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마냥 편안한 사람이 있고
자꾸 생각나는 사람이 있듯이
절도 그저 편안한 맘으로 찾고 싶은 곳이 있다.
내게서 서운암은 그런 암자이다.
아마 어릴적 추억이 배어있는 감밭이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활짝 열린 삽작문 너머로 정겨운 모습이 눈을 가득 메운다. 작은 연못이 언제나 발벗고 나서며 반긴다. 몇 그루의 나무들을 벗하며 대웅전 아래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소담 스러운 연못을 보면 마음마저 잔잔해진다.
서운암의 무공해 단감을 판매중이다. 한 박스 2만 5천원이었다. 스님께 맛보기로 한 개 얻어서 아작아작 먹으며 음미하였다. 아련한 내 고향 집 단감 맛과 비교하며......
단감 상자에 들어가 있는 개구쟁이들!!!! 우리도 저렇게 놀았었는데..... 아이들은 구석진 곳이나 은밀한 곳을 좋한다.
난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공부도 남 모르게 벽장 뒤에서 하였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지금은 성격이 많이 변했지만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시어머니께서 모과나무가 멋있다고 사진 찍으라고 채근하신다.
사실 이번 나들이는 순전히 어머님을 위해서였다. 어머님은 지난 봄에 우리와 2박 3일간 무리하게 여행을 하신 뒤로 지금까지 앓고 계시는 중이다. 처음보다는 많이 나으셨지만 아직 한 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 동안 귀가 울려 외출을 삼가했는데 갑갑증이 나시는 지 아버님께 화를 자주 내셨다. 아무래도 여행을 못해 짜증이 나시는 것 같아서 이번 나들이를 계획하였다. 완쾌된 몸이 아니라 멀리 갈 수 없는 형편이어서 가까운 통도사로 나선 것이다.
아버님 어머님과 함께 산책 길로 올랐다. 멋없는 남편은 몇 번이나 다녀왔다고 나서지 않는다. 풀도 그때 그 푸르른 풀이 아니고, 마른 풀이라서 내음이 얼마나 향기로운 지, 감밭의 산책길도 그 때와는 다르게 단풍 든 감나무 사이를 산책하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늘 사진기를 들이대는 며느리에게 어머님은 어느새 코치까지 해 주신다.
"에미야, 대나무도 찍으라."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찍는 시늉을 했다. 마음이 없다 보니...... 나뭇가지가 눈에 거슬린다.
어머님은 저 파아란 풀이 무엇인지 유심히 보신다. "저거는 메밀이네예." "지금 무슨 메밀이 있노?" 아버님께서 되받으신다. 그러자 옆에 구경오신 어른들이 거들고 나선다.
"보니까 메밀이 맞네예. 요즘 폼으로도 심는다 아입니꺼?" 그러자 아버님은 더 이상 우기지 않으신다.
먼 산 바라보며 장독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들도 가을을 느낄까?
다 따버리고 휑한 감나무 사이에서 유독 돋보이는 감나무다. 멀리서부터 눈독을 들였는데.... 손을 뻗어 감이 따고싶었지만 못가게 막아 놓은 줄을 제치고 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옛 생각이 더 진하게 난다.
단감나무 단풍잎도 아름답다.
은은하면서도 어떤 것은 제대로 물이 올라 아주 빠알갛다. 특히 작은 잎이 더 예쁘다. 그런 것은 책갈피에 넣어 말려서 일기장에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 장식을 했었지....
나란히 서있는 두 그루의 정겨운 소나무 품에서 사람들도 잠시 쉬어가고 싶은가 보다.
봄에 고운 꽃을 피우기 위해 꽃씨들은 땅속 깊은 곳에서 긴 잠을 자겠지.
노끈이 쳐 있지 않은 감나무 밭으로 들어갔다. 까치밥을 위해 남겨 놓은 감이 너무 탐스러웠다. 순간 탐욕이 일어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 쪽으로 향한다. 그래서 잘나고 맛있게 생긴 놈을 하나 따서 옷에 쓱쓱 문질러 한입 배어 물었다. 단물이 질금질금 입가로 흘러 나온다. 음~~~~ 바로 이 맛이야.
부처님 용서 하이소. 그 대신 보시하겠습니더.
멀리 영취산이 떡 버텨 서있다.. 그리고 그 품에서 서운암은 평화를 노래한다.
서운암의 가을은 깊어만 간다.
단감나무는 대개가 이렇게 나즈막하다. 어느 날, 앨범 정리를 하다보니 고 3때 친구들과 감밭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초가집 기둥에 기대어 먼 산 바라보며 찍은 것 하며 웃으며 홍시를 배어 먹는 모습, 벼 그루터기만 남아있는 논 두렁에서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나의 소녀 시절의 감성적 친구였던 감밭이 너무 그리워졌다. 지금 여기 감밭처럼 야트막한 동산이었는데....
가을의 꽃, 국화만 다소곳이 피어있다.
따사로운 가을볕 속에서 장맛은 깊어만 간다.
쉿!! 장독도 숨쉬고 있답니다. 그래서 발소리를 죽여봅니다. 후후후후후~~~ 정말 숨쉬고 있을거야.
첫댓글 감나무와 장독대 정말 멋있습니다. 이많은 장독대는 처음 구경 하네요.
보이는 곳곳 참 평화롭습니다.다음을 기대해도 되겠죠?
나도 감이란 과일을 좋아하고, 감나무가 있는 가을 풍경과 위 사진에서와 같은 소나무의 풍경을 아주 좋아하는데, 법우님의 글과 사진은 제게 항상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고 아련한 그리움의 책장 하나를 다시 들추어 보겠끔 만들고 있네요. ^*^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고맙습니다.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