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0월, 여·순사건과 함께 좌익에 의해 장악되었던 벌교가 다시 진압 세력인 군경의 수중에 들어가자 좌익 군당 위원장 염상진은 하대치, 안창민 등과 산 속으로 퇴각한다.
비밀당원으로 상부의 밀명을 받고 벌교로 잠입하게 되는 정하섭은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무당 딸 소화를 이용하고, 둘 사이에는 사랑이 싹트게 된다.
한편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가 감찰부장으로 있는 청년단은 좌익세력을 처단하는 데 앞장서고, 형 염상진과는 반대의 사상을 지닌 염상구는 빨치산 강동식의 아내 외서댁을 겁탈하는 등 만행을 저지른다. 무고한사람들까지 피해를 입는 것을 보다못한 벌교의 유지 김범우는 수습위원회 대표 최익승에게 희생을 줄이도록 호소하지만 오히려 빨갱이로 몰리게 된다.
이승만 정권이 농지개혁을 하지 못하자 농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높아지고, 이 과정에서 소작인 강동기는 지주를 삽으로 내리찍고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다. 반면, 지주 서민영은 자기 소유의 논을 모두 소작인들과 공유하기도 하고, 국군 벌교지구 사령관 심재모로 하여금 모든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한다.
1950년 6·25의 발발과 함께 벌교는 다시 염상진 등에 의해 장악되고, 좌익 세력들은 인민의 해방을 감격스럽게 맞이하지만 또다시 살육의 참상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김범우와 손승호는 빨치산의 길을 택하게 되지만, 김범우는 미군에게 붙들려 강제로 통역관이 되어 미군들의 부도덕한 행태를 목격하게 된다.
6·25전쟁은 유엔군의 참전과 중국의 개입으로 교착 상태에 빠지고, 전선은 38선 부근에서 대치 상태가 지속된다. 퇴로가 막힌 인민군과 빨치산 세력이 지리산 일대에 근거지를 두고 무장 투쟁을 계속하지만, 군경의 진압 작전에 따라 이들의 투쟁은 점차 무력해지고 염상진은 퇴로가 막히자 부하들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한다. 그리고 그의 목이 벌교 읍내에 내걸린다. 염상진이 염원했던인민해방은 실패로 끝나지만, 염상진을 추종했던 하대치 등이 살아 남아 염상진의 무덤 앞에서 새로운 투쟁에의 결의를 다지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