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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첫시집 [☆대숲 아래서☆](5판)의 앞표지(우)와 뒤표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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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아래서]
나태주 40년전 첫시집 / 지혜사랑시집 / 도서출판지혜/계간시전문지애지(2013.10.15)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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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아래서
나태주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득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4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 지는 서녘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드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달님만이 내 차지다.
하일음夏日吟
나태주
나이 스물 하고도 다섯의
이 여름에
내게 있어 제일로 중요한 일은
여자들과 만나 시시덕이는 잡담이 아니고
오로지 혼자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들이다.
혼자의 그 하얀 잔주름들을
잘 이겨낼 줄 아는 일이다.
가슴에 피어서 좀쑤시게 하는
분홍, 분홍, 연분홍의 안개들을
곱게 다스려
말간 이슬 한 종재기로라로
걸러내는 일이다.
비 갠 여름 점심 한나절쯤
조히,
꽃밭 귀퉁이에
국민학생용 나무의자라도 하나
가져다 놓고
꽃들이 수선떠는 그 소리 없는
소리들의 모양새들을
착실히 구경하는 일이다.
하늘의 비늘구름들이 내려와서
자맥질하며 멱감고 나오는
꽃 속의 호수라도 한 채
찾아내는 일이다
찾아낼 줄 아는 일이다.
다시 산에 와서
나태주
세상에 그 흔한 눈물
세상에 그 많은 이별들을
내 모두 졸업하게 되는 날,
산으로 다시 와
정정한 소나무 아래 터를 잡고
둥그런 무듬으로 누워
억새풀이나 기르며
솔바람 소리나 들으며 앉아 있으리
멧새며 소쩍새 같은 것들이 와서 울어주는 곳
그들의 애인들꺼정 데불고 와서 지저귀는
햇볕이 천년을 느을 그르게 비추는 곳 쯤에 와서
밤마다 내리는 이슬과 서리를 마다하지 않으리
내 이승에서 빚진 마음들을 모두 갚게 되는 날,
너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백발로 졸업하게 되는 날,
갈꽃 핀 등성이 너머
네가 웃으며 내게 온다 해도
하낫도 마음 설레일 것 없고
하낫도 네게 들려줄 얘기 이제 내게 없으니
너를 안다고도
또 모른다고도
숫제 말하지 않으리
그 세상에 흔한 이별이며 눈물,
그리고 밤마다 오는 불면들을
내 모두 졸업하게 되는 날,
산에 다시 와서
싱그런 나무들 옆에
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하늘의 천둥이며 번개들을 이웃하여
떼강물로 울음 우는 벌레들의 밤을 싫다하지 않으리
푸르디 푸른 솔바람 소리나 외우고 있으리...
겨울 달무리
나태주
웃으면 가지런한 옥니가 이쁘던 그대,
웃으면 볼 위에 새암도 생기던 그대,
그대의 손가락에 끼웠던
금가락지 같은 달무리가
오늘은 우리의 이별의 하늘에 솟았다.
그대의 마을에서부터 오는
기러기 발가락들이 찍어놓은
발가락 도장들이 어지러운 하늘가
오늘은 눈이라도 오시려나.
천둥호령이라도 나시려나.
울멍울멍 울음을 참던
나의 하늘에
그 때 그대를 시집 보내던 나의 마음이
오늘은 잊혀진 겨울 하늘에
흐릿한 달무리로만 어렸다.
달무리 하나로만 남았다.
봄바다
나태주
모락모락 입덧이 났나베.
별로 이쁘진 않았어도
내게는 참 이쁘기만 했던 그녀가
감쪽같이 딴 사내에게 시집 가
기맥힌 솜씨로 첫애기를 배어,
보름달만한 배를 쓸어안고
입덧이 났나베.
잡초 같은 식욕에 군침이 돌아
돌아앉아 자꾸만 신 것이 먹고 싶나베.
