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국립공원을 다녀와서!
한류를 만들어내는 장본인인 한 젊은이가 도를 지나친 쾌락을 쫓다가
전세계에 퍼져나간 공연문화 정보문화 음식문화 등 전체 한류(韓流)에 탁한
오물(汚物)을 끼얹어 씻을 수 없는 누를 끼치고 있고 국제적 상거래의 영향도
없지 않지만 국내 경제의 흐름이 안좋아서 민생이 어려워지고 있고 국내 부동산
경제도 과도한 규제로 매기(買氣)가 극도로 악화되어 중산층이 허물어지고 있는 상태
이고 물속에 있는 핵잠함에서도 날려보낼 수 있고 내국(內國)에서도 발사하여 8000km거리
까지 발사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중인 북한이 비핵화회담을 한답시고 모든 분야가 최강국
인 미국을 상대로 간계책동(奸計策動)을 해대니 세계 11위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위험해
질 것같은 시대의 징후를 보이는 것 같은데 연 3년째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아 물부족이
심각한 생태여서 북한에는 식량부족으로 그 옛날 농경 시대에나 겪던 춘궁기(春窮期)가
시작되어 김정일 정권시대 300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던 소위 그들이 말한 고난의
행군시대보다 더 험난한 즉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탈북루트를 꼭꼭 막아논
상태라서 오도가도 못하고 안에서 굶어 죽게 생겼다는 소문들이 조금씩
세어나오고 더군다나 북한의 작년 농사가 대흉작이었다니 지금
남한 사람들이 맞이한 시대의 징표는 무엇인지 한치 앞도
가늠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2019년3월17일 일요일 인터넷 카페 "5060아름다운세상"
산행동호회에서 원정산행지로 정한 충청남도 공주시에 소재한
국립공원 계룡산 남매탑 삼불산 관음봉까지 촬영한 사진을
게시(揭示)합니다..
계룡산국립공원(鷄龍山國立公園)
총면적 65.335㎢로, 공주시에 42.45㎢, 계룡시에 11.9㎢, 논산시에
2.12㎢, 대전광역시에 8.86㎢가 각각 걸쳐 있다. 차령산맥 중의 연봉인
계룡산은 예로부터 오악(五嶽) 중의 하나인 서악(西嶽)으로 꼽혀왔다.
1968년 12월 31일자로 경주·한려해상과 함께 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주봉인 천황봉(天皇峰:845m)에서 연천봉(連天峰:739m)·
삼불봉(三佛峰:775m) 등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의 볏을 쓴 용과
같다 해서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한국 4대명산
중 하나로 일컬어왔으므로 주변에 백제 유적과 고찰·명승이 많아 환상
(環狀) 관광지로서도 이상적이다. 계곡마다 소(沼)와 폭포가 절경을 이루
고, 삼국시대부터 큰 사찰(寺刹)이 창건되어 동쪽으로는 신라 경덕왕 때
회의(懷義)가 창건한 동학사(東鶴寺), 북서쪽으로는 공주군 계룡면 중장
리에 위치한 갑사(甲寺), 또한 남서쪽에는 계룡면 양화리에 신원사
(新元寺)가 삼림 속에 자리잡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종교취락인 신도안
[新都內]이 위치하여 한때 토속신앙을 비롯한 신흥종교·유사종교가 이곳
을 중심으로 크게 일어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계룡산국립공원에는 지정문화재 9점과 비지정문화재 10점 외에 사찰 22
개소가 있다. 대체로 키작은 나무로 형성된 계룡산국립공원의 삼림지대는
자연경관이 뛰어나 수려한 산봉이 15개, 계곡이 7개소, 폭포가 3개, 이름
난 동굴 5개소가 있다. 4연봉 외에도 서쪽의 용문폭포, 동쪽의 은선폭포,
갑사의 구곡(九曲), 동학사 계곡 등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계룡산 청량사지 쌍탑(鷄龍山淸凉寺址雙塔)
백제 멸망 후, 어느 남매가 이곳에서 수도(修道)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계룡산 남매탑(오뉘탑)이라 불리게 되었다. 5층탑과 바로 그 뒤의 7층
탑이 오누이처럼 나란히 서 있는데 5층탑은 부여 정림사지(定林寺址)
5층석탑과 흡사한 백제양식이다. 단층 기단 위에 세운 탑신(塔身)은
우주(隅柱:모서리 기둥)를 세우고 기둥 사이에는 판석(板石)을 세운
다음 그 위에 두꺼운 판석 2단을 올려 옥개석(屋蓋石) 받침으로 하였고,
낙수면(落水面)을 널찍하게 잡았다. 5층 옥개석은 완전하지 않으나 그
위에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가 올려져 있다. 7층탑은 5층탑과는 달리
신라양식을 따랐다. 탑신은 l개의 돌이며 우주를 새기지는 않았다. 옥개석
도 1개의 돌이며, 낙수면 하부의 받침은 2단으로 되어 있어 둔중하다. 1층
옥개석 밑에는 다른 돌로 1단의 받침을 괴었다. 낙수면 네 귀의 전각부
(轉角部)의 곡선은 전형적인 고려양식이다. 7층 옥개석의 받침은 1단으로
처리되었다. 이와 같이 쌍탑의 하나는 백제양식을, 다른 하나는 신라
양식을 따랐기 때문에 대조적이다.





















