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와 장애 동생과 힘겹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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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성마비 1급 장애를 가진 김항목(오른쪽)씨가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종순(왼쪽) 할머니는 자녀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한다. 이힘 기자 | “내가 산다고 얼마나 살겠소? 근데 저것들 두고는 눈을 못 감을 것 같소.”
서울 용산구 갈월동의 낡은 신문보급소를 고쳐 만든 집에 세 들어 사는 김종순(마리아, 92) 할머니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낮인데도 제법 쌀쌀한 10월 22일, 할머니는 온기가 있는 듯 없는 듯한 장판을 손으로 문지르며 흐릿한 눈동자로 자녀들을 바라본다.
할머니는 올해 아흔둘이다. 자녀 덕 톡톡히 누리며 여생을 지내야 할 연세인데, 할머니는 노년기에 접어든 자식들 뒷바라지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자녀가 셋이 있지만, 할머니를 부양할 만한 이가 한 사람도 없어서다.
올해 환갑인 큰아들 김항목(바오로)씨는 태어날 때부터 몸을 가누지 못한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다. 발이 돼줬던 전동휠체어를 6년 전 잃어버린 뒤부터 김씨는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바깥출입도 자유롭지 못하다.
김씨는 남대문시장에서 행상하며 가족들을 부양하던 성실한 가장이었다. 88올림픽 직후인 25년 전 장애인들에게 분양하는 공동 임대 아파트에 당첨됐지만, 못된 몇몇 공무원들이 몰래 그의 당첨을 취소시키는 바람에 삶의 터전을 잃은 경험을 두 차례나 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가 받아온 냉대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는 그때 받은 좋지 않은 기억 때문인지 요즘에는 집 밖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그저 창문을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 됐다.
동생 순애(예비신자, 58)씨는 청소년기 때부터 앓아온 정신질환으로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보다 정신병원과 수용시설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다. 젊은 시절에는 정신질환이 호전돼 작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병이 재발하는 바람에 회사에서 쫓겨났다. 설상가상으로 2개월 전 유방암 때문에 한쪽 가슴을 도려내 지금은 항암치료 중이다.
막내 항모(예비신자, 49)씨가 있지만, 그는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진 적이 없다. 결혼도 하지 않고 건설 현장 노동자로 살다 얼마 전부터 어머니 집에서 얹혀 지낸다. 그는 일이 있는 날에만 겨우 일당을 받는 형편이어서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런 자식들을 보며 할머니는 애만 탄다. ‘예수님’ 하며 주님께 매달릴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견딘다지만, 곧 한겨울이 되면 매달 난방비와 전기세가 걱정된다. 아들의 장애인 수당 등이 있지만, 아픈 딸 치료를 해야 하는데 눈앞이 캄캄하다. 할머니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폐지를 주워내다 파는 등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이제는 허리 통증으로 폐지 줍는 일도 그만뒀다. 아직 가을이지만 바깥바람이 유난히 춥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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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춘배 신부 |
▨후견인 / 서춘배 신부(의정부교구 광릉본당 주임 )
“김항목씨는 젊은 시절 행상을 하면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며 저에게 쌈짓돈을 쥐여줬던 분입니다. 평생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노모와 동생을 위해 헌신했던 김씨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도와주세요.” 성금계좌(예금주 : 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김항목씨에게 도움을 주실 독자는 2일부터 8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을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519)에게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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