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줄도 모르게 피었다 지듯이 사월의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꽃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니 그동안 꽃이 피었었는가 싶게 꽃을 본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 지금은 시골에서 꽃을 보는 것보다는 대 도시에서 보는 꽃이 더 아름답고 흐드러진 꽃을 볼 수가 있는 것 같다.
서울에서 살 때에는 이른 봄이면 옥수동 뒤쪽을 장식하는 응봉산 개나리가 제일먼저 노랗게 피어나고 이어서 윤중로의 벚꽃이 얼마나 장관을 이루었는가?
옛날에는 창경원의 벚꽃이 봄의 절정이었다면 지금은 아마 벚꽃하면 윤중로의 꽃일 것 같다.
해마다 그곳의 꽃을 보러 나갔던 것도 자동차를 차지 않고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자주 찾았던 곳이기도 하고 그 덕으로 만개한 벚꽃을 해마다 감상할 수가 있었던 것 같다.
미안 박명 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윤중로의 벚꽃은 아름다운 것에 비해서 너무도 빨리 져 버리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꽃이 피는 동안에는 비가 내리지 말아야 하는데 꽃이 피어나고 있을 때 비라도 내리면 꽃잎들은 힘없이 빗물에 쓸려서 바닥으로 하얗게 떨어져 버린다.
나무 가지에 달려 있는 꽃은 어디에 비길 바 없이 아름답지만 떨어져 버린 꽃잎은 아름다움을 상실한 추한 모습이 되고 만다.
아름다움의 잣대는 젊다는 것을 의미해 주듯이...
나는 천사가 내려앉은 것 같은 꽃에 반한 적이 있었다.
가는 가지 끝에 밤새 내려앉은 선녀들처럼 너무도 하얀 꽃송이들이 가득 내려앉은 것을 보고 얼마나 반했는지 모르는 꽃....
목련은 내게 그렇게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 내가 목련을 보고 다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렇게 정갈하고 고운 꽃잎이 떨어질 때의 추함이 나를 실망하게 만들었다.
검게 변해버린 꽃송이들은 아름다운 여인의 주검을 보면서 그 추함을 느끼듯이 나의 곁에서 목련을 떠나가게 했다.
그래서 나는 여러 가지 꽃나무를 집에 심었지만 목련을 심지 않는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내 사무실이 있었던 삼층에서 내다보이는 어느 집 마당에 심겨진 커다란 목련 나무가 해마다 하얀 꽃을 가득 피우지만 꽃을 제대로 볼 사이도 없이 검게 떨어진 꽃잎을 보면서 정을 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서울에서는 누구도 손질하지 않은 채 산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꽃들이 온 산을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게 해 주는 곳도 있었다.
북악스카이웨이를 타 보면 아마 이맘때가 절정에 이르렀을 것이다.
온산이 연 붉은 꽃으로 물들어 있는 산은 아무도 그렇게 가꿔 놓지 못할 자연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벚꽃이 지고 진달래가 지는가 싶으면 올림픽대로의 가로 화단에는 영산홍이 얼마나 흐드러지게 피어나는가?
나는 그 꽃에 매료되어 나의 집에도 그런 꽃을 얼마나 많이 심었는가?
언젠가 내가 그 꽃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정말 미칠 것 같은 충동을 느꼈었다.
그 꽃을 갖기 위해서 작은 가지를 꺾어다 집에 삽목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결국은 뿌리를 내리는데 실패를 하고 말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꽃나무를 파는 곳에 가면 벼라 별 색깔의 꽃을 가진 영산홍들이 가득 쌓여 있다.
꽃을 싫어하는 이는 없을 것이지만 나는 유난히 꽃을 좋아한다.
젊은 시절에 서울에서 잠시 살았을 때 집에 다녀와야 하는 일이 있었지만 일이 바빠서 갈 수가 없었고 나는 혼자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세검정을 찾아 갔었다.
그 때의 세검정은 지금처럼 도로가 뚫리지 않아 산골짜기처럼 외진 곳이었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한참을 골짜기를 올라가다 보니 어느 집 마당가에 심겨진 불타오르는 듯 한 붉은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꽃에 반해 버리고 말았었다.
셀비아...
그 꽃 이름이 셀비아 였다.
잎도 깻잎같고 꽃의 모양도 들깨 같지만 꽃의 색깔은 정말 불타오르는 것 같은 색깔 때문에 나는 그 꽃을 집안에 몇 해를 심었었다.
지금은 하도 많이 보았고 또 키가 크고 실한 것을 왜화 시켜서 키가 낮은 꽃으로 만들어 놓고 보니 옛날의 그 황홀하고 불타오르는 것 같은 꽃을 볼 수가 없어서 지금은 그리 인기가 없는 것 같다.
모른다.
또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는....
그렇지만 언제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 꽃이 아닐까?
사람도 그렇게 싫증나지 않는 꽃처럼 살아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