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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도)☞
(지도원본 - http://blogfile.paran.com/BLOG_168223/200910/1256200550_08진행도.jpg)
한강기맥 8구간
2009.10.18 (일)
산길 : 비솔고개~용문산~농다치
거리 : 17.9km
구간거리
비솔고개~1.5~싸리재~6.7~용문산~3.6~배너머고개~3.4~유명산~1.0~소구니산~1.7~농다치.......(17.9km)
Cartographic Length = 21.1km / Total Time: 08:15
농다치에 내려서면 한 구간을 남겨놓게 된다. 오늘 산경표(21頁)의 용문산과 마유산을 넘으면 남은 지명은 마현, 월계천, 족석도 셋이다. 용문산(일명 미지산)은 예나 지금이나 한 이름이고, 말이 놀았다는 馬遊山(마유산)은 현재의 유명산이다. 용문산에서 갈라진(分2岐) 비유산은 현재의 백운봉으로 보인다.
龍門山 (一名 彌智 楊根東三十里 砥平北二十里 分二歧)
馬遊山 楊根北二十里 ┗- 飛踰山 (東來 楊根治在西十里)
馬峴
月溪遷
簇石島
용문산은 경기도에서 네번째로 높은 산으로, 군사시설이 정상부를 차지하고 있어 일반인의 접근이 안되다가 지난해말 양평군과 군부대가 협조하여 정상을 개방했다고 하나, 온전한 개방이 아니라 군부대 울타리 밖에 따로 정상부 형태를 갖춰놓았다. 실질적인 정상은 아니라도 그나마 산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당국의 배려로 보인다. 대구 팔공산의 비로봉 울타리도 조금씩 허물어지고(개방)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면 산꾼들의 지위가 조금씩이나마 상승됨을 느낀다. 더불어 국립공원지역의 마루금도 온전히 열리는 날을 기대해 본다.
용문산의 정상(당국에서 조성해 놓은)은 울타리 남쪽이다. 북진이든 남진이든, 용문산 정상부 울타리를 좌우 어느 한쪽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우리는 북쪽으로 돌다보니 그 정상마저 못보고 지났다. 서쪽 농다치에서 용문산부대 정문으로 접근시는 별도의 안내문이 없지만, 동쪽 비솔고개에서 접근하면 산림청의 이정표가 친절하게 북쪽으로 안내를 하는데, 어진백성이 이를 그대로 따르면 정상은 구경을 못하게 된다.
유명산은 산이름으로 유명해진 산이다. 최신(1/25,000) 지형도상에 지명이 표기는 되어 있으나 고시지명은 아니다.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는 마유산(馬遊山)으로 기재된 산이다. 옛 문헌에 나오는 이름이 현재에 사라진 거야 유명산만 그런게 아니다.
유명산이란 이름은, 1973년 엠포르산악회가 국토자오선종주를 하던 중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산을 발견하고. 당시 유일한 여성대원이었던 진유명씨의 이름을 따 유명산으로 명명했다는데, 이런 내용을 처음 접하고는 몇가지 의문이 생겼다.
마유산임을 모르고 새로 발견했다고 하는 거야 그럴 수 있다 치고, 국토중앙자오선종주라는 용어와 일개 산악회에서 명명했다고 해서 어떻게 모든 사람들 입에 그렇게 오르내리고 드디어는 국가발행 지도상에 표기가 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자오선이란,
어느 임의의 지점에서 북극과 남극을 잇는 선이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지도위에 직선 자를 대고 수직으로 한 줄을 주욱 그으면 그게 자오선이다. 중앙자오선이란 글자 그대로 우리나라 중앙을 통과하는 자오선을 말함인데, 우리나라 중앙에 대한 정의 또한 명확치 않다. 측량법상 측량좌표의 원점을 위도 38도와 만나는, 경도로 서부(125) 중부(127) 동부(129)세 곳으로 정하고 있는데, 동부와 서부는 바다 위를 지나므로 제외하고 중부원점일 경우는 동경127도이나, 엠포르산악회에서 잡은 자오선은 127도30분이다.
요즘으로서는 지도에 일직선을 긋고 종주하겠다는 얘기에는 실소를 금치 못하겠지만, 1972년에 1차 종주를 했으니 당시로는 백두대간이나 정맥 등 마루금 개념이 없을 때이다. ‘산경표’가 이우형님의 손에 들어온게 1980년이고, 언론매체에 백두대간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 한 것이 1986년이니 10년도 더 이전이다.