깊이 모를 어둠에서 등돌려 돌아오는
빛살을 바라보다가
희디흰 바다의 속살에 눈이 멀어서
그만 눈이 멀어서
자꾸만 헛던지는 헛낚시에
헛걸려 나오는 헛구역질, 헛구역질아.
첫애기를 밴 내 그녀가
항缸만해진 아랫배를 쓸어안고
맨살이 드러난 부끄럼도 잊은 채
어지럼병이 났나베.
착하디 착한 황소눈에
번지르르 눈물만 갓돌아서
울컥울컥 드디어 신 것이 먹고 싶나베.
훔사리* 간 내 그녀가.
*흡살이 : ‘후살이’의 방언
가을 서한 B
나태주
1.
당신도 쉽사리 건져주지 못할 슬픔이라면
해질녘 바닷가에 나와 서 있겠습니다.
금방 등돌리며 이별하는 햇볕들을 만나기 위하여
그 햇볕들과 두 번째 이별을 하기 위하여
2.
눈 한 번 감았다 뜰 때마닥
한 겹씩 옷을 벗고 나서는 저 구름
멀리 웃고만 계신 당신의 옆모습이랄까
손 안닿을 만큼 멀리 빛나는 슬픔의 높이
3.
아무의 뜨락에 들어서 보지도 못하고
아무의 들판에서도 쉬지 못하고
기웃기웃 여기 다다랐습니다.
고개들어 우러르면 하늘 당신의 이마
4.
호오, 유리창에 입김 모으고
그사람 이름 썼다 이내 지우는
황홀하고도 슬픈 어리석음이여
혹시, 누구 알 이 있을까 몰라.
진눈깨비
나태주
식을 대로 식어버린 그대 입술의
마지막 돌아서던 그 키스에
이승에선 다시 안 볼 사람 앞
맵고 짜던 그 눈총 속에
어쩌면 얌전하디얌전하게
잠들어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진눈깨비 한 마장.
용케도 안 잊어먹고
하늘의 그 어드메 삼수갑산쯤에서
들키지 않게 숨어 있다가
오늘에사 나를 찾아오시는
이 시늉, 이 매질들인가.
누구의 선 귀때기나 울려주려고
누구의 슬픔에 뿌리를 달아주려고
느즈막히 이 투정, 이 안달들인가.
그러나 이제는
적셔도 젖지 않을 눈물,
울려도 울지 않을 나의 삼경.
서리무지개 서서
줄기줄기 무리져서
이승에선 다시 안 볼 사람 앞
매질하며 달려오는 그대.
고꾸라지며 맨발 벗고 내게 오시는 그대.
상강
나태주
갑자기 눈이 밝아져 귀가 밝아져
마른 풀덤불 속 다리 뻗은 무덤
다시 생각나야 할 때.
따신 햇볕살 익어가는 하이얀 촉루
다시 그리워야 할 때.
그대를 잊어버려 아주 뿌리째 잊어버려
세수하고 난 어느 날 아침
수건으로 코피를 닦으며
그대 생각 다시 새롭게 떠올리기 위하여.
피 먹은 골짜기 너머
미리 띄워둔 몇 송이 조각구름
빨간 등산복이라도 하나 사서 입혀
멀리 떠나보내고,
동산 위 무덤 밖
들국화 같은 것 세워둔 채,
형용사며 부사 따위 벗어둔 채,
명사와 대명사로만 앙상히 누워 있어야 할 때.
열일곱 살 처녀귀신
대추나무 가지에 목을 매달면
우리도 여봐란 듯이
죽어줘야 할 때,
죽어줘야 할 때가 천천히 오느니 -.
어머니 치고 계신 행주치마는
나태주
어머니 치고 계신 행주치마는
하루 한 신들 마를 새 없이,
눈물에 한숨에
집뒤란 솔밭에 스미는
초겨울밤 솔바람 소리만치나
속절없이 속절없이……
봄 하루 허기진 보리밭 냄새와
쑥죽 먹고 짜는 남의 집 삯베의
짓가루 냄새와 그 비린내까지가
마를 줄 몰라, 마를 줄 몰라.
