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골목 안 풍경>(1962)은 제목부터 정겹게 다가온다. 골목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크고 작은 애환(哀歡)이 살갑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다지 크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은 공간에서 오밀조밀 모여서 살아가는 민초(民草)들의 일상은 새로운 것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한 것은 더욱 아니다.
박종호 감독은 21세기 20년대 한국의 관객과 독자에게는 생소한 인물이다. 그는 1927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하여, 북간도 용정에 자리한 영신 중학교에 다녔다. 그러니까 우리의 영원한 청년 시인 윤동주와 10년 터울의 인물이며, 용정에서 중학교에 다녔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해방 이후 월남(越南)한 그는 1958년 <아름다운 악녀> 대본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는다.
영화 인생을 시작한 박종호의 작업은 주로 각본가와 결부된다. 그러다가 1959년 <비 오는 날의 오후 세 시>로 본격적인 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두 번째 영화 <그토록 오랜 이별>의 뒤를 이은 그의 세 번째 영화가 <골목 안 풍경>이다. 35살 먹은 패기만만한 신예 박종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된 영화가 <골목 안 풍경>인 셈이다.
1980-90년대에 <벽 속의 부인>과 <망각 속의 정사> 등 몇 편의 영화를 연출한 것을 끝으로 그는 한국 영화와 인연을 접는다. 박종호는 1980년대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하다가 2012년 85세를 일기로 타계했기 때문이다. 모두 49편의 영화에 이름을 올린 그는 39편의 영화를 연출함으로써 과작(寡作)의 감독으로 남아있다.
영화의 시공간과 사건
1962년 6월 28일 개봉한 <골목 안 풍경>에서 우리는 1960년대 초 서울의 뒷골목과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난다. 영화에는 특정한 시기가 나오지 않지만, 4.19나 5.16과 같은 혁명과 군사쿠데타라는 역사적 전변(轉變)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따라서 <골목 안 풍경>은 아주 소소하고 달콤하며 시큼한 눈길로 당대의 세상을 바라본다.
영화에서 사건은 성북구청 징세과 고(高) 주사(김승호 1917-1968)와 그의 아내(조미령 1929-)와 어머니 (정애란 1927-2005), 그리고 아홉 남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고 주사와 갈등을 빚고 충돌하다가 그런 갈등뿐 아니라, 복잡한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이가 고 주사의 동생이자 문학청년 영택(최무룡)이다.
고 주사의 매제인 황호성(김진규)과 그의 아내 (이빈화), 그리고 황호성과 인연을 맺은 다방 마담 은미 (김지미), 그녀의 후배 동료인 미스 홍(남미리)과 송 사장 (장동휘), 징세과장 등이 영화를 풍성하게 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을 엮어내는 핵심적인 기제는 다산(多産) 혹은 남아선호 또는 무자식 같은 출산 문제와 남성의 바람기와 폭력 등이다.
관객들이 예나 지금이나 <골목 안 풍경>을 평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까닭은 극악무도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21세기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희대의 악녀나 무도한 인물이 <골목 안 풍경>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세대 이전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의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맨얼굴이 영화 전면에 부각(浮刻)되기 때문이다.
다산과 남아선호
고 주사의 아침 출근길은 심히 고단하다. 배냇저고리를 입고 할머니에게 업혀 있는 막내딸을 빼놓으면 하나같이 그에게 손을 벌리기 때문이다. 고 주사는 아이들의 이름까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자 속에 감춰둔 비상금까지 탈탈 털리고 만다. 고 주사는 다산을 아내의 탓으로 성토한다. 조선시대의 풍속이 여전히 도저(到底)하게 드러나는 풍경이다.
고 주사의 직속상관인 과장에게도 딸이 다섯이나 있다. 그렇지만 그의 아내는 임신 중이다. 어찌 됐거나 아들 하나 보고자 하는 부부의 마음 씀씀이로 인해 여섯 번째 아이의 출산이 임박해 있다. 1960년대에도 지독하게 이어져 온 남아선호 사상의 실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번이 끝이라고 주장하는 과장이지만, 과연 그럴 것인지 궁금하다.
고 주사의 누이동생과 부부인연을 맺은 황호성의 상황은 그들과는 정반대다. 그와 아내는 결혼한 지 수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자식이 없다. 그의 아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애를 써보지만,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산부인과 의사(김희갑)는 그녀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신하며, 남편을 병원에 데려오라고 하지만, 호성은 막무가내로 거부한다.