현재의 마루금 개념에 대입하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지도상에 일직선이라니, 상상을 해보자. 물을 건너고, 산 능선이 아닌 횡단면을 가르고... 물론 두부 썰 듯이, 그야말로 칼같이 일직선으로 진행이야 되겠나. 유명산 역시 127도30분에서 서쪽으로 1km가량 벗어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시각이 아닌 1972년 당시로 돌아가서 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당시의 계획서를 보면 순천만 안지부락에서 출발하여 충남 대덕군 동면 세천리, 그리고 경기도 가평을 거쳐 압록강변까지 총 764.5km의 루트를 작성하고, 2차에 걸쳐 순천만에서 가평까지, 그리고 가평에서 압록강까지의 북한지역은 통일 후로 유보해 놓았으니 얼마나 장대한 계획이며, 그 계획대로 남한지역 400여km를 완주해냈다는 것이다. 요즘의 우리처럼 오만 리본들이 길안내를 하고, 넘쳐나는 선답자의 산행기에, 심지어 나처럼 GPS 화면 들여다보며 졸졸 따라가는(!) 그런 차원과 비교를 해보면 감히 상상이 안되는 일이다.
다음으로,
유명산이 유명세를 타게 된 연유는 당시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가 일조를 했기 때문이다. 종주대의 진행상황이 신문에 연재가 되면서 유명산이 유명해 지는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에 일부에서 옛이름인 마유산을 찾아내고 당국에 복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냈지만, 이미 유명산 이름을 쓰는 상호나 간판 등의 명칭에서 보듯이 세간에 알려질대로 알려진 상황이라 해당 자치단체의 지명심사위원회에서도 쉽게 결정을 못하는 지경이란다.
어쨌든, 향후에야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만, 당시 27세의 진유명씨(현재 63세)로서는 자신의 산(!)이 생겼으니 얼마나 가슴벅찬 일일까. 더불어 국토자오선종주를 계획하고 실행한 엠포르산악회 당시의 산선배님들께 무한한 존경을 표한다.
(시간표)
03:45 비솔고개
04:30 도일봉 갈림길
05:49 △735.2m
06:29 천사봉
07:30 용문산 울타리
07:58 군부대 정문
09:08 배너머고개
10:30 유명산
11:16 소구니산
11:55 농다치
비솔고개 (非率 380m)
03시쯤 도착한 버스가 시동을 끄니 차안이지만 추위를 느낀다. 너무 일찍어 한숨 더 자고 출발하자했지만 추워서 잠이 오질 않는다. 벌써 날씨가 이렇게 되었나. 바지며 방풍자켓이며 동계모드로 바꿀 계절이다.
2차선 아스팔트가 지나가는 345번 지방도로. 아무리 새벽이라지만 한 시간 가량 지체하는 동안 차 한대 지나가지 않는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밤하늘의 별빛을 받으며, [싸리재1.5km] 이정표만 확인하고 도일봉으로 향하는 임도로 들어간다.
이 임도는 기맥과는 전혀 무관하게 도일봉 허리를 감으며 아랫마을 향소리로 가는 임도다. 임도로 들자말자 우측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있고, 모두들 씩씩하게 올라간다. 계단 위쪽도 마찬가지로 경사가 고개를 바짝 쳐든다. 추운날씨에 일부는 무장을 단단히 했지만 얼마못가 하나씩 거풀을 벗어낸다. 싸리봉까지 고도 500을 올린다.
도일봉 갈림봉
비솔고개에서 50분 걸려 도일봉 갈림길이다. 도일봉(×864)은 0.93km라고 이정표가 알려준다. 산림청이 아닌 양평군의 이정표로 도일봉과 중원산을 안내한다. 남쪽으로 가는 단월면과 용문면의 경계를 따라 도일봉, 괘일산을 지나고 광탄리에서 흑천으로 들어가는 굵직한 산줄기가 분기한다.
싸리봉(×810)
서쪽으로 수십미터 가면 조금 더 높아 보이는 싸리봉이다. 현 25000지형도에는 이 봉우리에 ‘싸리재’라 표기해 놨다만 싸리재는 서쪽 ×775봉과의 사이의 안부가 맞겠다. 옛지도(1918년)를 보면 荻峴(적현 : 억새 적) 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억새가 싸리로 바뀐셈이다. 단월면에서 용문면으로 들어간다.