대구로 시집간 딸의 얼굴이
서울서 실연하고 돌아와 울던 아들의 모습이
눈에 박혀 눈에 가시처럼 박혀
남아 있는 채,
남아 있는 채로……
이만큼 살았으면
기찬 일 아픈 일은 없으리라고
말하시는 어머니, 당신은
오늘도 울고 계시네요.
어쩌면 그렇게 웃고 계시네요.
솔바람소리 A
나태주
내 예닐곱 살 무렵
책 보퉁이 둘어메고
학교길 오고 가며
소나무 아래 와서 듣던
그 소나무 솔잎 에 부서지던
솔바람소리.
오늘, 어른이 되어
고향애 들른 짬에
다시 와서 들으니
그제 이제 하낫도 변한 것 것 없는 목청으로
여전히 단군왕검 시절의
태백산맥 줄기를 가로지르던
그 소리 그대로 살아 있음을 듣고
천 년 하고도 한 오천 년쯤은
너끈히 살아갈 수 있는
질긴 목숨을 생각한다.
지금도 병풍 속에 앉았다
마악 눈을 털고 날아온
학이 한 마리,
눈 덮인 산하 를 가로지르는
그 날갯짓 소리 그대로
하낫도 목쉬거나 녹슬지 않게
살아 있음을 듣게 된다.
내 고향은
나태주
내 고향은
산, 산
그리고 쪽박샘에
늙은 소나무,
소나무 그림자.
눈이 와
눈이 쌓여
장끼는 배고파
까투리를 거느려
마을로 내리고,
눈 녹은 마당에서
듣는
솔바람 소리.
부엌에서 뒤란에서
저녁 늦게 들려오는
어머니 목소리.
짚불 피워 구들을 달군 뒤
나태주
짚불 피워 구들을 달군 뒤
조이문에 불을 밝히니
대숲에 깃을 찾은 산새떼
지줄거리고*
둥기둥, 꿈결인 양 달이 솟는다.
칭얼대는 생활이야 저만큼
담장 아래 잠재워두고
오랜만에 만난 정만
새각싯적
동정이 밝아오던 수줍음이라,
오호, 두 귀 빨개져
동동동 발을 구르며
저녁 안개 더불어 마중 나오는
니는 누구의 조강지처뇨!
찬물에 설거지하고
행주치마 훔치는 손
내 녹여 줄께 이리 주구려.
* 지줄거리고: 지절거리고의 충청도 방언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대숲바람 소리
나태주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남의 집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
밤 사이 내려와 놀던 초록별들의
퍼렇게 멍든 날개쭉지가 떨어져 있다.
어린 날 뒤울안에서
매 맞고 혼자 숨어 울던 눈물의 찌꺼기가
비칠비칠 아직도 거기
남아 빛나고 있다.
심청이네집 심청이
빌어먹으러 나가고
심 봉사 혼자 앉아
날무처럼 끄들끄들 졸고 있는 툇마루 끝에
개다리소반 위 비인 상사발에
마음만 부자로 쌓여 주던 그 햇살이
다시 눈트고 있다, 다시 눈트고 있다.
장 승상네 참대밭의 우레 소리도
다시 무너져서 내게로 달려오고 있다.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남의 집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
내 어린 날 여름 냇가에서
손바닥 벌려 잡다 놓쳐 버린
발가벗은 햇살의 그 반쪽이
앞질러 달려와서 기다리며
저 혼자 심심해 반짝이고 있다.
저 혼자 심심해 물구나무 서 보이고 있다.
삼월의 새
나태주
3월에 우는 새는 새가 아닙니다.
나뭇가지 끝에 걸린
그것들은 나무의 열매들입니다.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 앉으며
올 줄도 아는 열매들입니다.
시방 새들의 성대는
부글부글 햇살을 끓이고 있고
햇살은 새들의 몸뚱이에 닿자마자
이슬방울이 되어 퉁겨납니다.
