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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운에세이] 한자 및 예절지도 교육을 마치면서
우리나라 사람 치고 교육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정도나 수준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한자 모르는 이가 드물 것이고, 한자 하면 획(劃), 필순(筆順), 부수(部首) 등의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말 대부분이 한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한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일상생활에서 한자를 전적으로 배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학교 교육에서 굳이 한자교육을 외면하고 기피하고 반대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한자교육에 대해 무조건 알르레기 반응만을 보이는 일부 극렬 반대론자들의 자세는 올바른 주장이라 보기 어렵다. 그것은 우리 역사와 전통, 문화를 외면하자는 행위나 다름없는 어리석은 처사일 뿐이다.
이를 테면 순수 우리말인 '하나 둘 셋 넷'만 사용하고 '일이삼사'는 한자어이기 때문에 배제하자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과연 합당하고 수긍할 만한 발상이라 믿겠는가. 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억지일 따름이다. 우리말 사전에 들어 있는 어휘의 무려 70% 이상이 한자어, 다시 말해서 '한자로 된 낱말'이다. 어차피, 도대체, 심지어, 어색(하다), 군색(하다), 지독(하다), 수소문, 도저(히), 도통, 이왕(에), 단방(에) 등도 모두가 한자어들이다. 그렇다면 한자 학습은 어떤 형태로든 당연히 우리 교육이 감당해야 할 한 가지 주요한 영역임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할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한자교육문제에 대한 찬반양론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오랜 세월 갑론을박 팽팽하게 대립만 거듭해 오고 있어 교육의 혼선을 빚고 있는 것이 작금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교육도 이제는 공급자에서 수요자 쪽으로 중심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 시대적인 흐름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한자교육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 요즘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 생활에서 외래어 사용을 배제할 수 없듯이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말인 한자어의 활용을 외면하겠다면 도대체 무엇을 우리 교육의 목표로 삼자는 말인가. 한자교육을 두고 어렵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 초등학교 상급학년쯤에서 시작하여 중등교육을 마칠 때까지 필수 생활한자 1,500자 정도를 익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그게 과연 그렇게도 어려운 문제일까.
이 숫자 정도의 한자라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배우는 데는 별 무리가 따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자어의 대부분은 단지 우리가 읽고 쓸 줄을 모른다 뿐이지 어릴 때부터 이미 우리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친숙할 대로 친숙해져 있는 토박이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자를 모르면서 한자 교육을 반대한다는 것은 비겁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한자의 원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지가 않을 것이다. 원래 매사는 모르면 싫어하게 되는 법이다. 일예로 우리나라의 지명이나 인명은 거의가 한자어이다. 지금 안양의 중심가는 평촌(坪村)이다.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원래 지명, '벌 말(마을)'을 고집할 수가 없어 '평촌'으로 정해진 사례가 아닐까. 넓고 평평하게 생긴 땅이 벌이요 들이다. 한자에서 따온 자기 성과 이름을 쓸 줄도 모르고 뜻을 몰라도 괜찮다는 말인가. 아니다. 누구라도 자기 이름 정도는 바로 알고 적을 수 있어야 한다.
한자는 뜻글자(表意文字)이다. 한자를 익힌다는 것은 적어도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둔다고 볼 수 있다. 한자의 삼요소는 형(形), 음(音), 의(義) 세 가지다. 동녘 동(東)자를 예로 들자면 먼저 그 형태, 모양, 꼴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읽는가, 음 즉 소리를 알아야 하고 또 한 가지로는 그 글자의 훈(訓), 의미가 무엇인가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뜻글자인 한자의 의미를 바로 알고 있지 못한다면 그런 한자어인 우리말의 정확한 의미를 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한자를 전적으로 무시하거나 한글전용을 내세워 생활한자 학습을 등한시하거나 고의로 기피하는 자세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그러면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될 게 아니냐는 이의를 제기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만 할 수 있고 그게 당장 이루어질 사안이라면 이런 논의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다. 그처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인 우리말을 단시일 내에 순수 우리말로 대치할 수만 있다면 굳이 한자교육을 고집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것은 한마디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학교'는 '배움집', '비행기' 는 '날틀', '이화여대 는 '배 꽃 계집 큰 배움집' 등으로 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자'는 '계집', '남자는 '사내', '부부'는 '지아비'와 '지어미' 등으로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게 생각만큼 그렇게 간단한 문제일까. 어림없는 일이다.
금년 여름도 어김없이 찌는 듯한 무더위가 날마다 그 기운을 좀처럼 누그러뜨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어떤가? 신문이나 TV 등 언론매체에서는 불볕더위 대신 '폭염'이니 '폭서'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라고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기승'이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으면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할까. 기운 기, 이길 승이니 기운이나 힘 따위가 누그러들지 않음(勝)이라 하면 어떨가. 방학 중인데도 더위를 무릅쓰고 아침부터 한자교실에 나와 할아버지 선생님의 열강에 두 눈 반짝이며 열심히 필순에 따라 획이 몇 개인가 수를 세어가며 한자 ABC를 익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언제 저들이 우리 신문을 제대로 이해하며 읽을 날이 올까 생각을 하자니 괜히 애국자라도 된 양 내 갈 길이 마냥 바쁘게만 느껴진다.
2013. 08. 19. 인천 송도/草雲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