아이를 특히 사내아이를 못 낳으면 집안의 대(代)가 끊긴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조선의 여인들이 칠거지악(七去之惡)의 담지자로 몰렸던가?! 칠거지악은 조선시대에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허물을 말한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것,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 행실이 음탕한 것, 질투하는 것, 나쁜 병이 있는 것, 말이 많은 것, 도둑질을 하는 것 등을 가리킨다.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사악한 허물이란 말인가?!
칠거지악의 평가 기준 가운데 객관적인 지표로 활용할 수 있는 항목은 무자식과 질병, 도둑질 세 가지뿐이다. 시부모에게 순종 여부, 음탕과 질투 그리고 다언(多言)은 평가자의 마음에 따른 것으로 매우 자의적(恣意的)이다. 그런 이유로 며느리를 쫓아낼 수 있던 가혹한 유교의 나라와 작별함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던가?! 하지만 자식 없는 것과 아들 없는 것을 싸잡아 아내이자 여자 탓으로 돌리는 세태는 1960년대에도 변하지 않았다.
빗나간 사랑과 가정
<골목 안 풍경>의 서사는 양분된다. 그 하나는 고 주사 내외의 일상이고, 그 둘은 황호성 내외와 은미를 둘러싼 사건이다. 전자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사건과 이어지지 않지만, 후자는 언제나 그랬듯 관객들의 구미에 꼭 맞는다. 이것에 대해 <골목 안 풍경>의 각본을 직접 쓴 박종호 감독의 거센 반발이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영택은 소설가 지망생이지만 동시에 영화 각본 작업도 병행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가 완성한 각본을 읽어본 영화감독은 크게 실망한다. 그가 말하는 좋은 시나리오의 근간은 남녀의 빗나가고 엇갈린 사랑, 그러니까 수많은 한국인이 열망하고 열광하는 이른바 ‘불륜’에 기초한 멜로드라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택은 이것에 반발하여 원고를 찢어버린다.
은미의 복잡다단한 과거사는 낱낱이 밝혀지지는 않으나, 송 사장의 말속에 대강이 드러난다. 술집을 전전하던 은미가 문득 송 사장 눈에 띄어 다방 마담으로 오게 되고, 마침내 그의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송 사장의 마음은 언제부턴가 미스 홍으로 기울어 버리고, 은미는 가눌 길 없는 배신감에 호성을 연모하고 의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호성은 자신의 남성성에 전혀 문제없음을 믿어 의심치 않고, 오히려 아내의 가임(可姙) 능력을 회의하면서 밖으로 돈다. 자신의 외도가 오로지 아내의 불임에 있다고 확언하며 아내를 공박하는 그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극치를 구현한다. 툭하면 아내에게 손찌검하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호성을 두둔하고 공감하는 인간이 다산의 대표자 고 주사다.
오늘날 유부남 유부녀의 빗나간 사랑 근저에는 이른바 자유연애 혹은 육체적 쾌락과 자발적인 일탈이 자리한다면, 두 세대 이전의 가정 풍속도에는 ‘불임과 무자식’이란 명분이 있었던 셈이다.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남편은 자유롭게 외도해도 무방했던 저 아득한 시대의 윤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풍속의 전례 없이 신속한 변화를 <골목 안 풍경>은 입증한다.
돈의 새삼스러운 위력
사랑과 함께 성인 남녀를 괴로움으로 인도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돈일 것이다.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몸서리쳐지는 ‘태평양전쟁’ 그리고 잠시 찾아온 해방공간과 엄혹한 6.25 한국동란, 이승만과 자유당의 피맺힌 학살과 수탈의 1950년대. 그런 시공간에서 서서히 뿌리내리면서 이 나라 백성을 사로잡은 자본주의의 가공(可恐)할 힘이 영화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송 사장이 구현하는 나쁜 자본가의 형상은 1960년대 평균적인 한국인들이 사유했던 보편적인 모습이라 여겨진다. 김승호가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 <마부(馬夫)>(1961)에서 그런 것처럼 돈 많은 지주나 자본가들은 뭔가 사악(邪惡)하고 이기적이며 탐욕스러운 인물들로 그려진다. 그런 이유로 그들 때문에 적잖은 사람들이 고통받아야 한다.
송 사장은 투명한 세정(稅政)을 방해하는 악질적인 탈세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탈세하기 위해 그는 세리(稅吏)들의 약점을 잡아 돈으로 매수한다. 송 사장의 그런 마수(魔手)에 고 주사가 보기 좋게 걸려든다. 평생 청렴하게 살아온 고 주사는 어머니의 급작스러운 맹장염 발병과 고만고만한 아이들의 학비 때문에 감당이 불감당인 처지에 몰린다.
