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의 특별한 명상기법과 깨달은 공(空)
* 달라이라마는 어떻게 용서하는 마음을 키우게 되었나?
"첫 번째로, 나는 소위 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을 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생각 합니다.
그들 역시 똑같은 인간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들 또한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밝은 웃음과 미소는 모두가 좋아하며
범죄와 피흘림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나의 미래는 그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의 나라 티베트와 티베트 국민은 중국인과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 미래의 많은 부분이
그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돌보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돌보는 일과 같습니다."
* `모든 존재는 한 때 우리의 어머니였으며,
우리도 한 때는 그들의 어머니였습니다.`
달라이라마는 자신을 상대방의 입장에 놓고 생각하는
초인적인 힘을 가졌다. 그는 적을 가장 소중한 스승으로 여겼다.
우리를 자극해 용서와 자비심 같은 좋은 특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은 적이라고 믿었다.
용서와 자비심은 그에게 있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었다.
* 달라이라마는 심한 육체의 고통은 어떤 방법으로 넘겼나?
달라이라마가 갑자기 알 수 없는 복부 통증으로 병원으로 이송될 때
너무 통증이 심하여 병든 개처럼 구부리고 가면서 일어난 일이다.
"나는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액체, 물, 땀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눈에서 나오는 물은 감정과 많은 관계가 있고
몸에서 나오는 물은 신체적인 고통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신체적인 고통이 너무 크면 눈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고
몸에서 액체가 나오는 것이지요.
그것들이 무슨 차이고 무슨 관계인지 나는 잘 모릅니다.
아무튼 바로 그때 나는 길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 그 노인을 보았습니다.
그는 수염도 몹시 지저분하고 입고 있는 옷들은
먼지와 오물에 절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난한 아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길가에서 그냥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키가 이 정도 되는 아이가 내 시선 속에 들어왔습니다.
그 소년은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제대로 쓸 수가 없어서
목발에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신체적인 고통을 겪는 동안, 내 눈에는 오로지
그 가엾은 사람들의 모습만 떠올랐습니다.
나는 좋은 보살핌을 받고 있는 반면에
그들을 보살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비록 나는 신체적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었지만
마음은 전혀 불안하지 않고 평화로웠습니다.
조금 불편함을 느꼈을 뿐이지요. 왜 그토록 평화로운 느낌을 가졌을까요?
내 자신은 신체적인 고통을 겪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아무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내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염려가 내 자신의 고통을 덜어준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큰 이익을 가져 다 줍니다.
나는 그 노인과 소아마비에 걸린 그 소년의 끔찍한 상황을 생각 했습니다.
그 염려의 감정이 내 자신의 신체적인 고통에 대한 느낌을 덜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 우리 자신을 희생시켜 가면서
그렇게 하는 것을 의미 하진 않습니다.
붓다와 보살들, 진정으로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목표에 전적으로 집중 합니다.
그 목표란 궁극적인 행복을 얻는 일, 깨달음을 성취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그것은 자비심을 키우고 이타적인 마음을 가짐으로써 이뤄 냅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 자신이 큰 이익을 얻는 것이지요.
최대의 행복이라는 이익을...".
* 공중을 나는 요가 수행자 *
달라이라마의 스승인 링린포체는 달라이라마에게 머지않아
공중 요가 수행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공간과도 같은 공을 깨달은 사람,
본질적으로 깨달음을 성취 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 달라이라마가 깨달은 공(空) *
1963년 어느 날 불교경전을 읽고 있었는데
어느 지점에서 `나`라는 것이 단순히 물리적인 혼합물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집합체)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구절을 읽는데, 그것을 읽자마자 특별한 감각,
하나의 이상한 체험을 하였다고 한다.
그 느낌은 3, 4주 동안 계속 이어 졌다고 했다,
"이 시기 동안 나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예를 들어 이 양탄자든, 그것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것들을 양탄자와 사람으로 바라보긴 했지만
동시에 그것들이 아무런 본질도 갖고 있지 않음을 알아 차렸습니다.
거기 `나`라는 것이 없다는 뚜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이해한 대로의 `나`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떤 느낌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 말하면 번개와도 같은 것이
내 심장을 통해 전신으로 물결 쳐 갔습니다.
마치 전기 충격을 받은 것과도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무아無我에 대해, `나` 없음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들이 마치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영화를 볼 때 우리는 한편으로는 어떤 일들이 실제로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선을 영화 화면에 두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마음은 그것이 단지 영상일 뿐이며
실제가 아닌 연기에 불과 하다는 것을 압니다.
따라서 똑같은 영화를 보고 있으면서도
한 사람은 그것이 연기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그것을 보고는 있지만
그것을 연기임을 느낍니다.
대개 사람들은 단단하고, 손으로 만져지는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 대상들을 움켜쥐려고 하고
그것들에 집착을 합니다.
우리는 자아와 사물들이 분리되어 있고
독립되어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원하고 새로운 것을 손에 넣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소유하는 순간 흥분감은 사라지고
우리는 또 새로운 것을 갈구 합니다.
이러한 그칠 줄 모르는 갈망이 고통을 불러 옵니다.
나의 경우에는 그런 소유의 욕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궁극적으로 `나`라든가 욕망, 바람, 롤렉스 시계
같은 것들이 영원하지 않고 변화하며 사라지기 쉬운 것들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텅 비어 있지요.
신기루처럼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그것들을 애타게 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공에 대해 이해한다면
고통의 원인도 욕망도 줄어 들것입니다.
달라이라마는 상호의존과 공의 개념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고, 똑 같은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두개의 서로 다른 방식일 뿐임을...
어떤 것이든, 머그잔이든 질투의 감정이든 모든 존재는
복잡한 관계의 그물망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그것에 대해 충분히 오래
생각하기만 한다면 그것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논리적인 방법은 없다.
자체의 삶은 존재 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본래의 존재를 갖고 있지 않다.
다른 말로하면 텅 비어 있다는 말이다.
* 용서 / 달라이라마. 빅터 챈 지음 / 류시화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