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상륙전
배가 흔들린다. 학생들은 신이 난 표정이다. 파도를 넘을 때마다 ‘워~ 워~’하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손에는 조그만 태극기가 하나씩 들려 있다. 배의 앞 칸 뒤 칸 할 것 없이 대부분 학생이다. 어제 과식으로 속이 거북하여 숙소에서 쉬려다가 일행이 독도에 가자고 하여 배에 올랐다. 행사를 주관한 농협에서 뱃멀미할까 봐 중간에 자리를 잡아놓았다. 농협 직원은 출출할 때 먹으라고 떡과 과일 봉지를 내민다. 그 속을 열어보니 파도가 거친 모양이다. 뱃멀미약까지 있다.
출항한 지 한 시간가량 지났다. 소리치며 즐거워하던 학생들이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잠시 후 ‘꽥~ 꽥~’ 하는 구역질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식은땀을 흘리며 토하는 학생이 여럿이다. 친구들은 뱃멀미하는 학생을 부축하여 화장실로 데려간다. 승무원 발길이 분주해졌다. 까만 봉지를 들고 돌아치느라 바쁘다. 바로 옆자리에 칠순 넘은 일행이 걱정되어 승무원에게 까만 봉지를 하나 달라고 하여 받아 놓았다.
“뱃멀미하는 이는 화장실에 가지 말고 자리에서 손드세요.”
안내 방송이 나온다. 화장실에 토해놓으면 다른 이가 사용할 수 없기에 자리에서 까만 봉지를 이용하라는 거다. 인간의 심리가 묘하다. 청개구리처럼 가지 말라고 하면 가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이 화장실로 향한다. 어찌나 배가 요동치는지 몸을 가눌 수 없다. 몸이 의자에 부딪히고 난간에 부딪히며 겨우 화장실 입구에 다가갔다. 승무원이 손으로 가로막는다. 어렵사리 양해를 구하고 들어선 순간 욕지기가 올라왔다. 다른 이들이 화장실 바닥에 토해놓은 음식물 때문이다.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토할듯하여 급히 자리로 돌아와서 까만 봉지에 토해냈다.
이상하게 뱃멀미가 찾아왔다. 이는 귀의 평형기관과 시각, 근육 등의 감각기관이 감지하는 움직임 정보가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그간 몇 차례 왔었으나 뱃멀미한 적 없다. 충남도청 산악회를 따라왔을 때나 국립외교원에서 국내 여행코스로 왔을 때 배가 뒤집힐 듯 거센 파도가 몰아쳤어도 멀쩡했다. 그래서 농협 직원이 나누어 준 멀미약을 먹지 않은 게다. 하긴 당시는 배 타기 전에 몸을 챙겼다. 원정길에 나서는 칭기즈칸처럼 가벼운 음식으로 요기 했다.
이번은 다르다. 농협 자문위원이랍시고 행사에 초대받은 거다. 도농 교류 행사가 끝나고 조합 측에서 건 하게 음식을 차렸다. 조합장은 뭍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음식이라며 먹으라고 권한다. 바다 깊은 곳에서 잡아 올린 해삼, 오징어, 도화볼락 등뿐만 아니라 해발 500미터에 있는 나리분지에서 자란, 삼나물이나 명이나물 등을 잔뜩 차려놓았다. 농협 임직원은 일행 사이사이에 자리하여 술잔을 따르며 비우라고 채근이다. 또 숙소에 들자 독도 소주와 쫄깃쫄깃한 문어를 가져와 먹으라며 호의를 베풀었다.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과식한 게다. 뱃멀미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으나 과식한 탓이 크다.
돌아보고 또 돌아봐도 과하면 탈이 난다. 근자의 일이다. 지인이 코너 각지에 상가를 사놓으면 노후에 돈 걱정 없이 지낼 거라며 권했다. 대출을 알선하고 세입자를 소개해준다기에 욕심이 나서 무리하게 빚을 얻어 샀다. 이는 노년에 인생 멀미의 단초가 되었다. 첫 세입자가 빠져나가고 다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여 속앓이했다. 채무 이자를 상환하고 상가 관리비까지 감당하느라 여기저기서 빚내어 돌려막느라 진땀 흘렸다. 결국 채권자에게 압류당하고 만 거다. 과식 때문에 맛있게 먹은 음식을 아깝게 토하듯 과욕 탓에, 목 좋은 상가를 잃고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독도를 찾은 여러분! 상륙을 축하합니다.”
선장의 축하 메시지다. 독도는 몸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그간 기상이 좋지 않아서 선상에서 바라만 보았다. 오죽하면 삼대에 거쳐 덕을 쌓아야 독도 땅을 밟아볼 수 있다고 한다. 사실, 포항과 울릉을 오가는 배는 큰 배다. 2만 톤급 크루즈로 파도가 거세고 바람이 서슬 퍼렇게 불어와도 군자처럼 꿋꿋이 버텨낸다. 반면 울릉에서 독도에 오가는 배는 작은 배다. 5백 톤급 쾌속선으로 소인배처럼 조급하다. 파도가 몰아치면 금세 휘청거리고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기운다. 눈앞에 파도 하나조차 버겁다. 그래서 어렵사리 온 게다.
난생처음 독도에 상륙했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87㎞ 정도 떨어진 동쪽 끝 외로운 섬이다. 하나 외로움 같은 건 모르고 지낼 것 같다. 학생들이 독도에 내리자, 태극기를 흔들며 ‘독도는 우리 땅.’ 떼창이다. 하늘에 우렁차게 울려 퍼진 노랫소리는 일본 시마네현에 닿았으리다. 가끔 자기네 땅이라고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넋 나간 이도 들었을 거다.
돌아올 시간이다. 출발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묵직하게 울린다. 배에 오르는데 일행 중 어떤 이가 빈속을 채우라며 떡을 건넨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손사래 쳤다. 호의는 고마우나 속을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편할듯하여 그러지 않았나 싶다.
첫댓글 유 수필가님의 작품 <독도 상륙작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