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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개인적으로 올 2월은 정말 바쁜 달입니다. 3월 9일 대통령 선거 때문이죠.
점자형 선거 공보물 제작한다고 혼이 쏙 빠지게 분주했어요. 또 USB 데이지 선거 공보문 파일 검수한다고 바빴고요.
물론 출판사 사람들 거의 전부가 철야 작업도 했고, 야근은 다반사로 했으니, 거기에 비하면 저는 무난한 축일 겁니다. 네, 전부가 아니라 ‘거의 전부’라고 한 데는 몇몇은 체력적인 한계로 완벽하게 불탈 수 없었기 때문인 거죠.
저 같은 경우 야근은 했어도 밤새지는 않았고, 토요일 특근은 했어도 일요일은 지켰고, 7시부터 업무를 하기는 했지만 그 덕에 웬만하면 6시에 퇴근했거든요.
그럼에도 피곤은 하더라고요. ㅎㅎ
그런 와중에도 독서는 제 삶에 큰 활력이 되었습니다. 특히 기다리고 기다리던 작품의 완결을 드디어 봤거든요.
그리하여 일명 《에놀라 홈즈 시리즈》의 감상을 정리하겠습니다.
근데, 이게 시리즈가 6권이나 되다 보니 서평이 길어요. 아빠 왈, 한 번에 올리면 읽는 사람 머리에 지진이 날 거라고 확신한다지 뭡니까.
그래서 1~2부로 나눠서 오늘은 반만 올리려고요.
도서명: 에놀라 홈즈 시리즈 전 6권 중 1권 사라진 후작, 2권 왼손잡이 숙녀, 3권 기묘한 꽃다발
저자: 낸시 스프링어
* 이 시리즈는 1~5권까지는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넓은마을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6권은 없어요. 적어도 현재 시점까지는요.
시리즈 6권은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아이프리 도서관 아동․청소년 코너에 있습니다. 6권뿐 아니라 전권이 다 있어요.
독서를 위해 넓은마을과 아이프리에서 시리즈 조각 모음을 하든가, 아니면 그냥 아이프리에서 완전체를 다운받는 것도 좋겠네요.
* 소개글 서평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목을 빼고 기다리던 시리즈가 있었다. 1권 《사라진 후작》, 2권 《왼손잡이 숙녀》, 3권 《기묘한 꽃다발》, 4권 《별난 분홍색 부채》, 5권 《비밀의 크리놀린》, 6권 《집시여 안녕》으로 이어지는, 일명 에놀라 홈즈 시리즈였다.
내가 이 시리즈를 접한 건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넓은마을에서였다. 작년에 5권까지 데이지도서로 제작된 바 있고, 나머지 6권은 아직 제작 중이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등록되나 기다리던 중, 아는 지인으로부터 6권의 소재를 전해 듣게 됐다. 또 다른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도서관 아이프리에 있다고 말이다. 참고로 요 밑에 179번째 책 추천 글 <삼계주막 기담회>에 댓글 달아주신 지인님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이 시리즈 완결을 봤어요. 지금 서평도 덕택에 쓰고 있고요.
사진 설명: 자전거의 모습. 안장은 갈색, 바구니는 검정, 뒤에 유아용 시트는 흰색, 몸체는 녹색이다. 지나가다 예뻐서 한 장 찍었다.
- 원래 동생의 주요 출퇴근 이동 수단인 자전거를 찍을까 했었다. 그런데 녀석 왈, 자기 자전거는 너무 꼬자서 안 된단다.
이 자전거가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의 비상 탈출 수단으로 쓰였다. 무슨 소리냐고? 책 읽어보면 안다!
에놀라 홈즈 시리즈 1 - 사라진 후작(The Case of the Missing Marquess)
“엄마가 왜 내 이름을 ‘에놀라(Enola)’라고 지었는지 정말 알고 싶다. 에놀라를 뒤에서부터 읽으면 ‘Alone(혼자서)’이다.”
소설은 엄마의 실종으로 시작한다. 유도리아 버넷 홈즈가 실종됐다. 그것도 주인공 에놀라 홈즈의 14살 생일에 말이다. 소녀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엄마를 찾지만, 그녀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결국 에놀라는 그녀의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오빠들,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셜록 홈즈에게 편지를 보낸다.
여기서 잠시, ‘홈즈’라는 성씨가 귀에 꽂히는 독자님들이 있을 거다.
