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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주체 |
대표적 사례 |
내용 |
신학 |
<<성서>> |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위기>18:22 |
윤리학 |
칸트 |
그것은 자신을 짐승아래 놓고 인류를 능욕하는 짓이다. <<도덕철학강의>> |
정신병리학 |
프로이트 |
유아 시절의 환상에서 비롯된 병리적 상태 |
신학이 동성애를 인식하는 기초는 오로지 성서이다. 그러나 레위기에 따르자면 소경, 곱사등, 절뚝발이와 같은 지체 부자유자도 교회에 들어와선 안 된다.(레위기 21:17~20) 성서에만 문자 그대로 집착하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칸트로 대표되는 윤리학의 경우 종의 목적인 번식을 거스르는 행위로써 동성애를 비판하는데, 개인의 목적을 종의 목적으로 동일시하는 끔찍한 생각이며, 그 논증에 따르면 동성애 외에 피임, 독신 등도 같은 분명히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 프로이트로 오면 동성애는 혐오의 대상도, 부도덕도 아닌 일종의 정신병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동성애는 오직 통계적 소수이며, 정신병이나 육체적 병이라는 명백한 증거는 아직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은 푸코에게 와서 새로운 전환을 맞는다. (<<쾌락의 활용>>) 푸코는 위에서 제시한 역사적 인식을 미시권력의 교체로써 바라보며, 권력의 놀이였음을 계보학적으로 폭로하며 오히려 소수이므로 그 차이를 차별이 아닌 새로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준다.
영화에서 그렉 신부에게 비난을 퍼부으며 성당을 나가던 신자들은 신학적 인식과 윤리적 인식에 걸쳐있다. 또한 그것은 대다수 이성애자들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이다. 반면에 매튜 신부의 위로는 전혀 다른 인식의 차원에서 기초한다. 그는 애당초 동성애를 죄악으로 보지 않으며 새로운 도덕 가치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미사를 집전하면서 편견에 물든 신자들을 비판하게 되는 것이다.
2. 도덕적 의무가 다른 모든 가치에 선행하는가?
양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던 소녀가 고해성사를 하였을 때 그렉 신부는 고해성사를 비밀로 해야 한다는 교리와 현실적 상황 사이에서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게된다. 결국 그의 행동은 전자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나는 그렉 신부의 도덕가치관이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학과 유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알려졌다시피 칸트는 정언 명법을 세워 모든 행위와 가치판단의 절대적 기초를 마련하고자 하였는데, 이미 그러한 절대적 도덕 가치의 가능성여부는 브로드(C. D. Broad)나 에이어(A. J. Ayer) 등의 철학자들에 의해 많은 의문과 비판을 받았다. 영화 속 그렉 신부의 판단과 행위는 의무론적 윤리학의 실례를 보여준 것이며 동일한 비판을 그에게도 적용할 수 있겠다.
결론 : 구원과 용서
이처럼 그렉 신부는 부당한 비난(동성연애)과 정당한 비판(교리지상주의)을 받을 위치에 있다. 영화는 극적인 방식으로 이 둘이 만나고 해소되는데, 이는 마지막 미사에서 소녀의 성체 배령이 그것이다. 다른 종류이지만 고립감과 소외라는 비슷한 고통을 겪은 소녀만이 부당한 비난으로부터 구원을, 정당한 비판으로부터 용서를 준다. 결국 영화는 기독교 외부를 빙 돌았다가 다시 신약의 핵심 주제로 돌아온 것이다.
※ 칸트나 푸코의 경우 1차 문헌이 아닌 2차 문헌을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동성애에 관하여 <<폭력과 상스러움>>진중권을, 의무론적 윤리학에 관하여 <<윤리학의 이론과 역사>>사하키안이 도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