새들의 울음 소리에 하늘은 모음으로 짜개집니다.
보셔요,
우물터에 앉아 겨울 내복을 헹구는
누이의 눈을.
눈물 번지는 벌판에 타오르는 아지랑이
그 아지랑이 속을 솟아오르는 누이 눈 속의 종달새 한 마리를……
3월에 우는 새는 새가 아닙니다.
나뭇가지 끝에 걸린
올 줄도 알고 날 줄도 아는
그것들은 벌써
우리 마음속에 그려진 하나의 과일들입니다.
달밤
나태주
어수룩히 숙어진 무논 바닥에
외딴집 호롱불 깜박이는
산이 내리고
소나기처럼 우는
개구리울음에
물에 뜬 달이 그만 바스라지다.
달밤.
안개는 피어서 꿈으로 가나,
물에 절은 쌍꺼풀눈
설운 네 손톱을,
한 짝은 어디 두고
홀로이 와서
입안에 집어넣고 자근자근 씹어주고 싶은
네 아랫입술 한 짝을,
눈물 아슴아슴
돌아오는 길.
어디서 아득히 밤뻐꾸기 한 마리
울다말다 저 혼자도 지치다.
나 혼자 이슬에 젖는 어느 밤 .
초저녁의 시
나태주
어실어실 어둠에 묻히는 길을 따라
가긴 가야 한다.
귀또리 소리 아파 쓰러진 풀밭을 밟고
새록새록 살아나는 초저녁 별을 헤이며.
그대 드리운 쌍꺼풀 눈두덩의 그늘 속으로,
아직도 고오운 옷고름의 채색구름 속으로,
어실어실 어둠에 묻혀 쓰러지는
길을 따라
날마다 날마다 가지만
결국은 다 못 가기 마련인 그대에게로
어실어실 어둠에 묻혀 가긴 가야 한다.
어실어실 어둠에 스며 끝내 그대에게만
가기는 가야 한다.
언덕에서
나태주
1
저녁때 저녁때
저무는 언덕에 혼자 오르면
절간의 뒤란에 켜지는
한 초롱의 조이등불이 온다
돌다리 내려 끼울은 석등石燈에 스미는
귀 떨어진 그 물소리,
내게 스민다.
숲의 속살을 탐하다 늦어 버린
바람의 늦은 귀가歸家가 온다.
2
아침에 비,
머리칼이 젖고
오후 맑음,
언덕에 올라 앞을 막는 바람 한 줄기.
나무숲에서 새소리 난다.
새소리 끝에 묻어나는 숲의 살내음.
아아, 누구든지 한 사람 만나고 싶다.
누구든지 한 사람 만나고 싶다.
3
오늘은 불타는 그대의 눈
그대의 눈썹.
엷은 풀냄새 나다,
여린 감꽃냄새 나다,
그대 머리칼.
까맣게 잊어먹었던
그대 분홍 손톱에 숨겨진
아직도 하얀 낮달이 한 개.
찾아가다 찾아가다
길 잃고 주저앉은 산골 속
햇볕에 불타는 노오란 산수유꽃길
그대의 눈.
이제사 잠든
대숲 바람소리
그대의 눈썹.
겨울 연가
나태주
한겨울에 하도 심심해
도로 찾아 꺼내 보는
당신의 눈썹 한 켤레.
지난 여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던 그것들.
움쩍 못하게 얼어붙은
저승의 이빨 사이
저 건너 하늘의 한복판에.
간혹 매운 바람이 걸어 놓고 가는
당신의 빛나는 알몸.
아무리 헤쳐도 헤쳐도
보이지 않던 그 속살의 깊이.
숙였던 이마를 들어 보일 때
눈물에 망가진 눈두덩이.
그래서 더욱 당신의 눈썹 검게 보일 때.
도로 찾아 드는
대이파리 잎마다에 부서져
잔잔히 흐느끼는
옷 벗은 당신의 흐느낌 소리.
가만가만 삭아 드는 한숨의 소리.