그렇다. 에놀라는 그 유명한 대탐정 셜록 홈즈의 여동생이다. 그러니까, 작가 낸시 스프링어가 그렇게 설정했다. 심지어 셜록 홈즈에게는 형도 있다. 이 또한 작품 내부의 설정이다.
여하튼 별로 만난 적 없는 듯한 남매가 엄마의 실종 사건으로 인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과연 엄마는 어떻게 된 것인가?
셜록 홈즈와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모친의 평소 행동 양식을 고려해 그녀가 자발적으로 집을 떠났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유도리아 버넷 홈즈는 소위 말하는 서프러지스트(suffiragist) 여성 운동가였던 것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통용되는 사회상, 우아한 레이디, 즉 귀족적인 여인과 같은 사회상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말이다. 여성 참정권 등 여성 인권 발전을 위해 열심히 개몽주의 운동을 펼치는 여성 운동가들.
물론 모전여전이라고, 에놀라 역시 그런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작품 내에서는 하늘로 돌아갔다는 설정인 논리학자 부친의 영향도 당연히 있었겠지만, 역시 모친의 사상과 자유로운 영혼을 빼놓고는 에놀라를 설명할 수 없다. 그녀에게 평범한 레이디의 행동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런 소녀에게 오빠들,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셜록 홈즈는 여동생을 잘 양육해보겠다고 그녀를 기숙학교에 입학시킬 계획을, 거의 통보에 가깝게 얘기하는 게 아닌가!
치마 대신 바지를, 사교지 대신 철학서를, 집안에서 수놓기보다 나무 타기를 즐기는 소녀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온갖 억압과 제약, 그리고 무엇보다 코르셋에 의한 생명의 위협은 그야말로 전격 사절인 일이었다. 그래서 소녀는 결심하기에 이른다. 마침 엄마가 남긴 현금과 암호책도 찾았겠다, 오빠들의 방식이 마음에 안 들겠다, 그냥 이 참에 도망가기로 말이다. 드레스를 입혀 겉은 아가씨처럼 꾸몄어도 성격은 어디 안 간다. 그녀 에놀라의 최종 병기는 ‘자전거’였다.
어찌저찌 오빠들을 따돌리고 도망을 놓은 에놀라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격언처럼 오빠들의 근거지 런던으로 향한다. 오히려 그쪽이 더 안전할 것 같으니까. 그러다가 우연히 신문에서 실종된 후작에 대한 기사를 접하는데......
레이스와 러플이 범벅된 옷차림, 치렁치렁 굽슬거리는 금발 가발. 도저히 남자애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든 남자들이 격하게 거부할 것 같은 환경에서 사는 소후작.
에놀라는 그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엉겁결에 충동적으로 사건에 단서를 추적하게 된다. 고작 14살 여자애, 그것도 가출한 여자애. 그러나 오빠 셜록 홈즈의 여동생, 에놀라 홈즈.
그녀는 과연 사라진 후작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소년 후작은 자발적으로 탈출한 걸까, 아니면 중간에 납치된 걸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들의 지위는 원시 부족 사회를 지나고, 봉건 사회를 넘나들며, 남성에 비해 하향세를 그려왔다. 하다 못해 신화에서조차도 남녀 신의 비중이 동등하게 다루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여신들의 비중이 줄어들지 않던가.
어느 학자는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결과물의 소산은 여성을 가정적으로 만들었다. 불가에 앉아 바느질을 하거나 아이를 돌보거나 요리를 하는 그런 모습으로 여자를 고정시켰다. 혹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옛날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 여자들은 장옷을 머리에 쓰지 않고서는 나다닐 수 없었다. 반가의 여자들이 그랬다고는 하지만, 평민 계층 여자들이 무한정 자유롭지는 않았다. 중국에서는 발을 동여묶는 전족이 있었고, 일본도 나름대로 여자들을 억누르던 제도가 있었으리라고 여긴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여자들을 제약하던 대표적인 물건이 바로 코르셋과 크리놀린 등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들이 가진 제약이 다 의복과 통해 있다는 게 제법 신기하다. 오늘날 이런 규제는 없어졌지만, 그것이 여자들의 몸에서 치워지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에놀라 홈즈 시리즈 1권 《사라진 후작》에서는 그런 사회적인 구조물, 코르셋과 드레스와 여성이 지켜야 할 품위 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계몽적인 어머니의 특별한 교육관 아래 기량을 갈고닦은 에놀라 홈즈 말이다. 비록 소녀가 어린 나이이고, 성인도 아니지만, 자신의 인생은 오직 하나뿐이고 자신은 그 인생의 주인이기에, 그녀는 스스로 강요받는 제약에서 벗어나려 했다. 누군가, 백마 탄 왕자든 마차를 탄 마부든, 어떤 타인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페달을 밟아 자전거를 움직여 탈출을 감행한다.
