 개표 방식으로 극복하려는/클래식 유튜브 믹스와 달리” “잡음이 없”다고 말한다. 화자는 그 점을 결정적인 것으로 보고 피아노는 음악의 무덤이 될 수 없다고, 오히려 “음악이 피아노 무덤 같다”라고 여긴다. 화자는 그 음악을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시대와 함께하는 존재로 삼는다. “시간의 전집”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겨울 나그네>, <유정천리>, 황금심, 손목인 등을 소개한다. “죽음의 통곡은 짧고 죽음의/후회가 길게 이어지는 생이 겨울 나그네라는 듯이/죽음이 콜록”거리지만, 죽음의 신화가 모든 것을 죽임으로 만들지 않고 “죽음이 모든 것을 죽음의/신화로 만”든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자세로 “독도는 죽어도 우리 땅이고/원래 기모노, 다도, 스모에는 관심이 없었으니 나는/『만엽집』 여기서 읽어도 되겠”다고 자신한다.
「실낙원, 그 후의 그러나― 박현수&노원희 부부께」에서는 캐럴 소리를 “지금도/크리스마스 아기 예수 성탄을 축하하는 노래가/지금은 아기 예수 죽음을 물리치지 않고 위로하는 노래”라고 평가한다. 생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의 세계가 아무리 위대한 문명을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아직 이승의 식민지”이므로 “아무리 개판이라도 여기가 정품”이라고 이승을 선택한다. 모든 음악 연주가 “죽음의 연주 아니라 죽음이고 재탄생”이라고 보는 것이다. 박현수는 20세기 민중생활사연구단에서 편찬한 『한국민중구술열전』을 총괄한 인류학자이다.
「장례 걱정」에서는 “유튜브 음악이 삭제되고 삭제되면 저작권 없는 불쌍한/소비에트 출신 연주자들 음악만 남게 되나?”라고 하듯이 음악과 정치의 장래를 걱정한다. 「그때는 김수영문학관」에서는 “오르간 음악도 없이 정통을 세우는/그 드라마 밖에서 모든 회의가 지겨울밖에 없다”라고 음악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3.
제2부는 “현대·구약·도약”이란 제목을 달고 “서(序)”를 포함해 51편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시집 구성의 목차로 “서”와 연결되는 “결”이 있는데, ‘결(結)’로 볼 수도 있고 독립된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제목에서 ‘구약’이 눈에 띄는데, 시집의 서문에서 “『황색예수 2』는 무척 공간적이면서 구약까지 품으려 했다”라는 진술이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이전의 이스라엘 역사와 하느님의 구원 약속 등을 담았는데, 하나님과 백성들이 거주하던 성전을 강조해 예수 자신을 성전으로 삼은 신약성경과 차이가 있다. 구약이 신약보다 장소를 중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면은 「양재 숲― 천지창조」에서 “절규를 모면하느라 음악의 유머가 견디는/부조리가 일상의 『창세기』보다 더 본질적”이라고 한 데서 확인된다. 부조리한 현실을 견디게 하는 음악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르던 그들이 아직도 부르는/<The House of the Rising Sun>/이 팝송 명곡이다”(「정착― 카인」), “모든/생명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이어질 것 같은/음악의 생애가 더 먹먹하다”(「음악의 생애― 남은 자들」), “도시 설계가 있는 뜻의 이상적인/시작과 끝이 민요 편곡이고 민요 아니라/편곡이 젖과 꿀로 흐른다”(「민요 편곡― 가나안 정복」)라고 기술한 데서도 볼 수 있다. “남녀 높낮이가/절묘하게 튀는 보컬 앙상블 같다./딱히 반목이니 억압이니 할 것 없이 그냥/아버지라서 굉장하던 아버지들”(「마포 아파트― 야곱 만년」)을 소개한 데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EI Condor Pasa― 아담과 이브」에서 가수 김상희가 사회를 맡은 <대한늬우스와 함께하는 ‘리사이틀 인생쇼’>에 출연한 쟈니브라더스가 부른 <빨간 마후라>를 소개하면서 “시간이 낳을 뿐 탄생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이 없는 글로도 시간의 역사를/쓸 뿐 시간의 탄생을 쓸 수 없다”라고 말한다.