우물터에서
나태주
그 동안 당신이 많이도 잊어벅은 것은
구름을 바라보는 서거픈 눈매.
눈 덮인 골짝에서
부서져 내리는 돌바람의 귀[耳].
푸들푸들 깃을 치는 눈[雪]의 육체.
그 동안 당신이 많이도 잊어먹은 것은
책 한 권 아무렇게나 손에 들고
저무는 언덕길로 멀어져 가던 뒷모습.
초가집 뒤울안에 곱게 쓸리는 대숲의 그늘.
오시구려, 오시구려,
그렇게 멀리서
억뚝억뚝 바라보며 서 있지만 말고
흰구름이라도 하나 잡아타고
그 동안 많이도 잊어먹은 것들을 가지러
오시구려,
아직도 우물터가 그리운 사람아.
잡목림 사이
나태주
봉지 안 쓴 배들이 익어가는 배밭 너머
쏘내기에 씻겨진 하늘,
흰구름떼 달려와 비늘을 털고
자작나무, 물푸레나무, 떡갈나무 같은 것들
서둘러 옷 벗고 나서는 곳.
오너라,
니 작은 어깨 움츠려뜨리고
아까부터 문턱에서 성가시게 조르던
아이야.
생채기진 무르팍 맥시풍의 긴 치마로 가리우고
치렁치렁 잡목립 사이
또 하나 새로운 나무가 되어.
또 하나 싱그런 구름이 되어.
우리의 구겨진 약속이 떨어져 있는 거기,
우리의 철 없던 눈물의 찌꺼기 스며 있는 거기,
아아, 우리의 달뜨던 숨소리
우리의 가슴 떨리던 기쁨의 나날들
나란히 나란히 팔베개로 누워 죽은 거기로.
오월에
나태주
1
찰랑찰랑
애기 손바닥을 흔드는
미루나무 속잎 속에
초집 한 채가 갇혔다.
하이얀 탱자꽃 내음에
초집 한 채가
또 갇혔다.
들머리밭엔
노오란 배추꽃
바람.
햇살남매 모여 노는
초지붕 그 아랜
작은 나의 방.
2
치렁치렁
보릿고랑에 바람 흘러간다.
내 작은 마음 흘러간다.
길슴한 보리모개 사이로
보얗게 목이 팬 그리움.
부질없이 화사한 고전의 의상.
웃으며 네가 웃으며
나래 저어 올 것만 같은 날에.
머리칼이라도 조금 날릴 것 같은 날에.
3
푸른 언덕이 뱉아놓은 흰구름덩이.
흰구름덩이 속으로 다이빙해 들어가는
새끼제비의 비행연습.
네 생각하다 잠들었다, 오후.
문득 시계풀꽃* 내음에 흩어지는
나의 꿈.
4
누군지 모를 이 기다리고 있을까 싶어
언덕에 나와 휘파람 불면
눈썹까지 그득히 고여오는 한낮의 바다
글썽이며 눈물 글썽이며 따라나서고
금은의 햇살을 실어나르는 조각배,
바람만 잡아 돌아온다.
바람만 잡아 돌아온다.
5
바람에 머리칼 날리는
자작나무의 귀밑볼은
희다.
바람에 스커트자락 날리는
자작나무의 속살은
눈부시다.
바람에 풀어헤친
자작나무의 흰 가슴은
날아갈 듯 부풀었다.
*시계풀꽃 : 클로버꽃.