물론 가출은 쉽지 않았다. 또 고작 중학생 나이 여자애가 혼자 살아남기에 세상은 마냥 선량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에놀라는 자신의 몸을 지킬 수단을 지니기로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보관 장소가 여자들을 억압하던 물건, 그녀가 피해 도망을 놓기로 한 코르셋 속이었다. 또 그녀가 거부하기로 한 사회적인 통념 속이기도 했다. 여자는 혼자 자립할 수 없다. 여자애는 더더욱 그렇다. 보호가 필요하다. 그런 가치관 안에 에놀라는 단검을 숨기고, 암호 책자를 담고, 자금을 마련한다. 여성을 억제하던 물건과 사상이 자유를 향한 발판이 된 셈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남자들만이 활동하던 탐정의 세계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그래도 둘째 오빠 셜록 홈즈의 눈치가 좀 보였는지 탐정 대신 ‘탐색가’라는 명칭을 골랐다. 처음 해결한 사건이 ‘사라진 후작’인 셈이다.
1권에서 자유로운 여성관의 첫 발을 뗌과 동시에 엉겁결에 사이언티픽 퍼디토리언이 된 에놀라. 그녀의 또다른 사건 노트를 기대하며 2권으로 넘어가겠다.
사진 설명: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모습. ‘신’이라고 그려봤다. 어, 그래. 이거 낙서 그린 수준.
- 참고로 펜 쥔 손의 주인은 이 서평 쓴 필자 본인이다.
시각장애인인 필자는 글씨(점자)는 오른손으로 쓰고, 왼손으로 글씨(점자)를 읽는다. 말하자면 양손잡이인 셈.
에놀라 홈즈 시리즈 2 - 왼손잡이 숙녀(The Case of the Left-Handed Lady)
“알리스테어 부인은 충격으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래요.”
런던 중심지는 아닌 곳에 한 사무실이 있다. 사이언티픽 퍼디터리언 라고스틴 박사가 운영하는 곳이다. 주업은 ‘탐색’이다. 잃어버린 것, 찾길 원하는 것,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실종된 것을 탐색한다. 그렇지만 어떤 모종의 급한 일로 그 사무실을 찾는다고 해도 라고스틴 박사를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신 그의 비서 아이비 메쉴리가 고객을 응대한다. 약간 촌스러운, 그러나 패션에 관심은 많은 듯한, 전형적인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사무직 젊은 여성인 메쉴리 양. 하지만 사실 그녀는 우리의 주인공 에놀라 홈즈가 변장한 신분이었다. 그뿐 아니라 밤에는 검은 수녀복을 입고 거리의 부랑자들에게 담요와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자선의 수녀’ 역할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밤거리에 나섰다가 어떤 괴한에게 목이 졸려 죽을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에놀라는 자신의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나중에 소설 말미에서 그녀가 자선의 수녀일 때 당했던 사건의 내막이 밝혀진다.
첫 번째 이야기 《사라진 후작》에서 엄마와 함께 살아오던 에놀라가 자신의 생일날 실종된 엄마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그녀에게 강요되는 삶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면,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인 《왼손잡이 숙녀》에서는 조금 더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는 사이언티픽 퍼디터리언의 면모가 드러난다.
고작 14살, 우리나라 나이로 따지자면 15살 중2학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온갖 역할에 맞는 모습으로 변장하고, 그 이미지에 맞춰 생활하며, 자신의 정체를 숨기면서도 사건을 수사해 나가는 모습은 결코 어린 소녀로만 보이지 않는다. 이건 뭐, 거의 성인 어른 경력직 첩보원 같은데?
에놀라의 엄마 유도리아 홈즈의 교육 방식이 궁금해지는 한편, 내 기준에서는 약간 이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독자 입장에서는 주인공이 활개를 쳐야 재미있는 법이다. 현실성 조금 없으면 뭐 어떤가? 스토리텔링만 괜찮으면 OK!