싸리봉 정상을 지나자 말자 아래로 곤두박질이다. 선두에서 내려가다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도로 올라온다만 맞는 길이다. 흡사 계곡으로 처박힐 것 같은 비탈길이다. 100m 가량 떨어지고 중원리 하산길이 있는 안부, 여기가 싸리재로 보인다. [중원산5.12km]
×775봉은 힘들지 않게 오르고 잠시 가다가 또 떨어진다. 초장부터 기복이 심하다. 중원산까지의 거리가 표시된 이정표가 이어지고 중원계곡 갈림길 안부를 지나 다시 올라간다. [중원산2.07km]
05:18 중원산 갈림길
이정표에 표기된 거리가 뒤죽박죽이다.[중원산4.14km] 직전 중원폭포 안부에서의 거리보다 더 멀어졌다. 중원산은 여기서 2.2km가 되니, 아마도 이 이정표와 직전 안부의 이정표가 서로 바뀐듯하다. 올라서면서 직진하면 중원산(800.4m)이고, 기맥은 우측 뒤편으로 꺾인다.
05:49 △735.2m
기복없는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704봉에서는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꺾이고 오래된 삼각점을 만난다. 아직은 어두워 주위능선이 식별이 안된다. 산행 두 시간째다. 잠깐 내린다음 긴 오름이 기다린다.
06:27 헬기장
거의 1000m 되는 능선에 올라섰다. 한 여름이면 땀께나 뺐겠지만 쌀쌀한 아침 날씨에 바람마저 솔솔 불어주니 땀 흘릴 겨를도 없고 물도 전혀 땡기질 않는다. H자가 크게 그려진 헬기장에 올라서고 기맥은 좌측이나 지척에 있는 천사봉으로 간다.
×1003
나비모양의 크지도 작지도 않는 자연석에 [해발 1004m 정상입니다, 천사봉] 이라 새겨져 있다. 산음자연휴양림에서 세운 정상석인데 뒷면을 살펴보니 재미있는 숫자가 발견된다. 정상석 설치일자가 2004.10.04.으로 2004에 1004, 앞면 해발표기까지 하면, 천사가 넷이나 된다. 해발고도에 일부러 정상석 올리는 날을 맞춘것이다. 지형도상 고도는 1,003m 이다.
해드랜턴을 말아 넣고, 발길을 되돌려 헬기장으로 내려서면 앞쪽으로 시설물을 인 용문산이 우뚝솟아 보인다. 내려서면서 우측이 옥천면이다. 헬기장을 지나 곧장 뻗는 능선을 따르다가 문득 왼쪽 비탈로 떨어진다. 다 내려선 안부에 [용문산1.9km] 산림청 이정표가 나타났다.
펑퍼짐하게 넓은 안부부터 단풍길이 시작된다. 날이 밝아 이제사 단풍색깔이 시야에 들어오는건지도 모르겠다만, 지난 차에만 해도 푸른색이었는데 전부 노랗고 빨갛게 물이 들었다.
07:01 문례재
억새 수북한 넓은 안부. 여 어드매쯤 용문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텐데 쉬 보이지 않는다. 리본을 꺼내 [고도898m] 적어 달았다. 잠시 올라가다가 [용문산0.9km] 이정표를 보고, 용문산 가서 밥을 먹자 기대를 해본다. 이 이정표에서 왼쪽으로 희미한 길이 보이는데, 용문봉과 용문사로 가는 길이다.
완만하던 산길이 갑자기 솟구치며 ‘비인가자의 접근을 금한다’는 양철판을 지나면 정면으로 철조망 울타리가 나타난다. 군부대 영역의 시작점이다. 올라선 자리가 멋진 조망바위다. 지나온 산길을 먼데까지 볼 수 있는데 해가 떠오르는 시점이라 역광으로 씨커멓기만 하다.
07:30 철조망 팬스시작
아무 생각없이 우측으로 가리키는 [배너미고개4.3km] 이정표를 따라 울타리를 북으로 돌아간다. 이 때만 해도 사진으로 본 용문산 정상석을 곧 만나리라, 그리고 아침을 먹자 했는데 가도가도 철조망이다. 도중 몇군데는 올라서기가 쉽지 않은 아슬아슬한 곳도 있다만 철조망에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 따라간다.
용문산을 남쪽으로 돌아가려면 팬스에서 왼쪽으로 도는게 아니라, 팬스 만나기전 아래쪽에 ‘비인가자 출입금지’ 양철판 직전에서 왼쪽 갈림길을 살펴야 했다. 나는 보지 못했는데, 뒤에 오던 하동댁은 불식간에 왼쪽으로 들어가 용문산을 남쪽으로 돌았다. 결국 제대로 길을 찾았다는 사람은 정상석을 못만났고, 알바라고 한 사람은 정상석을 만난던 것이다.
