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세일기-대지의 꿈으로 젖어든다(2013.11.9)

[Wondam:원담]

 비가 오는 밤길을 걷는다. 우산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걷노라니 ‘소리 나는 우산’이 무슨 악기처럼 느껴진다. 우산을 들고 가는 사람은 탬버린을 치고 다니는 거리의 악사이다. 밥딜런의 노래, 헤이 미스터 탬버린 맨, 플레이 어 쏭 포미, 아임낫 슬리피 언 데어리즈 노 플레이스 아임고잉투....Hey, Mr. Tambourine Man, play a song for me, I'm not sleepy and there is no place I'm going to...빗소리에서 막걸리에 취한 듯한 밥딜런의 쉰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억지스럽다. 그래도 탬버림맨처럼 이 밤 나는 떠난다. 낯선 곳에 떨어진 모르는 사람처럼 걸어간다. 나는 나를 잊고 걷는다.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가다 문득 예정에도 없는 어떤 역에 내린다. 그리고 들어본 적도 없는 마을을 둘러본다. 모든 것이 새롭고 정답다. 모르는 사람, 모르는 거리, 모르는 곳, 나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모르는 사람이 된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되어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유쾌하고 자유로운가! 문득 만유인력이 해체되어 사물과 사물들이 뚝뚝 떨어져 자유롭게 둥둥 떠다닌다. 나를 잡아끄는 힘이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이 거리에서 완전한 이방인이다. 그래서 완전히 자유다. 빗물에 젖은 풍경은 추상화이다. 추상과 구상이 섞이고, 빛과 어둠이 혼합된다. 색깔과 형체가 뒤엉키어 풍경은 뭉그러진다. 소리는 뛰어다니면서 춤을 추고, 모든 것이 제 맘대로이다. 형상과 소리가 이리 저리 굴러다니니, 어둠속에서 사물은 얼마나 큰 위안을 얻는가. 만물이 가을비에 젖어 길게 눕는다. 산도 눕고 나무도 눕고 강도 눕는다. 누운 것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대지(大地/terra)의 혼을 흡입한다. 밤비에 젖은 것들은 깊은 잠으로 빠져들어 신화의 원형을 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지의 꿈이다. 대지는 내가 걷는 발이요, 내가 자는 방이다. 대지가 내 발바닥을 밟고 걸어간다. 나는 대지의 발걸음을 느껴준다. 내가 대지를 놓아버리고, 대지가 나를 놓아버리면 중력은 무효이다. 나는 지구를 놓아버린다. 지구는 우주 끝으로 아득히 사라져가고 나도 한 점이 되어 우주의 반대편으로 사라져 간다. 서로 끌어당기지 말라. 서로 붙잡지 말라. 서로 밀어내지 말라. 사물과 사물 사이, 별과 별 사이, 사람과 사람사이에 밀고 당기는 힘이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무작용, 무반응, 완벽한 정적, 고요한 평화일까? 죽음, 히트데쓰(Heat Death/열역학적 법칙에 의한 우주의 사망신고),블랙홀(Black-hole), 결정화(crystallization/만물이 수정이나 다이아몬드처럼 고체결정화 되는 것)일까? 만유인력이 해체되면 모든 입자와 에너지가 한데 녹아 뭉그러진 장(場/Field)이 될 것이다. 거기에는 개아(個我)도 없고 사물도 없다.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이다. 그것은 선정인가, 근접삼매인가?

 그래도 비는 오고, 나는 우산위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개미소굴로 돌아온다. 거리에 북적대던 사람들이 모두 제 각기 자기 소굴을 찾아 들어간다. 구멍마다 빛이 비쳐 나오는 아파트는 현대인의 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아직도 혈거생활을 하고 있다. 자기가 판 굴속에 엎드려 자기만의 밤을 지새운다. 어둠 속에 죽은 듯 눕는다. 대지의 품으로 들어가 다시 원시모(原始母/玄牝)의 젖을 빨고 꿈을 꾸면서 위안을 받으리라.

선문(禪門)에 이런 글귀가 있다.

목인야반천화거(木人夜半穿靴去), 나무사람은 한밤중에 신을 신고 가버리고,

석녀천명대모귀(石女天明帶帽歸). 돌여자는 아침이 밝자 모자를 쓰고 돌아오네.

 알아차림으로 생명을 삼은 ‘내가 없어진 내(眞空妙有/반야)’가 만물에게서 명상(이름과 이미지)을 뺏어버리니 삼라만상이란 짚신을 신고 가버린 것 같고, 반야의 작용은 만물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니 돌여자가 무분별, 무형상의 무념의 경지에서 명상을 일으켜 대상이 나타나는 대로 인식한다. 그것이 하늘이 밝아오자 삼라만상이란 모자를 쓰고 돌아오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당신은 나무사람이요 돌녀자이다. 밤이면 만사를 접고 누워서 잠속으로 들어간다. 당신은 한밤중에 망각(잠정적인 죽음)이라는 신발을 신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침이면 재생(부활)이라는 모자를 쓰고 일어난다. 그래서 당신은 매일 죽어 다시 태어난다. 이제 잘 때다. 오늘이 죽고 내일이 태어난다. 생과 사가 순환한다. 그래서 삶과 죽음이 돌고 돈다. 돌고 도니 이어지고 지속된다. 나는 지금 죽는 듯이 잔다. 내일이 없어도 좋을 듯이 잔다. 그게 대지의 꿈이다. 비가 내린다.

[시나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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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 道 香]

팽창하는 우주의 끝은, 중력도 인력도 척력도 어떠한 연기도 연생도 않는 대자유일까. 팽창을 꺼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축과 응축을 반복하여 부피는 극소로 질량은 극대하여 일체가 점으로 회귀하며 중첩되는 시공들의 요소들이 녹아있는 태초의 고요는 어떤 에너지일까 !

[waterwindlike]

서로 끌어 당기지 마라 붙잡지 마라 서로 밀어내지도 마라...
서로 당기고 밀어내고 붙잡는 세상을 사는 과보를 받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사두사두사두

[다나]

비가 개이고 화창한 날입니다.
있는 그대로 지내렵니다.
이제 만사를 접을 시간입니다.()()()

[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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