그리하여 우리의 주인공이 이번에 뛰어든 사건은 준남작 유스타스 알리스테어 경의 사라진 딸 ‘레이디 세실리의 실종’이었다.
기사와 남작 사이의 계급 준남작의 영애 세실리 알리스테어가 간밤에 사라졌다. 창문에 걸쳐진 사다리를 보면 누군가 외부 협력자가 있을 법도 하다. 여자애 혼자서 옮길 수 있는 사다리 무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좀 어려웠다.
마침 세실리가 교제 중인 걸로 의심이 되는 남자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리고 바로 그 일에 에놀라가 끼어들게 된 것이다.
에놀라는 평상시 유지하는 신분인 라고스틴 박사의 비서 ‘아이비 메쉴리’를 잠시 벗어던지기로 한다. 대신 라고스틴 박사의 수줍은 어린 신부 ‘라고스틴 부인’이 되어 유스타스 경의 저택에 방문한다. 부인을 통해 정보를 얻기에는 상류층 여성의 변장이 더 낫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알리스테어 부인과 친분을 쌓고, 레이디 세실리의 방에 들어간 에놀라는 그곳에서 세실리의 기묘한 자취를 발견한다. 자선 활동이나 빈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진 흔적,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그린 그림들. 과연 레이디 세실리의 행방은 어디에 닿아 있는 걸까? 그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시리즈 2권 《왼손잡이 숙녀》의 관전 포인트는 에놀라의 변장 솜씨라 하겠다. 진짜 모습은 꽁꽁 숨긴 채로, 옷차림이나 각종 변장 도구뿐 아니라 계급에 따라 말투까지 바꿔가며 온갖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하는 주인공. 심지어 셜록 홈즈의 곁을 무사히 스쳐 지나가기까지 한다.
1권에서는 ‘전형적인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를 거부한 에놀라의 엄마를 통해 여성운동 이야기를 하는데, 2권에서는 에놀라와 더불어 상류 사회의 프레임에 순종하는 한편으로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길 꿈꾸는 ‘왼손잡이 숙녀’가 여성 계몽의 합류한다. 그와 함께 당시의 사회상, 런던 빈민가의 비참한 모습과 상류층과 노동자 계급의 부조리함, 그로 인해 파생된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의 부상, 계급론과 막시즘 등을 세부적으로 녹여냈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타임슬립을 통해 그 시대 런던 거리를 헤매며 돌아다니는 착각이 들 정도.
본격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느낌이 강한 덕분인지 1권보다는 2권을 조금 더 재미있게 읽었다. 세실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에놀라와의 접점이 이어질지, 오빠 셜록 홈즈와 벌이는 신경전, 유명한 대탐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영역에서 추리력을 개척하는 에놀라. 3권의 스토리가 기대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또 명성 자자한 탐정의 허를 찌른 장면이 막판에 나오는데, 그 역시도 제법 인상 깊었다. 오빠의 추적을 피하고, 오빠가 보관 중이던 그녀의 물건을 날름 챙기다니, 참 깜찍하다.
사진 설명: 꽃다발을 안고 있는 본인. 분홍색 포장지에 빨간 리본으로 장식된 붉은 장미와 하얀 안개꽃으로 이루어진 꽃다발. 참고로 꽃 사이사이에 든 건 종이 지폐라는 거. 아빠가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 중 가장 센스 넘쳤던 듯?
- 요즘은 그냥 꽃만 든 남자는 인기 없다. 꽃과 함께 지폐를 넣은 현금 꽃다발을 든 남자가 대세!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 그냥 꽃보다 현금 꽃다발을 든 여자 쪽이 더 인기 좋을 거다. 속물적이라고? 흥, 경제력이 있어야 뭐든 한다.
에놀라 홈즈 시리즈 3 - 기묘한 꽃다발(The Case of the Bizarre Bouquets)
“난 당신이 말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 왜 이 지옥 같은 곳에선 내가 무슨 터무니없는 오해로 잡혀온 건지 아무도 알아보려 하지 않는 거요?”
3권의 시작은 요양원, 아니 아마도 정신병원으로 보이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간호사와 환자로 보이는 어떤 남자의 대화. 남자는 자신이 ‘키퍼솔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의사이며 ‘존 왓슨’이라고 말이다. 이 시점에서 경력과 내공 쌓인 독자라면, 감 잡았을 것이다. 이 남자에게 모종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한편 이 소설의 주인공 에놀라는 신문을 통해 오빠 셜록 홈즈의 파트너이자 내심 아빠 같다고 여기는 왓슨 박사가 실종되었다는 기사를 접하는데......