용문산(龍門山 1,157m)
용이 드나드는 문인 용문산. ‘산경표’에는 일명 미지(一名 彌智)로 기재되어 있다. ‘미지’는 ‘미리’의 옛 형태이고, ‘미리’는 ‘용’의 방언(경상, 제주)이다. ‘용’의 옛말인 ‘미르’와 관련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양평군은 용문에 의지하고 있는 곳”이라고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도 용문산으로 불려졌음을 알 수 있다.
용문산은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53m), 국망봉(1167m)에 이어 네번째로 높아, 북쪽 북한강과 남쪽 남한강, 멀리는 인천 앞바다가 보일 정도로 사방 100㎞가 막힘없이 조망되는 천혜의 요새이기도 해, 삼국시대부터 6·25까지 격전을 치른 전략요충지다.
가도가도 정상석은 없고, 개 짖는 소리 요란하더니 군부대 정문에 이른다. 추워서인지 초병들은 초소 안에서 창문을 통해 내다볼 뿐이다.
뒤편 울타리 끝에서 군부대 정문까지 1.3km에 30분 걸렸다. 나중에 여러기록들을 살펴보니 군부대 정문 가까이 새로 설치된 팬스는 이보다 훨씬 아래쪽에 있던 것을 위로 올렸단다. 민간을 위해선지는 알 수 없지만 아래로 보이던 군부대의 축구장 바깥쪽으로 울타리가 있었다고 하니 그나마 조금 수월해진 셈이다. 군부대를 남쪽으로 돌면 1.9km가 나온다.
“이노무 정상석은 어디로 간게야~”
정상석은 남쪽 용문사에서 올라온 쪽 어딘가 있는 것을 알아채고는 허탈하지만 별수 없는 일이다. 그것 찾으러 울타리를 한바퀴 돌 수는 없는 일이고, 정문에서 임도따라 내려가 헬기장처럼 펑퍼짐한 봉우리에서 아침상을 편다.(~08:30)
가야할 유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다 보인다. 돌아보면 용문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상에 유별나게 볼록솟아 눈길을 끄는 백운봉과 그 뒤로 남한강이 시야에 들어온다. 백운봉은 용문산 남쪽 끝에 위치한 바위 봉우리로 하늘을 찌를 듯한 자태로 솟아오른 산봉우리의 모습이 마치 알프스의 마터호른 같다하여 경기의 마터호른이라 불린다... “카더라~”
새로 떨어진 낙엽이 하마 두툼하고, 울긋불긋 꽃대궐로 차려입은 단풍길로 내려간다. 수레길 흔적이 남은 뚜렷한 길이라 흥은 더해진다. 여기서 왼쪽(남)으로 깊게 패인 골은 용천계곡 또는 함왕골인데, 고찰 사나사(舍那寺)가 있어 사나사계곡으로도 불린다. 완만하게 내려앉으며 배너머고개까지 2.4km에 40분간 짙은 단풍길에 묻혀 만추의 분위기를 맘껏 누린다.
09:08 배너머고개 (630m)
차선 구분없는 아스팔트 도로다. 이른시각 임에도 도로변에는 여러대 차가 주차해 있고 [오프로드 체험장]에는 수십대의 4륜 오토바이(ATV)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저거 빌려타고 유명산에 올라 가보까?”
넌지시 물어보니, 요금은 코스별로 3~5만원인데 지맘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게 아니고, 안전요원이 이끄는대로 함께 다녀야 된단다. 우리 스타일은 아닌가보네~
차단기가 있는 임도 입구에 잠깐 쉬고 있는데 ‘배너미산장’ 가게문이 막 열린다. 커피 석잔 시켜놓고 다리 길게 뻗어본다. 산장 안을 잠깐 둘러보니 ‘박통께서 14년간 드시던 고양막걸리’도 있고 사진도 여러장 걸려있다. 언뜻 눈에 띄는 탤런트(선덕여왕에 미실의 아들)와 주인 아줌니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어 연예인도 다녀간 모양이냐 물었더니, “아들~” 이란다.
1회용 봉지커피 한잔에 2천냥, 막걸리 한병에 4천냥... 이 막걸리를 차에 싣고 유명산 정상까지 가서 파는데, 거기서는 5천냥... “비싸면 안먹으면 그만이고~...”
