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부부의 배낭여행
07. 12. 31.
손녀는 외가집으로 가고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이다.
“여보 우리 10년 전 처럼 차 없이 기차 타고 떠나 볼까?”
나 혼자 다니는 여행이 눈 꼴 사납지만 다 늙은 여편네
종아리 때려 앉힐 수는 없고 불편 하지만 참으며 늘 부러운 눈을 하고
“임선영 팔자도 좋아, 이틀이 멀다하고 떠나네”
그이의 마음을 다소 위로 해 줄 겸 우리 여행 갈까 하고 던진 말이 정통을 찔렀나 보다.
“좋~~~지”
우리는 다음 날 아침 바로 청량리로 향했다.
새벽부터 청량리는 젊은이들로 꽉 차 있다.
우리가 예상했던 강릉은 이미 입석 밖에 없어서 6시간 서서가는
입석만 있으니 어찌 하나 난감한 우리에게 표 파는 안내 양
친절하기도 하다.
춘천 표도 입석인데 1시간만 서서 가면 자리가 난다고 춘천 소양강
땜도 좋으니 그리 가시라고 권한다.
꺼리는 우리집 양반은 가보지 못한 곳이기 때문에 나는 좋다고
결정을 급히 내려 버렸다.
나온 김에 도로 들어 갈 수는 없고 무조건 나가고 보자였다.
2시간 40분 길 서서 가도 그리 피곤 할 것 같지 않기에 기차에 들어가
보니 예약하고 안 왔는지 빈자리가 많다.
우리는 두 자리가 비어 있는 칸에 앉았다.
오랜만에 타 보는 무궁화호 완행열차 자리도 편하고
쌍쌍이 젊은이 인 기차 안에 와인부부 한 쌍은 약간 안 어울리는
그림이다.
달리는 기차의 흔들림이 왜 그리 정답고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지
오기를 참 잘 했다고 자화자찬을 해가며 먹는 초코렛 맛이 참
달콤하다.
안 보이는 뒷 칸 이였으면 우리는 나이를 잊은 체
멋진 초코렛 맛 같은 키쓰를 한번 했을 기분이였다.
마누라하고 가는 것이 뭐 그리 즐거운지 꼭 아이 같은 남편
百言而不如一觸이라.
하늘도 도왔는지 우리 앉은 자리만 사람들이 찾아오질 않았다.
남편 한마디 꼭 한다. “ 이것도 사은의 도움여”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겨울 산야는 누렇다 못해 회색 빛으로 암울한
말 그대로 신만이 표현 할 수 있는 신의 켐퍼스 이다.
자연 겜퍼스 위에 산, 들, 하늘을 감싸는 둥근 자연
우리는 이러한 즉은 듯 살아있는 섬세한 자연색을 다 읽지를 못하는
미물에 불가하다.
겨울 산의 맥박소리 달리는 기차 속에서도 느끼는 듯 멀리 보이는
한강 상류의 푸르디 푸르게 흐르는 물소리 들르는 듯 주위를 에워싼
호젖한 겨울 산에서 느끼는 또 다른 매력이 거기에 있었다.
잘 생긴 얼굴로 내 마음 설레게 했던 남편도 얼굴에 지도를 그린체
나를 쳐다본다. 아미 나도 그러 하겠지.
눈빛 예전 과 다름없는 눈빛이고 잡아 주는 손
예전과 다름없이 따스하지만 흐른 세월만큼 눈빛은 흐러져 있고
잡아 주는 손 강열하지 않음은 봄, 여름 가을 다 지나 겨울로 들어선
계절을 닮아 서인지 그 온기 따뜻하기는 하나 정열은 예전 같지 않음을
어찌 부인 하겠는가.
사랑도 정열도 외로운 계절의 빛을 닮지 않을 수 없는 자연 과 인간이
하나인 자연의 순리, 자연인인 우리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도착한 춘천 소양강 땜에 바람은 갑자기 매섭게 댐 물결을 바람으로 일렁
이게 하고 유람선 넘어 한적한 호수 물결 찬 바람 일렁임은 곱게 홍두께질
한 명주 한필이 풀어진체 바람결에 흐느끼는 판을 호수 위에 그려 놓는다.
멧돼지 한 마리 호수 한가운데 그 짧은 다리로
수영을 하며 호수를 건넌다. 이 추위에 짝을 찾으려 이 찬 물결 속에
뛰여 들었는가 먹이를 찾으려 건너가는 것인가, 처음 보는 진풍경이다.

유람선이 도착한 청평사가 있는 섬이다.
우리는 청평사를 다녀 온 후 배편의 남는 시간 감자전을 시켜 놓고
막걸리 한잔으로 추운 몸을 녹인다.
큰 돈 들이지 않은 휼륭한 여행이다.
내려와서 하룻밤 묵을 숙소를 찾아 놓고 춘천의 유명한 명동 닭갈비골목을 찾아
와인 부부의 하룻밤은 깊어만 간다. 그 밤을 여기에 남기기엔 와인 부부의
멋에 먹칠을 하는 격이라~~~
하룻밤을 묵으려다 니가가라 당신이가라 아직도 쑥스러운지 서로 미루다 추잡하다
가지않고 우리는 청량리 도착 후 안국역에서 내려 설렁탕으로 유명한
만수옥에서 뜨거운 설렁탕 국물을 드리키며 여행의 피로를 풀고 인사동
골목을 돌며
“여보 나 붓 하나 사줄 용의 없는가?”
“누구의 엄명인데 네, 그리 하겠나이다”
와인의 인생은 이렇게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이틀 자고 나면 더 보태 질
나이를 잊은체 저물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