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이 높고 험준하며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한랭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특히 곤륜산맥에는 식생이 전혀 없는 고산한랭 지역이 있다. 1월 평균기온은 0℃이하이며 7월에도 대부분의 지역이 20℃를 넘지 않는다. 또한, 일교차가 크고 강풍이 부는 날이 많다. 특히 짱베이 고원은 연평균기온이 -5℃안팎이고 연평균기온 10℃안팎이고 연평균강수량 1,000mm 가 넘는 지역이 많다.
포달랍궁(布達拉宮) '수직 베르사이유'라고도 불리는 포달랍궁은 동서의 폭이 400m이고 주루(主樓)의 높이는 117m이다. 내부는 13층으로 성묘, 예배당, 달라이 라마의 거실,침실,사무실,도서관 등 수백 개의 방이 있다. 각각의 방들은 금,은,청동,보석,자기,그리고 코고 작은 20만 개에 이르는 불상과 극채색의 벽화로 가득차 있다.포달랍은 티베트에 불교가 퍼진 후 붙은 이름이다. 불교도가 언덕 위의 궁전을 불타의 산=성지로 믿었던 것에 의해 산스크리트어의 성지를 의미하는 단어 '포달랍'으로 불리게 되었다.
대소사(大昭寺)와 팔각가(八角街) 인민로를 따라 동쪽으로 걸어가면 팔각가에 이른다. 이곳이 라사의 유일한 상점가로 세공품, 일용잡화, 융단, 티베트 민예품 가게 등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많은 노점이 항상 활기로 가득차 있다. 팔각가의 중심인 대소사는 6세기 중엽 티베트에 왕조를 건설한 송첸,감포 왕이 문성공주가 가져온 석가모니불울 모시기 위해 지은 절로 순례자가 몇 개월씩 들여 방문하는 곳이다.
노르부링카 인민공원 안에 노르부링카가 있다. '보석의 정원'이라는 의미를 지닌 노르부링카는 18세기 달라이 라마 7세에 의해 만들어져 역대 달라이 라마의 피서지로 이용되어 왔다. 지금은 시민공원의 일부로 이용되고 있다.
색랍사(色拉寺) 색랍사는 라사 시가지 북쪽 8km지점에 있다. 일찍이 철봉사와 더불어 불교대학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두 절 모두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있다.
철봉사(哲峰寺) 라사 시가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12km떨어져 있는 철봉사는 색랍사와 마찬가지로 바위산 비탈에 건설된 웅대한 절이다. 버스가 라사 시내로 들어가기 조금 전에 왼쪽으로 산의 품에 안긴 마을처럼 흰 건물들이 보인다. 그곳이 티베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규모의 대승원 철봉사로 일찍이 6,000명에서 1만 명을 헤아릴 정도로 많은 승려가 이 절에 있었다. 이 절 경내에 있는 간덴궁에 몽골 아르탄칸의 후예인 달라이 라마 4세가 살았기 때문에 몽골계 승려가 많았다고 하나 지금은 총8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색랍사와 더불어 불교대학 역할을 해온 철봉사는 1416년 총파카가 그의 우수한 제자에게 지시해 세웠다고 한다.
갈단사 1409년 총파카가 세운 절로 그는 이곳에서 입적했다. 그의 유해를 담은 황금탑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으며 라마교도의 신앙을 모았던 대단히 격식있는 절이다. 그러나 문화혁명기에 많이 파괴되어 버렸다.
용왕담공원(龍王潭公園) 포달랍궁 뒤에 있는 공원으로 안에는 연못이 있어 보트도 탈 수 있다. 이 연못은 달라이 라마 5세가 포달랍궁을 지을 적에 판 흔적이라고 하며 안에 있는 신전은 지하의 용신 등을 달래기 위해 달라이 라마 6세가 세운 것이라고 전해진다.
청진고사 청진고사는 이슬람교 사원이다. 청진은 인도 서북쪽 캐시미르 지방을 뜻하는데 뜻이 바뀌어 그 지방에서 온 이슬람 교도를 가리키고 있다. 외관은 불교 사원같지만, 내부에는 이슬람교식의 탑이 있는데 인도 등지에 있는 이슬람 탑과는 취향이 상당히 다르다.
강자 강자는 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마을로 1904년 영국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해 티베트 인민이 싸운 영웅 마을이다. 시내에는 옛날의 궁전과 영국군과 싸웠을때의 성채, 1414년부터 10년 걸려 만든 백거사가 있다. 백거사에는 강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탑이 있는데, 이 탑은 9층으로 문이 108개나 되며 77개의 불전이 있다.
일객측 일객측은 티베트 자치구에서 라싸 다음가는 제2의 도시이다. 라싸에서는 약 330km 떨어져 있고 해발 3,800m에 위치해 있다. 산을 등진 대사원으로 안에는 높이 26.7m인 중국 최대의 청동불이 안치되어 있고,지금도 수백명의 승려가 수행하고 있다. 또한, 1989년에 서거한 판촌 라마 7세의 미라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