▲첫시집 [☆대숲 아래서☆](5판)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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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詩集 [※대숲 아래서※]
[ 서문 ] -
지난여름, 나군은 공주에서 구했노라며, 이조자기李朝瓷器를 가진 것을 보았다. 그것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저 자신의 시세계를 한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최근에 발표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백자白磁보다 청자靑磁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데뷔할 무렵의 소박성이 한결 세련되고, 백자의 그것보다는 투명한 서정의 깊이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우물터에 앉아 겨울 내복을 헹구는
누이의 눈을
눈물 번지는 벌판에 타오르는 아지랑이
그 아지랑이 속을 솟아오르는 누이 눈 속의 종달새 한 마리를…
「삼월의 새」한 부분이다. 이 자품은 밑바닥에 깔려 있는 차갑도록 청초한 서정성은 청자의 그것과 통하는 것이며, 그의 완숙하리만치 세련된 기교는 숙달된 도공과 그가 빚은 항아리의 유연한 선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나군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하여 대ㅔ뷔한 시인이다. 궁벽진 시골에서 교편을 잡는 나군과 같은 처지에서 ‘신춘문예’에 당선된다는 그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남다른 천부의 소질과 그 자ㅓ신의 심각한 노력 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만으로 그의 역량을 전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는 신춘문예 당선시인 중에서도 한 시대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과 사명을 띠고 등장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한 시인이다. 다시 말하면 1960년대의 현대시가 지닌 난해성과 건조성을 탈피하고, 70년대 벽두에 그는 전통적인 서정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세련․발전시켜, 오늘의 혼매昏昧속에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 것이며, 그 후로 꾸준한 노력과 정진은 우리들의 기대에 어그러짐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나군의 이와 같은 자기 세계의 성취나 업적이, 어느 면에서는 그의 문학하는 자세의 진지성과도 직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들뜨는 일이 없이 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기 세계에의 집착과 심화를 꾀하였으며, 그와 같은 집착성이 시류時流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들의 저변을 흐르는 전통적인 서정의 수맥을 찾아 제 것으로 이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그와 같은 침착성에 끝없는 신뢰를 가지는 것이다.
나군은 한국의 전ㅌ통적인 서정시를 계승하여 오늘의 것으로 빚어놓은 희귀한 시인이다. 묵은 가지에 열리는 그의 알찬 열매는 어느 것이나 오늘의 것으로서의 참신성과 신선미를 잃지 않고 있다. 그런 뜻에서 그의 작품은 누구에게나 친근함과 신선감을 베풀어주리라 확신한다.
1973년
한강 가에서
朴木月
.★.
================= .♣.
나태주 詩集 [※대숲 아래서※]
[ 다시 쓰는 후기 ] - 나태주 시인
시집『대숲 아래서』는 1973년 출간된 나의 첫 시집이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했으므로 등단 3년 만에 낸 시집이다. 당시, 박목월 선생은 한국시인협회 회장의 일을 맡고 계셨는데 시인협회에서는 시인들의 시집을 시리즈로 내주고 있었다. 꼭 그 시리즈를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나도 시집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신춘문예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박목월 산생께 시집 출간의 일을 상의드렸다. 그랬더니 시집 시리즈는 계획이 끝이 나 있어 참여시킬 수 없으니 자신이 알아서 시집을 내라는 말씀을 주셨다. 대신 시집의 서문은 써주마 하셨다.
그 당시는 시집을 푼푼하게 내주는 출판사가 없었다. <월간문학>이라든지 <현대시학>이라든지 문학잡지사가 시집출간의 일을 대행해주고 있었다. 선배시인인 이건청이나 오세영 같은 시인들이 그런 경로로 시집을 내는 것을 보았다. 나는 <현대시학> 주간을 맡고 있던 전봉건 선생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국판과 종서체재로 중질지를 사용하여 500부 한정판 시집을 찍기로 선생과 계약했다. 아버지한테 쌀 열 가마니 값인 16만원을 빚을 내어 전 선생께 드렸다. 그런데 내가 맘이 변하여 종이를 백색모조지로 바꾸고 부수 또한 700부로 바꾸었다.