차용증 없이 송 사장의 돈을 빌려 쓴 고 주사를 상대로 송 사장은 온갖 협박을 일삼는다. 자신의 이력을 송두리째 갉아먹는 송 사장 등쌀에 고 주사는 사직서를 남기고 표표히 사라져버린다. 과연 그는 살아서 돌아올 것인가, 가족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 주사의 고통이 가중되던 시점에 돈에 얽힌 문제로 은미 역시 심대하게 괴로운 지경에 처한다.
은미와 육체관계를 맺으면서 다방 소유권을 넘겨준 척했던 송 사장은 이내 본색을 드러낸다. 이번에는 미스 홍을 유혹하면서 똑같은 수법을 쓰는 송 사장. 그는 ‘여보’ 하며 매달리는 은미를 매몰차게 비난하며 그녀의 과거를 들춰내고 발길질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돈도 사랑도 아이도 잃어버리는 비운의 여인 은미를 가까이서 바라보면서 냉랭하게 등 돌리는 호성!
두 세대 전의 여인들과 가정
호성의 아내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마침내 농촌으로 돌아간다. 쫓겨나지는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남편을 떠나 홀로 칩거에 들어간 것이다. 남편의 주먹질과 모진 막말과 냉대(冷待)를 이기지 못하고 열차 편으로 쓸쓸하게 서울을 떠나야 했던 아내의 심경은 어떠했을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이 나라 세태풍속의 변화가 너무도 우심(尤甚)한 까닭이다.
오늘날 저런 여인처럼 남편에게 버림받아 가정을 떠나는 한국인 여성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여성관은 그동안 상당한 진척을 보인 것이 분명하다. 가장이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가정폭력은 여전하지만, 희생자들을 구원하는 여러 방향의 사회적 안전장치는 날로 견고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선진 사회로 진입하는 명징(明澄)한 방증(傍證) 아니겠는가?!
다만, <골목 안 풍경>에서 불편한 점은 문제를 일으킨 남편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실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사자성어도 있지만, 아내의 형상이 너무도 옹색하고 수동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아쉬움이 크다. 남편의 주먹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아내가 남편을 원망하며 집 떠나고, 남편이 미안하다며 찾아오니 그의 품에 와락 안기는 풍경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회적 수동성으로 동여매진 아내와 여성들의 고단한 1960년대를 용케도 견뎌낸 이 땅의 수난자들이 일궈낸 21세기 20년대 가정의 풍속도와 사회적 풍경은 얼마나 다른가?! 시간과 더불어, 전혀 이질적인 공간들과 대면함으로써 여성들 스스로 그리고 일부 남성들의 신속한 태도 변화가 아주 많은 것을 변화시켰음을 실감케 하는 영화가 <골목 안 풍경>이다.
너무도 손쉬운 문제해결 방식
실종된 지 닷새가 넘도록 고 주사의 행방은 묘연하다. 설핏 자살을 꿈꾸던 그가 홀연히 삶으로 돌아선다. 하지만 수중(手中)에 돈 한 푼 없는 그는 갈 곳이 없다. 직장에서는 뇌물 받는 비리 공무원으로 낙인찍히고, 집에서는 아이들과 아내를 버린 무능한 가장이 되어버렸으며, 동생에게는 가혹하고 폭력적인 형이 되어버린 고 주사의 출구는 어디인가?!
<골목 안 풍경>에서는 쾌도난마(快刀亂麻)의 단칼로 문제를 해결한다. 작가 지망생 영택이 100만 환 현상금이 걸린 소설 부문에 당선하는 것이다. 그 돈이면 고 주사와 송 사장의 갈등과 담배 가게 문제는 물론 아이들의 학비와 생활비까지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여기 덧붙여 영택은 강인하고 의리 있으며 심지 곧은 애인을 가족에게 인사시킨다.
이런 식으로 <골목 안 풍경>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법으로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도이칠란트 속담을 이보다 멋지게 구현할 수 있을까?! 모두가 만족하는 결론에 도달한 영화가 유일하게 포기하는 인물은 과거 행적이 어수선한 은미 한 사람으로 귀결된다. 그 시대의 윤리와 도덕이 감당할 수 없던 인물이 은미였으므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60년 전 한국 사회가 바라봤던 시대의 윤리와 도덕이 어디까지 진척되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군사쿠데타 세력이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골목 안 풍경> 같은 영화가 어떤 구실을 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은미 같은 숱한 당대 여성들의 슬픔과 절망과 좌절을 돌이켜보면서 심란(心亂)하고 처절했던 1960년대를 아련한 눈빛으로 성찰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