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종교개혁지 순례를 하면서
아침은 오스트리아에서 먹고
점심은 프랑스, 저녁은 독일에서 먹은 적이 있는데
어쩌다 보니 아침은 포항, 점심은 안동, 저녁은 강릉에서 먹었다.
그렇다고 해서 포항, 안동, 강릉을 대표하는 메뉴로 먹은 것은 아니다.
우선 아침은 컵라면으로 때웠다.
물회도 못 먹고 포항과 결별하는 셈이다.
안동 하회마을에 도착했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마다 하회탈이 보인다.
혹시 춤을 배워야 한다면 탈춤을 배울까 싶기도 하다.
못 춰도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다.
안동을 양반 고장이라고 한다.
유홍준 교수가 그의 책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안동 지방은 주로 남인이었는데
인조 반정 이후로 노론이 정권 실세가 된다.
남인은 권력 중심에서 멀어진 것이다.
권력이 있으면 양반인 것을 누구나 알 텐데
권력 중심에서 밀려난 남인들은 안 그렇다.
최대한 양반 티를 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안동이 양반 고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에서 "고난이 주는 유익"을 떠올리면 억지일까?
어쨌든 우리한테서도 신자다운 모습이 강하게 남았으면 좋겠다.
마을 곳곳에 감나무가 참 많았다.
안동에 감이 많이 나던가?
그건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감나무가 많았고
감나무마다 가지가 휘어질 만큼 감이 달려 있었다.
감나무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잎이 다 떨어지고 열매만 남았을 때다.
그런 감나무를 보면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객기 어린 말은 그만하고
나이를 먹는 만큼 제발 좀 익어갔으면 좋겠다.
부용대에 올랐다.
하회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것이 정말 그림 같았다.
잘 그린 그림을 보면 실물 같다고 하고
빼어난 경치를 보면서는 그림 같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우리말 돌려 막기일까?
점심을 먹었다.
안동에는 제법 유명한 음식이 몇 가지 있다.
헛제삿밥이 그렇고 간고등어와 찜닭이 그렇다.
안동국시도 있다.
찜닭을 먹었다.
20여 년 전, 찜닭 집이 참 많았다.
그 시절에 찜닭을 먹으며 생각한 적이 있다.
"찜닭은 왜 찜닭일까?"
찐 닭이나 닭찜이어야 할 것 같은데
찜닭이라고 하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물론 지금도 이해는 안 된다.
찜닭을 먹을 기회가 없으니
"왜 찜닭일까?" 하고 생각할 기회가 없을 뿐이다.
네 명이 둘러앉아 찜닭을 먹으니 살짝 모자랐지만 그만 먹기로 했다.
주변에 맘모스제과라는 유명한 빵집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유목사가 말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살쪄봐? 빵 먹으러 가요."
그 말에 따라 맘모스제과로 옮겼고
몇 가지 빵을 더 먹었다.
그런데 그게 에러였을까?
강릉에 도착한 시간이 7시였는데
도저히 밥 생각이 없었다.
하기야 점심이 늦기도 했다.
남은 과일로 저녁을 때웠다.
밤중에 배고플지 모른다.
얼른 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