삼불봉(三佛峰)
계룡산의 연봉(連峰) 가운데 하나로 해발 775.1m이다. 삼불봉이라는
명칭은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형상이 세 부처의 모습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남쪽의 천황봉과 쌀개봉에서 시작되는 계룡산의 주능선
에 해당하며, 편마상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에 신선봉과 장군봉
이 있고, 서쪽에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420년에 창건된 갑사
(甲寺)가 있으며, 남동쪽에 724년에 창건된 동학사(東鶴寺)가 있다.
남쪽으로 능선이 이어지며, 북쪽으로는 수정봉을 지나 금강에 이른다.
계룡산국립공원에 속하여 등산객이 많이 찾는 봉우리 가운데 하나이며,
특히 겨울에 눈이 내리면 설경(雪景)이 아름다워 '삼불봉 설화(雪花)'라
부르며 계룡팔경(鷄龍八景)의 제2경으로 꼽는다.
출처:(두산백과)






















































































































관음봉에 올랐으면서도 밧데리 소진으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아수움을 삭이며 하산하였습니다.
공주 계룡산성(公州 鷄龍山城)
계룡산의 연천봉·관음봉·쌀개봉으로 연결되는 능선과 계곡에 축조된
외성(外城) 그리고 외성의 남문지로 추정되는 곳을 둘러싼 사다리꼴
의 내성(內城)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성의 둘레는 3500m, 내성의
둘레는 850m이다. 성벽은 비교적 잘 다듬어진 일정한 크기의 성
돌을 이용하여 쌓았고, 자연 암반이 있는 곳은 그대로 성벽으로 활용
하였으며, 성돌 사이사이에 깬돌을 쐐기돌처럼 채워넣어
견고하게 쌓았다.
외성의 남쪽 부분과 내성의 북동쪽 부분에 문지(門址)의 양상이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다. 성벽은 이미 대부분 붕괴된 상태이지만
남문지로 추정되는 곳의 성벽은 비교적 양호한데, 너비는 약 3m이다
. 내성 문지는 자연 경사면에 석재를 덧대어 보강한 것으로 보이며,
평면상으로는 약간 교차된 형태를 띤다.
이 산성은 계룡산 정상부에 가까운 깊은 산 속에 축조된 것이 특징이며,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의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산성 규모에 비하여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산성의 위상을 잃어
가는 상태이다. 신원사에서 연천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를 따라 약 1시간
정도 가면 남문지로 추정되는 곳에 다다른다.
강소희 노래
1. 뻐꾹새 슬피 우는 마을,
언덕길 고개 마루.
서럽게 눈물 뿌려 이별하든 그 사람,
그리워 눈물짓네.
지금은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사는지,
영원히 못 잊겠네.
그리워서 불러 봐도, 메아리 서러워라,
뻐꾹새 우는 마을.
2. 뻐꾹새 슬피 우는 마을,
언덕길 고개 마루.
오늘도 찾아 왔네.
내 가슴의 그 사랑 그리워 한숨 짓네.
그 사람 멀리가도, 변치 않는 내 마음,
영원히 못 잊겠네.
목이 메여 소리쳐도, 메아리 서러워라.
뻐꾹새 우는 마을.
2019-03-18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