시간 의식에는 당연히 삶의 진행으로 이어지는 늙음과 죽음이 동반한다. 정말로 좋은 사이는 같이 죽을 준비를 조금씩 사이좋게 해나가는 사이가 아니라 “조금씩/사이좋게 죽어가는 사이”(「백년해로 골목― 알파에서 오메가」)라고 진단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현악오중주/장르가 가장 늦은 만년에 이르는 것”으로 “죽음이 삶을/응축”(「잡지 소설― 카인과 아벨」)한다, “죽음이 인간의 문법이다”(「겹치다― 노아 바벨탑」), “젊은 날의 추억이 늙어갈수록 축축하다”(「판화가 사망 30주기 회고전― 롯」)라는 데서도 볼 수 있다.
독도니 정신대니 평화헌법 개정 문제로 아베 신조 그냥
욕하는 재미에 빠져 내가 노련한 국제정치보다
훨씬 더 늙어버렸다.
정치인들 욕하는 게 애국인 마당에 나도 발을 담갔으니
참상을 국내 정치보다 훨씬 더 악화, 협소화하는 식으로
자존심을 어영부영 개개며
훨씬 더 비굴하게 쪼그라들었다.
아라파트가 그런 식이었지만 그로서는 그게
해도 해도 안 되는 처지의 바닥 것들이 어떻게든 버티려는
작전이자 순교인 면이 있었지.
현실이 늘 나의 경험보다 크고 넓고 깊고 미래가
현실보다 더 비정해서 미정 아니라
미정이라서 비정하고, 어쨌거나 젊은것들
앞날 창창하게 젊고 앞날 창창하기에 있는 것들인데
나 같은 것이 무시하면 안 된다. 미래 전망과 직결된
정치판에서는 정말 더욱 안 된다.
노동의 월 화 수 목 금 토,
진리가 영영 발굴되지 않고
죽음이 영영 발견되지 않는다.
역사만 발견된다.
― 「시간의 발견― 사해문서」 부분
위의 작품에서 화자는 “독도니 정신대니 평화헌법 개정 문제” 등의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만, “욕하는 재미에 빠져”버릴 뿐 늙어버리고 말았다고 자평한다. “정치인들 욕하는 게 애국인”이라고 여길 정도로 감정적인 접근에 불과해 고도로 복잡한 정치를 이해하거나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 시인으로서 정보를 획득하고 전략을 제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지만, 정치에 영향받는 정도가 젊은이들에 비하면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정치판에서는 물론이고 “노동의 월 화 수 목 금 토”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고, 죽음이 전개되는 것을 바라볼 뿐이라고 토로한다.
그렇지만 시인은 시간을 포기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세계 인식을 포기하고 자신의 시간에 적극성을 띤다. “첫눈에 반하려면 한 천 년, 첫 키스/하려면 다시 한 천 년 길들여져야 한다”(「눈먼 남편― 레베카」)라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이 바로 엑소더스일 때까지/살아야 한다”(「화해― 요셉 옷」), “여행 이야기가 아무리 많이 파생돼도 과부의/역사가 이어지지 않는다”(「세속의 탄생― 사무엘 혼령」),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현재행이고/번역되지도, 완료되지도 않는다”(「인간의 풍경― 미켈란젤로 만년」)라고 인식한다. 또한 “아직도 여생이 너무 길어 보인다”(「언어의 자궁― 마리아 노년」)이다, “모든 후배가 그보다 더 해야/후배이고 살아 있는 후배이다”(「광야의 절벽― 후배」), “현재 시간이 이제까지 가장 완벽한 순서이다”(「그 후를 뒤돌아보다― 스데반」), “산 사람한테는 평생 친한/이들이 계속 살아 있는 것만 한 위로가 없다”(「옛날식 육개장― 변용」), “죽어서 우리가 더는 알 수 없지만/더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그러나 그것도 살아서 일이다”(「결― 색」)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4.
제3부는 “비켜서는 섬”이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제2부와 마찬가지로 구성의 목차로 “서(序)”와 “결”이 있다. 서와 결을 포함해 총 52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제3부에서도 시간과 공간과 음악이 작품 세계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죽음 의식이 눈길을 끈다. 죽음은 현재에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시간이다. 따라서 죽음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일 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진다. 자신의 존재를 지키고 있으면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희망과 열정이 살아난다. 상주사심(常住死心)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간 김수영 시인처럼 온몸으로 밀고 나아가는 존재자가 되는 것이다.