☜ 옆의 사진은 나태주 시인이 1973년에 발행한 시집『대숲아래서』(제1판)의 앞표지이다.(카페지기)
계약위반이었다. 그러나 전봉건 선생은 통 크게 그러한 나를 요구를 모두 들어주셨다. 그러면서 선생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나 형과 내가 이걸로 모든 관계가 끝난 것이 아니잖소?” 그때는 그저 그 말이 고맙기만 했는데 두고두고 생각해볼 때 전봉건 선생은 참 좋은 선배시인이란 생각을 사무치도록 갖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날 그런 선배 시인이 되지 못함을 못내 부끄럽게 생각하곤 한다. 이렇게 박목월 선생과 전봉건 선생의 은혜를 입어서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시집의 반응은 그런대로 좋았다. 첫 시집이 좋아야 그 시인의 출발이 좋은 법인데 나에게 첫 시집『대숲 아래서』는 두고두고 효도하는 시집이 되었다. 두루 감사한 일이다.
그동안 시집『대숲 아래서』는 네 차례에 걸쳐 판을 거듭해서 책으로 나왔다. 첫 번째는 위에서 밝힌 대로 1973년 예문관이란 출판사를 통해서였고, 두 번째는 1982년 성안당(사주: 조완호 시인)이란 출판사를 통해서였고(이 책에는『대숲 아래서』에 실린 시편에다가 두 번째 시집인『누님의 가을』이란 시집에서 일부 시를 뽑아 4부와 5부를 삼았다), 세 번째는 청하출판사(사주 : 장석주 시인)를 통해서였다. 이 시집은 완전히 합본시집 형식인데 첫 시집『대숲 아래서』와『누님의 가을』을 합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으며 그 제목도 완전히 바꾸어『우리 젊은 날의 사랑아』로 했다. 네 번째는 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비 출판으로 했는데 1995년 재전의 분지출판사(사주 : 안현심 시인)란 데서 손바닥 크기의 소형 책자 형식을 빌렸으며 그 안에 내가 만든 어줍잖은 판화를 삽화로 끼워 넣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 내는 책은 다섯 번째 책이 된다. 마침 올해는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온 지 마흔 돌이 되는 해이다. 모든 책이 절판됨은 물론, 그래서 나름 그 40년을 기념하여 다시 한 번 이 시집을 책으로 만들려고 한다. 나 자신 잊을 수 없는 시집이고 또 내 시의 원점이 된 책이므로 늘 마음이 여기에 가 있곤 했다. 지혜출판사의 반경환 선생이 도와주어서 다시금 책을 내게 되었다. 감사한 노릇이다. 책의 내용이나 체제는 완전히 첫 번째 책을 기준으로 삼았다. 역시 나는 나의 책을 두고서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한다. 나의 시여, 나 비록 세상에서 사라진 날에도 너는 오래 살아남아 부디 건강하거라. 멀리 축원의 마음을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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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풀꽃」의 시인 나태주의 첫 시집
『대숲 아래서』의 다섯 번째 개정판!!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시비詩碑가 세워진 것이 나태주 시인의 [풀꽃]일 것이다. 오늘날 자연환경과 생태환경이 부각되면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단 3행의 시가 만인들의 심금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풀꽃은 작디 작고 이름없는 꽃이지만, 그러나 자세히 보면 더없이 예쁘고, 오래 바라보면 더없이 사랑스럽다. 작디 작고 보잘 것 없는 풀꽃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이 이 땅의 민초民草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고, 따라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전 국민의 애송시가 되고, 그토록 많은 곳에 -나태주 시인도 모르게- 시비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대숲 아래서』는 명실공히 풀꽃의 시인 나태주의 출세작품집이며, 한국시문학사상 가장 아름다운 서정시집이라고 할 수가 있다. 대나무는 사시사철 늘 푸르고, 언제, 어느 때나 단 한걸음도 생략할 수 없는 자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나태주의 상징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시집『대숲 아래서』는 1973년도에 출간된 나의 첫 시집이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했으므로 등단 3년 만에 낸 시집이다. 박목월 선생과 전봉건 선생의 은혜를 입어서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시집의 반응은 그런대로 좋았다. 첫 시집이 좋아야 그 시인의 출발이 좋은 법인데 나에게 첫 시집 『대숲 아래서』는 딸이 아니고 아들이어서 두고두고 효도하는 시집이 되었다. 두루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 내는 책은 다섯 번째 책이 된다. 마침 올해는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온 지 마흔 돌이 되는 해이다. 모든 책이 절판되었음은 물론. 그래서 나름 그 40년을 기념하여 다시 한 번 이 시집을 책으로 만들려고 한다. 나 자신 잊을 수 없는 시집이고 또 내 시의 원점이 되는 책이므로 늘 마음이 여기에 가 있곤 했다. -「다시 쓰는 후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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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 나태주는 1945년 충남 서천군에서 출생하여 1963년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43년간 초등학교 교직에 종사하다가,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을 했다.