셜록 홈즈는 자신과 관련된 원한으로 왓슨이 범죄 조직에게 납치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하며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범인에게서는 그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협박장 같은 거 말이다.
에놀라는 정감을 느끼는 왓슨 박사 실종 사건에 뛰어들고, 깜찍한 변장으로 왓슨 부인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왓슨 박사의 집에서 어떤 기묘한 꽃다발을 발견하는데......
시리즈 3편의 제목이기도 한 기묘한 꽃다발은 사건의 단서였다. 자고로 먼 옛날부터 꽃은 주요 대화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니까. 특히 여성적인 사교계나 모임에서 말이다. 꽃말이라고 알랑가 몰라.
존 왓슨 박사의 실종 이후 부인에게 보내진 꽃다발들 중 에놀라의 관심을 끈 이 기묘한 꽃다발, 그 꽃다발이 기묘한 이유는 ‘꽃’ 때문이다. 그러니까, 보통 쓰이지 않는 꽃이 사용된 거다. 하얀 양귀비, 빨간 산사나무 꽃, 삼색메꽃, 그리고 아스파라거스까지.
대개 양귀비 하면 마약을 떠올린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는 그 씨앗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식용하기도 하고, 옛날에는 양귀비꽃에 의미를 담아 선물하기도 했다. 나라마다 지닌 꽃말에는 차이가 있지만, 보통 빨간 양귀비를 사용한다. 빨간 양귀비의 꽃말은 위안이다. 그리고 소설 속 꽃다발에 쓰인 하얀색 양귀비의 꽃말은 ‘잠’이다. 또 빨간 산사나무의 꽃도 같은 논리로 수상하다. 본래는 흰색꽃을 쓰는 까닭이다. 흰색은 희망을 나타내지만 붉은색 꽃은 불운 내지는 죽음을 의미한다. 뭔가 꺼림칙한 악의가 느껴지는 이 기묘한 꽃다발. 과연 이것을 보낸 당사자는 누구이며, 왓슨 박사의 실종과는 어떤 식으로 연관된 것일까? 에놀라는 기묘한 꽃다발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까?
삼색메꽃과 아스파라거스에 담긴 뜻은 알지만 부러 적지 않겠다. 소설 보면 답 나오니까.
에놀라 홈즈 시리즈에서 나오는 암호는 다양한데, 그중 내가 그나마 손쉽게 풀 수 있는 게 꽃 관련 메시지였다. 그래서 3권 《기묘한 꽃다발》이 더 흥미로웠다. 물론 전작에서도 틈틈이 꽃말 암호가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이렇게 굵직한 사건에서 본격적으로 나오진 않았다.
덕분에 나도 독서 내내 에놀라와 함께 사이언티픽 퍼디토리언이 되어 왓슨 박사와 얽힌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을 만끽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시리즈 중 3권이 제일 애정이 간다.
한편 2권에 이어 대탐정 셜록 홈즈와는 다른 영역에서 다른 시선으로 사건의 단서를 찾는 에놀라의 모습이 퍽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꽃다발을 배달하는 소년을 통해 분장 도구 상점에까지 이르고, 지붕을 넘나드는 숨박꼭질 끝에 온실로 추락해 풍성한 식물 위에 떨어져 겨우 구사일생한 주인공.
꽤나 박진감 넘치는 부분이라 장면을 따라가는 게 좀 벅찼지만 재미는 있었다. 막판에 그런 격한 모험을 겪고서도 수상한 온실에서 깜빡 잠든 주인공을 볼 때면 웃으면서 고개를 내저었지만 말이다. 은근 웃긴 부분이 에놀라 홈즈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이다. 더불어 그런 어이 없는 미숙함이 주인공이 그래도 십대라는 걸 상기시킨다.
덧붙여 셜록 홈즈에 이어 뒷배 든든한 첫째 오라버니의 재발견은 무척 의외였다. 놀랍게도 어느 부분에서는 셜록이 한 수 접어준다고 한다. 허얼~!
오늘의 감상문은 여기까지 하겠다. 나머지 4~6권의 서평이 궁금한가?
그럼 다음주 일요일을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다.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