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요즘 제일 인상이 좋지 않은 직업을 꼽는다면 당연코 검사일 것이다. 이번 정권이 지나간 후에는 검사의 가치가 그동안 특권을 누린 만큼 활인되는 조건반사 작용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살면서 몇 번 검사와의 사적인 인연이 아니라 공적인 인연이 있었다.
30 여년 어떤 사건으로 검사로부터 참고인 소환을 받았지만 개입되고 싶지 않아서 요즘 말로 쌩갔다. 몇 번을 불응 하니까 어느 날 밤에 검사에게서 직접 전화가 와서 “꼭 와서 진술을 해주어야 사건이 종결될 수 있으니 나와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해서 인천지검으로 갔다.
가서 보니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만 가겠고 했더니 검찰 서기가 눈을 부라리며 “여기가 누구네 집 안방인 줄 아느냐? 누구 마음대로 가느냐?”고 사람 잘못 보고 호통을 쳤다.
그래서 나도 큰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고 소란스러워지자 검사가 방에서 나왔다. 방에서 나온 검사를 보니 젊은 사람이었고 나에게 전화를 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검찰 서기가 검사를 사칭해서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일이 이쯤 되었으니 나도 간다고 할 수가 없게 되었고 검사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해서 진술을 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한국 검찰은 검사가 아니라 검찰 서기만 되어도 목에 힘주고 눈을 부라렸었다.
2012년에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을 시드니에서 상영하기로 하고 기왕이면 제작진들을 격려하는 의미에서 힘이 들지만 그들까지 초청을 하기로 했다. 드디어 두 사람의 감독, 제작자, 유가족 대표가 시드니에 왔고 우리 집에서 여장을 풀었다. 물론 여러 명이 힘을 모아서 하는 일이었지만 일을 시작하자고 제안한 나로서는 가장 큰 책임을 지고 표를 팔러다니랴 손님 대접 하랴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용산참사에 재판에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 검사 강수산나가 시드니 영사관에 '재외 선거관리'라는 명목의 포상 파견이 되어있었다. 당연히 우리로서는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일이었다. 외국에서 기습적으로 일을 벌일 수는 없어서 평소 거래하는 안기부 파견 영사에게 사전에 알려주었다.
그런데 정작 당황을 넘어 초긴장을 해야 하는 사건은 강 검사가 아니라 나에게 벌어졌다. 며칠 후 연방경찰로부터 내가 시드니 영사관에 파견되어 있는 외교관을 위협했다는 신고를 받았으니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변호사와 함께 만났다.
경찰은 정식 기소된 바는 아니지만 사실 확인 차원에서 만나는 것이고 만일에 내가 법을 위반하면 징역 10년까지 처해진다는 내용도 알려 주었다. 한국에서 경찰과 늘 왕래가 있었는데 호주까지 와서 경찰과 거래가 있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당연히 여론을 통해서 반격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몇 일 동안 치열하게 피 말리는 공방전을 펼쳤다. 가장 난감한 문제는 한국 언론들로부터 최초 대화자를 밝혀 달라고 하는 요구여서 '국정원 파견 요원 ㅇㅇㅇ 영사'라고 밝혀주면 간단한 일이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외교관례상 외국에 나와있는 정보원의 신분이 밝혀지면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호주 경찰 보다는 한국 언론으로 부터 시달림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영화는 크게 흥행을 해서 강 검사로서는 될 수 있으면 화제가 되는 것을 피하고 싶을 것이 분명한 영화를 도와주는 꼴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몇 년후 한국에 왔다가 법원 앞에 나와 강 검사와의 사이의 문제를 알고 있는 박응석 변호사를 만나러 갔다가 박 변호사가 “강수산나 검사와 연락하고 지내세요?”라고 물어서 폭소를 터졌다. 한참을 웃고 나서 박변호사가 앱으로 검색을 해보더니 “지금 부장 검사로 승진 해서 남부지청에 있네요. 한 번 만나 보시지요?”해서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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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두 개의 문" 상영이 2012년이었군요, 벌써 12년 전, 당시 스트라스필드 모 학교 강당에서 상영했던 걸고 기억납니다. 영화 관람 후 기차역 앞 광장에 모여서 구호를 외친 기억도 가물가물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