지난달에 먼저 지나간 객꾼과 뚜벅이는 여기서 두시간을 노닥거리다 갔다는데, 매상께나 올렸지 싶다.
(배넘어고개 산장)
임도따라 올라간다. 뺀질뺀질하고 너른 길로 걷다보니 △668.6 삼각점봉은 관심사항도 아니다. 10여분 진행하니 광활한 억새밭이 펼쳐지고 그 사이로 오프로드용인지 임도길이 여기저기로 갈라진다. 너른길도 있지만 가능한 마루금을 따르자며 비탈로 오르니, 영화촬영 세트장으로 썼던 초가집이 있는데, 우리같은 사람들 하루 묵어가도 될만하다. 언젠가 조령에서 태조 왕건 집에 하루 묵었던 기억도 있다.
뒤돌아보면 용문산은 웅장한 요새처럼 올려다 보인다. 우측으로 흘러내리다가 우뚝 솟은 백운봉, 그 능선 끝자락은 남한강으로 빠진다. 양평 시가지 앞을 흐르는 한강물이 보이는걸 보니 이 기맥도 조만간에 한강물에 빠지겠다.
임도따라 이리저리 돌다가 봉긋하게 솟은 봉우리에 올라가니 지붕도 날아간 채 부서지고 있는 산불초소가 있다. 잣나무 조림지를 빠져 내려서면 왼쪽 뒤에서 이어온 수렛길이 있는데, 대부산(743.6m)으로 가는 길이다. 대부산까지는 500m 가량 되는 거리라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다녀오겠다.
조금 지난 지형도를 보면 ‘대부산농장’이란 표기가 있다. 예전엔 고랭지 채소밭이었는데 채소밭이 철수한 자리에 오프로드 쟁이들이 그 바톤을 이어받은 걸로 보인다. 패러글라이드 이륙장에는 하늘로 뜰 채비를 하는 사람들, 초등학생까지 동반한 가족 바이크팀, 오프로드 하는 연인들에다 우리같은 산꾼들까지, 유명산 비탈에는 다양한 종류의 레져가 함께 벌어진다.
유명산 (×864)
다소 이른 시각임에도 얼마나 복잡한지 정상석을 끼고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배너미산장에서 출장 나온 막걸리도 전을 펼쳤다. 한잔에 3000원, 한병에 5000원이다. 아이스케키 통도 보인다. 뒤쪽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올라오는데 유명산휴양림을 통해서 올라온단다.
산림청에서 갖다놓은 유명산 정상석 앞에서 마유산이 어떻다는 얘기는 그야말로 마이동풍이 될지도 모르겠다만, 양평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옛이름 찾기사업 또한 결과가 주목된다. 농다치를 넘는 37번 국도명 제정에 가평군(유명산로)과 양평군(마유산로)이 대치한 상태이고, 양평문화원에서 제시한 자료들도 만만치 않다.
양평문화원
마유산은 조선시대 내내 제주도 등지에서 공출된 말을 유사시에 활용코자 방목했던 군사 시설지역으로 마유산 아래지역에 ‘마골’이란 마을이 있었고 마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곳곳에 말과 관련된 지명이 있을 정도로 양평지역사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유산(馬遊山) 명칭이 수록된 옛 문헌으로는, 동국여지승람(1486) 전국읍지편찬(1899) 대동여지도 산경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동국여지지(1656) 여지도서(1759) 경기지(1842), 대동지지(1863) 기전읍지(1894) 양근군읍지(1899) 등이다.
내림길에 앉아 배낭에 남은 먹거리를 다 털어 냈다. 선두도 보이지 않지만 후미 역시 어디쯤 오는지 짐작도 안간다. 서두를 필요가 전혀없다. 자전거를 밀고 오르는 꼬맹이 등을 밀어주기도 하고 오가는 사람 구경에 시간 가는줄 모른다.
농다치로 가는 억새밭 사이로 내려오니 가평에서 농다치로 오르는 도로가 그리 멀어뵈지 않는다. 오늘도 변함없이, 산으로 오르는 사람들의 물결에 우리는 거꾸로 내려가고 있다.
소구니산 (×801m)
유명산 자락에 붙어있어 독립된 산으로 보기엔 다소 어색하다만 나름대로 산이름을 가졌다. 소쿠리처럼 생겼다고 소구닌가, 땀을 한 소쿠리 쏟아야 오른다고 소구닌가. 우리야 위에서 내려왔으니 땀 뺄 일도 없으나 아래 동막마을에서 오르면 땀깨나 빼겠다. 정상석 앞쪽으로 내려가면 동막이고 기맥은 뒤쪽이다.
