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보수작업
임병식 rbs1144@daum.net
미리 날짜를 받아놓은 일은 일기를 장담할 수가 없어 걱정이 따른다. 날씨가 맑으면 좋겠지만 비라도 내리게 되면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정한 일은 결행을 해야 한다.
부모님 산소 보수작업을 하려고 날짜를 잡아놓고 기다리는데 한동안 청명하던 날씨가 흐려지는 기미를 보였다. 일기예보를 들으니 아니나 다를까 내일은 비가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한다. 답답한 마음에 함께 가기로 한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비가 온다는데 걱정이 되는구나.”
하니 바로 대답이 돌아온다.
“잔디 입히는 일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조상님 집을 부수하는 일인데 하늘도 돌봐 줄거라고 하네요.”
그 말이 공연한 입발림으로 들리지 않았다. 조카 친구가 명이 난 지관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조카가 그에게 ‘손이 없는 날을 받아달라 ' 하니,
“ 돌아가신 부모님의 집이 허물어져서 고치는 건 당연한데 따로 날짜를 받고 자시고가 어디 있나?” 하더하는 것이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했다.
부모님 산소는 내가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정읍에 있다. 거리가 있다보니 불편한 것이 교통문제이다. 한 번씩 다녀오려면 하루를 잡이야 한다. 그런데 근자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몇 해 전부터 멧돼지들이 산소를 놀이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냥 머물다가 가면 상관이 없는데 마구잡이로 봉분을 헤집어 놓으니 잔디가 죽는 일이 발생한다. 방지책으로 퇴치가 된다는 크레졸을 여기저기 묻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훼손된 산소를 마냥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잔디를 입혀 보수를 히기로 한 것이다. 차제에 무덤주위에 울타리를 쳐서 방비를 하기로 했다. 사람은 다섯 명이 동원되었다. 차가 들어오는 아래쪽 도로에다 잔디를 부려놓고 묘지까지 져 날라야 한다. 그러자니 쉬운일이 아니다.
그런데 현지에 도착하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남녘에서는 아침부터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남원을 지나 정읍에 도착하니 새우비로 바뀐 것이다. 그 바람에 원만히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이번 산소 일을 하면서 특별히 느낀 것이 있다. 내가 60여 년 전 듣기로, 당시 우리나라는 골재산업이라는 개념자체가 없던 때에 일본에서는 이미 모래와 자갈을 크기별로 분류하여 판매한다는 말에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잔디를 판매하는 것을 보니 문득 옛날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판매상을 들었더니 사람은 없고 전화번호만 적혀있는데, 입구에 CCTV만 하나 달여 있었다. 전화를 걸어 잔디를 사러왔다고 하니 둘러보고 수량을 말하라고 한다.
잔디는 한 뼘 남짓한 크기로 잘려서 네 장씩 묶여있었다. 장묘산업이 세분화되어 있는데 놀랐다. 그것을 사들고 와서 작업을 하니 일이 훨씬 쉬어졌다.
조상님의 산소는 자손들의 마음을 한군데 모이게 하는데 구심점 역할을 한다. 이번 묘소를 고치는 일은 외국에서 의사로 일하는 아우가 비용을 댔다. 그리고 조카가 작업을 감독하는 가운데 그저 자리만 지켰을 뿐이다.
우리집안은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다. 집안이 번창하거나 특별한 인물이 배출되지도 않았다. 평범하기만 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 가지는 말한다면 동기간에 우애가 두터운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선대로부터 이어지는 집안의 유산으로 아버지와 백부님은 유독 형제애가 두터우셨다.
어느 정도이냐 하면 아버지가 중환이 들어 걸음떼기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이웃에 사시는 백부님이 쓰려지셨다는 말을 듣고는 몸을 부축하도록 하여 문병을 다녀오실 정도였다. 그때 형과 나는 아버지의 겨드랑이를 부축하였다.
이를 본받아서인지 자손들은 서로를 각별히 위한다. 이런 집안에 어느덧 내가 가장 나이많은 연장자가 되었다. 집안일을 하자면 어른으로서 의견을 내는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어느 누구하나 토를 달지 않아서 고마움을 느낀다. 이번 산소일도 내가 손을 봐야겠다고 하니 기꺼이 나서준 것이다.
엊그제 있었던 일이다. 조카 중 한명이 첼로음악가로 활동 중인데 그 동영상을 친구들과 공유한 카페에 올렸더니 한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자네 집안이 부럽네. 작가에 의사집안. 거기다 변호사에 음악가와 교수까지 배출되었으니 명문 집안이네.”
그 말을 듣고 쑥스럽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말도 들을법 하다. 다양하게 여러 방면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5,60년 전, 두메산골에서 겨우 논마지기나 붙여먹고 살던 후손들이, 나름의 영역에서 기를 펴고 사니 신통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을 마치고 늦은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조카가 묘 단장을 해드린 할머니를 떠올리며 말 했다.
“느그 아부지나 작은 아버지(나)는 생전 어디가면 내 손을 안잡아 줘야. 그런디 막둥이 작은아버지는 꼭 내손을 잡고 다닌다.”.
그 말에 가슴이 쿵하니 내려앉았다.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고 하셨구나. 갑자기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나저나 오늘 특별히 고마운 것은 먼곳에서 돈을 보내온 아우와 일을 도운 매제. 그리고 손수 일꾼이 되어 앞장선 조카이다. 그리고 거기다 하나를 더 보탠다면 전국이 우중에 휩싸인 중에도 이곳만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된 일이다. 날씨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2024)
첫댓글 흐뭇한 정경이 따뜻한 봄날의 정취를 자아냅니다 형제와 일가친척이 뜻을 합하여 조상의 묘소를 보수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요 본시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가 없는들 어떠하며 또 작금에 자랑가리가 없는들 어떻겠습니까 형제와 친지가 함께한다는 그것만으로 족하다 생각합니다
멧돼지가 산소를 훼손시켜놓았는데 이번에 보수를 했습니다.
당일에 전남지방은 비가 많이 왔는데 정읍은 새우비만 내려서 일하는데
별 지장이 없었습니다.
형식으로나마 그물망을 쳐두고 오니 마음이 좀 놓입니다.
산소를 다녀 오셨군요. 묘소 관리에 크레졸원액이 쓰이는 군요. 울타리까지 치셨으니 이제는 안심이 되시겠습니다.
아우님께서 비용을 내셨으니 참으로 흐뭇합니다.
아우님이 지명하신 명당이 되어, 드디어 작가, 의사, 변호사, 음악가, 대학교수가 배출되어 명문가를 이룬것 같습니다.
지난 번 장지에서도 매제와 조카가 큰일을 하셨는데 이번에도 애를 쓰셨군요..
전국이 장대비가 오는 날인데도, 당일 일하는 묘소에는 더위를 시키라고 새우비만 내렸으니 조상님의 음덕이라 생각됩니다.
큰일을 하고 오셨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침입자도 없을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산소일에 매제와 조카, 그리고 인부를 두사람 구하여 작업을 마쳤습니다.
동생이 경비를 도와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통하여 형재애와 가족 사랑이 한층 깊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