또한 그는 1971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이 되었으며, 1973년에 첫 시집『대숲 아래서』이래『시인들 나라』,『황홀극치』,『세상을 껴안다』등 33권을 출간했고, 산문집『시골사람 시골 선생님』,『풀꽃과 놀다』,『시를 찾아 떠나다』,『사랑은 언제나 서툴다』등 10여권을 출간했으며, 동화집『외톨이』를 내기도 했다.
받은 상으로는, 흙의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고운문학상 등이 있고, 충남문인협회 회장, 공주문인협회 회장, 충남시인협회 회장,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공주문화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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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편 ◑
이 책에 대하여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시비詩碑가 세워진 것이 나태주 시인의 [풀꽃]일 것이다. 오늘날 자연환경과 생태환경이 부각되면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단 3행의 시가 만인들의 심금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풀꽃은 작디 작고 이름없는 꽃이지만, 그러나 자세히 보면 더없이 예쁘고, 오래 바라보면 더없이 사랑스럽다. 작디 작고 보잘 것 없는 풀꽃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이 이 땅의 민초民草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고, 따라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전 국민의 애송시가 되고, 그토록 많은 곳에- 나태주 시인도 모르게- 시비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나태주 시인은 1945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하여 1963년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부터 43년간 초등학교 교직생활을 하다가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했다.
그는 또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이 되었으며 1973년도에 낸 첫 시집 [대숲 아래서]이래 [시인들 나라] [황홀극치] [세상을 껴안다] 등 시집 33권을 출간했고, 산문집 [시골사람 시골선생님] [풀꽃과 놀다][시를 찾아 떠나다][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등 10여권을 출간했으며, 동화집 [외톨이]를 내기도 했다.
받은 상으로는 흙의 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 시학상, 편운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고운문화상 등이 있고 충남문인협회 회장, 공주문인협회 회장, 충남시인협회 회장,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공주문화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나태주 시인의 첫 시집 [대숲 아래서]는 1973년 예문관에서 제1판이 출간되었고, 1982년 성안당에서 제2판이 출간되었다. 1987년 청하출판사에서 제3판이 출간되었고, 1995년 분지출판사에서 제4판이 출간되었으며, 이제 [대숲 아래서]는 다섯 번째 개정판으로 출간을 하게 되었다. [대숲 아래서]는 명실공히 나태주 시인의 출세 작품집이며, 한국시문학사상 가장 아름다운 서정시집이라고 할 수가 있다. 대숲은 시인의 시적 산실이며, 그는 대숲 아래서 그의 부모형제와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시를 쓰게 된다.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대숲 아래서]), "도로 찾아 듣는/ 대이파리 잎마다에 부서져/ 잔잔히 흐느끼는/ 옷 벗은 당신의 흐느낌 소리"([겨울 연가]), "책 한 권 아무렇게나 손에 들고/ 저무는 언덕길로 멀어져 가던 뒷모습/ 초가집 뒤울안에 곱게 쓸리는 대숲의 그늘"([겨울 연가])등의 시구들이 바로 그것이며, 나태주 시인은 이처럼 대숲 아래서 대시인의 꿈을 꾸고,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이 되었던 것이다.
대나무는 사시사철 늘 푸르고, 언제, 어느 때나 단 한걸음도 생략할 수 없는 자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나태주 시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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