시인에게 죽음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시인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가요무대>에서 <제비처럼>을 부른 윤승희가 출연한 모습을 보다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죽음을 떠올린다.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하다 죽은 내무반/동료들 찢겨나간 사지들이 내 고정의/뼛속 아니라 흐르는 핏속에서 서걱서걱/모래로 남아”(「추석」)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그 많던/동료가 하나씩 둘씩, 결국 모조리 죽은 것을/오디세우스가 어떻게 그리 꾸준히 견딜 수 있었는지”(「40년 만에 비― 김애란에게」)라며 궁금해한다.
시인은 죽음에 관한 자신의 의문에 대해 역설적으로 시간이 답해준다고 믿는다. 그리고 음악이 그 실행을 이끈다고 여긴다. “『창세기』가 평균 수명 2백 년을/훌쩍 넘겼지. 백 년 2백년 단위로 아귀가 안 맞아서/비극적인 역사가 앞으로 한참 더 이어질 것이”지만, “음악이/여전히 허술해 보이면서 새로울 수 있다”(「정말」)라고 믿는 것이다. 그리하여 “숭숭 뚫린 언어의 구멍마다 죽음의 냄새 그리 참신할/수가 없다. 다행이야.”(「불과」)라고 받아들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계속 줄어들지만 “계속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있을 것”(「고양」)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죽음의 초대장 없다.
축사 초대장이 있다.
죽음의 세미나 없다.
시상식 이전 세미나가 있다.
모종의
사각死角도 가까스로 완성된다.
초대장 행선지 예술가의집은 45년 전 입학했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본부, 일제 때 지은 건물
그대로이다.
낡는 것은 페인트일 뿐
‘이미 불멸’이라는 말이 가능하다는 듯이.
―「결」 부분
위의 작품에서 화자는 모교의 초대를 받아 행사 장소로 찾아가는 동안 죽음을 생각한다. 자신이 유한한 존재자로서 행사장에 가는 길이 죽음을 향하는 시간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화자는 그 생각에 함몰되지 않고 “죽음의 초대장 없다”라고 단언한다. 그 대신 “축사 초대장이 있다”라고 말한다. “죽음의 세미나 없”고, 그 대신 “시상식 이전 세미나가 있다”라고 여유를 나타내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가 마치 초대장의 장소인 굳건한 건물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화자는 “‘이미 불멸’이라는 말이 가능하다”라고 느껴지는 건물 앞에서 자신의 현존재를 확인하며 음악처럼 움직인다.
시인은 12살 때부터 사망하기 3개월 전까지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으로 “이탈리아풍 오페라 작곡”(「뒤 패 소견」)에 몰두한 모차르트와 같은 삶의 자세를 가지려고 한다. “생의 냄새가 시체보다 더 코를 찌른다”(「심오한 과장」)라고, 김연경 선수가 배구 경기에서 온몸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길길이 뛰는 생명의/기쁨이 여성/아름다움을 능가해버린다”(「파충류」)라고 느낀다. 결국 “겹치는 사랑에 대한 끝내 마칠 수 없는 연구가 바로 사랑”(「까닭과 후렴」)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김정환 시인은 『황색예수 2』에서 “내 손자의 미래를 지켜보는 일이/내 유년의 미래를 지켜보는 것과도 같”(「철」)다는 시간 의식으로 작품의 주제를 심화시킨다. 아울러 연속적인 서사의 시간에 공존하는 공간의 실체를 결합해 작품의 세계를 확장시킨다. 시인은 그 과정을 “우리가 시간보다 우월한/음악의 순서를 모르고 멸종할 확률이 높다”(「전망 형식」)라는 마음으로 이끈다. 시간과 공간의 견고한 경계선을 음악으로 무너뜨리고 서로를 결합하는 것이다. 결국 시인의 시들은 사회학적 상상력을 펼치며 부조리한 이 세계에 역동적으로 맞서는 것은 물론 미래를 포용한다.
<맹문재(孟文在) 약력>
시론 및 비평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지식인 시의 대상애』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주』 『만인보의 시학』 『여성시의 대문자』 『여성성의 시론』 『시와 정치』 『현대시의 가족애』 등이 있다. 안양대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