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선지자의 죽음이 주는 역설적인 진리다
11월 1주
마가복음 6: 17~ 29절 중
[막6:26-29]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아멘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요한에 대해서 본다. 먼저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이 노래를 불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평화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평화가 저절로 오는 평화가 아니라 그 값을 지불해야 되는데 희생과 고난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책망을 하면 반응을 하는데 첫째: 이를 갈고 복수한다. 둘째는 책망을 받으면 꽁무니 빼는 사람들이다. 셋째: 자기 잘 못된을 알면서도 결단을 못 내는 사람들이다. 넷째: 양심에 찔림을 받으면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사람이다.
세례요한의 죽음은 세가지의 중대한 역설적인 진리가 들어있는데 먼저는 음료의 춤값으로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의인은 가장 싼 값에 죽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비싼 값에 죽는 것이다. 또한 세례 요한의 죽음은 광야의 소리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구약에 나오는 히스기야는 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벽을 향해 돌아누워서 통곡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여 15년 목숨을 연장했다. 또한 세례요한의 억울하게 죽음은 억울한 것이 아니라 뒤에 올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도 하나님은 그런 선지자를 찾고 있습니다.
선지가의 사명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은혜로 최고의 선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죽음은 세상 사람들은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 나라도 수 많은 순교자들을 통해 오늘 대한민국이 있다. 복음 통일은 1970년 장대현 교회 대부흥이 일어나 6.25전쟁을 겪으면서 내려오면서 눈물의 기도로 교회가 세워졌다, 우리는 그래서 복음의 비찐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늘 세례요한처럼 죽음 앞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바람아 잔잔해져라
11월 2주차
마태복음 8:23~27 배에 오르심에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아멘
우리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해서 주님 말씀하시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노하고 하면서 부족하다고 하는데 내 집에 예수님의 계신지 안 계신지도 몰랐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데 한밤중에 건너가는데 예수님은 잠을 자는데 큰 풍랑이 일어나 제자들은 어부들이기에 모든 힘을 다해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결국 예수님을 깨운다. 예수님을 깨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위험, 두려움에 있는 이들의 지켜보시는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우리도 작은 믿음이 나에 안에 있는지 다시 돌아켜 본다. 누구나 위험이 생기면 살려는 욕구는 우리에게 누구나 다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이 큰 것이 아니라 작은 믿음으로 보신다.
이 세상은 지금 이 풍랑과 같은 바다와 같다. 그 안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시길 원하시는 그 하나님을 묵상하게 된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복음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최상의 명령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명령에 부르심을 받아 이 세상의 넒고 넓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좁은 길이 진리의 길이고 생명의 길이고 또 사명 가운데 걸어간다,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다 할지라도 그 길을 갈수 있는 은혜와 능력이 함께 함을 믿고 이 자리에 있다. 날마다 나에게 성령의 열매가 가득 부어주시길 원합니다.
왕보다 앞서서 달려가자
11월 3주 과제
열왕기상 18장 41~ 46 엘리아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놓고 그의 사관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바람과 구름이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아멘
우리는 전도의 사명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 가정, 회사, 학교, 모임등과 같은 곳에 우리는 늘 함께 하고 있지만 우리는 과연 전도를 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것에 당당하지 못하고 주져하고 있는 일들이 많다. 그런데 세상은 보험사, 사업자들은 내가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 최선을 다해 교회 천주교 불교 상관이 없이 최선을 다해 물건을 판다.
우리는 복음이 진리이고 영원한 나라를 증거하는데 부끄려워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누구나 시작도 있지만 끝은 분명하게 오는데 그 끝에 대해서 생각을 하거나 그 끝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살아가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믿는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달리 병도 있고 돈도 없고 권력도 대부분없지만 나의 안에 있는 성령 하나님이 있기에 이 세상 사람들과 달리 지금 살아가는 것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평안을 누리며 날마다 감사가 입술에서 떠나지 않는다. 오늘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나의 믿음, 나의 확신이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며 기뻐하며 이 복음을 우리는 북한을 넘어 열방을 향해 전해야 함을 더욱 깨닫는다.
라마 나욧 같은 교회
11월 4주 과제
[삼상19:19-24]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다른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했으므로 사울이 세 번째 다시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도착하여 물어 이르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어떤 사람이 이르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아멘
사무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범하지 아니하겠다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는 사람, 진리를 찾는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가는 도중 홍해를 가르시고 추격해오는 애굽의 병사들은 물속에 합쳐져 죽는다. 하나님은 살아계김을 분명하게 보여주시고 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다. 신약에서는 에수님 이 땅에 오셔서 소경과 병든자들을 깨끗하게 하시고 또 귀신들린 자들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신다.
그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그분 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지켜주신다.
오늘 우리삶 가운데 진리의 길이시고 생명이신 그 분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믿음과 신앙들이 성숙해가는 것이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 할 때, 성경말씀을 읽을 때 횟수에 초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잘 깨닫고 우리가 세상 가운데 살아갈 때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