정상석 뒤로 몇걸음 가면 뒷봉이 더 높아 정상석을 잘못 놓았나 싶기도 하다. [선어치고개1.6km]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다. 그대로 지나 3분가량 더 가면 봉우리를 앞에 두고 길은 왼편으로 갈라진다. 군계를 따라 앞봉을 그대로 넘으면 선어치로 가는 길인데 마루금 좋아하는 몇몇이 그대로 넘어 갔다는 후일담이다. 기맥은 왼쪽 내림길로 [농다치입구 2.0km] 작은 팻말이 걸려있다.
선어치(仙於峙) 갈림봉
하늘이 서너 치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선어치(서너치), 어떤 신선이 남한강에서 고기를 낚아 설악면 장락으로 가던 길에 고개를 넘던 중 갑자기 고기가 살아나서, 즉 선어(鮮魚)가 되어서 소구니산을 넘고 유명산 뒤의 산으로 날아가 내려앉았다고 하며, 그 후 고기가 내려앉은 산을 어비산(魚飛山)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설따라 삼천리에 오만 유래가 다 들린다.
농다치로 내려앉는 능선길에 단풍이 산행 막바지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느린 걸음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매 감탄사를 뱉아낸다.
660.6m (△양수475)
벌목으로 자빠진 소나무 둥치가 삼각점을 보호하고 있다. 색감조은 빨간 단풍이 발길을 붙잡는다. 10분 후 깨끗한 헬기장을 지나면 차소리 요란스레 들리더니 이내 고갯마루 비탈위에 선다
농다치(416m)
양평에서 설악으로 넘어가는 37번 국도로 교통량이 꽤 많은 편이다. 설악산은 속초에 있고 설악면은 가평에 있구나. 특이한 이름의 고개에 역시나 유래가 있다.
조선 중기 양평군 신복리에 최씨 성을 가진 마을 향리가 고개 넘어 가평군 방일리에 사는 박씨에게 무남독녀 외동딸을 시집보내게 되었다.
혼수로 딸이 태어날 때 심었던 오동나무를 베어 솜씨 좋은 목수에게 부탁하여 농을 제작해 농속에 이불과 살림살이를 챙겨서 머슴인 돌쇠의 지게에 지어 보냈다.
아씨를 짝사랑하며 숱한 밤을 가슴앓이 해오던 어린 머슴 돌쇠는 고개를 넘으며 짝사랑 해온 여인에 대한 사랑의 표시인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연인의 해코지인지 지고 가던 오동나무 농을 길이 비좁다는 핑계로 길 옆 바위에 쿵쿵 부치며 눈물과 콧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운반하였다. 뒤따라오던 돌쇠 아버지가 보다 못해 “얘야, 농 다친다! 농 다친다!”하고 주의를 준 것이 농다치고개라는 향토명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1927년 발행된 옛지도를 보면 농다치는 위의 유래와 달리 장롱을 뜻하는 농(籠)이 아니라, 고개를 뜻하는 농(隴)의 ‘隴多峙’로 표기돼 있다. 이름을 보고 유래를 만든건지, 한자를 잘못 만든건지는 모를 일이다. 고갯마루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중미산(仲美山 834m)이다.
고개 양쪽으로 포장가게가 여러집 있다. 잠시 앉았는 동안 오토바이 무리가 얼마나 지나가는지, 지나가면 그냥 조용히 갈 일이지 요란은 어찌 그리 떠는지, 귀가 아파 못있을 지경이다. 오토바이 족들에게는 인기 있는 도로인 모양이나 우리같이 두발로족에게는 피곤할 뿐이다.
(농다치)
첫댓글 형님 1,3주 지맥이었나요? 2.4주인줄 알았는데..
국토자오선 종주는 경도 몇도를 가르킵니까? ...........자오선종주란게 실제 가능합니까? 호수를 지날때는 땟목이라도 타고 가는지요?
그분들(Empor산악회)은 '국토중앙자오선'으로 127도30분을 잡았습니다...그게 국토중앙이 맞는지는 모르겠고요...자세한 산행기가 없어.. 대청호에서 헤엄을 쳤는지, 뗏목을 탔는지는...당시 산행대장은 작고하셨고, 진유명씨를 만나봐야..ㅎㅎ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가지셨군여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글을 잘쓰셔서 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은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